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나 줘!
(부제: 올해의 엉덩이)
다은
[가족 미워!]
[독립한다고 말할 거야!]
[응! 그러자!ㅠㅠ]
[근데 나]
[엉덩이 만지고 싶어]
[좋아]
[고마워...]
[아나]
[바보야!]
[엉?]
[왜..?]
[너가 힘들어하고 있는데]
[내가 엉덩이 만지고 싶다고 하면]
[좋아?]
[좋기만 해?!]
[좋기만 하지 않고...]
[안심도 되고]
[사랑받는 느낌도 들고]
[안전하게 느껴지고...]
[스트레스가 풀리고......]
[참내]
[그럼 만져야겠군]
[키키...]
땡글은 기분이 좋으나 나쁘나, 마음고생이나 아니나 일단 살이 닿으면 좋다고 했다. 다투다가 눈물이 줄줄 나고 억울해도 마찬가지란다.
다툴 때 땡글은 감정을 깊숙이 미뤄두고 이기기 위한 논리를 풀 장착한다. 그리고 조금 과장된 사실을 대포처럼 쏜다.
팡-
막상 대포알을 받아서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마음을 알아달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이때 효과가 좋은 건 대포알을 투명알 취급한 뒤에 화난 애의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이다. 땡글이 기분 좋을 때 여러 번 당부해주었고, 내 쪽에서도 디테일까지 마스터한 기술이기 때문에 효과는 확실하다.
팡-
팡-
팡-
일단 심호흡하고, 상처받기 위해 성실히 판단 중인 뇌를 끈다. 분명... 아무리 속상하고 화나 보여도 일단 엉덩이를 두드리랬지. 엉덩이는 언제 두드려도 좋댔어. 독사의 머리를 쓰다듬는 심정으로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엉덩이를 두드리고, 등도 찬찬히 쓰다듬어 본다. 내친김에 머리도 살살살 만진다. 쭈뼛 서 있던 땡글의 잔머리가 스스스 가라앉는 것 같다. 방을 가득 메운 팽팽한 공기도 스스스 느슨해진다. 어느덧 대포는 입을 다물었다. 매서운 말과 눈매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엉니... 미안해애...”
꼭 괴물이었다가 인간으로 돌아온 영화 속 아내처럼, 다시 나를 사랑하는 눈을 한다. 나보다 키도 크면서 어떻게 한 건지, 땡글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방금까지 대포 쏘던 후크 선장은 어디 가고 갑자기 장화 신은 고양이라니. 이번엔 내 잔머리가 쭈뼛 선다.
“아아아악!"
"막판에 귀엽게 굴면 다냐?!"
"왜 잘못 아닌 것도 잘못이라고 하냐고!"
"너가 화나서 하는 말은 틀리잖아! 말을 왜 그렇게 해!!"
소파를 팡팡 치고 발을 구르면서 으이이익 떨고 있으면 땡글은 '마져 마져, 엉니 말이 다 맞아' 끄덕이다가 '하지만 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잖아'라며 찡긋거린다.
"몰라, 엉덩이나 줘!"
"웅"
제 말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엉덩이를 들이미는 여자다. 여유가 되면 바지도 깐다. 그럼 나는 엉덩이를 팡파방 때리거나 한 번 깨물고, 얼빠진 연하의 표정을 구경한다. 소리 없이 놀란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코를 깨물기도 한다. 그때마다 땡글은 아악 소리치다가 억울한 눈이 되었다가, 멋쩍게 웃으며 자기 발을 제물로 바친다.
“발바닥도 간지럽혀도 돼...”
얘가 아까 걔라고? 하지만 확실히 긁기 좋게 생긴 발바닥이다. 아치의 굴곡이 하나도 없어서 매우 통통하고, 얼핏 보면 네모난 발바닥.
"흠, 이제 됐어."
아무튼 땡글의 짝꿍은 오늘치 도파민을 채웠기 때문이다. 땡글의 괴로운 희생 대비 따라오는 도파민을 생각하면, 이 이상은 효율이 안 좋다. 이쯤 멈춰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도 하다. 할 말도 다 하고 실컷 만져진 땡글은 반질반질한 얼굴로 침대에 엎드려 네모 발을 흔든다.
"언니~ 좋아!"
"으휴, 나도 너 좋아."
이제는 마음이 개운해진 짝꿍도 못다한 일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