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나찰국 여왕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다
위소보는 쌍아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한 후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이 며칠 동안 나는 줄곧 마음을 정하지 못했소. 보물 을 파내면 그야말로 용맥을 끊게 되어 황제를 죽게 만들까 봐 겁이 났 소. 황상께서는 나에게 잘 대해 주시고 계신데 내가 그를 해쳐 죽게 한 다면 그에게 미안한 노릇이 아니겠소? 그런데 보물을 파내지 않는 것도 아깝단 말이오.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우리들은 잠시 동안 보물을 파 지 말고 황상께서 돌아가시면, 이후 우리가 밥을 굶을 정도로 곤궁해지 게 되면, 그때 다시 파도록 합시다. 그래도 늦지 않을 것이오.]
막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였을 때 갑자기 나무상자 안에서 가볍게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눈짓을 하고 나무상자를 주시하며 잠시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동정도 엿볼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두 손을 가볍게 세 번 쳤다. 쌍아는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밖 을 지키고 있던 네 명의 친위병들이 즉시 허리를 구부리고 무슨 분부인 가 하고 기다렸다. 위소보는 즉시 나무상자를 가리키며 나직이 말했다.
[안에 사람이 있다!]
네 명의 친위병은 깜짝 놀라 나무상자 옆으로 서둘러 다가가 뚜껑을 열 었다. 그러고 보니 나무상자 안에는 옷가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위 소보가 손짓을 하자 친위병들은 옷가지를 들추어내고 상자 밑바닥을 들 추었다. 커다란 동굴이 드러났다. 바로 이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동 굴 안에서 누군가 총을 쐈다. 한 명의 친위병은 으악, 하더니 어깻죽지 에 총을 맞고 뒤로 벌렁 쓰러졌다. 쌍아는 재빨리 위소보를 끌어당겨 자기의 등뒤로 밀었다. 위소보는 화 로를 가리키며 불을 쏟아 부으라는 손짓을 했다. 한 명의 친위병이 화 로를 들고 그 구멍에다 쏟았다. 그러자 그 구멍 안에서는 나찰말로 크 게 부르짖었다.
[화로를 쏟지 마시오. 투항이오!]
곧이어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위소보는나찰말로 부르짖었다.
[먼저 화총을 던지고 기어나오도록 해라!]
동굴에서 곧 단총이 던져졌고 곧이어 한 명의 나찰병이 고개를 내밀었 다. 친위병이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당기자 다른 친위병은 칼을 빼 어 그의 목에 갖다 대었는데 그 병졸의 수염에도 불이 붙어 아직도 꺼 지지 않은 상태라 그는 아파서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으며 낭패하기 이 를 데 없는 모습으로 기어나왔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아래 또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자 동굴 안에서 또 누가 부르짖었다.
[또 한 사람 있소. 투항이오, 투항이오!]
위소보는 호통을 내질렀다.
[총을 던져라!]
구덩이 입구에서 하얀 광채가 번쩍 하더니 한 자루의 마도(馬刀) 가 던져지고 곧이어 한 무더기의 불꽃이 나왔다. 원래 그 나찰병의 머 리카락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문 밖에서 지키고 있던 친위병들은 대원 수의 방에서 어떤 변고가 일어났음을 깨닫고 몇 사람이 달려들어왔다. 곧 칠팔 명의 친위병들이 두 명의 나찰병을 잡고 그들의 머리카락과 수 염에 붙은 불을 끄고 나서 손을 뒤로 해서 결박했다. 위소보는 갑자기 한 명의 나찰병을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어? 너는 왕팔사계(王八死鷄)가 아니냐?]
그 병졸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고 말했다.
[예, 예. 중국의 꼬마 대인. 나는 화백사기(華伯斯其)이외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의 나찰병이 부르짖었다.
[중국 어린애 대인, 나는… 나는 제락낙부(齊洛諾夫)이외다.]
위소보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의 수염은 불에 타서 엉망으로 벌겋게 되어 있었으나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맞았어, 너는 자라유부였지!]
제락낙부는 크게 기뻐 부르짖었다.
[맞았소, 맞았소! 중국의 어린애 대인, 나는 그대의 친구이외다!]
