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의 시세계/정영자-
환상적 이미지의 상승과 하강
1. 머리말
시를 사랑하고 시를 가까이 하는 국민은 멋이 있는 민족이다. 때문에 현대와 같이 서정과 낭만, 그리고 그 정신적 여유가 상실되어가는 과학과 급변의 시대에는 시문 학의 필요충분조건이 대두되어야한다. 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시가이면서 정형시이다. 모든 계층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국민문학이기도 하다. 고려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랜 동안 을 우리 선인들과 함께 해 온 시가이며, 한국 국민의 정서와 호흡, 그리고 가락에 맞는 간결한 형식이다. 진솔한 감정을 압축된 내용으로 담아서 전 사회 계층이 다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시조는, 한국인의 정신이 빚어낸 유일한 시형으로 한국적인 멋과 그 특성이 살아 있는 시가이다. 때문에 시조는 고전문학으로 시작되어 기본형 태를 그대로 오늘날까지 유지하면서 한국민족의 전통을 바탕으로 애정과 한파 자연 을 읊었다. 그러나 갑오경장 이후 서구문화의 심각한 유입과정에서 우리의 전통문 화는 급격한 변모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시기에 시조부흥운동을 일 으켜 현대시조를 다시 연속시키는 슬기로움을 보여준다. 우리의 『현대시조문학사』는 시조부흥운동사로부터 출발한다. 1)우리의 시조가 김 천택, 김수장을 지나 침체를 거듭하다가, 약 1訓년 후에 가객 안민영의 출현으로 마 지막 불꽃을 보이다가 다시 동면의 시기로 돌아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나, 육당이 1904년 시조형식에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하게 되고, 1917년경에는 출원의 노력
1) 박올수, 『한국고시조사』, 서문당, 1975, pp. 279-283 참조.
에 의해 현대화되기 시작하면서 이은상과 이병기의 시조가 나오게된다. 1925년 『조선문단』 5월호에 육당이 발표한 <조선국민문학으로의시조>란 논문을 시작으로 시조부흥운동의 깃발을 올리게 되고 『백팔번뇌』란 창작시조집을 발간한 다. 이 시기는 3·1운동의 실패에서오는 암담한 현실과 울분이 감상적이고도 퇴폐 주의적 낭만주의로나타났고, 프로문학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민족문학파의 각성을 촉구하게 된 것이다. 육당은 우리의 것을 찾고, 제 본바탕을 찾는 일이 모든 일의 근원임을 전제하고 스 스로의 자의식의 각성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2)때문에 현대시조의 면모가 정립된 시 기는 1920년대 후반이고, 활발한 현대시조의 창작은 이은상과 이병기가 활동한 193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폭넓은 시조문학에의 참여는 1930년대의 한 국 현대 여류문학 제2기3)와 함께 현대 여류시인이 등장한다. 장정심, 김오남, 오신 혜 등은 1930년대에 활동하며 시조집을 출간했고,이어 조애영이 이것을 계승한다. 이러한 여류문학 제2기의 시조부흥운동과 관련하여 영향을 받으며, 시조의 현대화 과정 속에서 독자들과 친근한 여류시인으로 1940년대에 등장한 사람이 이 영도이 다. 이영도는 시조시인인 오빠 이호우의 영향을 받으며 대구의 동인기 『竹筍』 창간호 (1946. 5)에 <제야>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한다. 4) 이영도 시조의 주조를 이 루는 그리움 등의 본격적인 정한이
2) 최남선, <조선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 『조선문단』, 1925. 5. 3) 김윤식, 「여성과 문학」, 『아세아 여성연구』 제7집, 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 여 성문제연구소, 1968: 12. pp. 99-119 참고. 김윤식 교수는 한국여류문학 제1기로 1920년대의 김명순, 김원주, 나혜석을 들고, 제2기생은 1930년대플 기점으로 소설에 박화성, 강경애, 최정회, 김말봉 등을, 시에 김오남, 노천명, 모을숙, 백국회, 장정심 등을 들었다. 4) 『죽순』 2집(1948. 8)에 <낙화>, <春宵> 발표, 3집(1946. 12)에는 <먼 생가>,< 姿嶺> 발표, 4집(1947, 5)에는 <病孤>, <먼 등불) 발표, 5집(1947. 8)에는<제승당>, 8집(1948. 3)에는 <洗兵館), <노을>, <삼월>, 9집(1949. 1)에는다시 <낙화>가 발표 되고 있음
