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에 대한 추억과 어원 유래
양 경 직
공평(公平)하기 저울만한 게 또 있을까만, 제비뽑기 또한 공평한 놀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제 손으로 뽑은 그대로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비뽑기로 우승이냐 준우승이냐를 가릴 때, 당사자는 몹시 긴장을 하기에 때로는 이런 해프닝도 벌어진다.
벌써 28년 전인 중학 3학년 때 얘기다. 고향인 율면(栗面)내 10개 마을 중학생들끼리 우승컵을 놓고 축구시합을 했다. 우리(신추리(新楸里)는 결승전에 올랐는데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제비뽑기로 우승을 가리기로 했다.
가위 바위 보로 제비뽑을 순서를 정했는데 친구가 먼저 뽑게 되었다. 심판의 모자 안에 든 두 장의 종이, 이내 뽑아든 종이를 숨죽여 펼치더니 와! 하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순간 상대편 대표는 낙심(落心)한 끝에 나머지 한 장을 펼칠 생각도 않고 고개를 푹! 떨구고 터벅터벅 돌아갔다.
우리는 우승컵을 들고 개선장군처럼 동네에 돌아와 이장님을 찾아가 우승컵을 마을에 기증을 하고, 이장님은 수고했다며 마을회관 앞에서 성대하게 우승 잔치를 벌여주었다. 그런데 제비를 뽑았던 친구가,
“원래는 우리가 진겨. 종이를 펴보니 가위표가 나오길래 덮어 놓고 만세를 불렀지. 그랬더니 보지도 않고 그냥 가데. 그런데 심판은 알았어. 나머지 종이를 펼쳐보더니 슬쩍 윙크를 하더라. 그러나마나 북 찢어서 하늘에 던졌지 뭐.”
하면서 배꼽을 쥐고 나뒹군다. 16살 꼬마 녀석이 어디서 그런 말짱한 꾀를 냈는지, 30년 가까운 오래전 일인데도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만큼 훌륭한 마법의 약은 없다’라고 했는데, 너무 잘 들어도 마법(魔法)에 걸리는 모양이다.
각설하고, 지하철을 타고 에세이문학사에 가던 중, 예의 추억을 회상하다가 불현듯 제비뽑기에 대한 어원(語源)이 궁금해졌다. 도착하자마자 옥편을 먼저 뒤적였다.
어렴풋하게 감이 잡히는 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삠비기(삘기)’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알아보기 위해 ‘풀초 변(艸)’ 1획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과연 ‘苐 제(삘기, 움틀, 싹틀, 새싹, 돌피)’자에서 실마리가 단번에 풀렸다.
‘띠’의 어린 싹을 ‘삘기’라고 했으니 국어사전에서 ‘띠’가 어떤 풀인지 확인만 하면 된다. ‘벼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땅속줄기는 가늘고 길게 땅 속으로 뻗으며 잎은 무더기로 나고, 땅 위 줄기는 곧은 기둥 꼴이다. 이른 봄에 피는 어린 이삭을 삘기라 하여 어린 아이들이 즐겨 먹는다.’라고 했고, ‘삘기풀’은 ‘띠’로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곧바로 ‘제비뽑다’라는 말을 찾아보니 ‘여럿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게 하여 적힌 기호에 따라 승부나 차례 등을 결정하는 방법, 또는 그것에 쓰이는 종이 따위의 물건’이라 나와 있다.
한자음 ‘삘기 제(苐)’자와 우리말 ‘삘기’ 그리고 삘기를 뽑는 행위를 합성한 말이 ‘제비뽑기’임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제비뽑기’의 어원을 어릴 때 들판에서 뽑아먹던 삘기에서 찾을 수 있음은 큰 수확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이른 봄, 하얀 속살이 도톰하게 물이 오른 삘기를 논가나 개울가 둔덕에서, 한 움큼씩 뽑아 먹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껍질을 까 입에 넣고 씹으면 단물이 나고 한참 씹다보면 껌처럼 꾸덕꾸덕해진다.