화백사기와 제락낙부는 모두 소비아 공주의 위사들이었다. 과거 아극살 성에서 위소보와 함께 모스크바로 간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엽궁에서 화창수들을 따라 반란을 일으키고 약간의 공로를 세웠었다. 소비아 공 주는 나라의 정권을 받은 이후 자기를 뒤따른 병사들에게 보답하기 위 해서 자기가 거느렸던 위사들을 모조리 대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들 가 운데 네 사람은 동쪽으로 와서 공을 세우는 한편 노략질을 하려고 이 아극살 성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싸움에 패하여 성이 무너질 때 한 사 람은 전사하고 한 사람은 얼어죽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살그머니 지하 도로 숨어 들어가 성 밖으로 달아나려고 했는데 성 밖의 지하도 출구가 이미 봉쇄된 줄을 몰랐던 처지여서 그만 두 사람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으며, 끝내 그들의 행적이 탄로나고 만 것이었다. 과거 위소보는 그들을 왕팔사계와 자라유부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그 뜻을 알 까닭이 없었고 그저 중국의 어린애가 발음이 부정확해서 그런 다고 생각하고 즉시 대답을 했다. 그들은 소비아 공주가 위소보를 중국 어린애라고 하는 바람에 처음엔 따라서 중국 어린애라고 했으나 나중에 위소보가 공을 세우고 공주가 그에게 작위를 내리자 위사들은 중국 어린애 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 이었다. 위소보는 그들의 내력을 듣고 친위병에게 명하여 결박을 풀어 준 이후 술과 음식을 대접도록 했다. 친위병들은 이 지하도에 아직도 첩자가 있을까 봐 들어가 수색을 했고, 방안에 다른 지하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물러갔다. 친위병 대장은 마음속으로 여간 당황하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잇따라 사죄를 했다. 그는 속으로 정말 요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이 두 명의 나찰 병이 야밤에 구덩이에서 뛰어나와 위 대원수를 찔러 죽였다면 온 가족 이 몰살을 당할 판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위소보는 화백사기와 제락낙부를 불러서 소비아 공주의 근황을 물었다. 두 사람은 공주 전하가 조정을 총괄하고 있으며, 나찰국의 왕 공 대신이나 주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 다. 그리고 두 사황 역시 나이가 어려서 모두 누님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제락낙부는 말했다.
[공주 전하께서는 중국의 어린애 대인을 매우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우 리들에게 그대의 소식을 알아보라고 분부했으며 우리들이 그대를 만나 게 된다면 다시 모스크바로 초청해서 며칠 놀다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 면 공주께서는 많은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화백사기는 말했다.
[공주 전하는 중국 어린애 대인이 군사를 데리고 와서 싸우는 것을 모 르고 계셨소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두 다 친애하는 사람이고 절친한 친구이니 이번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여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군.]
두 사람은 맹세를 하며 절대 틀림없는 사실이며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상은 본래 나에게 방법을 강구해서 나찰국과 강화를 하도록 하지 않 았는가? 그러고 보니 이 두 녀석을 시켜 소비아 공주에게 이야기해 보 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한 통의 편지를 써 줄 테니 그대들은 공주에게 갖다 주시오. 하 지만 나는 나찰의 지렁이 글자를 모르니 그대들이 대신 쓰도록 하시 오.]
화백사기와 제락낙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처한 빛을 띠었다. 그 들 두 사람은 그저 말을 타고 총을 쏠 줄만 알았지 붓을 들고 글을 쓰 는 것은 전혀 깜깜이었다. 제락낙부는 말했다.
[중국 어린애 대인께서 연서를 쓰라 하시면 우리들 두 사람으로서는 해 낼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우리들이 선교사를 찾아내어 쓰도록 하 죠.]
위소보는 응낙했다. 그리고 친위병이 그들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나찰 의 항복한 사람들 가운데 선교사를 찾도록 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사람은 한 명의 텁석부리 선교사를 데리고 왔다. 이때 나찰의 군인들은 대부분 글자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종군 선교사는 상제(上帝)에게 기도하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직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군사들과 장수들을 대신해서 집에 편지를 써 주는 것이었다. 그 선교사는 청나라 군사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작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 선교사는 매우 놀라서 전전긍긍하면서 두 명의 대장을 따라서 위소보에게 인사를 드리며 말했다.