등장하는 시기는 1949년 발표의 <낙화> 이후가 된다. 데뷔 작품인 <제야>는 한국적인 민속을 바탕으로 향수에 젖는동심을 그린 것이고, <낙화), <春宵>는 설레이는 여심의 막연한분위기를 노래하고 <먼 생가>는 존재의 경험을 추상화하는 형식인他設적 리듬으로 노래된다. <麥嶺>은 고국을 찾아온 가 난한 겨레의아픔을 노래한 사회인식을, <병고>와 <먼 등불>은 자신의 외로움을, < 制勝堂>과 <流兵館>은 자신이 통영여중고에 재직하던 시기에5) 충무공의 애국충절 과 세월의 무정함을 노래한 것이다. 이영도는 처녀시조집 『靑苧集』(1954), 둘째시조집 『석류』(1968),유고시조집 『언 약』(1976) 등의 세 시조집과 수필집 『청저집』(1958),『비둘기 내리는 뜨락』(196 訓, 『머나먼 사념의 길목』(1971), 유고수필집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1976) 등이 있다. 노산 이은상은 그를 우리 시대의 두드러진 여류시조시인으로 지적했고,6) 박재삼은 애모와 회한이라는 정감을 통한 민족정서의 재현으로 그의 시조세계를 개괄했다. 7) 김해성은 꽃이 피는 듯한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의 분노로 승화하여 반항 의 절정에 달했을 때 남달리 아름다움을 풍겨 주고 있다8)고 했다. 이영도는 가장 한국여성적인 상념을 대표하는 시조시인으로 황진이 수준의 도도함 과 풍류가 결여되고, 허난설헌 정도의 환상적인 상상력의 확대적인 면모도 적은 편 이다. 그러나 이영도의 시조는, 정한을 그린 그리움으로 그 안스러움과 애틋함이 정 서적 긴장과 함축속에 용해되는 불칼의 자장가로 노래될 때 더욱 값지게 빛난다. 때문에 그리움과 사랑의 '님'의 실체와 고독의 '한'이 병치되고 조화되는 그의 시조 는 현대 여류시조의 빛나는 한 수확이다. 본고는 이영도 시조에 나타난 환상적 이미지로 뭉뚱그려진 하늘과 우주의 무변한 세계에 상승의 환희와 그 설레임, 그리고 땅으로
5) 1945.10.-1953.5. 6) 이영도시조집, 『언약』, 중앙출판공사, 1976, 책머리에. 7) 한춘섭·박병순·이태극 편저, 한국시조 큰사전, 을지출판공사, 1985. 3, p. 604. 8) 김해성, 『한국현대시문학전사』, 형설출판사, 1974. p. 572.
의 하강이라는 기다림과 고독에 겨운 시적 구조를 통한 그리옴에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2. 환상적 이미지의 내용
현대시는 뜻, 소리, 이미지의 조화가 되는 방향으로 그 발전이 모색되어야 한다. 고 대의 시가가 소리에 치중하고, 민중시 계열을 선두로 뜻의 구호적인 함성이 시를 넘쳐 흐르도록 하고 있는 현대는 사상의 중요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름답고, 시다 운 시는 역시 뜻과 소리, 그리고 이미지가 조화되는 세련미, 내용미, 율격미가 있는 것이다. 요즈음 놀이마당으로 한국적인 농악이나 탈춤, 그리고 판소리가연희자와 관람객이 어울려 즐겁게 한판놀이로 변모되는 것을 보게된다. 내용도 있고 풍자도 있으며 현 실고발인 비판이 있지만, 그 속에는 순박한 인정과 웃음과 흥겨운 어깨춤과 그 가 락이 있다. 때문에 소리도 내용도 중요시되어야 한다.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짧은 글구로 지어지는 형식 속에 이러한 뜻, 소리, 이 미지의 조화가 있어야 하는 부담감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시조는 이미 이러한 세 가지의 시적 구성요소를 성공적으로짧은 글귀 속에 노래해 왔다. "시조는 정형시다. " 이 말은 시조가 형식을 가지고 성립한다는 뜻이요, 다시 그 말 은 시조에서 형식을 무시했을 뻔 벌써 시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때문에 한 사람이 시조를 쓴다는 것은 시조형식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며, 한 편의 시조를 감상하는 일도 따지고 보면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과 함께 시조의 형식이 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음미하는 작업일 것이다. 9)
9) 이우종, 「가람의 시조형식론」, 조규설·박철회 공편, 『시조론』, 일조각, 1978,pp. 433-434.
