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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5연합 [사랑은 진리의 증거] 김성현감독 by KT
요한1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1서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한1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자들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진실을,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것의 참 뜻을 이제는 거의 다 알았습니다. 물론 그 뜻을 자세하고 깊게 이해하는 데에는 우리에게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의 어떤 큰 모양은 우리가 다 알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인격으로 섬기고, 나눔을 통해 더 돈독하게 관계를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니 이전과 달리 잘못하게 될 염려가 적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정성을 드려서 그 드린 공로만큼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를 데려가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이 땅에서 해 나가야 할 사명도 받아 주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우리는 요만큼이나마 가치가 있는 자로서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또 하늘나라에서 조금이라도 더 내게 주어질지 모르는 상을 위해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리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멀리 계신 그런 하나님을 무조건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와 완전히 사귀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는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가시려고 엄청나게 자기를 낮춰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그의 아들과 같은 신분으로 승격해 주셨습니다. 그런 주님과 함께 가는데, 또 그가 우리 속에 같이 계셔서 우리 마음을 지배하시며 우리를 견인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영광의 구탱이에라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영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도 긍휼로 우리를 그에게 가깝게 안아 올리고 계십니다. 훗날 하늘에 가서 보면,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 지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서 섬길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영광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복음의 진실을 알게 되어서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고 영원한 날을 준비할 수 있게 돼서 참 좋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가 모두가 천국에 가는 문제에 대해 100% 확신할 수 있는 완전한 상태가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천국에 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해 객관적으로도 우리가 확신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가 자신감을 갖고 자기를 헌신하는 데 하나 주저함이 없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간단히 축소해서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의 진리로 이제 새롭게 시작되었고, 진리 안에서 인도받으며, 진리를 이루어 가다가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왔다가 하늘로 갈 것입니다. 지옥에 갈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배반을 묵인하시고, 우리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인데, 이것이 진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짐을 지셔서 죽을 자들을 살리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진리입니다. 진리 중에 최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것은, 진리의 가장 대표하는 말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쉽게 말해서, 죄있는 자는 당연히 벌해야 되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자기의 그런 성품을 극복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든 살려주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찢어지는 그 고통을 다 감수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예 목숨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눈 앞에도 두고도 ‘그거 말고 더 중요한 거 있어요. 그것을 연구해 봅시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최고의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이제는 우리 앞길을 인도하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택하신 자들이 다 이렇게 모여서 신앙의 앞길을 분명히 하고 사명을 다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노력 좀 해 봐봐. 봐서 잘 하는 사람은 내가 구원해 줄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견인해 가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영원한 미래가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에 회개가 없는 채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뭔가 잘못된 신앙을 계속 이어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숫자적으로 상당히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평생 신앙생활 하면서도 자기가 천국에 간다는 데 대한 아무런 확신이 없는 채로 신앙생활 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진짜로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사람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표현을 다르게 하거나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이것은 문제입니다. 저는 거의 모든 우리 성도들이 ‘나는 절대로 천국 간다!’라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확신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안 되고 있다면 훈련해서라도 그렇게 하게 해야 합니다. 자기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뚫리지 않아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정말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건가? 내 미래는 하나님께서 정말 확정해 주시는 건가?’ 이것에 대해 반듯하게 해놓지 않은 채로 다른 일을 하려는 것은 마치 겉옷을 먼저 입고 속옷을 나중에 입는 듯한, 순서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죄사함 받는 것입니까? 여기 혹시 죄사함 받지 못하신 분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속죄받은 데에서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진리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해야 되는 것은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과 그가 행하신 모든 일들이 진리입니다. 다만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우리를 살리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핵심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고, 이제는 그것을 우리 삶의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그것이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사랑함으로써 하나님 은혜 받은 자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도덕과 사랑을 빌려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성격이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랑을 엄청 받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미래를 두려워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과연 잘 될까? 안 될까?’