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바른생활 사나이’
왕년의 톱스타 신영균 씨가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2010년 10월 명보극장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그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칭송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1928년생으로 금년 92살인 그는 1960년 <과부>를 통해 데뷔 한 후 60여년간에 걸쳐 <연산군> <5인의 해병> <대원군> 등 30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60-70년대엔 많게는 한 해에 30편 안팎으로 찍어 모은 재산을 주축으로 연예계 최고의 재산가가 되었다. 그러한 그는 연기에만 뛰어난 기량을 보인 것이 아니라 사업수완도 있어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훈장 동백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공로영화인상,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은관문화훈장상 같은 굵직굵직한 상을 수상했고,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를 보고 화려한 인생행로의 주인공이라면 너무 단순한 수사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순탄하기만 한 인생은 있을 수 없는 법, 그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위험이 따르는 촬영도 많았다. 스턴트맨도 없던 시절이었고 안전장비도 미비한 환경에서 찍다보니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5인의 해병> <빨간마후라>을 찍을 때에는 실탄이 날아들었고, <나그네> 촬영 때에는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겪기도 했다.
연기생활이 꿈이었던 그는 고교 졸업 이후 극단에 입단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그만두고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졸업 후에는 회현동에서 치과를 개업하였으나 1960년 조긍하 감독의 영화 ‘과부’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데뷔에는 부인 김선희 씨의 반대가 컸다. ‘치과 의사랑 결혼했지 딴따라랑 결혼한 거 아니지 않냐’는 거였다. 그 당시 배우들은 스캔들이 워낙 많다 보니 아내도 그걸 걱정한 모양이었다는 게 그의 훗날 이야기이다. 그러나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하겠다’ 설득하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영화계의 ‘바른생활 사나이’로 유명했다. 화려함의 극치 은막계의 왕자로 살면서도 자세를 흩뜨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평생 금주하며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가정의 행복을 삶의 1순위에 두고 살았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성경말씀으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를 들며 ‘이 말씀 덕분에 오늘날 신영균이 있다’고 말한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 기도하며 노력만이라도 할 수 있는 은혜가 크게 느껴져 필자도 좋아하는 말씀이다. 영상을 통해서 말고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의 인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지만, 이 말씀을 좋아한다는 그에게서 겸손이 느껴진다.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사람들
그는 치과를 운영했을 때를 회상하며, ‘그때는 몰랐는데 배우 김혜자 씨도 고등학생 때 환자로 온 적이 있다고 했다’ 했는데, 그 김혜자 권사도 나누며 더불어 사는 생활이라면 누구에게도 못지 않으니 참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연예계에는 그런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정우성, 차인표 신애라 부부, 문근영 등등.
나누는 것은 물론 물질이 있고, 재능을 포함한 능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말을 하다 보니 축구의 손흥민 선수가 떠오른다. 아니 솔직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말이다. 손흥민이 재능, 능력이 큰 인물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는 차범근 감독이 유럽무대에서 세운 최다의 121골을 넘는 새 기록을 달성하여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그를 반짝반짝 빛나게 한 것은, 사람들을 더 크게 감동시킨 것은 사람다움의 따뜻한 품격이었다. 그는 지난 4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원정에서 본의 아니게 백태클로 에버턴의 미드필더 안드레 고메스에게 발목 골절상을 입혔다.
나중에 철회되긴 했지만 3경기 출전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그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징계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괴로워하는 것을 본 그는 머리를 감싸 쥐고 눈물을 흘렸다. 자책의 안타까운 눈물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7일 그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라이코 미티치 경기장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B조 4차전에서 두 골을 터트려 차범근 감독의 121골을 넘기는 새 기록을 세웠으나 마음 놓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상처를 입힌 고메스에게 미안해서였다. 기쁨의 골 세레머니 대신 두 손을 모아 고메스의 쾌유를 기원했다. 영국 언론들은 ‘손흥민이 첫 번째 골을 부상당한 고메스에게 바쳤다’는 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국민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한 일은 지저분함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정치권에도 있었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지난 1일 강기정 정무수석이 국회에서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발끈해 고성을 지르는 일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7일 이낙연 총리가 ‘정부에 몸담은 사람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회 파행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한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에 주광덕 자한당 의원은 ‘오늘 멋지고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 총리의 이런 마음가짐, 진심어린 사과 표명이 오늘 그 어떤 질의와 답변보다 우리 정치를 성숙시키는 아름답고 멋진 장면이 아닌가 한다’고 화답했다. 이렇게만 한다면 누가 정치를 더럽다 할 것인가.
또 있다. 어제(17일) 현 정부 핵심 실세이자 진보진영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제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앞으로의 시간은 자신의 꿈이자 소명인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는 것이다.
같은 날 보수진영 개혁성향 소장파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자한당의 김세연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그 중 몇 마디를 옮겨 보면 이렇다.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 우리 모두 물러나야 할 때’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아무리 폭주를 거듭해도 정당 지지율에서 단 한 번도 민주당을 넘어서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버림받은 것’이다. ‘감수성이 없고 공감능력이 없으니 소통능력도 없다.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걸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한다.’ ‘세상 바뀐 걸 모르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섭리를 거스르며 이대로 계속 버티면 종국에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파격적이라 할 만한 기득권 내려놓기인 불출마를 선언하며 이 같은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현실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거라 할 것이다.
BTS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6.25의 잿더미에서 불과 60여년 만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 낸 위대한 민족이다. 세계경제순위 10위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뿐인가. 스포츠는 어떻고, 예능분야는 어떤가. 저변이 빈약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서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우리의 골프 낭자군을 보라. K-POP은 이제 말하면 잔소리가 되었다. BTS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어쩌다 우연히 생겨난 그룹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을 과소평가하며 살아왔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스스로를 낮잡아 엽전은 별수 없다, 엽전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센징와 쇼가나이’라고 하는 일본말의 잔상이 겹쳐져 쓰이곤 했다. ‘센징(鮮人)’은 일제 강점기에 그들이 우리 ‘조선인(쵸센징<朝鮮人>)’을 멸시하여 쓰던 말이고, ‘쇼가나이(しょうがない)’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할 수 없다’ ‘처치 곤란하다’는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니 이 말 ‘센징와 쇼가나이’는 ‘조선놈들은 어쩔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수탈한 것은 곡물이나 목재, 쇠붙이 같은 물자만이 아니었다. 말과 성씨도 빼앗고 정신까지 말살하려 했다. 자기들은 우리말을 평생을 해도 잘할 수 없는데, 우리가 자기네 말을 금방 숙달하는 것을 보고 배알이 꼴려 식민지 지배를 받기에 적합하여 그렇다 했다. 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겠다며 우리의 산맥 줄기 줄기마다 쇠말뚝을 박아 놓았던 그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빌붙어 자기 배를 채웠던 것이 친일파이다. 애국지사들은 그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려고 갖은 탄압을 다 받으며 고생하느라 처자식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친일 토왜들은 동족의 등을 쳐 자식들을 많이 가르쳤다. 광복을 맞았으나 우리 정부는 애국지사의 자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친일파의 자식들을 대거 중용해 썼다. 그 자식의 자식들이 오늘까지 일본과 친한 것이 친일인데 그게 뭐가 나쁘냐며 전전(戰前)의 제국시대로 돌아가려는 아베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친일의 토왜근성이 우리의 위대함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우수성이 그대로 빛을 발하며 진전하기 위해서는 친일청산이 급선무라는 말이다. 친일청산으로 토대를 다져야 국격 높은 강국으로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임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