한국의 전통적인 율격은 시의 소리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또한45자 내외의 짧은 글귀 속에서 이미지가 선명하게 노래되어야 한다. 때문에 간결하고 깔끔한 시의 분위기를 요구하는 등의 다양한 시적인 기교를 보여 준다. 그러나 시는 인간 감정의 스스로의 탄생이기 때문에 정서적 긴장의 과정을 거쳐서 그 틀이 짜여진다. 이미지는 정신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가 있다. 정신적 이미지는 작품을 대할 때, 오직 독자의 정신에 야기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한다. 10) 이영도 시조의 이미지는 정신적인 이미지와 상징적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특히 상 상력인 환상에 관계되는 이미지들이 상승 무드와하강 무드로 나타난다. 또한 그러 한 이미지들은 반복과 회귀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여 이미지 다발(image cluster)을 보이고 있다. 이영도 시인은 정서적 긴장과 갈등을 변장된 형식인 상징적 형식으로도 시화한다. 특히 우주적인 환상이라고 할 수 있는 별, 유성, 샛별, 새벽달, 무지개, 아지랭이, 바 람, 석양, 노을, 구름, 어스름, 비,눈, 새벽, 아침, 황혼을 노래하는 상승 이미지를 주 조로 하고, 꽃을노래하는 대지적 하강 이미지로 국화, 연꽃, 낙화, 봄, 석류, 단풍,갈 대, 코스모스, 낙엽 등을 노래하고 있다. 우주적 환상 이미지의 상승적인 그리움과 환희, 그리고 빈 채로 충일한 동양의 노장사상 등이 엿보이고, 꽃과 결실로 대별되 는 대지적 하강 이미지는 아픔과고독으로 확대된다. 동양에 있어서는 서양처럼 이카루스(Icarus)11)나 파우스트(Faust)12) 등은 보기 힘 들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자연 속에 동화시키고조화시켜 나가면서 자신의 삶과 죽 음을 재생이라는 순환구조의 원리 속에 두기를 바란다. 또한 산수의 자연을 은둔의 장소요 놀이의
10) 이승훈, 『시론』, 고려원, 1979, p. 115. 11) 초로 붙인 날개로 태양까지 날아가 다가 초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는그 리스 신화 속의 인물. 12) 권력과 지식, 그리고 젊음을 위해서 혼을 악마에게 판 괴테의 『파우스트』속에 나오는 주인공.
장소로 보고 그 산수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관찰한다. 이영도 시조문학에 나타난 자연적 배경은 고행적인 은둔도 아니고 쾌락적인 놀이도 아닌 자연미의 감상 속에 사랑과 그리움의 님이 공존하는 아픔과 기다림이 있다. 이영도 시인의 일생 가운데 부산은 아름다운 곳으로 자리한다. 동래 차밭골에 자기의 거처인 愛日堂을 가꾸면서 멋진 시인으로 자연 속에 살아 왔 기 때문이다.
저 관악을 넘어 남쪽 천리 밖에는 내가 살던 애일당이 지금쯤 누런모과와 주렁주렁 열매를 가지 끝에 달고 선 잣나무가 秋晴을 업고서 있을 것인가. 우단같이 고운 잔 디 뜰에는 아직도 비둘기가 날아내 릴 것인가.
