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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지원 기자와 최민우 정치부장의 경우
‘빵문회’ 문제 본질 호도…비평 아닌 ‘허수아비 논증’
한국 기성 언론은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자 경비견
시민들은 그들이 중립이란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직후 아침이었다. 민주당 노종면 의원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중앙일보> 기사를 거론하며 “빵만 캐지 않았다”고 흥분하는 장면을 보고 뉴스를 검색했다. 도대체 뭐라 했기에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열을 냈는지 궁금했다. 다음(Daum)에서 어렵지 않게 기사를 찾았다. 제목은 ‘사흘 내내 빵싸움만 했다…빵문회 욕먹은 이진숙 청문회’, 작성자는 윤지원 기자, 기사가 다음(Daum)에 오른 시각은 7월 29일 오전 5시였다.
‘빵문회’ 기사 아니었다면 <중앙일보> 윤지원 기자를 어찌 알았겠나
평소 포털의 뉴스 메인 페이지는 제목만 훑어보고 넘어간다. 기사 클릭을 되도록 삼간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조중동’과 문화일보, 한국경제 등의 기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본다. <중앙일보>에 윤지원이라는 기자가 있는 줄 몰랐다. 윤 기자가 쓴 기사를 처음 읽었다.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였다. “민주당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자질을 가늠해야 할 인사청문회를 빵 논란으로 덮어버렸다. 최민희 과방위원장과 노종면 의원 등은 수준 낮은 말로 후보자를 조롱했다. 친민주당 성향 MBC를 사수하려고 청문회를 빵문회로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이진숙 후보자의 정치적 편파성을 공격했지만 자질 검증과는 거리가 먼 빵문회를 통해 자신들의 편파성을 입증했을 뿐이다.” 잘못 요약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면 기사를 검색해 보시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텍스트 요약은 잘 하는 편이다.
이 기사는 사실 보도보다 비평에 가깝다. 윤 기자는 이진숙 청문회의 수많은 사실 중에서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필요한 것만 골랐다. 잘못된 건 없다. 비평은 다 그렇게 한다. 기자 자신도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별 문제 없다. 신문기사는 누구보다 먼저 독자가 비평한다. 윤 기자가 이진숙 청문회와 관련해 의미 있고 중요한 사실을 선택했는지, 선택한 여러 사실을 적절한 관계로 묶었는지, 그렇게 해서 경청할 가치가 있는 해석을 제공했는지 살핀다. 그 평가의 결과를 댓글로 쓴다. ‘좋아요’나 ‘화나요’를 누르는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 평가를 말하겠다. 윤 기자의 기사는 좋게 말하면 핵심을 벗어났고,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호도(糊塗)’는 어떤 대상을 감추거나 덮는다는 뜻이다.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라는 걸 알지만 적절한 다른 말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썼다. 윤 기자가 기사에 쓴 대로 “방통위는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고 미디어 산업 발전을 견인하며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행정기구다.” 이렇게 중요한 국가기관은 걸맞은 자질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 어떤 자질과 능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방통위원장이 적어도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사적 이익을 위해 미디어 정책을 왜곡하고, 미디어 산업을 불합리하게 규제하고, 방송의 독립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이것만큼은 윤 기자도 동의할 것이다.
빵 논란은 이진숙 씨의 빵 사랑 아닌 도둑질 혹은 착취가 본질
그런데 윤지원 기자는 야당 의원들이 왜 빵 구입 사실을 문제 삼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질을 호도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진숙 씨가 빵을 사먹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업무와 무관하게 회사의 법인카드로 빵을 사먹었다면 잘못이다. 어디 빵만 그런가. 와인, 주유권, 골프, 오마카세, 백화점 쇼핑, 호텔 숙박, 회사 차량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법인카드로 비용을 지불했다면 회사의 돈을 도둑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임이니 횡령이니 하는 법률적 쟁점은 따지지 않겠다. 자질 검증이라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목적에 초점을 두고 보면, 그보다는 공사를 구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핵심 쟁점은 빵이나 와인 그 자체가 아니라 이진숙 씨가 MBC 본사 임원과 대전 MBC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다. 이 씨는 ‘업무용으로 썼다’고 주장하기만 했을 뿐 어떤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 자료를 내지 않았다. 증빙자료가 있다면 왜 내지 않았겠는가. 없어서 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진숙 씨가 여러 해 동안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착취’했다고 추정한다. 장기간 회사를 착취한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국가와 사회를 착취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빵 논란의 핵심이며 본질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지원 기자는 그 점을 무시했다. ‘빵문회’라는 말로 야당을 조롱했다.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MBC가 ‘중립 언론’이 아니라 ‘민주당 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제하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공영방송과 관련해 벌인 모든 일을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가 추천한 야당 몫 방통위원에게 반년 넘게 임명장을 주지 않았다.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법률을 위반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이동관에서 김홍일을 거쳐 이진숙까지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이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임명한 부위원장 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방통위의 모든 의사결정을 했지 않았는가.