그러면 일렬로 서서 누가 더 멀리 나가나 내기를 한다. 지는 쪽은 정해진 장소까지 업고가야 하기에 혀 위에 올려놓고 숨을 고른 다음 머리를 쭉 내밀고 있는 힘껏 툇!하고 내뱉는다. 다자라서 패면 하얀 갈대꽃 비슷한데, 학교 당번일 경우에는 꺽어다가 교탁 위에 놓인 꽃병에 꽂아두기도 했다.
고향인 이천(利川)에서는 ‘삠비기’라고 불렀는데, 이른 봄, 들판에 나가서 ‘삠비기’를 잔뜩 뽑아 와서 나이 어린 코흘리개들을 모아놓고 달리기를 시켜서 1등은 10개, 2등은 5개씩 주면서 밥 짓는 연기가 집집이 굴뚝에서 모락모락 날 때까지 달리기를 시켰다. 그러면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이를 악 물고 뛴다. 시인(詩人) 김태수는,
봄볕 나른한 뒷산에 올라가
한 움큼 춘궁기(春窮期)를 뽑았다. 배가 너무 고파
노리땡땡한 햇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시린 이빨, 깡다구니로 씹고 씹어 삼킨
삘기는 어린 우리들의 눈물이었다
그래, 삘기는 억센 우리들의 생존이었다
---〈삘기에 대한 명상〉일절.
라고 유년을 회상하면서 삘기를 가난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 띠집을 가난의 상징으로 부른 것은 아마도 가난한 이들이 삘기를 뽑아먹은 데서 유래하여, 후에 가난의 대명사가 된 띠집으로 뜻이 전이(轉移)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지 삘기에 대한 각 지방 사투리를 즉석에서 조사를 했다. 충청도가 고향인 서용순 편집부장은 ‘삐삐’라 불렀다고 하고, 전라도가 고향인 김윤정 편집부 대리는 ‘삐비’라 불렀다고 하고, 경상도가 고향인 오병훈 선생은 ‘삐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좀 더 서적을 뒤적여 보니 남사당(南寺黨)에서 대장을 모가비(꼭두쇠)라 부르고, 그 밑에 연출자격인 곰뱅이쇠가 있고, 그 밑에 조연출이랄까 조장이랄까 하는 뜬쇠가 있고, 그 밑에 수련생인 ‘가열’이 있고, 바로 그 밑에 갓 들어와 심부름하는 새내기를 ‘삐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띠의 어린 싹을 경상도에서는 삐리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아마도 남사당에서 띠풀의 어린 싹(삐리)과 단체에 갓 들어온 새내기와 연관지어 그 말을 빌려다 삐리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속(巫俗)에서 굿은 전혀 할 수 없고, 굿을 할 때 잔심부름이나 하는 무당을 ‘제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로 보면 새내기 무당을 ‘제비(제(苐)+비(삘기))’라고 부르는 것이나 남사당에서 삐리라고 부르는 것이나, 결국은 말만 틀릴 뿐, 같은 의미로 보인다.
삼베나 벼를 경상도 방언으로 ‘비’로 부른다고 하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삘기의 각 지방 사투리는 모두 ‘ㅂ’로 발음하고 있다. 이는 띠풀을 말할 때는 ‘모(茅)’자를 쓰고, 띠의 어린 싹을 말할 때는 ‘띠싹’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제(苐)’자를 쓰면서 ‘삘기’라고 따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특히 ‘띠풀’이 벼(稻)과인 점을 감안하면 벼의 사투리(혹은 옛말) ‘비’가 삘기에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말고도 ‘중삐리(중학생)’니 ‘고삐리(고등학생)’니 하는 ‘삐리’의 유래도 삘기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자기보다 힘이 없거나, 나이가 어린 듯 한데 괜한 시비를 걸거나 하면 속된 말로 ‘고삐리’운운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한 마디로 어린놈이 까불거리지 말라는 얘기다.
또한 초보자가 한 어떤 일의 결과가 마뜩찮을 때 ‘삐리리하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 역시 삘기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가 있겠다. 미루어서 초보자가 어설프게 한 일이나, 나이가 어리거나 어리숙한 사람을 ‘삐리하다’라는 말로 씀직도 하겠다.
첫댓글 그렇군요. 유년의 추억과 함께한 어원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
잘 읽었습니다. 우리 말의 어원도 참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