그 아담하고 고요롭던 나의 거처. 한 줌 흙, 한 포기 풀꽃에도 나의손길과 애정이 얽힌 그 집을 떠나올 때 나는 정말 이 땅 위에선 영주할 곳이 없음을 절감하지 않 을 수 없었다. 13)
여기 "차밭골"에 옮겨온 후 나는 요즈음 정말 생명의 싹트임이란것을 깊이 느껴 생 각해 본다. 14)
내가 살고 있는 이 "차밭골"은 왼 마을이 푸른 울타리로 되어 있어뉘 집을 둘러보 아도 신선한 기운이 풍기고 나직한 문짝과 더불어 철따라 피어 엉기는 젤레, 줄장 미, 탱자꽃들의 그윽한 향기가 뒷산솔바람과 함께 얼마나 사람의 감정을 기름져 주 는지 모른다. 15) 위의 수필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애일당을 사랑했고, 애일당의 자연과 동래의 자연적인 맑음과 푸름을 즐겼던 것이 다.
13) 이영도 수필, <창가에 앉아>에서. 14) 이영도 수필, <뻐꾸기>에서. 15) 이영도 수필, <울타리>에서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 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 <아지랑이> 전문
이 작품은 발표되자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첫째는 현대시조의 대다수가 연작인 데 비해 이 시조는 단수로써 완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나비라 는 한 단어를 일정하게 벌여 적어 활자의 시간적 배열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셋째 는 시조 형식에 있어서도 자유시 이상의 형식적 自在性을 보였다16)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시조의 형식을 지켜가면서 새로운 시조 형식의 가능성 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봄을 알리는 계절 분위기인 아지랭이가 자신의 사랑 이 된다는 자연동일시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시조는 대부분이 자연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마무리되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되어 있다. 그 그리움은 바다 의 파도처럼 밀려드는 충격적이고 전율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된 심층의 근원에서 조금씩 피어 오르는 것이다.
그것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꽃이 벌듯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 다. (중략)
16) 이근배, 이영도 해설, 『한국문학대사전』, 문원각, 1973, p. 483.
비가 오는 날엔 빗소리에 젖어 피고 바람이 불면 설레는 바람결에 피어 나는 것! 달 가운데도 깃들여 있고 황혼이 내리면 노을에 비껴 별을 쳐다보면 별빛같이 돋아 나는 것. 저 가슴 깊은 그곳에 망울망울 봉오리 맺아 있다가 어느 자칫한 몸짓에도 살포시 때로는 하염없이 입을 벌리는 이 애툿한 것은 아무래도 조수처럼 밀려오는 것이 아 니라 진정 내 깊은 안에서 꽃같이그렇게 피어 나오는 것이다. 17)
이와 같은 자신의 그리움이 화려한 계절의 환상적 분위기인 아지랭이로써 나타나고 있다. 불신과 증오로 몰아치던 추운 겨울의 가난한 영혼 위에 아늑한 봄 뜨락의 따 사로운 분위기는 노랑 나비례의가냘픈 나래마저 환희로 변모시킨다. 굳어진 인간들 의 가슴과 이마위에 어루만지듯 다가서는 아른거리는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향수 를 말하고 있다. 이영도가 봄과 관련된 시조를 특히 많이 노래하여 화사한 고독과 꽃피어 오르는 듯한 그리움으로 시화시키고 있다. "남쪽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먼 산허리에 보오얗게 잠긴 아지랭이가 잊히지 못할 그분의 표정처럼 고운 우울에 잠겨 있다"18), "이마를 어루만지듯 어쩌면 어머님 숨 결과도 같은 봄볕"19) "봄날이 화창할 전, 가까운 뫼들이 눈부시게 선연한 모습으로 우쭐대는가 하면, 먼 이내 속에 꿈길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능선의 표정은 그리운이 의 이마처럼 어질게 가물거리기도 한다"20)고 하여 그리운 사람의 이마와 봄 아지 랭이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다.
절절한 뉘우침에 천지가 고개 숙여
17) 이영도 수필, <나의 그리움은!>에서. 18) 이영도 수필, <봄볕 아래서>에서. 19) Ibid. 20) 이영도 수필, <稜線)에서.