MBC를 민주당 편으로 보는 <중앙일보> 기자의 정치적 시각
그런데도 윤 기자는 그 모든 것을 대통령의 공영방송 장악 행위가 아니라 민주당으로 편향된 공영방송을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방송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로 여기는 듯하다. “MBC는 민주당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MBC를 사수하려고 인사청문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방통위원장을 줄줄이 탄핵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기사를 그렇게 썼을 리 없다.
나는 윤 기자의 생각과 판단을 ‘이해’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찬성하거나 공감한다는 게 아니다. 윤 기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름대로 파악했다는 말이다. 윤 기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려고 이 칼럼을 쓰는 게 아니다. 비평의 자유는 헌법이 만인에게 준 권리다. 언론사에서 봉급을 받는 기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윤 기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 권리를 행사할 뿐이다. 내가 보기에 윤 기자는 충직하고 성실한 직장인이다. 회사의 방침과 상급자의 뜻을 잘 알고 존중하면서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특별히 비난할 이유가 없다. <중앙일보> 대주주와 경영진과 정치부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중앙일보>를 중립 언론으로 여긴다. 정치적 중립을 포함한 ‘저널리즘 규범’을 준수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윤 기자의 관점과 기사 작성 능력을 높게 평가할 것이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윤지원 기자의 기사를 살피다가 정치부장이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최민우 기자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쓴다. <최민우의 시시각각>이다. 노종면 의원을 자극했던 윤 기자의 기사가 나간 다음날 새벽 0시 41분, <중앙일보>는 다음 뉴스 포털에 <최민우의 시시각각> 칼럼을 올렸다. ‘편파적일수록 정당하다는 뇌구조’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이진숙 후보자의 뇌구조가 이상하다고 한 최민희 과방위원장을 비꼰 줄 알았다. 나를 겨냥한 제목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부장이 쓴 ‘편파적일수록 정당하다는 뇌구조’ 칼럼
‘궤변과 거짓을 일삼던’ 유시민을 맹비난한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기자는 칼럼에서 청문회 증인들을 모욕하고 상임위원회를 멋대로 운영했다는 이유를 들어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을 비판했다. 최재영 증인의 대통령 부인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부추겼다고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꾸짖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심한 사례로 나를 도마에 올렸다. 나는 국회의원도 아닌데 왜? 아마도 최근 언론을 세게 비판한 것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그는 이렇게 썼다. “궤변과 거짓을 일삼던 유시민이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언론이 편파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편파적이지 않아서 문제라며 ‘우리 편으로 안 오면 재미없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문장을 이어 붙였지만 취지는 그대로다. 의심스럽다면 칼럼을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나는 최민우 기자를 몰랐다. <중앙일보> 정치부장으로 기명 칼럼을 연재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서운하게 여기지 마시라. <중앙일보> 정치부장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나는 <중앙일보> 정치부장이 최민우 기자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정치부장 이름을 여전히 모른다. 앞으로도 모르고 살면 좋겠다.
최 기자가 최근에 쓴 칼럼을 보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중앙일보>와 자기 자신이 정치적으로 중립이라고 믿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한다거나 언론을 탄압한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MBC가 ‘중립이라는 언론의 미덕’을 팽개치고 민주당과 한패가 되었다고 본다. 그런 확신을 토대로 여러 현안에 대한 칼럼을 썼다. 원래 생각이 그런지, 대주주와 경영진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최 기자의 칼럼을 읽으면서 나는 <손석희의 질문들>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3장에서 소위 ‘레거시 미디어’ 또는 ‘재벌언론·족벌언론·건설사언론’에 대해서 했던 말이 타당하다고 새삼 생각했다. 세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스스로 중립이라 믿는 <중앙일보>는 기득권 지키는 경비견일 뿐
첫째, 오늘날 한국의 언론인은 사회의 엘리트가 아니다. 최민우 기자는 내가 언론에 대해서 한 주장의 근거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20세기 저널리즘 규범이 왜 생겼는지, 그 규범이 뉴미디어 시대에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 한국 언론이 그 규범을 지키는지, 왜 지키지 않는지, 신문사와 방송사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유튜브 저널리즘’ 활동이 어떻게 사회의 공론을 활성화하는지 이야기했다. 설마하니 내가 “언론이 편파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편파적이지 않아서 문제”라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겠는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조사 연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왜곡해서 비평하는 기자를 엘리트라고 할 수는 없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행위를 ‘허수아비 논증’이라고 한다. 그는 내 견해를 비평한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허수아비를 무딘 칼로 내리쳤을 뿐이다.
