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무척 좋아해서
실제로는 비만. 세자 시절부터 이미 당뇨병을 달고 살았다. 말년에 시력을 잃은 이유도 당뇨병 합병증으로 추정되는 가히 종합병원(…).
수라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라는 얘기가 나올정도로 고기매니아. 오죽하면 태종의
유언도 '충녕이 고기를 좋아하니 내 상을 치를 때는 고기를 먹게 할 것'(당시 3년상을 치를 때 고기는 상주에게 금지되었다.)이었고, 임금이 초가집에서 살고 고기반찬을 금함으로써 하늘에 속죄해야 하는 가뭄 때에도 고기반찬을 거르지 않았을까…(위인전의 내용은 페이크).
설렁탕도 세종이 선농단 제일 때 잡는 소를 보고 군침 다시다 만든 음식이라는 야사가 있을정도(물론 사실이 아니다. 설렁탕은 몽골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음식이다.).
우리가 보는 세종대왕 초상화의 후덕함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외로 세종대왕은 그렇게 고도비만 수준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이 김종서에게 이런 말을 한다.
"30살 전에 매던 띠(帶, 허리띠)가 모두 헐거워졌으니 이것으로 허리 둘레가 줄어진 것을 알겠다. 과인의 나이가 33세인데 살쩍의 터럭 두 오리가 갑자기 세었으므로, 곁에 모시는 아이들이 놀라고 괴이히 여겨 뽑고자 하기에, 내가 말리며 말하기를, '병이 많은 탓이니 뽑지 말라.'고 하였다." -<세종실록> 세종 13년(1431년) 8월 18일
젊었을 때 매던 허리띠가 헐거워져서 허리둘레가 줄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데다가 살쩍에 흰 터럭이 나 있다고 말하는 장면. 이걸 보면 재위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젊었을 때보다 살이 빠져 버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칠삭동이 미숙아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바로 위의 형인 효령대군은 1396년 음력 9월 생인데 세종은 1397년 음력 4월 생이다.
윤달이 끼었나도 싶지만 1396년과 1397년은 모두 윤달이 끼지 않은 해다. 기록에 의하면 효령이 태어나고 정확히 7개월만에 세종이 태어났다는 소리. 생월을 오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기록이 맞다면 세종은 미숙아로 태어난 것이다.
어쨌냐면 며느리들이 잘못된 길에 빠졌다. 3번째인 현덕왕후는 잘못된 길을 가진 않았다만,
단종을 낳고 단명했으니 결국은 며느리 복이 없었던 셈이다.
첫번째 세자빈은 이상한 짓(문종이 자신을 찾지 않으니까 남편의 신발을 태워 그 재를 자기 방 앞에 뿌리는 비방을 썼다. 미신을 억제하고 유교를 장려하던 나라의 궁중에서 그랬다는 것은 폐위감.)을 하다 쫓겨났고, 두번째 세자빈인 순빈 봉씨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레즈비언(!)으로서, 시녀를 불러 남녀의...삐리리한 행위를 흉내 내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다. 참고로 저런 행위를 맷돌부부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문종에게 남녀관계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문종의 후궁이자 다음 세자빈이 된 현덕왕후 땐 무난했던 걸 보면 첫번째 세자빈 때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두번째의 경우는 현덕왕후를 사랑했던 탓에 세자빈에게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따지고 보면 문종 탓도 크다.
게다가 식욕 뿐 아니라 성욕도 왕성해서, 후궁 포함 7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를 보았다 문제는 왕자들의 능력도 과연 세종의 아들답게 뛰어나자 그들에게 국사를 맡기는 바람에 문종사후 조선의 정치에 파란을 부르게 된다. 뭐 성적으로 왕성한 것은 점잖지 못하다 하여 묻히긴 했지만. 이후 남정네들의 일부다처제 지지 근거로 써먹히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야사에는 아버지 태종의 여자를 건드리다가 죽도록 두드려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세종은 임질에도 걸렸었다. 이 임질이
성병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많은 말이 오가고 있는 상황.
그런데 한의학에서 말하는 임(淋)은 현대 의학 기준으로는 요로결석, 혈뇨 등을 포함한 배뇨장애의 총칭이며, 크게 다섯가지의 오림(五淋)으로 나뉜다. 육식을 즐기고 비만했던 세종의 기록을 보면 고림(膏淋: 소변이 쌀뜨물 같고 기름기가 많아 점성이 높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세종이 수립한 기록에서 또 다른 특이한 부분은 조선왕조 역사상 정실 왕비과 후궁 소생을 막론하고
아들 많이 낳은 기록(18남)(덧붙이자면 자녀복 많은 조선왕조 군주 랭킹 5위다.)과 정실과의 사이에서 가장 자식을 많이 낳았던 기록(10명, 8남 2녀)으로, 특히 소헌왕후와의 금슬이 좋아 그녀가 사망하자 그녀를 위해서, 수양대군(
세조)을 시켜서 불경 관련 책을 하나(석보상절) 편찬했을 정도다. 또한 금슬이 좋았기 때문에, 후궁들을 들이기 시작한 시기가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고 한다. 아마 앞에서 말한 태종이 상왕일 때 장인 심온을 사사했던 과거가 미안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종에 관한 후궁기록은 세종 4년에
태종이 간택령을 내리는 것이 최초 기록이다. 그 후
태종의 죽음으로 인한 장례 등으로 실제 후궁이 들어온 것은 세종 6년이니 상당히 늦은 편이긴 하다. 게다가 후궁소생의 첫아들은 세종 7년에 태어났다. 2008년에 방영된 사극
대왕 세종의 인기와 관련해서 나오기 시작한 세종 관련 역사소설들은 대부분 이 기록에 따르고 있다.
아.. 세종대왕님 살아계신다면 제가 쇠고기 사드릴 수 있는데 ㅠㅠ
한자 안 쓸 수 있게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
출처는 엔하위키요.
첫댓글 게다가 밑에 사람을 갈구는 능력도 최고인분!!
집현전 학자를 갈아만든 한글이죠.
으엌 집현전 학자들을 갈아만든 한글!! ㅎㅎㅎ
이름 : 한글 / 재료 : 집현전 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 ㅋㅋ
집밀레....
공밀레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악습! 조선시대에 없을 리가 없지요.
세종대왕님의 신조 : 관리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하다.
사실 한글은 문종을 갈아넣은겁니다. -_-;;
괜히 건강 나쁜게 아니라니까요. 집현전 학사들은 맨 끝에 감수만...
으잌 아들을 갈아버리다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현전에 있는 놈들 몰래 만드신 게 한글
집현전 놈들은 기여한 바가 없음 세종이 다 만듦
아... 의학도 입장에서 말하는 거지만, 당뇨병 합병증 중 하나도 체중감소이지 말입니다...
MD신가요? 학부생이신가요?
학부생이지 말입니다. 블록 gg
이야.. 방금 엔하에서 세종대왕님에 대한 글을 절반정도 읽었는데 마침...ㅋㅋ
아 그렇군요... 근데 재밌난 사실은 조선역대 임금님들이 최고로 좋아한 고기요리는 사슴 꼬리 요리라는 것.. 무려 태조 - 순종때까지 왕에게 올린 진상품이라고 합니다.
태평성대에 자녀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들들이 다 후덜덜,,,대군 중 아무나 하나 왕시켜도 잘했을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