이 한밤 하염없이 드리우는 그의 눈물
회한은 거룩한 속죄일래 가지마다 트는 움! -<봄비>전문
이웃에 봄을 나눈 살구꽃 그늘 아래
도란도란 애기들은 소꼽질에 잠차졌고
상추씨 찾는 병아리 돌아올 줄 잊었다 -<봄 2>전문
봄이 가네 훨훨 꽃잎을 흩으며 가네
낙화에 쌓여 나는 화관을 이고 섰네
날리는 꽃가루 속에 그냥 묻히어 섰네.
오라. 어서 그대 오라. 그 푸른 의상 곁들이고
향연 奏樂보다 더 겨운 이 꽃자리에
황홀한 기 약을 안고 화관이 지켜 섰네
- <花冠> 전문
회한에서 속죄로, 속죄에서 생명이 움트는 <봄비>의 연상은 긍정적인 그리움의 심 화이기도 하다. 일체의 것을 거부하며 천지간을 얼어붙도록 만든 겨울을 사랑의 봄 비로 적도록 하고 뉘우침으로 움트는 싹은 따뜻한 인간애의 승리로 볼 수 있다. 항 거와 자학과 인종의 고행이 한 포기 풀잎을 움트게 하기 위하여, 사랑의 눈물에 젖 을수 있는 화려한 고독과 기다림의 뿌듯함은, 인간의 사랑을 우선으로 하는 이영도 문학정신의 바탕에 있다. 때문에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노래하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따뜻한 그리움으로 꽃피는 향기를함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봄 2>는 따뜻한 이웃사람과 함께 환희와 잔잔한 행복이 살구꽃분홍 이미지와 도 란도란 들리는 청각적 이미지로 보여지는 시조이다. 자신도 "담담하면서 아름다운 몇 줄기 난잎 같은 가락으로 우주를 수놓는 그러한 시를 쓰고 싶은 의욕"21)을 밝 힌 바 있듯이 한가한 봄날 어느 한낮의 그림같은 시조이다. <화관>은 화려한 애수 속에 그리움을 담고 현재진행형으로 흩날리는 꽃 속에 그대 를 찾는 황홀한 기약을 가진다. 이 시조는 두 연으로 된 연시조로 앞부분의 시조는 떨어지는 꽃잎 속에 함께 하는 하강 이미지를 보이고, 둘째 연은 이영도 시인이 모 처럼 격정적으로부르는 육성의 목소리가 상승 이미지로 솟았다가 다시 지켜 서는차 분한 기약으로 돌아오고 있다. 결국 불처럼 타는 정념을 맑고 고요한 정조로 바꾸 어 놓는 뛰어난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너는 가지에 앉아 짐승같이 울부짖고
21) 이영도 수필, <그림 앞에서>에서.
이 한밤 내 마음은 외딴 山직인데
가실 수 없는 멍일래 자리잡은 그리움 -<바람 1>전문
눈이 내리네 펄펄 내 마음 비인 뜰에 그날 그 사랑을 타이르며 타이르며
산하는 가슴을 닫고 돌아 앉아 있어도‥‥ -<눈>전문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비>전문
이은상은 "이영도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럴다는 맑고, 고요하고, 격조 높은 시를 쓰고, 시를 이야기하고, 또 시를 생활화하고 간 여 인이었다"22)고 밝히고 있다.
"바람과 눈, 그리고 비"를 통하여 잔잔히 그리고 맑게 일어나는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때로는 외롭게, 때로는 억울하고 분하게, 그리고 또 가뭄의 빗방울같이 안타 깝게 스쳐간 즐거운 시간과 인정들‥‥‥ 그 무수한 목숨의 애환"23) 속에 이영도 의 그리움은 외로움과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한다. 바람, 눈, 비 등의 자연현상 은인간의 손으로 잡고 확인할 수 없는 계절적이고, 기후적인 상황이다. 특히 생각의 '빛'과 '모양'과 '소리'가 알고 싶었던24) 이영도는 자기의 거처인 애일당의 새벽이 빛보다 먼저 소리에서 음을 말하고 있다. 25)
먼 곳에서 그리움같이 밀려오는 솔바람 소리! 그리고 울타리가 을고 대숲이 서걱이 고 창문을 두드리고 내 생각을 불러내어 먼 하늘가로 하늘가로 달음질 쳐간다.
