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羅城)에 가면
필봉 최 해 량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
라디오에서 ‘나성에 가면’ 노래가 울려 퍼진다. 나도 같이 흥얼거린다. 이별의 노래지만 곡이 밝고 경쾌해서 청년 시절에 즐겁게 따라 부른 노래이다. 이 곡이 히트할 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누리는 호사였다. 친지의 초청이나 사업상 또는 공무상의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 10년 후에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나성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중국식 이름을 우리가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1978년 ‘세 샘 트리오’가 부른 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잊힐 즈음 영화 ‘수상한 그녀’와 ‘불후의 명곡’에서 작곡가를 추모하며 불러 다시 주목을 받았다.
현대식 노랫말로 바꾸면 ‘LA에 가면 전화를 해주세요.’가 된다. 당시는 전화가 귀했으니 편지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근무한 시골 초등학교에도 전화가 없었다. 부잣집에서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백색 전화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편지로 소식을 보내 달라고 노랫말을 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도 늘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들은 나성에서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서른 초반에 공부 바람이 들어 좋은 직장도 마다하고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혼자서 밥은 어떻게 해 먹을까 또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 2년 차에 결혼을 시켰다. 깨소금 볶을 신혼부부의 소식이야 뭐 그리 궁금하랴만 지난해 경사가 났다. 떡두꺼비 같은 손자가 태어났다. 올해 첫돌을 축하하러 가서 만난 손자는 귀여움 덩어리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손자가 넘어질 듯 말 듯 뒤뚱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똥조차 냄새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손자 바보, 손자 바라기가 되었다. 1개월 가까이 함께하다 돌아오니 이제는 귀여운 모습이 더욱 아른거린다.
체류 둘째 주일, 예배를 드리러 101번 도로를 두 시간 달려 ‘나성○○교회’에 갔다. 교회 이름을 ‘LA○○교회’라 붙일 줄 알았는데 나성으로 시작되는 이름을 사용했다. 거리의 많은 간판도 나성을 접두어처럼 붙이고 있었다.
LA에만 300여 개의 한인교회가 있다고 한다. 한 집 건너 교회가 있다고 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기독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말이 그립고 고국의 소식이 궁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담을 주고받으며 고향의 향수를 달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인 타운’에는 영어를 몰라도 불편함이 없다. 한인마트, 한인병원, 한인가게 등 한인간판을 단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사장도 종업원도 우리 교민이다.
LA는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도시이다. ‘80,’90년대의 음식 맛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추어탕, 순두부, 죽, 낙지전골 등 우리의 입맛을 오롯이 살리고 있다.
‘팜 스프링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간지 38년이나 된다는 노신사를 만났다. 그 분은 고국에 형제, 남매들이 다 계신다고 했다. 고국에 가끔씩 다녀오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향이 그리워도 쉽지 않다고 했다. 생각하는 것도 생활양식도 많이 달라져 직접 가는 것보다는 전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손자 사진 받은 지 일 주일이 지났다. 슬슬 궁금해진다. 애들이 뭘 한다고 소식이 없지? 조급해 하는 나를 아내가 말리지만 더 기다릴 수 없다. 카톡을 보냈다.
‘애들아, 손자는 잘 놀고 있니?’ 며느리로부터 즉시 답이 왔다.
‘아버님, 저희들 잘 지내요. 사진을 많이 못 찍어서 보내느냐 망설이다 늦었어요.’
이어서 사진 몇 장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동영상 몇 개를 보내왔다. 우리 부부는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띠며 동영상을 보고 또 본다.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소식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나간 자식의 소식을 애타하는 가족, 아들 면회 오라는 부대장의 전화를 기다리는 부모, 합격 소식을 고대하는 수험생 등 수없이 많다.
더 기다리지 않도록, 더 실망시키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수화기를 들었으면---
첫댓글 손자 사랑에 푹 빠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부럽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좋으련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 애틋하시겠습니다.아기가 무럭무럭 잘 컸으면 좋겠습니다.
손자의 사랑이 구구절절 묻어나는 글 감동적입니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겠습니까? 다시 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羅城이 어딘지 첨 알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멀리둔 자식이 더욱 그립다지요. 그리고 그리운 만큼 정도 쌓여 가겠지요.
손주의 출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게 쑥쑥 자라기를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성(羅城) 가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이 계시기에 얼마나 더 보고 싶으실까요? 한달 가까이 함께 하시다 오셔서 그 그리움은 더하실 겁니다. 만날수록 정이 나고, 알수록 더 보고 싶으실 겁니다. 사진과 영상이 기다려지는 마음 이해가 됩니다.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손자를 보고오니 글발이 더 활기를 띄는 것 같습니다. 자라나는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자[의 조바심 때문에 한국과 엘에이 사이가 지척으로 가까와진 듯 합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두분다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습니다. 귀한 손자는 내외분의 사랑속에 잘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등단을 축하드리며 글이 한층 원숙한것 같습니다.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손자사랑에 푹 빠졌셨습니다. 아들보다 또 다른 손주사랑 엄벙덤벙 키운아들 사랑도 주지 못했는데 손주때문에 이사까지 했답니다. 어느 부잣댁 서울마님이 미국에사는 손자보러 일년에 두번씩은 미국에 갔답니다. 전화는 거의 매일하고 중학생이된 손자에게 원하는거 뭐냐고 물으니 정말 말해도 되느냐고 다짐하는 손자에게 그럼 말해하니까 공부에 지장이 있으니 전화좀 삼가해 달라고해서 할머니가 몹시 실망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중학생이된 손녀에게 영감이 전화 안한다고 닥달해도 자주하지 않네요. 지금 많이 사랑하세요. 그때의 재롱이 늘 기억에 남습니다.
글에서 손주사랑의 애틋함이 구구절절이 묻어 납니다. 나성(羅城)에 가면 노래가 귀여운 손주를 더욱 보고 싶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무료 영상통화라도 할 수 있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어는 정도는 달랬 수 있어 다행인 것 같습니다. 손주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