[상제께서 중국의 대장군이신 그대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중국의 대장 군 일가도 무사하기를 빕니다.]
위소보는 그에게 앉으라고 하고 말했다.
[그대는 나를 대신해서 그대들의 소비아 공주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 줘 야겠소.]
그 선교사는 즉시 응낙했다. 친위병은 이미 탁자 위에 문방사우를 준비 해 놓았다. 그 선교사는 붓을 들고 화선지를 펼친 이후 구불구불한 나 찰의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붓놀림이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획이 갑자기 굵어졌다가 가늘어졌다 해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으나 반 마디도 중국의 붓과 먹이 나쁘다고는 감히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중 국 장군의 반감을 사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다음과 같이 쓰시오. 헤어진 이후 종종 공주를 생각했으며 공 주를 마누라로 삼고자 했소……]
그 선교사는 깜짝 놀라 손을 떠는 바람에 붓이 그만 종이 위에 떨어져 하얀 종이 위에 한 무더기의 검은 자국을 내었다. 제락낙부는 말했다.
[이 중국 어린애 대인은 바로 소비아 공주 전하의 달콤한 사랑이란 말 이오. 공주 전하께서는 매우 그를 사랑하시어 종종 중국의 정인은 나찰 의 정인보다 백배는 낫다고 말했소.]
그는 위소보의 비위를 맞추려고 몇 배 불려서 이야기를 했다. 선교사는 연신 대답했다.
[예, 예. 백 배 더 낫죠, 백 배는 뛰어나죠.]
그러나 그는 마음과 정신이 안정되지 않아 글귀를 생각해 내어야 하는 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감히 붓 을 든 채 생각을 가다듬을 엄두도 나지 않아 평소 써왔던 진부한 글귀 들로 적어 내려갔다. 이것은 모두 다 나찰 사병들을 위해서 고향의 처 와 정인에게 써 주는 정다운 귀절들이었다. 다정하고 달콤한 마음이니, 어젯밤 꿈에 그대를 보았느니, 일만 번이나 그대에게 입맞춤을 했느니 따위로서 여러 차례 그런 인사말을 써야했다. 그가 나는 듯 붓을 움직 이는 것을 보고 위소보는 크게 만족해서 말했다.
[그대들 나찰병은 우리 중국 땅을 점령하고 많은 중국의 백성을 죽였 소. 중국의 황제는 매우 화가 나서 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그대들의 병졸과 장수들을 다 잡으라 했소. 나는 그들을 토막 토막 내서 모두 다 하서니극으로 만들 것이오……]
그 선교사는 다시 깜짝 놀라 아, 하고 말했다.
[오! 저의 상제이시여!]
위소보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대 공주 얼굴을 봐서 잠시 죽이지 않겠소. 만약 그대가 나찰 군사로 하여금 재차 우리 중국의 영토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응낙한다면 중국과 나찰국은 바로 영원히 절친한 친구가 될 것이오. 만약 그대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군사를 보내 그대 나찰 남자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니 그때는 그대를 모시고 잠을 자는 나찰의 남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오. 그대가 남자와 더불어 잠을 자려면 천하에서 오로지 중국 사람밖에 없을 것이오.]
선교사는 속으로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천하에는 나찰 남자들 외에 중국 남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는 한편으로 이와 같이 무례한 말은 공주에게 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몇 마디 공손하고 다정한 말로 고쳐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한다 해도 중국의 장군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위 인됨이 조심스러워 혹시 위소보가 알아내게 될까 봐 그와 같은 몇 줄의 글은 라틴어로 썼다. 다 쓰고 나자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위소보 는 다시 말했다.
[이제 나는 왕팔사계와 자라유부를 시켜 그대에게 편지를 보내고 예물 을 선물하는 바이오. 나의 정인이 되든지 적이 되든지 그대 스스로 결 정하도록 하시오.]
그 선교사는 최후의 말은 지극히 공손하기 이를 데 없는 말로 다음과 같이 썼다.