이렇게 그 소리만으로도 바람은 내 눈안에 동작을 나타내고 표정을 짓고 황홀한 색 채와 눈물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26)바람 소리만으로도 그 동작과 표정과 색채를 보여 주는 시인의인식은 평범을 초월한 곳에 자리한다. '소리'에 민감한 시인이 이 영도라고 보아진다. 그가 보여 주는 많은 시조에서 이와 같은 소리와상관되는 작품 들이 많이 보인다. 손에 잡고 확인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노래하면서 그것이 곧 사 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환원되어지는자연스러움은 이미 이영도 시인이 자연관조를 넘어 자연사랑과 사연몰입에서 오는 자연동일시적 시조시인이라고 할 수 있음을 시 사하고 있다. 윤선도가 <오우가>를 불렀던 자연환경적인 요소를 이영도는 애일당 속의 생활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22) 이 영도 시조집, 『언약』 책머리에, 중앙출판공사, 1976. 23) 이 영도 수필, <창가에 앉아>에서. 24) 이 영도 수필, <애정은 기도처럼>에서. 25) 이 영도 수필, <소리 >에서. 26) 이 영도 수필, <바람>에서
3, 그리움 - 상승에서 하강까지 이영도의 모든 시조는 그리움을 나타낸다 때문에 이영도 시조의주제는 그리움이고, 그 기법은 환상적인 이미지의 상승과 하강으로읊어지고 있다. 또한 직설적인 표현 가운데 이지적이고도 깔끔히 정리된 감정을 보이지만 뜨거운 사랑의 입김을 어쩔 수 없이 노출한다. 시조는 현대시 이상으로 그 정서적 긴장을 필요로 한다 그런의 미에서 그의 정서적 긴장이 갖는 그리움과 사랑은 너무나 간결하게 많은 것을 보여 준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래도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무제 1>전문 정 정 한 松栢같은 당신의 思惟 안에
저녁 어스럼 박꽃같은 나의 정은
수석 에 그름이 잎읏 조요로운 멋일레
차라리 말이 없어 당신은 바위인데
내 인생은 여울지는 실계곡
춘정에 돋는 속잎을 멧새들이 노닌다. -<무제 2>전문
<무제 I >은 그의 대표작이다. 첫 시조는 가장 한국적인 여인이사랑하는 사람을 생 각하는 그 민망함과 서글픔과 기다리는 마음을나타내고, 둘째 시조는 할 말이 너무 많아 말없이 앉아 서로 열린창을 바라보다가 하염없이 보내는 정한을 읊었다.
투명하되 그 질에 있어 훤히 속살을 들춰내는 맞보기 나일론 등속과도 달리 아른아 른 잠자리 날개같은 그 은은한 얼비침과 서느러운품이 좋아, 나는 여름밤이 저물도 록 빨래 손질에 골몰하면서도 즐겨모시옷을 입어야 했다. 자락을 드리우면 넓게 퍼져 내리는 치마폭의 여유! 살풋 감아 걷으면 서리서리 이 랑을 짓는 곡선의 情調!27) 만나면 정작 민망함에 말을 잃는 목석. 사무치게 간절턴 서로의 사연은 겹겹 보배 처럼 안으로 접고 창너머 하늘이나 물끄러미 바라보
27) 이영도 수필, <나와 한복>에서
던 애정이 있었읍니다. 그 하늘을 통하여 나누는 무수한 이야기, 호호한 스크린 안쪽에 펼쳐지는 진흥빛 心紋은 영혼으로만이 交響하는 노래가 아닐 수 없었읍니다. 사고와 자아를 잃은 한때의 허탈에서 문득 일어서는 그리운 이의모습을 향해 흔드 는 손은 바란에 나뭇잎인데 물 괴어 드는 눈알은자꾸 뜨거워지는 것, 그 순간이 지 나면 아득히 내와하는 몇백 리의 꿈길만이 가로놓인 애달픈 거리인데도‥‥28)
수필 <나와 한복>에서 보이는 은은한 얼비침과 서느러운 품, 그리고 넓게 퍼져내 리는 치마폭의 여유와 살폿 감아 걷으며 서리서리 이랑을 짓는 곡선의 정조가 있고 <무제 I >에서는 은은하고 서느러우면서도 서리서리 이랑짓는 폭넓은 그리움과 사 랑을 나타내고있다. 이영도 시인은 자신의 모시옷의 장점처럼 그의 인생과 사랑을 살다간 시인이다. < 무상의 장>에서 인용한 부분은 이영도 자신이 수필을 통하여 <무제 I>을 해설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조보다 오히려 수필에서 더욱 진솔하고, 뜨거운 자신의 사랑을 밝 히고 있다. 사무치게 간절한 사랑이 만남을 이를 때, 두 시선이 하늘에서 만나 서로 를 화인하는 가운데 말없이 일어서 가고 하염없이 보내는 처절한 침묵의 약속을 지 킨다. 