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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불새리안과 결사대를 아십니까 |
다모로 촉발된 ‘드라마 폐인’ 진화 거듭 … 적극 자발적 방송 소비 새 트렌드로 주목 |
요즘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책이 화제다. 꽃, 벼루, 담배, 심지어 종기에 난 딱지에까지 미쳤던 조선시대 원조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마니아’란 서양이나 일본의 문화로 간주하고 우리 자신을 ‘은근과 끈기’로 규정지어온 이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책이다. 그러나 300여년을 뛰어넘어 ‘마니아’ 계보를 도도하게 잇는 흐름이 나타났으니 이름하여 ‘드라마 폐인’들이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건 ‘불새리안’. MBC-TV 미니시리즈 ‘불새’ 속에서 살다시피 하는 ‘왕팬’들을 일컫는 말이다. ‘결사대’도 있다. 역시 MBC 수목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따온 ‘결혼하고 싶은 여자부대’다. 그 전엔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의 팬들을 일컫는 ‘발리 러버’가 있다. 드라마 폐인의 원조 격으로는 MBC ‘다모’의 ‘다모 폐인’을 꼽는다. 비교적 소수였지만 MBC ‘네 멋대로 해라’의 열성팬들이 남녀 주인공이 자주 만나던 버스정류장을 찾아가 ‘메모지 붙이기’를 감행한 것도 드라마 폐인 증상이라 할 수 있겠다.
시청률로만 보면 30%를 넘긴 ‘불새’나 20% 초반대에 머문 ‘다모’는 ‘마의 시청률’ 50%를 넘은 ‘대장금’, 혹은 왕년의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에 못 미친다. 그렇다면 ‘드라마 폐인’을 ‘다모’ 이전의 드라마 애청자와 구분 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드라마에 모든 것 투자 不狂不及 가장 큰 차이는 TV 시청이라는 수동적 행위를 매우 적극적인 활동으로 바꿔놓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드라마 홈페이지와 팬 사이트에서 살다시피 하며 울고 웃고 논쟁하는 데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투자한다. ‘폐인’이란 말이 ‘디시인사이드’라는, 디지털로 놀고먹고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드라마 폐인은 그야말로 드라마를 통해 ‘불광불급’하는 종족들이다. 드라마 폐인은 TV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를 텍스트 삼아 드라마 팬 사이트에 명대사, 명장면을 옮기는 건 기본이고 편집과 패러디를 하기도 한다. ‘불새’에서 미란(정혜영 분)은 악의 화신이지만, 미란의 대사를 중심으로 편집해보면 냉정한 남자에게 모든 것을 건 가련한 여자일 뿐이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깨고 등장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것이다. 또 ‘대장금’을 패러디해 드라마만큼 유명해진 ‘월간 궁녀’도 있다.
시청자에 의한 창조적 해석의 최대치는 팬들이 텍스트를 다시 쓰는 ‘팬픽(fanfic)’이다. 즉 극중 인물과 관계 설정을 빌려와 결론을 바꾸거나, 시대적 배경을 바꿔서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다모’는 지금도 활발하게 ‘팬픽’이 이뤄지는 드라마이며, ‘불새’의 팬 사이트에는 현재 몇 편의 팬픽이 연재되고 있다. ‘다모’의 정형수 작가는 “원고지 3000장 분량의 팬픽을 몇 편 받았다. 수준도 놀랄 만큼 뛰어났다. ‘다모’는 하나의 동기일 뿐이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내가 ‘다모’의 모티브를 방학기씨의 만화에서 가져왔듯, ‘다모’가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다모’를 연출한 이재규 PD는 ‘다모’의 팬이 쓴 팬픽 ‘나비’를 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화하기도 했다. ‘불새’ 역시 하이틴들의 로맨스 팬터지 소설 할리퀸 문고에서 원안을 따온 것이며, 작가 난나씨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공감해 웹진 ‘컬티즌’에 만화 ‘독신도 벼슬이다’를 6월 중순부터 연재하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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