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선다. 이른 새벽어둠에 어둠을 헤치며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실업자들이 모여드는 노동시장을 찾아간다. 노동시장으로 알려진 시민회관 앞에 도착하니 나이든 남녀들이 모였다.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보통 오륙십 대들이다. 노동시장에 사오십 대 남자가 흔하면 육십 대는 잘 팔리지 않는다. 근로자들의 얼굴은 노천에서 일하다가 햇볕에 거슬리어 검붉은 색이다. 모두가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체격이다. 피부엔 기름기가 없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얼굴엔 주름도 보인다. 우두커니 서서 어슬렁거리는 일꾼들을 바라본다. 직업소개소 직원은 필요한 사람의 수에 맞춰 봉고나 승용차를 가져온다. 승합차에서 한 청년이 내리더니 등치가 좋고 힘이 좋아 보이는 오륙십 대 아저씨 일곱 명을 골라 봉고에 태운다. 먼저 선발된 근로자들은 일진이 좋은 사람들이다. 근로현장 소장들은 눈매가 무서워 까다롭게 골라내어 선택한다. 또 다른 승용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여자들이 모인 곳으로 간다.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듯 여자들 앞에서 꼼꼼히 살피더니 키가 크고 깡마른 오륙십 대 세 명을 데려간다. 노동시장 마칠 시간이다. 노동시장 마감 시각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젊은 실업자가 늘어난 탓에 노년기의 아저씨들은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뒤늦게 한 대의 봉고가 도착했다. 힘센 근로자처럼 보이려고 앞에서 어깨를 펴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물건 고르듯 건강을 점검하고 건축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묻는다. 맨 앞자리에 서서 경험이 많다고 손을 들었다. 마지막 다섯 명 중에 어렵게 선택되었다. 건설현장으로 팔려가는 일용직 근로자 중에 나도 포함되어 승합차에 앉았다. 선택된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당은 보통 칠팔만 원 정도다. 하루의 일당은 일하는 장소가 특별하지 않으면 통상적으로 같은 노임이다. 기술자는 일십오만 원 반장은 십만 원 정도다. 그날의 일진이 좋아 선택받은 근로자들은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다. 일이 고되든 쉽든 일자리에 간다는 그 기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일터에 도착한 일용직 근로자들은 기분이 좋아 미소를 날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일하러 왔는데 선택되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가는 날이면 친구들과 주점에 앉아 하루 일당만큼 낭비한다. 인력사무소 직원이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직업소개소 직원은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메모지와 볼펜을 준다. 힘 안 들이고 사무실에 앉아 돈벌이하려는 속셈이다. 어디로 가라는 전화 한 통화로 봉고로 실어줄 때와 같은 매상을 올린다. 노동시장에 가서 허탕 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봉고 아저씨는 현장 소장에게 인력납품 서류에 서명하고 사라진다. 직업소개소 직원은 인력을 옮겨주며 쉽게 돈벌이하지만, 일용근로자들은 중노동으로 일해야 한다. 현장소장은 인력을 인수하여 안전모자와 신발을 지급하고 안전교육을 한다. 군대 생활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건설현장에서 목수를 보조하는 뒷일꾼을 맡았다. 목수가 시키는 대로 자재를 옮겨주는 일이다. 육층 건물에 거푸집을 만드는 일을 도우면서 내부는 안전하지만, 외부에서 일하면 공포심에 빠져든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지상 11m의 높이에서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닌 듯 온몸이 떨리고 불안하다. 안전 고리도 없이 고공에서 철판 위로 걸어 다녀야 하는 일이다. 아래로 내려다보면 심장이 떨리고 불안하다. 손 전화기에서 신호가 온다. 진동에 놀라 호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산행 대장의 문자메시지다. 궁금하여 상세히 읽어보았다. 오월 둘째 주말 산행하는데 관광버스의 요금을 알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전래적으로 해오던 일이라 흔쾌히 승낙하고 답장을 보냈다. 회사마다 전화하여 오월의 둘째 주말에 예천 태백산까지 요금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오월이고 주말이면 성수기라서 여느 때보다 가격이 상승해 있다고 한다. 팁까지 포함하여 많게는 일백이십 만원에서 적게는 육십 만원까지 아주 다양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목수는 일하다 말고 어디에 있는가 하고 부른다. 일하러 왔으면 곁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더니 칠 미터짜리 각목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아래층에서 각목을 가져오니 거푸집을 만들어야 하니 잡아달라고 한다. 합판으로 만들어진 형틀을 서로 끼워 붙이면 된다고 하여 힘들여 옮겼다. 일하다 말고 틈을 내어 주머니 전화기로 통화를 했다. 이것을 본 목수는 작업 중에 통화는 짧게 하라고 한다. 현장 소장이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돈 벌기 싫으면 집으로 가라고 한다. 작업 중에 긴장이 풀리면 사고로 이어진다며 일에만 열중하라고 한다. 일은 쉬워도 여유가 없다. 목수의 오른팔이 되어 움직여야 하므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내가 맡은 일은 주로 가벼운 심부름과 물건을 옮기거나 잡아주는 일이다. 일을 시작하여 어물쩍거리다 보면 중참 시간이 다가온다. 중참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렀다. 집에서는 하루 한두 끼로 배를 채웠는데 일하다 보면 먹는 일이 너무나 잦다. 배가 고파서 먹으려고 모이는 것이 아니고 휴식을 취하려고 같은 장소로 몰려든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현장에서 일을 마치는 시각은 저녁 여섯시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이런 생활을 반복한다. 지시에 따라 어물거리다 보면 하루 시간이 한순간이다. 일하는 방법을 몰라 머뭇거리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마감 시간에 쫓긴다. 목수는 한 자리에서 정성 들여서 일하지만, 뒷일을 돕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로봇처럼 움직인다. 일에 대한 관심보다 내일을 걱정하는 일용직 근로자다. 개미처럼 노동하던 일용직 근로자가 하루의 마감을 저녘노을이 알린다.
첫댓글 일용직 근로자가 하루중에 제일 행복하던 때는 일마치고 품삯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갈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맞아요. 근로자의 가장 포인트라 하겠지요.
기분 좋은 사람 있으면 주점으로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