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과 효를 삶의 지침으로 삼아왔다는 예산은 요즘 가을빛이 완연하다. 조선시대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일찍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내포 땅 중에서 서산, 당진, 아산, 홍성, 예산 등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이 가장 살기 좋다고 했다. 여기서 내포(內浦)란 ‘안개’란 뜻으로 바닷물이 강을 통해 육지 깊숙이 들어온 곳을 말한다.
예산 역사에는 몇몇 훌륭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 ‘추사체’라는 독특한 경지를 이루어낸 추사 김정희(1786-1856년)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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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고택에 걸린 김정희의 유려한 필체가 눈길을 끈다. |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은 예산 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예산에서 신례원을 거쳐 당진 방면으로 2km 정도 가다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추사고택은 지난 77년에 복원된 20여 칸짜리 전통 한옥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한 세상을 예술과 학문 탐구에 몰두했던 분으로, 선생이 남긴 뛰어난 업적은 오늘날 지식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추사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채로 구성되어 있다. 고택 앞으로는 탁 트인 예당평야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소나무 우거진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추사의 글씨처럼 단정하고 소박한 고택은 예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남향인 사랑채가 비껴 있고, 그 너머로 ㅁ자형의 안채가 보인다. 사랑채 앞에는 추사가 글씨를 새겨 세운 석년(石年)이라는 돌기둥이 있는데 이것은 그 그림자 길이로 시간을 알아볼 수 있게 한 일종의 해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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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예당저수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 추사는 1786년에 이곳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3여 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빛 바랜 고택 기둥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곧은 소리는 대궐 아래 머무르고 빼어난 글귀는 동쪽하늘에 가득하구나'(直聲留闕下 秀句滿天東). 사랑채 큰방에는 선생의 대표작인 『세한도』복제본이 걸려 있어 추사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고택 입구 추사기념관에서는 추사 선생의 묵향 그윽한 체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고택 옆 동산에는 추사의 고조, 증조할아버지와 그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소 주위로는 키가 껑충한 낙락장송들이 도열해 있다. 뒷산인 앵무봉 너머에는 추사가 젊었을 때 공부하며 지냈던 화암사란 작은 절이 있다. 화암사 뒤편 바위에는 추사 선생의 글씨인 ‘시경(詩境)’과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 새겨져 있다. ‘천축’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고선생’이란 부처를 옛 선생이라 이른 말이다. 추사의 재치가 어우러진 재미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추사고택에서 걸어서 3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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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평야의 가을 수마를 이겨낸 벼들이 알알이 영글었다. | 또 추사 고택 오른편으로 조금 돌아 나가면 ‘화순옹주 정려문’(和順翁主 旌閭門)이 나온다. 정려문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貞節)을 기리고자 정조가 내린 열녀문(烈女門)이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또한 추사고택에서 길을 따라 북쪽으로 600미터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백송’이 자리잡고 있다. 백송은 중국 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이 백송은 추사 선생이 사신으로 청나라 연경에 갔을 때 종자를 가지고 와 심은 것으로, 원래는 세 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의 수령은 약 200여 년이며 높이는 약 10미터이다. 백송 뒤에는 선생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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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몇 그루밖에 없다는 백송. | 추사고택에서 무한천을 따라 예당저수지로 간다. 가을날의 예당호는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답게 아득하게 펼쳐진 호수는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광활하다. 1962년에 만들어진 이 저수지는 예산과 당진땅의 농경지에 물을 댄다 하여 예산과 당진의 앞 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호수를 보며 걷는 산책로는 연인들은 물론 가족 쉼터로 더없이 좋다. 예당호는 곳곳이 낚시 포인트. 잉어, 붕어, 메기 등 어족이 풍부하다. 동산교 부근, 대흥․대야리 부근, 도덕골 일대, 평촌리 부근에서 손맛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동산교 부근이 주 포인트다. 예당저수지 낚시터는 면적이 10,005ha로 전국에서 가장 크다. 호수 가에 주차장, 매점, 잔디광장, 전망대 등이 마련돼 있다.
예당호를 둘러보고 덕산 쪽으로 간다. 예산 땅 중에서도 덕산은 볼거리, 배울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하게 모여 있다. 500여 년을 자랑하는 덕산온천, 호서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덕숭산과 그 산이 품고 있는 천년고찰 수덕사, 역사의 산 교육장인 윤봉길 의사 사적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옛 건축물을 재현해 놓은 한국고건축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먼저 윤봉길 의사 사적지에 들른다. 사적지 안에는 윤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 영정을 모신 사당(충의사) 등이 들어서 있다.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란 당호가 붙어 있는 저한당(沮韓堂)은 윤봉길이 성장한 집이다.