를 걱정한다는 것은 좀 미련스러운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10년 살고, 15년 살았다면 자기를 구원하시고 영원히 이끄시려는 그분의 심정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절대로 지옥 가지 않고, 절대로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하고 억지로 주장한다 해서 확신이 생기는 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반드시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 첫째 스텝을 여러분께 알리고 강력하게 권고하는데, 진리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사는 가장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랑해야 너희가 나랑 관련이 있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다른 복음서가 없었다면 성경 해석이 굉장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훨씬 더 타이트 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제자처럼 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이 볼 때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곧 제자였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시절 성도들 모두가 제자로 불렸습니다. 예수님과 관계 있는 자들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거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평생을 죽어라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사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오히려 끊으라 그랬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세상과는, 이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집 안에 들이지도 말라. 끊어라.’ 했습니다. 인사해도 인사받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죽어라고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볼 때에 기독교회가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전파하는 데대한 증거를 분명히 나타낼 수 있는 증거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고, 아무 지위도 없고, 똑똑한 것도 아닌데, 열심으로 그 하나님을 사랑하느라고 인생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이야,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또 사랑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회가 많은 위기 가운데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해서입니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어떤 자는 “사랑이 뭐가 중요하냐?” 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의 상황을 볼 때, 그런 생각은 더더욱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참 기쁘고 이 역경을 해쳐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안에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했다.’ 하는 것입니다. 교회 오면 사랑하고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따뜻한 보살핌이 느껴져야 합니다. 저, 피곤합니다. 제 인생이 어떤 면으로 봐도 피곤치 않을 때가 없습니다. 지금 너무너무 피곤한데, 성도들로부터 주님의 교회에서 사랑받고 싶습니다.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이렇게 제가 약합니다. 저는 사랑받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평안하고 싶습니다. 여기 그냥 거하고 싶습니다. 피곤하면 여기 와서 자고 싶습니다.
교회에 싸나운 얼굴과 차가운 마음이, 질투와 시기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 되지 않기 원합니다. 교회 안에 시기와 질투, 이기심,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주의 교회를 흠집 내고 있는 그런 것들은 원수가 다 가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 그런 거 필요 없다.” 하면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완성이 돼야 너희도 심판 날에 자신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을 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 안에 이루어져야 된다.” 그러면 훈련이 많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은 다 사랑해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랑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을 초월해야 합니다. 나를 완전히 사랑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데에 대해 안심하고 확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지합니다. 영적으로도 부족합니다. 눈을 뜰 수 있게 말씀을 받아야 하고, 말씀을 받을 때 마음을 충분히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거기 임하셔서 그 말씀으로 우리 안에 감동으로 역사하십니다.
이 성경에 나온 진리를 우리가 ‘맞다, 틀리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나와 있기에, 다 계시가 다 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무시하지 않는 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100% 우리가 “아멘!” 하고 받을 수 있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2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마귀의 모든 일을 깨고 하나님의 생명이, 영생이 전해져 온 것을 기독교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100%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왠지 거리낌이 있고, 어두운 안개로 자기 자신을 막아 놓고 있다면 안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우리를 보면 ‘엇, 저렇게 해서 자기 앞가림 할 수 있나?’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가림이 아니라 뒷가림, 무슨 가림 다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는데 무엇이 내게 불편함이 있겠습니까?
다만, 문제는 자기 사랑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넘버원 문제점입니다. 과거 세상에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쓰러지고, 잘못 되면 속으로 좋아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습성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남이 잘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항상 마음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굶주린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 1:10)
사람이 자꾸 자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멸망할까 봐서입니다. 우린 멸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생명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맡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목숨을 버리시면서까지도 하나님의 진리를 이루시려는, 그 사랑을 실현하시려 하는 주님이 우리를 인도해내고 계십니다. 미래에 대해서, 앞날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아이고, 다 끝났네!”가 아니라, “아요, 조금 아쉽네.”로 하고 마시기 바랍니다. 근시안처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기심으로 신앙을 망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여기 있을 때 주님께 각인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난 너 사랑하는데 너도 나 사랑하는구나!” 하고 보실 수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진리를 행하면 됩니다. 진리를 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모습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날부터 자기 사랑에 대한 개념이 확 바뀌어야 됩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이미 사랑하시는구나!’ 자기를 사랑하는 데 쫓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이 해소가 돼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자기 사랑은 계속 나옵니다. 그것에 사로잡히면 두려워집니다. 믿으면서도 지옥에 갈까 봐 두렵고, 마지막 날이, 미래가 두렵습니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에 싸우는데, 교회와 싸웁니다. 교회를 속이고 교회를 갉아먹습니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데, 조금 까보면 하나님과는 멀고 먼 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 사랑은 곧 죄의 함정입니다. 자기 사랑은 하나님 안에 비추어서 절제해야 합니다.
