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는 장애여성공감 창립 15주년을 맞아 ‘장애여성학교’에서 진행하는 장애와 여성주의반 수업 내용 후기를 매 회차 연재합니다. 현재 장애여성운동의 지형을 분석하고 주요 담론과 실천 활동을 통해 일구어낸 성과를 공유하며 더불어 전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_편집자 주 |
▲ 장애와 여성주의반 두 번째 강의를 맡은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 |
장애와 여성주의반의 2회차는 장애여성운동의 지도를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장애여성운동의 이슈들을 주제별로 아우르면서 각각의 운동 의제들이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어떤 담론으로 확장되었으며, 서로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펴보았다.
두 번째 시간 강의를 맡은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장애여성단체들이 많은 만큼 단체의 성격이나 활동 내용도 다양하다”라면서, 장애여성공감이 집중해온 주제들을 중심으로 운동의 의제와 생각해볼 쟁점을 설명했다.
제일 처음에 ‘우리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이 사회에 장애여성의 존재를 알린 장애여성공감은 이어서 ‘장애여성은 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진희 사무국장은 “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을 단지 장애여성이 ‘여성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떤 식의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장애여성을 ‘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과연 ‘성적인 존재’란 무엇인지, ‘성적인 존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등등 다양한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라고 했다.
몸/섹슈얼리티는 장애여성공감이 활동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집중해온 키워드이며 ‘장애여성의 월경’, ‘성적자기결정권’, ‘성매매 현장의 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적권리와 성서비스’ 등의 의제와 연결되어 있다. 또, 이와 관련해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부분도 중요한 의제이며 이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모성권 담론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동 초기에 장애여성의 성폭력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많이 이슈화되었고,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인 장애여성 반성폭력 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섹슈얼리티 관련 담론에서 장애남성은 성적 향유에 초점이 맞춰줘 있는 반면 ‘장애여성은 성폭력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슬로건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듯이 장애여성은 성적으로 안전한 상황을 만드는 것, 성적으로 착취당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진희 사무국장은 “왜 우리는 성에 대해서 방어적으로만 얘기하게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고민이 많이 생겨났고 방어나 안전보다 성과 관련되어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많이 얘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의 이름으로 폭력을 다시 쓰기’ 위해서 일상에서 경험하는 폭력에 대해서 '공간 침해 폭력','매니저 폭력', '분위기 폭력' 등 다양하게 이름을 붙이는 시도를 했다. ‘장애여성과 폭력’은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폭력에 대해서 방어적인 태도에 집중하기보다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장애여성의 사회적인 위치나 관계 등에 대해 복잡하게 고민하게 되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다는 것이다.
▲ 폭력 문제를 다루었던 장애여성공감 3호 잡지 |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의 현장을 바탕으로 장애여성독립생활운동을 계속해온 공감은 최근에 ‘IL과 젠더’라는 이슈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진희 사무국장은 “흔히 [숨]센터를 ‘장애여성만 지원하는 센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단순하게 지원 대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IL운동을 해나는가’의 문제”라면서 “센터 이름에 우리의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현재의 제도 안에서 ‘젠더 관점의 IL운동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독립과 관련되어 가족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의제다. 장애여성공감은 초기에 장애여성들이 가족 안에서 억압을 당하거나 폭력을 경험한 것에 대해 많이 얘기를 해왔다면, 이제는 가족구성의 방식이나 의미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장애여성들이 결혼을 정상성을 획득하거나 증명하기 위한 방식으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정상성에 대해 더 질문을 받고 시험당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장애여성 문화운동도 장애여성공감이 집중해온 부분이다. 특히 춤추는허리는 공연의 주제도 중요했지만 그런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방식’의 문제가 새로운 고민을 많이 던지게 했다.
이진희 사무국장은 “춤추는허리나 장애여성의 노동문제를 고민하며 운영했던 춤추는베이커리의 경우 정리된 개념이나 합의된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 안에서 끊임없이 역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역동의 경험이 더 소중한 의미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2회차 강의는 숨 가쁘게 지난 15년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다루었던 운동 의제들을 한 번의 강의안에서 압축적으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짧게나마 과거에 고민했던 내용들을 되짚어보니 앞으로 우리가 남은 강의에서 해야 할 이야기들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강의 후반부에 ‘장애여성의 건강권’, ‘ 장애인/장애여성의 정치 세력화’, ‘풀뿌리 장애여성 조직 등 새로운 연대의 힘’, ‘장애여성 정체성의 다양화’ 등이 새로운 과제로 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운동의 전문화, 제도화, 기능화의 함정을 지적한 부분은 중요하다. 운동을 지속할수록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을 피해 가면서 새로운 의제들을 또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장애와 여성주의반 강의 순서>
1강 다시, 질문하기 : 장애여성운동에 왜 여성주의가 필요한가?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2강 장애여성운동의 지형과 위치 : 장애여성운동 지도 그리기 -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3강 장애여성운동의 키워드와 담론 : 이슈와 연결되는 제도, 놓치고 있는 관점 - 진경 (장애여성공감) 4강 장애여성 반성폭력운동의 쟁점과 고민지점 -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5강 가족구성의 새로운 서사 : 장애여성과 가족구성권 ①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6강 가족구성의 새로운 서사 : 장애여성과 가족구성권 ②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7강 반성매매 운동의 쟁점과 성판매여성의 사회적 위치 - 보리(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8강 장애인 성서비스와 성매매 : 서비스와 권리 담론을 넘어서 -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9강 낙인, 혐오, 만성질병을 공유하기 : HIV/AIDS 감염인과 장애인 ① -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10강 낙인, 혐오, 만성질병을 공유하기 : HIV/AIDS 감염인과 장애인 ②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11강 비정상적인 몸, 몸에 대한 인식, 몸의 변형을 고민하기 :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① - 승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12강 비정상적인 몸, 몸에 대한 인식, 몸의 변형을 고민하기 :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② - 승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13강 활동보조 받는 삶을 정치화하기 : 장애여성과 활동보조 - 김상(장애여성공감) 14강 어쩌면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 장애여성의 주체성, 자기결정권, 당사자성 -워크샵 15강 필요한 건 상상력과 실천 : 장애여성운동의 밑그림 그리기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