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
신동엽
화창한
가을, 코스모스 아스팔트 가에 몰려나와
눈먼 깃발 흔든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
무를 다듬고 있지 않은가.
신록 피는 오월
서부 사람들의 은행銀行 소리에 홀려
조국의 이름 들고 진주眞珠코걸이 얻으러 다닌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꿋꿋한 설악雪嶽처럼 하늘을 보며 누워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불쌍한 원주민에게 총 쏘러 간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린 여기 이렇게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 삼키고 있지 않은가.
그 멀고 어두운 겨울날
이방인들이 대포 끌고 와
강산의 이마 금 그어 놓았을 때도
그 벽壁 핑계 삼아 딴 나라 차렸던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꽃 피는 남북평야에서
주림 참으며 말 없이
밭을 갈고 있지 않은가
조국아
한 번도 우리는 우리의 심장
남의 발톱에 주어본 적
없었나니
슬기로운 심장이여,
돌 속 흐르는 맑은 강물이여,
한 번도 우리는 저 높은 탑 위 왕래하는
아우성소리에 휩쓸려본 적
없었나니
껍질은,
껍질끼리 싸우다 저희끼리
춤추며 흘러간다.
비 오는 오후
버스 속서 마주쳤던
서러운 눈동자여, 우리들의 가슴 깊은 자리 흐르고 있는
맑은 강물, 조국이여.
돌 속의 하늘이여.
우리는 역사의 그늘
소리없이 뜨개질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나니.
조국아,
강산의 돌 속 쪼개고 흐르는 강물, 조국아.
우리는 임진강변에서도 기다리고 있나니, 말 없이
총기로 더렵혀진 땅을 빨래질하며
샘물 같은 동방東方의 눈빛을 키우고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