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134340
강수정
2006년,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작고 희미한 존재
뻥 터진 팝콘 무리에서 갇혀버린 부스러기 한 톨
지옥의 세계가 이렇게 어둡고 외로울까
친구가 필요해
카론, 나와 함께 궤도에 오르자
함께 밤하늘을 꿰뚫어 보자
러시안 블루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
그 수평선 너머 침묵하는 작은 나를 찾아 주세요
134340
보홀*의 바닷속에 숨겨둔 안경원숭이를 찾아가세요
심장보다 더 큰 눈으로 태양을 찾아 줄게요
스틱스, 하이드라, 케르베로스
두 손 가득 달빛을 모아 내 검은 얼굴을 닦아내고
반딧불이 되어 당신을 향해 다가갑니다
궤도는 불균형, 혹독한 겨울의 땅
이탈된 낙오자는 우주를 떠돌고
어츨해진 심장은 유성우로 쏟아집니다
당신은 나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매년 여름이면 수만 그루의 꽃을 피울 겁니다
키 작은 해바라기로
밤하늘은 샛노랗게 물들겠지요
* 필리핀 제도 중부의 섬
오늘날 명왕성(冥王星, Pluto)의 공식명칭은 ‘134340 플루토’이며, 1930년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한 천체로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으로 분류되었으나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이 행성에 대한 규정을 바꾸면서 행성의 지위를 잃고 왜소행성으로 분류돼 ‘소행성 134340’이라는 번호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강수정 시인의 [명왕성-134340]은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명왕성과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사는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을 상호 교차시키면서 그 존재론적 허무함을 노래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나는 왜,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던 것일까? 내가 이 세상에서 그 존재의 의미를 잃고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다면, 나의 탄생은 축복이 아닌 저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고, “2006년,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작고 희미한 존재/ 뻥 터진 팝콘 무리에서 갇혀버린 부스러기 한 톨”이라는 시구에서처럼, 저주는 나의 존재의 버려짐을 뜻하고, 따라서 내가 버려진 이 세계는 아비규환의 ‘지옥의 세계’임을 뜻한다.
하지만, 그러나 살아 있음은 살아 있음으로 인해, 친구가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카론, 나와 함께 궤도에 오르자/ 함께 밤하늘을 꿰뚫어 보자”라는 시구에서처럼, 이 지옥에서의 탈출을 꿈꾸게 된다. 카론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배에 태워 스틱스강과 아케론강을 건네다 주고 돈을 받는 뱃사공이지만, 이 세상의 삶에서 궁지에 몰린 자는 이것, 저것 따위를 따져보거나 뒤돌아볼 여유가 없다.
“러시안 블루”의 고양이도 멸종위기의 동물이고, “보홀의 바닷속에 숨겨둔 안경원숭이”도 멸종위기의 동물이다. “러시안 블루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 그 수평선 너머 침묵하는 작은 나를 찾아 주세요”도 그것을 말해주고, “보홀의 바닷속에 숨겨둔 안경원숭이를 찾아가세요/ 심장보다 더 큰 눈으로 태양을 찾아 줄게요”도 그것을 말해준다.
이 세상은 아름답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곳도 아니고, 그 모든 존재들은 꿈과 희망보다는 실존의 위기에 내몰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 어느 존재에게나 자그만 도움이나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카론, 닉스, 히드라(하이드라), 스틱스, 케르베로스는 명왕성의 위성이라고 한다. 카론은 저승의 뱃사공이고,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 개가 달린 괴물이고, 스틱스는 지옥의 강이고, 케르베로스는 지옥의 입구를 지키는 개다.
하지만, 그러나 [명왕성-134340]의 궤도는 불균형적이고, 혹독한 겨울의 땅은 그 어떠한 꿈과 희망의 씨앗도 허용하지 않는다. 수많은 “낙오자는 우주를 떠돌고” “어츨해진 심장은 유성우로 쏟아”진다. 왜냐하면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한 당신, 즉, 전지전능한 창조주인 당신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다. 강수정 시인의 [명왕성-134340]을 읽으면서 왜, 하필이면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을 명왕성, 즉, 저승의 신인 플루토의 이름을 붙였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잘 알 수는 없지만,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란 점에서 저승의 신인 플루토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아무튼, 당신, 즉, 태양은 나를 버렸지만, 그러나 나는 “매년 여름이면 수만 그루의 꽃을” 피우겠다고 말한다. 살아 있음은 살아 있음으로 인해 삶의 의지를 꽃피워야 하니까, 밤하늘의 유성우처럼 “키 작은 해바라기로/ 밤하늘을 샛노랗게 물들”이겠다고 한다.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쪼그라들면서 그 생명력의 힘으로 삶의 의지를 꽃피운다. 작용은 반작용과도 같고, 삶의 의지가 꺾이면 그 꺾인 만큼 시인의 삶의 의지가 밤하늘을 샛노랗게 물들이게 된다.
명왕성은 ‘왜소행성 134340’이 아닌 명왕성으로 존재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