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7 부활4주간 토 – 버찌와 오디를 알리는 새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1]
간밤에 비 맞고 늠름해진 벚나무들 위를 참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참새 하나가 뭘 주웠는지 입에 물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포롱포롱 날아다닌다.
참새보다 큰 새가 전깃줄에 앉아 오디가 달려가는 뽕나무를 내려다보며 지저거린다.
버찌와 오디가 익기 시작하면 참새들은 ‘순례자 쉼터’에 상주하면서 성지를 휘어잡을 것이다.
까치와 비둘기는 버찌와 오디를 배터지게 먹고 형옥원 조형물 위에다 자줏빛 똥싸기 시합을 할 것이다.
이따금 봉수산에서 폼 잡고 내려온 엇치가 걸걸하게 기침하며 버찌와 오디를 다문다문 먹을 것이다.
새들 눈이나 코나 귀에 버찌와 오디 익는 빛깔과 냄새와 소리가 들리는지 내 눈에 버찌는 아직 보이질 않고, 오디는 파란 별사탕처럼 어리다.
저들이 나무들한테 조석으로 저렇게 졸라대는 걸 보니 며칠 내로 버찌와 오디가 익으려나 보다.
나는 열매를 보아야 버찌와 오디 철임을 아는데, 저들은 나뭇잎을 보고도 아는 것 같다.
열매를 열매가 아니라 잎을 보고 때를 아니, 저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나나보다.
[1] 요한 14,9 :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온 생애, 그분의 언행을 통하여 당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 형언할 수 없는 일치로 하느님과 하나를 이루시기 때문이다(요한 5,17-30; 10,30[2]). 물론 하느님께서 이제부터는 인간 예수님과 대체되실 수도 있다는 말은 아니다.
[2] ▲요한 5,17-30 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아드님의 권한]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30; 7,16-18.28; 8,28.42; 12,49; 14,10 참조).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심판과 영원한 생명, 요한 5,21-30; 14,12-14; 15,20 참조)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하느님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자들’[요한 11,25-26])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다니 7,13; 외경 ‘에녹서’ 49,27 참조).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한 10,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3]
[3]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성부의 권능을 공유하시기 때문에(요한 5,17-19 참조), 당신을 믿는 이들을 완전히 보호하실 수 있다. 위 말씀의 정확한 뜻은 명확하지 않지만,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더욱 깊은 일치를 가리킨다(요한 17,11.22 참조).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이를 알아듣고 즉시 반응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