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 성소
(배우자와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
2025.3.2
나는 수사나 신부가 되겠다는 독신성소는 물론 없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해서
오손도손 가정을 꾸리고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수줍은 나는 연애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막내로 혼자 성장한 탓에 수줍음이 많고
특히 여자들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만 붉히니...
하늘을 봐야 별을 딸 것이 아닌가?
결국 스스로 결혼성소에 부응할 수 없었다.
어머님의 성화에 못이겨,
스무 번 넘게 선을 봤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79년 11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인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고
당시 회사에서 지방 근무자에게 빌려주는 돈
110만원을 받고 동대신동에 방 한칸을 얻어 살았다.
어머니는 막내아들 밥을 책임지겠다고 하시며 부산에 같이 내려오셨다.
7순이 가까우신 나이에 큰아들 손자녀들을 떠나서 오신 것이다.
아침식사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장가드는 모습을 보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시며 부산에서도
또 다시 선을 주선하셔서 몇 번 만났지만 역시 실패였다.
4개월이 지난 80년 3월 어느 날,
내 거래처인 해운대 호텔 나이트클럽 김사장님이
나에게 사귀는 여자가 있느냐고 묻길래,
없다고 하자 좋은 분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고
나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벗어나고파 승락했다.
1주일 후 김사장님의 주선으로 토요일 오후 해운대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첫 인상이 '이번에도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키가 나보다 한 참 크고 체격도 글래머 형으로
우선 사이즈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별 흥미를 갖지 못하고
건성으로 그녀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나 보다 2살 아래였고 백화점에서 표구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첫 만남이 끝나고 애프터 신청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거래처인 김사장님을 만나자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길래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신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것보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 된다고 하면서
한 번 더 만나보라고 했다.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래처 사장님의 부탁인지라
혹시 판매에 영향을 미칠까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약속을 했다.
시간이 흘러 약속날짜가 다가온 하루 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있던 고등학교 친구 경천이가
부산에 왔다며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는 아니지만
당시 우리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같은 대학이 아니라도 가끔씩 서로 만나기도 했다.
그는 연세대 법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간경화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교 친구 몇 명과 병문안을 갔다 온적이 있는 정도다.
경천이는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복가능성이 없어 퇴원했던 것이다.
부산에는 오로지 나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을 알고
좁은 방이지만 어머니와 함께 셋이서 며칠을 지내기로 했다.
다음 날이 데이트 약속날이라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자,
자기도 함께 따라가겠다고 했다.
나도 친구가 같이 가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그녀와의 어색한 만남이
훨씬 부담이 적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4월 12일 (토) 오후 2시 해운대 호텔 커피숍
경천이와 내가 먼저 도착한 후 몇 분 지나자 그녀가 나타났다.
목인사를 나눈 후 대화 할 내용도 없어 경천이 얘기를 했다.
이만 저만해서 같이 나오게 되었다고...
그러자그녀는 잠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조금 후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20여분 지난 후 여자 한 분이 우리에게 와서 합석했다.
그녀의 선배 언니인데 해운대에 있는 여학교 선생님이란다.
그래서 자연스레 4명이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내 눈에는 나중에 나온 여인이 마음에 들었다.
웃음띤 얼굴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이...
그래서 자꾸 그녀에게 말을 하게 되었는데
먼저 소개받은 여인은 그런 나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같이 즐겁게 대화에 참여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으니 처음 소개받은 여인은
당시 애인이 있었는데 왜 그 자리에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아마도 나처럼 김사장이 그녀의 큰 고객이었는지?
그래서 청을 거절하지 못해서 나온 건 아닌지?
3시 반쯤 나이트 클럽 김사장님이 오시더니
본래 나이트 클럽 오픈이 오후 5시 인데
우리 4명을 위해 특별히 밴드를 4시부터 준비하도록 할테니
1시간 동안 즐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무대로 나가 춤도 추었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여자가 나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통성명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명함만 건넸는데...
그 순간 이 여자는 너무 개방적이란 생각이 들어
내 반려자로서 사귈 여자는 아니란 판단이 섰다.
당시 나는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여자는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집안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내의 본분이라는 생각에 요조숙녀같은 스타일을 좋아했었다.
