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니깐 절대 이건 없애라
노병철
불과 몇 년 전으로 기억된다.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더니 그놈의 행색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상복이었다. 요즘 구하기도 힘들 텐데 삼베 상복에 작대기 짚고 곡을 하는 장면을 얼마 만에 보는 광경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우리 아버지 장례식 때 남들 이목 때문인지 내가 편해지고자 생각했었는지 검은 양복에 까만 넥타이를 매고 조문객을 맞았었다. 그놈은 배짱이 좋았든지 아니면 진짜 자신을 죄인 취급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그렇게 입고 당당하게 조문을 받고 있었다. 사실 나도 삼베 상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사람이 삼베 상복 때문에 온몸이 쓰라린 경험을 토로하는 터라 할 수 없이 양보했다. 하지만 이놈은 밀어붙인 모양이다. 돈을 잘 버니깐 입막음도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돈 못 벌고 힘 달리는 놈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장례문화를 봤다. 즐겁게 춤을 추는 행위에 장례에 대한 각 나라의 문화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된다. 돌아가신 시신을 다시 끄집어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이 신기하지만 미개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나의 선진 사대주의적 고정관념은 머리 깊숙이 제대로 박혔나 보다. 그래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삼베옷이 아닌 선진국처럼 세련된 검은 옷으로 바꿔입지 않았는가. 저승사자가 망자를 데리러 왔다가 장례식장에 온 자신을 같이 잡아 갈까 두려워 위장술로 입었다는 까만색 장례복을 입고 웃기게도 우리식으로 큰절하고 있다. 정말 웃기는 짬뽕 같은 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상조회에서 하라고 해서 하는지 몰라도 따라 한다. 배알 없어 보이는 인간 취급받아도 작대기 짚고 오는 조문객마다 곡하는 것보다는 낫다.
여러 장례식장에서 입관식을 보는데 모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발가벗은 시신을 가족에게 보여 준다. 수의를 다 입히고도 애들에게 시신을 만질 것을 강요한다. 이미 살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니 애들의 얼굴은 맛이 가고 손은 떤다. 기가 막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억지 효를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때 언제 적 악습인지 몰라도 누군가가 돈을 거둔다. 먼 저승 갈 때 노잣돈을 챙겨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장의차가 몇 번씩 차를 세워 돈을 뜯는 행위나 봉을 올릴 때 한 번씩 쉬면서 돈을 뜯는 행위를 이제 입관하면서 하고 있다. 왜 망자의 입관식을 보여주는 것일까? 마지막 가는 망자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라면 그냥 얼굴만 보여줘도 되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건 전통도 뭐도 아닌데 말이다.
재벌들 장례식장에선 큰절도 없다. 그냥 묵례로 끝낸다. 돈 많은 인간들은 세련만 찾는 것 같다. 그 반면에 나 같은 부류들은 쥐뿔도 없으면서 허례허식으로 자신들의 못난 부분을 감추려 한다. 이런 것을 보고 자격지심이란 사자성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전통 장례는 이제 전통 축제로서 끝나야 한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 영화에서 풍수를 보는 이가 나온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반풍수 집구석 말아 먹는다고. 쓸데없이 지관 동원하고 해서 묏자리 볼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화장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안에서 최초로 화장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형제가 7형제, 아버지가 11남매, 내 사촌들만 해도 44명의 벌족 집안에 최초의 화장자(火葬者)가 생긴 것이다. 지금은 우리 집안에서 봉분하는 분은 없다. 봉분 만들 사람도 없거니와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젊은 세대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지 시대의 조류를 따르고 있다.
“너 그때 제법 멋있어 보이더라.”
“난 간단하게 하고 싶었는데 워낙 큰형님이 입자고 하시는 바람에....”
난 분명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왔다. 난 지금도 왜 내게 아들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혹여 어디선가 잘 자란 아들놈이 나타나길 기대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 딸 둘에게 내 제사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들만 셋 두신 아버지에겐 죄송하지만 제사는 나의 대에서 끝날 것 같다. 미국에 있는 둘째네 자식이 아버지 제사 지내줄 리 만무하고 막내 또한 딸만 둘이다. 흔히 하는 말로 대가 끊겼다. 이런 마당에 무슨 거창한 장례 이야기하고 싶겠는가. 그래도 하나만 부탁하건대 제발 죽고 나서도 쪽팔리니깐 벗겨놓고 애들 부르는 입관식 같은 것은 없애라고 하고 싶다. 여태 살아온 ‘가오’가 있는데 딸들이나 손주들 앞에서 벗은 모습 보이긴 싫다.
첫댓글 오랜만에 올린 작품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장례식 이야기에 이러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맏종부인 제가 제사라면 진절머리 나서 내 죽으면 절대 제사 지내지말라고 했더니 남편이 그러데요. 아들 없는데 그런 걱정 왜 하노.
남편이 혹 밖에서 아들이라고 데리고 올까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사실 알고 보면 제사나 장례 예법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해서 지키는 것이지요. 그걸 통해서 산 자들이 자기들을 돌아 보도록 하는 교육~. 이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산 교육이 전부 사라져 버렸는데 작가는 그걸 지금 반어법으로 한탄하고 있는 것이지요~. 산 자에게서 예법을 다 없애면 뭐가 남을까요? 벌거벗은 동물적 본능만 남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