[중국의 소신은 전하의 두터운 은혜를 언제나 잊지 않고 있으며, 삼가 공물을 바쳐서 충성심을 표하나이다. 소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하 에게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신하입니다. 아무쪼록 두 나라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나찰의 포로된 군민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해 주시면 실로 전하의 무한한 은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후의 이 한마디는 바로 그의 사사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는 만약 두 나라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와 나머지의 나찰 포 로들은 반드시 타향에서 객사하여 영원히 귀국할 수 없으리라고 짐작했 던 것이다.
[끝났소? 그대는 나에게 한번 읽어 주시오.]
선교사는 두 손으로 편지를 받쳐들고 읽어 내려갔는데 자기가 고쳐 쓴 부분에 이르러서는 다시 위소보의 뜻을 그대로 읽었다. 위소보는 본래 나찰의 말을 잘할 줄 모르는 데다가 듣기에도 거의 비슷비슷한지라 어 찌 그 선교사가 임의로 문장을 고쳤다는 것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매우 좋소!]
그는 무원대장군위지인(撫遠大將軍韋之印)이라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도 장을 꺼내서 편지 말미에다 찍었다. 이 한 통의, 연애편지 겸 공문 같 은 글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위소보는 그 선교사에게 아래로 내려가 상을 받도록 하라고 이르고 대 군영의 사야에게 분부하여 그 편지를 봉투에 넣고 봉투 겉면에는 중국 의 글자로 소비아 공주의 이름을 쓰도록 했다. 그 사야는 진하게 먹을 갈아서 잔뜩 먹물을 묻힌 이후 첫번째 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대청국무원대장군 녹정공위봉서(大淸國撫遠大將軍鹿鼎公韋奉書)>두 번 째 줄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아라사국섭 정 여 왕소비 아고륜장공주전하(俄羅斯國攝政女王蘇飛雅古 倫長公主殿下)> 나찰이라는 두 글자는 불경에서는 마귀라는 뜻인데 이 말로 아국(俄國)을 호칭하는 것은 경멸하고 업신여긴다는 뜻이 들어 있 기 때문에 문서에서는 아라사라고 쓴 것이었다. 그 사야는 소비아라는 석 자가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비(菲)자는 사람으로 하 여금 풀들이 무성한 모양을 생각하게 하여 마치 그녀의 전신이 털로 뒤 덮여 있는 것을 풍자하는 것 같아 그냥 소비아(蘇飛雅)라고 썼다. 이것 은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陂齊飛)라는 옛시에 나온 말이었고, 또한 비하박면(飛霞撲面) 즉 노을 빛이 얼굴에 덮쳐 온다는 아름다움을 묘사 한 것이다. 그리고 고륜장 공주라고 한 것은 청나라 공주 가운데 가장 존귀한 봉호(封號)였다. 황제의 자매는 장공주였고, 황제의 딸은 공주 인데 소비아라는 여자가 섭정하는 신분이고 또한 사황의 누나이니 자연 히 으뜸가는 공주라고 여기고 그렇게 쓴 것이었다. 위소보가 웃으며 말 했다.
[이 나찰 공주는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이 몇 년 동안 보지않은 사이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그 사야는 봉투 뒤쪽에다 다시 두 줄의 글을 다음과 같이 썼다. <부화융적(夫和戎狄) 국지복야(國之福也) 여약지화(如藥之和) 무소불해 (無所不諧) 청여자낙지(請與子樂之)> 이 말은 오랑캐 나라가 중국 청나 라와 화목하게 된 것은 나라의 복이며 두 나라가 화해함으로써 모든 일 이 순조로운 것이니 아무쪼록 두 나라가 화해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 다. 그리고 사야는 속으로 이 말은 좌전(左傳)에서 나온 말인데 애석하 게도 나찰은 오랑캐 나라라 중화상국(中華上國)의 경전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며, 그 가운데 두 가지의 뜻이 섞여 있는 것은 더욱더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추파를 장님에게 던지는 것과 같고 그야말로 진 주를 돼지에게 주는 격이라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라사국고륜장공주 소비아만 이 중국 글자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 할 수 없는 게 아니고 대청국무원대장군녹정공 위소보 역시 자기의 이 름과 큰 대 자 외에는 한 자도 모르는 터였다. 그리하여 위소보는 그 사야가 봉투 앞쪽과 뒤쪽에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말했다.
[충분하오, 충분하오. 그대는 글씨를 무척 잘 쓰는군! 나찰의 텁석부리 보다 뛰어나오.]