윤봉길은 1908년 6월 21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우의(禹儀)였고 봉길(奉吉)은 그의 별명이다. 매헌(梅軒)은 뒤에 지은 아호이다. 윤 의사 기념관에는 상해 흥구공원에서 의거할 때 지니고 있던 소지품과 그가 생전에 쓰던 유품과 서책, 글씨들이 전시돼 있다. 그가 20세에 야학을 꾸릴 때 교재로 펴낸 『농민독본』도 볼 수 있다. 윤봉길 선생의 유품은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아 모두 13종 68점이 보물 제568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4월에는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의사에서 매헌문화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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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 자락의 큰절집 수덕사의 단아한 모습. | 덕숭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절집 특유의 분위기가 감돈다. 규모로 보아 여느 대찰 못지않다. 수덕사에서 눈여겨볼 것은 대웅전(국보 제49호)으로, 안동 봉정사 극락보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대웅전의 맞배지붕과 수려한 곡선을 뽐내는 처마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웅전은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지었다. 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단청은 없지만 단정하게 배치된 가람은 힘차고 웅장하다. 절에 딸린 견성암은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암자이다. 시간이 있다면 절을 에두르고 있는 덕숭산에 올라보자. 수덕사를 출발해 정상에 오른 다음 정혜사-견성암을 거쳐 다시 수덕사로 내려오는데 2시간 40분쯤 걸린다.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한국고건축박물관. 대목(大木) 전흥수(국가중요무형문화재 74호) 선생이 사재를 들여 국보 보물급 옛 건물 40여 점을 축소․재현해 놓은 곳으로, 전시관에 들어가면 지리산 화엄사의 각황전 축소 모형을 비롯해, 대패․자귀․끌․톱․먹통 등 고건축 공사에 쓰였던 연장들을 볼 수 있다. 강릉의 객사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정문이 눈길을 끈다.
◆길잡이(지역번호 041)=경부고속도로 천안 나들목-21번 국도-배방-아산-예산읍 신례원-합덕 방향-추사고택, 서해안고속도로-서해대교-송악 나들목-국도 32호선-신평-합덕-추사고택. 서해안고속도로-당진 나들목-국도 32호선-합덕-지방도 622․609호선-덕산-윤봉길 의사 사적지-수덕사. 예산읍-21번 국도(외곽도로)-구 충방 앞 사거리 우회전-32번 국도(합덕방면)-고택 주유소 지나서 좌회전-추사고택. 서울 남부터미널과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예산행 버스 이용. 예산버스터미널에서 예산저수지행 버스 이용(1일 7회, 30분 소요). 신례원에서 추사고택 방면 시내버스 하루 10회 운행(신례원에서 5.5km,10-15분 소요). 추사고택관리사무소(330-2553), 예당호 관리사무소(330-2688), 덕산도립공원(330-2557), 윤봉길의사기념관(330-2552), 예산터미널(333-2912-2), 예산역(335-7788).
◆잠자리와 맛집=추사고택 주변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다. 예당호 인근에 예당파크(333-4362), 덕산온천 지구에 덕산온천관광호텔(338-5000), 뉴가야관광호텔(337-0101), 세심천온천호텔(338-9000), 월드컵장(338-6200) 등이 있고, 예산읍내에 그랜드파크(334-8934), 돌산장(333-4666), 천연장(333-8377) 등이 있다. 다양한 시설을 자랑하는 덕산스파캐슬(330-8000)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콘도시설 외에 온천수를 이용한 물놀이시설, 사우나, 실내스파, 노천스파, 뷰티스파인 바이탈테라피센터, 대체의학을 기반으로 한 헬스스파인 웰루스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수덕사 입구에 산채정식을 내놓는 식당이 많다. 그 중 옛집(337-6101)은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며느리가 3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더덕구이, 조기, 송이버섯, 도토리묵 등 맛깔난 반찬과 우렁된장찌개는 깊은 맛을 낸다. 산채비빔밥 7000원. 수덕골미락(337-0606)에서 내놓는 더덕산채정식(1만5000원)도 먹어볼 만하다. 예당저수지 인근에 민물매운탕과 민물어죽을 내놓는 식당들이 더러 있다. 민물어죽은 민물고기를 뼈째 푹 삶아서 고추장이나 된장을 푼 다음 대파, 생강, 마늘, 깻잎 같은 양념을 첨가해 뚝배기에 담아내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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