둘째, 한국의 기성 언론은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며 보수 정당과 한패이고 모든 부당한 기득권을 지키는 경비견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치적 중립은 망상의 산물이거나 대중을 속이려고 하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기성 언론은 소멸할지언정 스스로 혁신하지는 않는다. 누가 개혁해 줄 수도 없다. 최민우 기자는 안심하시라. 우리 편으로 안 오면 재미없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없고 놓을 뜻도 없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누군가를 재미없게 만들 힘이 있지도 않다. 아직은 그런 말을 할 정도로까지 멍청해지지 않았다. 내가 줄기차게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시민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면서 언론 보도를 대하면 언론이 세상에 끼치는 해악이 줄어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무기는 말과 글뿐이다. <중앙일보>처럼 ‘대단한 신문’의 정치부장이 겁먹은 표정으로 엄살을 떨 일은 없다.
다양하게 경쟁하는 수준 높은 유튜브가 언론개혁의 현실적 대안
셋째, ‘유튜브 저널리즘’은 사회의 공론을 활성화한다. 언론과 유튜브는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기성 언론도 유튜브 플랫폼을 쓴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여러 분야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와 달리 유튜브에는 특정한 분야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다양한 채널이 무수히 존재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KBS와 MBC의 보도 프로그램과 경쟁한다. 교양, 문화, 예능, 오락 등 다른 분야에는 그 분야의 신문 방송 콘텐츠와 경쟁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유튜브는 언론을 대체하지 않지만 신문 방송의 정보 유통 독점은 확실하게 무너뜨렸다. 저널리즘을 ‘뉴스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정의(定義)한다면, 신문사와 방송사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도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언론 개혁은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유튜브에서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인다. 오늘 칼럼에 <중앙일보> 기자 두 사람의 실명과 그들이 쓴 기사 제목을 명시했다.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대담했던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김 기자는 언론을 한 묶음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잘못된 기사를 구체적으로 비판하는 게 언론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충고했다. 언론은 비판하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며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면 ‘좌표 찍기’라고 비난한다고 하자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격려했다. 그래서 해 보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
노종면 의원한테도 한마디 조언을 드린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흥분할 일은 아니었지 않으냐고. 조금 전에 다음 뉴스 포털에 들어가 윤지원 기자의 기사에 대한 반응을 확인했다. ‘추천해요’와 ‘좋아요’는 각각 열 개, ‘화나요’는 433개였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읽은 사람은 대부분 기자에게 화를 냈다. 민주당에 화가 난 독자라면 ‘추천해요’나 ‘좋아요’를 누르지 ‘화나요’를 눌렀겠는가. 그러니 노종면 의원은 화를 내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의 청문회 생중계나 재생 영상을 본 사람이 그 기사를 읽은 사람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많았다. 누가 얼마나 윤 기자의 비평에 공감했겠는가?
천동설 부둥켜안은 중세 유럽 신학자 같은 기성 언론 기자들
최민우 정치부장의 칼럼은 영향력이 더 미미했다. ‘추천해요’와 ‘좋아요’는 각각 두 개와 여섯 개, ‘화나요’는 서른아홉 개에 불과했다. 다른 포털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노종면 의원은 원래 직업이 기자여서 그런지 신문 기사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듯하다. 걱정 덜어내시라. <중앙일보> 정치 기사와 칼럼은 옛날 같은 위력이 없다. 기껏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한다고 믿는 소수의 시민들 중에서도 극소수가 읽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시민들은 언론이 정치적으로 중립이라는 망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들이 하는 중립이라는 거짓말에 속지도 않는다. 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세 유럽 신학자들처럼 자기네가 중립이고 세상의 중심이라는 망상을 품고 있을 뿐이다.
첫댓글 정말 신사같이 품위있게,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유시민의 점잖은 타이름 앞에서 윤지원 기자와 최민우 정치부장은 한없이 쪼그라드는 자신의 모습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도.
핵사이다 유시민 파이팅~!!
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