좀 어렵긴 합니다. 도시 생활을 하자면 자기 이기심을 발동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각박하기 때문에 사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당장 오늘 내일 운명도 점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사랑하고 있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해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 많은 교회들이, 2000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거의 100프로에 가깝게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 실천을 삶의 최고의 규범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전도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은 자로서 얼마든지 이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심을 갖고 있으면 못합니다.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같이 닫혀져 있는 데는 더 많이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베푸는 것도 어렵다면 문제가 됩니다. 도시 생활에 각박해졌다고 해서 교회에서도 ‘싫어, 난 나만, 나를 향하여만.’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주의 심정 가지고 우리 다시 일어나 주 섬기게 하소서~물이 바다 덮음같이~주 예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하는 찬양을 아실 것입니다. 이런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가 만일 ‘나’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못하면 문제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들은 어떤 노래인데, 음악적으로 마음을 여는 느낌이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에 ‘이 나라 바꿔주소서.’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 나라’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이런 상황이나 뭐든지 될 수 있는데, ‘이 나라’라고 돼 있으니 우리나라, 곧 국가, 이 민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찬양은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민족이나 나라보다 ‘나’에게만 관심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자기 사랑하기에 바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너무 동떨어져 왔습니다. 우리도 ‘물이 바다 덮음 같이’ 같은 찬양을 진정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복음 들고 나가서 민족을 구원하고, 사회를 구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자연스러운 복음의 선포자로서의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교육이 되어야 하고, 그만큼 기초가, 체질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멀었습니다. ‘엇?! 나한테 갈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없어!’ 하고 욕심 부리고 있으면 기독교인으로서 그 부분은 굉장히 점수가 낮은 것입니다.
저는 너무 아쉽습니다. 모두 다같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이 나라 바꾸소서’, ‘이 나라 회개케 하소서’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잘 되지 않으면 우리 교회의 미래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슬픈 시대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굴곡이 심합니다. 또 주변 정치적 상황이 굉장히 예민합니다. 인구는 많은데 땅덩어리는 좁습니다. 계속 싸웁니다. 티브이만 켜면 누가 누구와 싸운 이야기뿐입니다. 제가 외국에 있을 때는, 뉴스에서 좋은 소식들이 나왔습니다. ‘우와! 저 사람이 저렇게 상탔네.’ ‘우와, 저렇게 훌륭한 일을 했네!’ 근데 우리나라는 매번 싸움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를 돌봐주고 희생하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실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2서에 보면,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구약시대부터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기 시작한 다음부터다. 나타내주신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신 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진리를 다 마스터해 버리는 것입니다. 실천함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 육신을 가진 약점이 있는 자에서 그 모든 것을 최고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영적 상황을, 영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2 1:5~6)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나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한이서 1:8~9)
이제는 하나님과 또 그의 아들을 모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성도들의 사랑이 너무너무 그리웠습니다. 물론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저를 많이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덩달아 저같이 쓸모없는 사람도 사랑해 주더군요. 그러나 ‘내가 일반 성도였다면 사랑해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도 다 사랑받으셨으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천국 갈지 안 갈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지 않으실지 하는 의심이 사라지고, 마지막 날이 두렵지 않은 우리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실함으로 사랑에 전념하여서 그 사랑을 나타냄으로 진리가 내게서 행해지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기서부터 우리 시작하자구요. 음부의 권세는 우리 가운데서 완전히 물러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여 주셔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신 최고의 우선적인 일,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증거하는 우리의 믿음의 자세 있게 하시고, 심령이 변화하여서 참으로 사랑하는 사랑을 나타내게 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한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성도들을 도와주시고, 우리 교회를 도와주셔서 이곳 센터에 있든지, 또 어느 곳에 있든지 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말씀을 받고 겸손하게 정말 사랑의 명령을 지금까지 수만 번, 수십만 번을 외치신 우리 주님의 정말 한없이 외치시는 그 긍휼의 외침에 다 순복하고 이제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놀라운 사랑의 힘이 있고, 놀라운 우리의 신앙에 확신이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천국의 확신이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