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모네, 르누아르, 세잔, 반 고흐, 피카소, 칸딘스키……
예술의전당 이진숙과 함께 읽는 한국인이 사랑한 화가 34
팬데믹으로 가로 막힌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2021년 5월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카소전에 많은 이들이 찾아들고 있다. 탄생 140주년 특별전, 최다 작품 전시 등의 수식만으로도 화려하지만 단연 관심을 끄는 건 국내에 처음 소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대가의 화폭에 어떤 연유로 한국전쟁이 소재로 올랐는지도 궁금하거니와 왜 군인들은 가면을 쓰고 있는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질문해보게 된다. 여기서 미술책 집필과 대중 강연을 꾸준히 해오며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해온 이진숙은 훌륭한 도슨트가 되어줄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은 피카소뿐 아니라 그와 직간접적인 영향관계에 있던 화가들이 활동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작품을 다룬다. 특히 이 책이 속한 ‘더 갤러리 101’ 시리즈는 역사와 문화사조를 튼튼하게 세워 미술사의 흐름을 담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좋은 삶이 무엇인지 그림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화가의 삶을 알고 그림을 보는 일을 넘어 독자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시간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것이다.
‘더 갤러리 101’의 첫 번째 책 『인간다움의 순간들』이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낙원에서 쫓겨난 이들이 사랑, 돈, 권력과 같은 욕망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다양한 양상에 주목했다면, 두 번째 책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서는 사조상으로는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에 속하는 그림들을 통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개인’이 가장 먼저 겪었던 ‘고독’, ‘불안’과 마주해보자고 제안한다. 영원한 행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밀쳐두었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지 아닐까? 이 과정에서 책과 그림이 함께한다면, 우리는 좀 더 풍부하게 더 나은 쪽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갤러리 101’을 통해 이 믿음을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란다.
👩🏫 저자 소개
이진숙
평생 도서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영원히 학생으로 늙어가기를 꿈꾸는 미술 중독자.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를 여행하던 중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들어섰다.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러시아 미술사』, 『위대한 미술책』, 『시대를 훔친 미술』, 『롤리타는 없다 1·2』, 『더 갤러리 101 Ⅰ: 인간다움의 순간들』이 있으며, 이 중 『시대를 훔친 미술』은 ‘예술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소개됐다.
현재 예술의전당 등에서 활발히 대중강연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미술, 문학, 역사를 오가며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 목차
차례
들어가는 글 - 미술관에서 만난 101가지 인간 이야기
두 번째 책을 시작하며
I. 현대 생활의 영웅주의
34/101 진실은 좋지만 궁상은 싫다-라파엘전파
35/101 천국처럼 나른하게 지옥처럼 뜨겁게-라파엘전파
36/101 영원한 인간을 찾아서-장프랑수아 밀레
37/101 쾌락적 세속주의로의 대전환-귀스타브 쿠르베
38/101 당신은 아무와도 닮지 않았어요-에두아르 마네
39/101 만성적 권태의 대가-에드가 드가
40/101 사랑하는 사람은 움직인다-클로드 모네
41/101 더 풍성한 사회적 꽃다발을 꿈꾸며-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42/101 극장에서 그녀를 보았다-메리 커샛
43/101 댄디, 우아함이 직업인 사람-제임스 휘슬러
44/101 공원, 실험실이 되다-조르주 쇠라
45/101 내가 내 아들을 죽였다-일리야 레핀
II. 세기말, 아름다움과 고통에 물드는 시간
46/101 사과 한 알을 제대로 알고 간다는 것-폴 세잔
47/101 너 자신에 대한 애착을 잘라라-폴 고갱
48/101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빈센트 반 고흐
49/101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50/101 사랑이 죄라면, 모두의 죄-수잔 발라동
51/101 숱한 운명을 탕진한 사람-오귀스트 로댕
52/101 죽이는 여자를 사랑하는 이유-구스타프 클림트
53/101 두 번의 포옹, 두 번의 실패-에곤 실레
54/101 팜파탈이 되는 아주 쉬운 방법-알폰스 무하
55/101 악마도 상처 입은 시대-미하일 브루벨
III. 망치를 든 예술가들
56/101 별이 겨우 빛나는 밤-에드바르 뭉크
