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빈 안산안씨 묘소 昌嬪安山安氏墓所
☆ 동작구(銅雀區)의 "현충원" 일화(逸話) ☆
보통 ‘동작동 국립묘지(國立墓地)’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곳, 나라와 민족(民族)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國家有功者)들이 잠들어 계신 곳 입니다.
1955년 7월 국군묘지로 조성 되었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昇格)되어 군인이 아닌 유공자들도 안장(安葬)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대통령(大統領)들과 각계 저명인사들도 묻혀 있다. 현충원은 그런 남다른 의미(意味)를 가진 만큼, 국가에 충성을 약속하는 장소(場所)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악산(冠嶽山)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강(漢江)과 만나는 곳에 있는 현충원, 셀수 없이 많은 묘지중 ‘국가유공자’ 라는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묘지(墓地)가 하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朝鮮)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묘지(墓地)다. 바로 중종(中宗)의 후궁 창빈 안씨(昌嬪安氏) 묘(墓) 다. 동작동 현충원에서 최고 명당(明堂)으로 알려진 묘(墓) .
경내 한가운데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사이에 있는 주차장에 ‘창빈안씨묘역’이란 안내표지(案內標識)가 있다. 여기서 30m쯤 올라가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덤 하나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묘지(墓地)로 가는 오솔길에 서 있는 신도비(神道碑)는 1550년경에 이 묘가 조성 됐음을 알려준다. 국립현충원 보다 400년이 더 됐다는 얘기다.
창빈 안 씨는 누구일까? 창빈은 조선(朝鮮)14대 임금인 선조(宣祖)의 할머니, 연산군(燕山君) 5년에 안산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인 중종(中宗) 2년 궁녀(宮女)로 뽑혔다.
스무 살 때 중종(中宗)의 총애(寵愛)를 입어 영양군, 덕흥군, 정신 옹주 등 2남 1녀를 낳았고, 1549년 50세의 나이에 세상(世上)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는 정치적으로 혼란하던 시기였다. 중종(中宗)이 죽고(1544년), 다음 임금 인종(仁宗)이 즉위 1년도 안 된 31세의 나이에 죽자(1545년), 인종(仁宗)의 이복동생 명종(明宗)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34세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죽는다(1567년).
누가 왕이 될지 모르는 어수선 한 정국에서 명종(明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창빈 안 씨가 낳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으로, 조선(朝鮮) 14대 선조(宣祖) 임금이다.
창빈 안 씨의 입장에서는 손자(孫子)가 임금이 된 것이다. 후궁(後宮)의 손자(孫子)가 임금이 되기는 조선(朝鮮) 건국(建國) 이래 처음이었다.
이후 임금은 모두 창빈의 후손(後孫)이다.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의 조선(朝鮮)은 ‘창빈의 조선’인 셈.
흥미로운 것은 풍수적으로 봤을 때 창빈 안 씨 묘소(墓所)가 현충원 안에서 가장 좋다는, 이른바 ‘혈(穴) 자리’에 해당하는, 명당중의 명당(明堂)이라는 점이다.
창빈묘에 얽힌 풍수적 스토리는 이렇다. 1549년10월 창빈이 죽자 아들 덕흥군은 경기도 장흥에 시신을 모셨다. 그런데 그곳이 풍수상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1년 만에 이장(移葬)을 결심한다.
지금도 이장(移葬)이 쉽지 않지만, 당시엔 이장한다는 것은 새로 장례(葬禮)를 치르는 것과 같았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까닭에 왕가에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덕흥군 이초는 저명한 풍수 지관(地官)들을 동원해서 명당(明堂)자리를 찾았고, 그곳이 지금의 창빈 묘역, 동작릉이다.
이장한 지 3년 만인 1552년 하성군이 태어났다. 그리고 1567년에 하성군은 조선(朝鮮) 14대 선조(宣祖) 임금이 되었다. 하성군이 임금이 되자 창빈 묘역은 그야말로 ‘임금이 난 명당 터’가 됐다. ‘할머니 묘의 발복으로 임금이 됐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조선 8도로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풍수설에 기름을 끼얹었다. 조선(朝鮮)의 선비들이 낮에는 유교, 밤에는 풍수(風水)를 공부하고 토론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데, 화가(畫家)들의 눈에 이런 스토리가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18세기 중엽에 그린 '동작진(銅雀津)' 은 바로 지금의 현충원 일대가 배경이다.
좌우의 산이 마을을 감싸고, 그 앞으로 한강이 흐른다. 멀리 보이는 관악산(冠嶽山)이 든든하다. 명당(明堂)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으로, 당시 선비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터임을 보여준다.
풍수 기운의 흐름이, 조산(관악산) → 주산(서달산) → 현무정(장군봉) →내룡(국가유공자 묘역) → 혈(창빈 묘) → 명당(일반 사병 묘역) → 수구(현충원 정문) → 객수(한강)로 이어진다는 뜻.
풍수(風水)에서는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財物)을 창출한다(山主人 水主財)’ 고 얘기한다. 풍수(風水)의 핵심 화두 중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도 창빈 묘역은 좋은 山(人物)과 생기 넘치는 물(財物)을 다 품어 안고 있는 명당(明堂)인 셈이다.
풍수적 관점에서 역대 대통령들과 국가 유공자(有功者)들이 혈 자리에 있는 청빈 안 씨를 호위하고 있는 형국(形局)이다. 왕을 낳고, 왕(大統領)들이 쉬는 곳. 바로 현충원이고 동작릉입니다.
국립현충원과 창빈안씨 동작릉은, 관악산(冠嶽山)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한강(漢江)을 만나는 지점에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
첫댓글 그렇군요.
지운, 님이 살고 있는 곳이 천하의 명당 이란것을
알고 계셨나요? 소백산 좋은 물 먹고 청정한 공기 마시고
산정기 수정기다 받고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명당 있으면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