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상처는 향기가 난다
– 상처를 감싸는 배려에 대하여 –
전홍구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있다.
길을 걷다 어깨가 스친 이의 표정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친구의 말끝에도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에 놀라 움찔하는 그 사람의 눈빛에도 조용히 아파하는 흔적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상처에만 연고를 바르고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에는 모른 채 지나치기 쉽다. 상처는 그렇게 자리를 잡고 시간이 흘러도 저절로 낫지 않은 채 마음속에 덩어리처럼 남는다.
상처는 흔히 숨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피부 위에 남았든 마음속에 남았든 사람들은 아픈 자리를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상처를 보여주는 일은 종종 약함으로 보이고 불편함을 안겨줄 것 같아 침묵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때때로 상처는 꽃잎처럼 고요하게 그리고 깊게 말없이 향기를 내기도 한다.
나는 몇 해 전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더 지루하고 고단했다. 하루는 간호사 한 명이 내 침대맡에 앉아 작은 초코우유 하나를 건네주며
“오늘 하루 어땠어요?”라는 짧은 말과 해주었다.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날의 나는 그 질문 하나에 울컥했다.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은 통증보다 더 깊은 외로움을 가라앉혀준다.
그녀는 나에게 진통제를 준 것이 아니라 배려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상처가 누군가의 따뜻함을 받으며 천천히 ‘익어간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데 신기하게도 그 상처가 ‘잘 익는’ 경우가 있다.
익는다는 조금은 낯선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믿는다. 상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익는 것이라고.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말없이 함께해주고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들 곁에 있을 때 우리의 상처는 부드럽게 무르익는다. 때로는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가, 진심 어린 시선이 아무 조건 없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이 상처를 익히는 햇살이 된다. 그 익은 상처에서는 믿기지 않게도 향기가 난다.
나는 한 청년을 안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성실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던 이였다. 그는 일반 기업에 취직해 묵묵히 일했는데 출퇴근길이 험하고 복도에 턱이 많아 종종 불편을 겪곤 했다. 어느 날 회사의 누군가가 말없이 작은 경사로를 만들어 주었다.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날 이후 그는 "장애가 있는 나도 이곳에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라고 했다.
그것은 배려였다. 배려는 어떤 때는 말없이 건네는 의자 하나이고 놓인 경사로 하나이며 질문 대신 미소를 보내는 눈길 하나다.
배려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이라 한다. 하지만 삶 속의 배려는 더 미묘하고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배려는 때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 피어난다. 버스에 탄 노인이 균형을 잃었을 때 재빠르게 손잡이를 건네는 학생 말없이 옆자리에 물 한 잔을 올려놓는 동료 비 오는 날 우산을 건네고 자신은 젖어가는 사람. 그들은 거창한 정의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사람다움을 행하고 있을 뿐이다.
배려는 ‘남을 도와주는 착한 행동’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때론 내 시간을 나누고 내 공간을 나누고 내 감정을 접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사랑에서 온다. 사랑은 잘 익은 상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상처투성이인 채 살아간다. 피치 못할 하소연으로 생긴 슬픔, 어쩔 수 없이 끌어안고 살아가는 아픔들 그리고 남들에겐 말하지 못한 속상함.
그러나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상처가 덜 아파서가 아니라 그 상처를 어루만져 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 익은 상처에서 향기가 난다는 말은 시적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온 인생의 진실이자 조용한 치유의 기적이다.
이따금 우리는 배려를 베풀다가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오히려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모른 척하려 애써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배려란 늘 곧고 바르게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돌아오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었다가 상처받을지라도 그 사랑이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상처가 무르익어 향기 나는 사람을 꿈꾼다. 그런 사람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에게 생각나는 사람이고 힘든 날엔 떠오르는 얼굴이고 문득 그리운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분명 더 따뜻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잘 익은 상처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향기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말했다. “배려는 가장 오래가는 향기다.”라고
나는 여기에 한 줄 더 보태고 싶다.
“상처는 배려를 만나야 익는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는 굳어지고 굳어진 자리는 무감각해지고 무감각한 삶은 결국 외롭다. 상처를 감싸안고 말없이 덮어주는 배려가 세상 곳곳에서 퍼진다면 이 사회는 더 향기로워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끼는 문장이 있다.
“잘 익은 상처는 꽃향기가 난다.”
이 말은 더 이상 시적인 비유만이 아니다.
삶을 통과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누군가의 손길, 누군가의 말 한마디, 누군가의 마음 씀씀이가 아물지 않던 상처를 익히고 그 자리에 향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다정한 눈빛 하나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자고. 꽃처럼 향기 나는 사람이 되자고. 상처로 말하지 않고, 배려로 말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조금 덜 아프게 조금 더 아름답게 익혀줄 수 있을 것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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