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4일 묵상 본문 : 사도행전 26장 13절 - 23절 - 땅의 나라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며 참 소망과 기쁨을 누리고 승리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많은 비로 인해 폭염이 잠시 멈춘 날씨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많은 사건과 사고를 보도하며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좀처럼 분간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땅의 상황에서 갈 길을 찾지 않고 주의 보좌로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직 주 안에서만 참 평안과 소망, 생명의 길을 있음을 기억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 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의 보좌에 서게 하옵소서.
주와 교제함의 기쁨이 마음에 풍성하게 하시고 그 기쁨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주의 지체들을 기억해 주시고 그 마음과 생각을 은혜와 진리로 인도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본문 해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중 정오가 되었을 때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자신과 동행들을 둘러 비추었고 이에 모두 땅에 엎드리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 음성은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는 음성이었음을 고백한다.
가시채는 쟁기질 하는 사람의 손에 있는 소몰이 꼬챙이로 소가 말을 듣지 않으면 찌르기 위해 사용했으며 소가 뒷발질을 할수록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게 만드는 기구였다.
주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은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함을 교훈하는 의미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바울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예수님은 바울이 박해하는 예수임을 밝히시고 일어나 네발로 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나타난 이유는 앞으로 바울에게 일어날 일과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삼기 위함임을 가르쳐 주시고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낼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죄사함과 믿음을 통해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기업을 얻는 자로 만들 것임을 선포하신다.
이는 죄사함과 믿음만으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선포하셨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이 하늘의 이적을 따라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파했음을 말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자기를 잡아 죽이고자 했으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자신이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전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성취될 예언에 대한 것으로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 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는 것에 대한 말씀이기에 유대인들이 거부할 것이 아님을 선포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열방을 제패하고 굴복시키실 정치적 메시아로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바울이 제시한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는 당시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지였으며 이방인들의 구원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지였다.
나의 묵상
성도들을 박해하기 위해 바울은 다메섹으로 향했으며 가는 도중에 예수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을 부르시고 그가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가르치신다.
소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소를 찌르는 가시채를 소가 뒷발질을 해도 계속 찔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일깨우셨던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생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스스로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지는 종말을 맞는다.
이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지혜인데 하나님은 이 지혜를 바울에게 주셨던 것이다.
비록 원수와 같이 자기를 대적하는 바울이었지만 주님은 바울을 부르시고 깨닫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종이요 백성으로 삼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베푸신 은혜이며 이 은혜를 깨닫고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자이며 주의 기업을 얻는 자로 서게 됨을 가르쳐 주신다.
또한 더 나아가서 주님은 바울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일으켜 세우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셨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해 주신다.
하나님 백성 삼으신 것도 모자라 사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만드셨던 것이다.
물론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반드시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는 것이었지만 그 고통에 비해 더 큰 기쁨이 주어지기에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29~31)
주를 따라 복음을 전하며 사는 일에는 늘 고난이 수반되고 자기부인이 요구되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일이며 인내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성도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하는 삶의 태도와도 연관된 가르침임을 보여준다.
이런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바울은 복음을 전했고 그에 따른 고난도 동일하게 받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모든 과정도 이미 구약의 말씀에 예언된 것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사건으로 성취되었기에 자신이 전한 메시지는 유대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임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바른 이해를 방해했으며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한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확신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했다.
결국 유대인들의 오해는 하나님의 나라를 땅의 나라로 이해하는 것에 있었으며 다윗의 후손을 육신의 후손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땅의 삶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는 복음에 대한 오해를 가지게 되며 언약의 성취자로 오신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줄 그리스도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삶을 살게 되며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소가 더욱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삶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된다.
복음을 바르게 깨닫지 못했던 나의 삶에서도 동일한 모습이 나타났으며 오늘날에도 복음에 무지한 인생에서 나타나는 삶의 열매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베드로는 성도가 가지는 소망은 땅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이며 이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가 될 때 시험으로 가득찬 땅의 상황에서도 기쁨으로 사는 자가 될 수 있음을 선폰한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3~7)
오늘도 성도가 가야 할 곳은 땅이 아닌 하늘의 보좌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신다.
그리고 주의 보좌에서 땅의 상황을 이기고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신다.
그 고백이 나의 삶, 그리고 지체들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선포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땅의 것에 매인 삶에서는 고통과 아픔과 좌절만 따라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리석은 인생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육신적인 노력으로 이겨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것처럼 고통만 더해지게 하며 주의 뜻을 거스르며 멸망의 길로 가는 것뿐임을 고백합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땅이 아닌 하늘의 삶에 목적을 두고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죄와 허물에서 벗어남이 생명의 삶을 향한 발걸음임을 기억하고 날마다 정결함으로 살기 위해 힘쓰는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연약함 속에서도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강한 자의 삶을 살게 하시고 주님이 베푸시는 기쁨과 평안,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깨어 인내하며 승리를 맛보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