경천이는 여인 2명과 함께 춤도 잘 추었지만
나는 노래와 춤에는 소질이 없어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혼자 앉아 맥주만 마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5시에 헤어지게 되었는데,
아무런 약속도 없이 쿨하게 헤어졌다.
특별한 감정없이....
▲ 학교 소풍날 그 장소까지 따라가서 학생들과 함께...
아내의 말로는 그 당시 나의 모습은 촌스러웠다고,
흡사 방글라데시인 같았다고....
그런 나를 자신이 세련되게 만들어 줬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 함
내가 지금 봐도 그 당시에 나는 촌스러웠고 아내는 세련되어 보임.
그렇게 한달 쯤 지난 5월 7일
학교 선생인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되면 학교 앞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내가 영업을 관리하는 지역에 있는 장소이기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외근 중에 만났다.
차를 마시면서 나에게 꽃을 건네주면서,
내일이 어버이 날이라 학생들과 카네이션을 만들다가
내가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말을 지난 번에 들은 것이 생각나
그녀의 어머니(장모) 것을 만들면서 내 것도 하나 만들었다고...
그러니 가지고 가서 어머님께 달아드리라고....
그 순간 그녀에 대한 나의 생각이 확 바뀌고 말았다.
개방적인 여인이라 효심이나 뭐 그런건 없을 줄 알았는데
다른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이 후 그녀에 대한 뒷 조사를 했다.
버스에서 하교하는 그 학교 여학생들 가방을 받아주면서
김**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물어보았다.
그땐 창피한 것도 없고 대담했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어떤 목적을 향한 집념앞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던 것이다.
그 학생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경계심을 가졌지만
내 인상이 그다지 나쁜 사람같지 않았는지
정보를 끝내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 학교에서 제일 인기있는 선생님이라고...
엄마같고, 언니같고, 어떤 때는 친구같은 분이라고.
토요일 대청소 때 다른 선생님들은 시키기만 하는데
김선생님은 직접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배구나 탁구 할 때도 직접 학생들과 어울려 인기가 있다면서
엄지척하면서 '짱'이라고 했다.
그때 이제는 됐다 하는 생각과 함께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수시로 만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결혼약속을 하게 되었고
승락을 받으러 갔다가
장모님의 권유로 영세까지 받게 된 것이다.
결국 내 결혼성소는 물론 하느님께서 인도하셨겠지만
그 도구로서
해운대 호텔 나이트클럽 김순경 사장과
고등학교 친구 경천,
그리고 처음 소개받은 아내의 후배를 이용하셨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친구 경천아!
네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서
나에게 반려자를 만나게 해 준 것 고맙다.
너도 나의 사는 모습을 보며
기쁘고 보람있는 일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행복하게 살께.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리라 믿는다.
나와 너의 존재는 만남을 통해 더욱 충만해집니다.
나와 너의 만남이 없다면
나와 너의 존재 또한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면
내 삶이 참된 삶이 되고 내 존재가 충만해집니다.
나와 관계를 맺는 '너'가 확장되면
'영원한 너'인 하느님을 말하기도 한다.
80년 12월 27일 결혼해 1월 3일까지 휴가를 얻어
신혼여행을 설악산에서부터 전국일주 부산에서 마침
아내가 직접 뜬 모자와 목도리를 세트로 입고 여행함.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결혼 42주년을 앞두고 국내성지 순례를 계획하면서
신혼여행했을 때의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당시 착용했던 모자(방울은 없어짐)와 목도리를 착용하고~
형식적으로는 흉내를 내었지만 신혼 때와 차이점은
신혼여행시 서로 이해하고 다정한 느낌이었다면
자주 의견충돌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하지만 둘이서 3차에 걸친 여행을 하며 숙소를 전전하고
음식을 함께 먹으며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2025년 2월 12일 샛별Pr. 에 입단했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런 일로 인해 다시 레지오에 입단한 것입니다.
레지오 입단을 계기로 아내 바울리나와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의견충돌도 적어지고
서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
주님께서는 예기치 못한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부부의 인연의 끈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인생 세번기회 중 하나 탁월한 선택,,,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택-OB(적어도 저에겐,, 1막 커튼은 내려갔지만,,,)
베드로 형제님!
인생길에서 최종 승자는 주님과 함께 마무리하는 것이겠지요.
오랫동안 주님과 함께 살아왔으니
남은 인생도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