이어 그는 사야에게 귀중한 예물을 준비하도록 일렀다. 다행히 아극살 성에서 포획한 물건이라 그의 밑천은 한 푼도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 리고 다시 화백사기와 제락낙부 두 명의 대장을 불러 와서는 그들 두 사람에게 나찰의 항복한 병졸 가운데 백 명을 뽑아서 호위대로 삼고 즉 시 모스크바로 달려가 편지를 전하라고 했다. 두 명의 대장은 크게 기 뻐서 끊임없이 허리를 구부리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으며, 다시 위소 보의 손을 잡고 그의 손등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위소보는 손에 두 사 람의 수염에 닿아 간질간질한 것을 느끼고 그만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아극살 성은 규모가 작아 대군이 주둔할 수 없었다. 그 즉시 위소보와 색액도는 서로 상의한 끝에 낭탄과 임흥주 두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성 안에 주둔하도록 하고 대군은 남쪽으로 내려가 나누어 애휘, 호마이 두 성에서 성지를 기다리도록 했다. 위소보는 떠나면서 정중히 낭탄과 임흥주 두 장수에게 아극살 성에서 샘물을 파거나 지하도를 파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대군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위소보와 색액도, 붕춘 등은 애휘에 주재하 게 되었고 살포소는 다른 군사를 거느리고 호마이 성에 주둔하였다.
위소보는 항복해 온 나찰 군사들에게 청나라 군사의 복장을 입히도록 했고 사람을 보내 중국말을 가르치도록 했으며, 그들로 하여금 '아황만 세만만세(我皇萬歲萬萬歲) 성천자만수무강(聖天子萬壽無彊) 중국황제덕 피사해(中國皇帝德被四海) 황은호탕(皇恩浩蕩)' 등의 귀절을 익숙해지 도록 외우게 했다. 그리고는 군사들을 보내 북경으로 압송했으며, 그 포로들로 하여금 북경 큰 거리를 지날 때마다 소리 높여 외치도록 했 다. 또한 강희를 뵙게 되었을 때 더욱더 큰소리로 고함쳐 외우도록 했 으며, 기운차게 부르면 부를수록 황상께서 많은 선물을 내리리라고 말 해 주었다.
이십여 일 남짓 지났을 때 강희는 조서를 내렸고 출정한 장수와 사병들 에게 크게 갸륵하다는 칭찬의 말을 했다. 그리고 위소보를 이등 녹정공 에 봉했고 나머지 장수와 사병도 각각 벼슬을 올려 주고 상을 내렸다. 성지를 전해 온 흠차는 화칠인(火漆印)으로 딱지를 붙여 놓은 나무상자 를 위소보에게 내주면서 황상이 내리시는 물건이라고 했다. 위소보는 큰절을 하고 은혜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한 후, 상자를 열어 보고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그 상자 안에는 하나의 누런 금으로 만든 밥그 릇이 들어 있었고 그 그릇에는 공충체국(公忠體國) 네 자가 쓰여 있었 는데 과거 시랑이 자기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다만 꽃무늬와 그 새겨진 글자가 약간 파손되었는데 아마도 다시 보수하여 완전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위소보는 과거 이금 밥그릇을 동모아 호동의 백작부에 놔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바삐 도망치느라고 가져오지 못했는데 다시 잘 생각해 보니 그 이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틀림 없이 그날 밤 백작부를 폭격한 후 전봉영의 군사들은 백작부에 남아 있 는 물건들을 일일이 적어 황제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금으로 된 밥그릇은 파손되었으나 완전히 녹아들지 않아 강희는 장인에게 보수 를 하도록 하여 다시 그에게 내린 것인데, 그 뜻은 바로 너의 금 밥그 릇은 이미 한 번 깨어져 나갔지만 이빈에는 잘못하여 다시 깨뜨리는 일 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라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황제는 나에게 퍽이나 의리를 지키는구나. 우리는 서로 의리를 주고 받았으니 나 역시 그의 용맥을 파지는 않겠다.) 그날 그는 크게 연희를 열어 흠차를 대접했으며 장수들이 옆에서 모시 도록 했다. 물론 연희가 파한 이후에는 노름판을 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