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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 ‘삼국지연의’(새로읽는 고전:47)
◎영웅은 이렇게 쓰러져간다
의리와 한실중흥엮어 문학과 역사 관통하는 거대한 세계관 만들어…
허무와 속악화 극복한 절묘한 균형감각 발군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울지 않는 사람은 글을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다.그만큼 출사표 한 편에는 대의에 모든 것을 바쳐 생사를 잊은 불꽃 같은 삶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비 관우 장비가 죽은 뒤 촉의 멸망을 예견하면서도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나가 바친 공명의 출사표란 무엇인가.그것은 최후에 승리하는 패배자의 미학이며 위엄을 갖춘 희생자의 미학,무상한 운명 속으로 꺼져가는 고결한 인간의 미학이다.
출사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이야기 속에 있어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삼국지연의’는 진수의 역사서 ‘삼국지’에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개성을 첨가해 각색한 나관중의 소설이다.이 소설에서는 유비와 조조를 축으로 관우 장비 조자룡 손권 주유 노숙 원소 동탁 등 손에 잡힐 듯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인물들이 중원의 장대한 무대위에 명멸한다.
이런 인물 형상의 핍진성은 강렬하고 광범위한 흡인력을 발휘한다.때문에 ‘삼국지연의’는 명대 초 홍치본이 성립된 이래 수많은 이본과 번역이 이어지면서 5백여년간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읽혔다.출사표의 미학은 서사문학을 즐기는 동아시아인의 고유한 감수성을 형성했다.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이 동아시아에서는 비장미가 되지만 서구로가면 컬트영화가 된다는 말도 이같은 감수성을 암시하고 있다.
서구의 소설문법에서만 본다면 ‘삼국지연의’는 단순한 통속소설로 이해될 수 있다.
“사실이 일곱에 허구가 셋(實七虛三)”
이라는 논평에서도 보듯 이 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에 우위를 양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효용을 인정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이 소설의 문학성을 폄하하는 측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의 고전적 가치는 다른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동아시아 문화권의 소설은 ‘부르주아 계급의 대서사시’로 출발한 서구의 소설과는 다르다.동아시아의 소설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이라는 실존인물들의 영웅적 일대기로 시작해 차츰 허구적 인물들의 일대기를 포용해갔다.말하자면 출발부터 역사와 상상력의 결합이 이루어낸 문학 장르인 것이다.이것이 허구를 통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요건이 서구의 소설처럼 적용될 수 없는 이유다.
‘삼국지연의’는 동아시아 문학의 고유한 영웅주의 미학을 내재하고 있다.남자들은 쉽게 사랑받지 못한다.이것이 남자들이 지우(知遇)에 감격하는 이유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거의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이유다.생사의 기로에서 이 사랑의 중차대함을 생각하는 것을 의리라 하며 의리를 위해 죽는 사람을 영웅이라 한다.‘삼국지연의’는 이같은 사적 유대로서의 의리를 한실(漢室) 중흥이라는 공적 명분과 연결시킴으로써 허구와 사실,문학과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창출한다.이같은 세계관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물음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허무주의를 내장하게 된다.
공적 명분이 사라질 때 이것은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낭만적인 임협(任俠)과 무법(無法)을 거듭하며 쓸쓸히 스러져가는,바람이나 달빛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 ‘수호지’가 된다.
나아가 현실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야붕과 꼬붕,주군과 가신이라는 동아시아적 붕당(朋黨)시스템으로 속악화(俗惡化)되기도 한다.‘삼국지연의’는 이같은 허무와 속악화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다.이 기적적인 균형감각이야말로 송대 이후 발전한 서민계급의 지혜와 인생관을 응축하고 있는 이 소설의 순금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집필되었다.월탄 박종화의 ‘삼국지’(1963)는 유비 관우 장비의 임협적 의리에 큰 비중을 두었다.그 결과 전반부의 소설적 육체가 풍부해지고 생기를 띤 반면 공명이 이끌어가는 후반부의 긴장이 약화되었다.
이문열의 ‘삼국지’(1988)는 정사와의 대조를 통한 참신한 평석을 전개하며 전반부와 후반부를 고른 비중으로 다뤘다.탁고(託孤)의 중임을 받은 공명의 비장미를 강조한 나머지 공명이 죽은 뒤가 무리하게 생략되었다.
진순신(陳舜臣)의 삼국지라 할 수 있는 ‘제갈공명’(1990)은 철저히 진수의 정사에 의지하여 ‘삼국지연의’를 재해석했다.그러나 실제 역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삼국지연의’ 본연의 재미와 감동을 손상시키는 약점이 있다.
<이인화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제갈공명의 정체는 무엇인가/도교와 방술에 상당한 영향 받은 인물
‘삼국지연의’전편에 걸쳐 제갈공명만큼 걸출한 인물은 없다.그 신기묘산의 용병술,천하의 대세를 헤아리는 안목,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내는 독심술,당당하고 화려한 말솜씨는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이같은 능력과 더불어 인격 또한 고결했다는 것이 출사표로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공명에게는 출사표의 유가적 사상과는 거리가 먼 에피소드도 많다.적벽대전이 벌어졌을 때 공명이 주유측의 화공(火攻)을 돕고자 하늘에 기도하여 동남풍을 불게 하는 대목이 그런 예다.공명은 남만(南蠻)을 정벌할 때 신장(神將)들을 부리고,사마의와의 싸움에서 구름을 모으며,자신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하늘의 별을 떨어지지 않게 한다.그렇다면 제갈공명의 정체는 무엇인가.그는 한실 중흥에 몸을 바친 유가였던가.내치와 용병술에 골몰했던 법가였던가.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호풍환우하는 도가의 술사였던가.
술사로서 공명의 이미지는 도교 신앙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던 작자 나관중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된다.도교에서 ‘반고진인’이나 ‘태상노군’같은 기존의 신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신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이 시기 제갈공명은 ‘천추상상(天樞上相)’이라는 이름의 신으로 승진하여 문창전에서 경배를 받았다.이에따라 그 때까지 구전되던 공명의 전설이 도교적 숭배열에 따라 극단적으로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명의 신비를 모두 도가의 조작이라 이해할 수는 없다.공명은 181년 산동성의 낭아군 양도현에서 출생,15살까지 산동성의 태산군 태안현에서 성장했다.산동성은 진시황 이래 무술과 방술(方術)이 성했던 지역이다.특히 공명이 성장한 태산은 누대의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도교의 성역이다.공명의 시대에 중국을 휩쓸었던 장각의 태평도 역시 산동성에서 시작됐다.
공명이 도교와 방술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유비에게 공명을 추천했던 서서와 사마휘 같은 지식인들도 도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또 간길 좌자 비장방처럼 그 시대의 유명한 도가들은 체제측이든,반체제측이든 일정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있었다.공명이 설사 승상의 자리에서 도술을 행했다 할지라도 당시의 분위기에서 별로 낯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후세의 유학자들이 공명을 가리켜 “지모가 많으나 요(妖)에 가까웠다”고 폄하한 기록도 이를 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