그의 유고집 『언약』 중의 <눈길에서>에서 그는 '너무 가득하여차라리 빈 가슴' 임을 노래한다. 촛불이 물이 되고 물 속에서 불이일어나는 동양적인 역설의 논리는 가득하여 빈다는 마음으로 통한다. 확인이 말로 약속되고, 사랑이 글로 표현되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대에 그리운 이의 생각과 그리운 이의 만남과 그 이별을 담담 하게 그러나 완전한 열정적인 사랑으로, 그리고 확신있게 신뢰하는 미더운 그리움 으로 일고 있다. <무제 2>는 松柏과 박꽃의 대비, 수석과 구름의 대비, 바위와
28) 이영도 수필, <無常의 章>에서.
실계곡의 대비를 통하여 님과 나의 먼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멀게그러나 가까운 사 랑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단적으로 이것은'당신의 思惟'와, '나의 정'으로 나타 난다. 생각으로 살고, 정으로 살아가는 거리는 결국 종장의 '春情에 돋는 속잎은 멧 새들이 노닌다'의 미래가능적인 환희로 끝맺음 한다. 이영도의 그리움은 확실하게 실체가 부여된 그리움이 아니라, 환상적이고 모성적인 그리움이다. 이것은 그의 초기 시조에 보이고 있는 고향회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가장 한국적인 정한에 인생과 문학을 살아 왔던 그는 그리움이라는 상승 이미지의 시조를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숫자로 노래했다. 그러나 그의 상승 이미지는 결국 하 강 이미지로 변모되는 고뇌와 슬픔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상승의 전제된 의 미이기도 하다.
서리 찬 하늘을 이고 가지 끝에 붉은 열매
모진 그 세월에 안으로 영근 사랑
哀樂은 낙엽 에 지우고 오직 남은 기약이며! -<고>전문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혼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愛慕는 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탑Ⅲ>전문
산이여! 목 메인 듯 지긋이 숨 죽이고
바다를 굽어 보는 머 언 칠 묵은
어 쩌 지 못한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 임 같은 물결소리 내 소리
세 월은 덧 이 없어 도 한결같은 나의 정 -<황혼에 서서>전문
예문으로 보인 <고>, <탑Ⅲ), <황혼에 서서>는 애모가 그 주제이 다. '눈앞에는 없는 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한결같은 정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나 라의 민족정서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과 님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노래된다. 우 리의 민족정서에 알맞은 내용과 민족 리듬을 그대로 살린 시조를 통하여 이영도는 사랑하는 님에 대한 그리움을 기약과 돌과 정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사랑의 마음이 푸른 돌로 굳는다는 것은 님에 대한 맹세를 보여주고, 변함없는 사 랑이 지극에 달해 사리로 맺혀 굳을 수 있는 사랑의 종교화를 의미한다. 때문에 시 인의 사랑은 이미 세속적인 현세의 사랑으로써가 아니라, 고결한 정신세계의 알맹 이인 사리로 굳는 귀하고 존엄한 사랑으로 변모한다. 그때 님은 이미 눈앞에는 없 는 님으로 존재한다. <황혼에 서서>는 연시조이다. 첫 시조는 산을 노래하면서 시인자신의 아픔을 노래 하고, 둘째 시조는 시인 자신의 한결같은 정을노래한다. 이영도 시조의 특성은 자연 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마무리 하는 기 법 이 다. 산과 바다는 숙명적인 자연이다. 산이 있기에 바다가 있고, 또한바다가 있기에 산이 있다. 