57/101 여자의 모습을 한 인간-파울라 모더존베커
58/101 소박해서 위대하고, 소박해서 위험하고-앙리 루소
59/101 생의 약동, 춤추는 사람들-앙리 마티스
60/101 그 여자 그 남자,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파블로 피카소
61/101 텅 빈 눈, 가득 찬 슬픔-아메데오 모딜리아니
62/101 불, 증오 그리고 속도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미래주의
63/101 환상 사지통은 환상이 아니다-표현주의
64/101 함께 고통하는 마음-케테 콜비츠
65/101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카지미르 말레비치
66/101 음악과 함께-바실리 칸딘스키
67/101 언젠가는 예술 없이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다-피트 몬드리안
참고한 책
🖋 출판사 서평
혼자 추는 춤이 위대해지는 순간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 걸핏하면 남의 신혼집을 훔쳐보던 남자가 있다. 2만 8,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전후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평가받지만 망가진 사랑과 전쟁이 중독시킨 불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갔던 사람. 바로 에드바르 뭉크의 이야기다. 그는 매일 지옥을 경험했겠지만, 그림으로 재현된 그의 아픔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고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별이 겨우 빛나는 밤」)
이런 삶도 있다. “벽의 벽지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악평을 들으며 화단에 들어섰지만 살아생전 화가로서 큰 영광을 누리며 긴 생을 살았던 노대가. 스스로 품은 질문에 집중해 20년 넘게 수없이 많은 수련을 화폭으로 남기다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수련과 물의 경계조차 허물어트린 그림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간 사람. 하나의 고정된 진리란 없음을 자신의 그림으로 제시한 화가 클로드 모네의 이야기다.(「사과 한 알을 제대로 알고 간다는 것」) 뭉크와 모네. 두 사람은 삶의 방식도 작품에 임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고독’이라고 부를 만한 숱한 장면 속에서 살았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군중, 집단과 거리를 둔 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보려는 ‘자발적 자기격리’에 가깝다. 삶이 고독해 그림을 택한 것이 아니라, 캔버스 앞에 홀로 있을 때 온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고독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은 제목이 암시하듯 저마다의 ‘고독’을 품은 화가와 작품의 이야기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데는 이 책이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이후인 소위 ‘근대’를 배경으로 삼기 때문이다. 특히 이진숙은 이 시기에 ‘개인’이 전면에 얼굴을 내밀면서 예술계에도 어느 유파에 속하지 않은 채 오롯이 ‘나’로 서보려는 노력이 다분했다는 점에 집중한다. 개성 있는 화가들이 홀로 추는 춤은 유례없이 다양한 문화사조를 공존케 했고, 우리는 그들 덕분에 풍부한 예술지도를 갖게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의 기획자를 넘어 삶의 기획자로
표지에 쓰인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나쁜 예감〉에서 다시 책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러시아의 전형적인 농민복 루바쉬카를 입고 한 사람이 뒷모습을 한 채 우뚝 서 있다. 그림을 보는 우리는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하지만 그가 확신이나 안정보다는 불신이나 공허에 사로잡혀 있음을 분위기상 짐작한다. 이진숙은 본문에서 이 작품이 스탈린이 집권하던 때에 발표됐다는 시대적 정황을 짚으며, 획일적인 기준을 앞세우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익명의 억눌린 존재로 가치폄하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러한 순간에도 개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때서야 비로소 개인은 자신이 놓인 좌표를 직시한 후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고 사회적 관행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실제로 말레비치와 함께 훗날 ‘추상미술’이라는 사조에 묶인 바실리 칸딘스키, 피트 몬드리안은 공통적으로 견딜 수 없는 현실과 스스로 단절하겠다는 선언을 내걸고 등장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예술 행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몬드리안은 현실에서 아름다움이 충분히 살아 숨 쉴 때는 더 이상 예술하는 이도,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고 없이 각박해지고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으니, 어쩌면 우리는 예술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