그 둘은 매우 대조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상승과 하강 이미지를 대표하는 하 늘과 땅 속의 세계를 보여 준다. 시인 자신이 고백한 바와 같이 "산은 항상 내게 묵중하라 타이르고 바다는 자꾸 몸 부림치 라 한다. 노을은 곱게 타라고만 하고 바람은 함께 흐르자고 한다"29)는 이율 배반적인 심리는 그의 시조에서는담담하게 처리되고 있다. '눈앞에는 없는 님'에게 보내는 한결같은 사랑은 민족정서의 한전형이기도 하다. 이 러한 님에 대한 고통과 오뇌는 비애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움과 기원으로 변모 되면서 다시금 상승 이미지의 구원의식으로 노래된다. 그의 유고시조집인 『언약』 은 기독교적인 구원의식과 모성적인 회귀로 나타나고 있다. <흐름 속에서>는 단시조가 아홉으로 구성된 연시조로 그의 구원의식이 그대로 나 타난다. 그외 <鍾I >, <기도>, <은총>, <노을>,<봄비>, <추정을 간(磨)다>, <부 활절의 노래>, <渴願> 등은 그의기독교 신앙을 보이는 시조들이다. 이영도는 그의 만년을 독실한 신앙으로 살다 갔음을 엿볼 수 있다.
29) 이영도 수필, <길>에서.
4. 맺음말
이영도 시인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슬프도록 외로운 인생을 살면서 투명하고 격 조 높은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여류시조시인이었다. 오늘날에는 그 자신의 독특 한 시조로 알려지기보다 청마 유치환의 사랑하는 여류시인으로 부각되어 있는 모순 을 탄생시킨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인생편력보다 이영도 시조의 가 치를 문학사적으로 살펴볼 단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그리움이 죄가 될 수 없듯이 시인의 시 속에 승화된 사랑과 한은시인의 것으로가 아니라 이미 독자들의 것이 된다. 가장 애송되는시조이기도 하면서 그의 절창이라 이름할 수 있는 <무제 I >은 가장 한국적인 여인의 사랑과 기다림과 망설임을 보 여 준다. 민족정서는 이미 민중정서의 폭넓은 수용으로 그 및을 발한다. 이영도 시 조는 첫째 정한을 주조로 하는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둘째 기독교 신앙으로 몰입하는 구원의식과 셋째로 조국과 민족에 바치는 애정과 염려를 담고, 넷째는 명 승고적 지 탐방시를 통한 자연예찬, 다섯째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풍습에 대 한 향수를 그리고 있다. 『현대문학』 1955년 4월호를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선물하는 것을 시작 으로 두 사람은 『현대문학』을 주고받는 정다움과 알뜰함을 보여 준다. 이것은 필 자의 확인이다. 30) 두 시인은 평범 이상의 다정한 사이임에는 분명했으나, 유행으로나오는 評設이나, 시정에 돌아다니는 얘기들은 오히려 두 시인의 문학정신을 그르칠 위험도 있다. 한국의 민족정서와 잊혀져 가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 그 리듬을재구성하면서 간결 한 형식 속에 많은 정감을 담았던 이영도 시인은
30) 부산여자대학 도서관소장, 『현대문학』 1955. 4월호-1961. 1월호까지 유치환시 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22권을 친필로 써서 선물하고 이영도 시인은 유치환 시인에 게 30권을 선물하고 있다.
황진이, 장정심, 김오남, 오신혜, 조애영을 이여 1950년대에서 1訓0년대의 현대시조 를 정착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특히 이병기, 이은상,김상옥 등의 시조시인 외에 여 류시조시인이 귀했던 당대에 그는 한국여인의 정취를 그대로 시조로 읊고 그리움으 로 사랑과 기다림을키워간 한국적 여인의 인생을 그대로 살다 간 시조시인이라 할 수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