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 오고 있지 않았다.
한자리에 계속해서 서있으려니 다리가 저려 왔다.
‘니가 가지고 있어.’
그가 건넨건 뜻밖에 뮤지컬 공연 티켓이었다.
민탁은 뮤지컬, 오페라 공연을 즐기는 편이고. 강원은 뮤지컬, 오페라 공연은 질색이었다.
차라리 콘서트나 극장을 가면 갔지, 뮤지컬이나 오페라따윈 지루해서 싫다했는데
딴에는 예쁜짓좀 한것이다.
이번 뮤지컬 공연은 브로드웨이팀의 내한공연이라 표구하기 어렵다 해서
1장 구하는것도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티켓이 링크되자마자
몇분만에 매진되었다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으니…
그는 그런 표를 2장이나 구했다.
세 달 전부터 공연을 기다렸다.
흘러가는 말로 꼭 보고 싶다 했는데 그가 그걸 기억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뮤지컬 티켓을 구한 사실이 고마웠다.
그래서 기분좋게 조금 늦어도 이해하기로 했는데….
30분이 넘어가자 민탁의 태도가 달라진다.
“왜 이렇게 늦지?”
민탁은 한숨을 쉬웠다.
표도 가지고 있겠다 혼자 들어가도 되었지만 그래도 성의를 보인 상대를
생각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어차피 공연시간까진 30분이 남았다.
딱 10분만 더 기다려볼 참이었다.
기다리던 10분이 지나자 이젠 슬금 불안해졌다.
핸드폰으로 단축번호를 누르자 받지 않는다. 무슨일이 생기기라도 한 것일까?
불안함이 덩어리지고 점점 불어나는데 때마침 강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야.
하고 손을 흔들어야 하는데 그럴수 없었다.
…그는 여자와 함께였다.
다정스럽게 팔짱을 낀 포즈가 뿌리 두 개에 자라면서 줄기가 합쳐지는
나무인 연리목같았다. 키는 머리 하나 차이로 이상적인 키크기를 과시했고,
남자다운 강원에게 여자는 여성스런 매력 때문에 더 잘어울렸다.
그리 청순가련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보호하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여자였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멀리서부터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웃음이 어찌나 해맑은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봄기분이 물씬 풍기는 연분홍색 색상의 치마에 하얀색 블라우스는 순백의 색을
떠올리게 했다. 흔히들 말하는 선남선녀. 그짝이었다.
민탁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
“이분이에요?”
“…그래.”
“민탁씨?”
“……네.”
“처음 뵙죠? 반가워요. 전 김효원이라고 해요.”
김효원이라 밝힌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돋아나는 새싹처럼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미소다.
“강원씨 아내이기도 하구요.”
그의 반려자, 그의 아내였다.
내 사랑 이강원은 잔인하다.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할 수가 없다.
태훈의 말대로 나는 바보다. 미련하다.
어리석은 김민탁.
민탁은 입술을 억지로 끄집어 올렸다.
행여 어색하게 보이진 않을까 필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웃으려 노력했다.
강원을 흘낏 보았다. 지독한 포커페이스.
표정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캐치하는 능력을 가졌어도 강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언제 어느때건 아무렇지 않게 가면을 쓸수 있는 남자, 이강원앞에서는 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억지로 웃는걸 관둬도 자연스럽게 웃을수 있었다.
피식- 하고 가볍게 웃자 그제서야 강원이 반응을 보인다.
고운 미간에 주름이 두어개가 잡혔다.
“네. 김민탁이에요. 듣던데로 참 미인이시네요.”
“어머- 무슨 그런 말씀을, 민탁씨가 더 미인이신데요. 그리고 말 놓으세요.
제가 한 살 어려요.”
그녀에 대해 들은건 단 한마디도 없다. 단지 의식적으로 한 말이었다.
그녀는 한낮 인사치레일수도 있는 ‘미인’이란 말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타입인가보다.
붉은기가 도는 얼굴을 가리려 한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알 굵은 시계마저 잘 어울렸다.
적당한 내숭인지 몰라도 먹힌다. 여자가 보기에도 귀엽다.
홍조를 띈 얼굴, 화장기가 거의 없는 하얀 얼굴은 옅은 핏줄까지 보일정도였다.
민탁은 안 예쁜 구석을 찾아 보려 눈에 불을 키고 효원을 보았다.
그러다 얼마 안가 관두었다.
필요 없는 존재는 오히려 자신이다.
탐색하고, 도대체 누구길래 강원씨랑 단 둘이 만나기로 했어요?
하고 당당히 물을수 있는 존재는 효원쪽이다. 떳떳하지 못한쪽은 자신이다.
“강원씨, 저 이만 갈께요.”
“어.”
아리송한 표정으로 서 있자, 효원이 생글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같이 나온거거든요.”
“아…. 네.”
“나중에 정식으로 봐요.”
하얗고 맨들맨들한 다리를 총총걸음으로 옮긴다.
민탁은 한시도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착한 여자, 예쁜 여자, 온 몸을 샤넬, 프라다, 구찌등의 명품으로
감싸도 머리가 텅 비어 보이지 않았다.
원판 자체가 틀린 여자다.
꼭 쥔 주먹에서 땀이 났다.
민탁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저렇게 예쁜 여잘 두고…”
“….”
“넌 벌 받을꺼야.”
“…상관없어.”
넌 끝까지!!!
민탁은 화가나 하얀색의 토트백에서 뮤지컬 티켓을 급히 찾았다.
떨리는 손이 한번에 찾을 리가 없었다. 도도하게 이딴거 너나 봐!
하고 면상에 던져 주던지, 찢어버리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손이 떨리는지…
제길-!
토트백을 뒤집어 엎자 이것저것이 뒤섞여 나온 티켓이 보였다.
사람들이 보건말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물건들을 대충 집어 넣고, 티켓을 쥐었다.
땀이 난 손에 축축하게 달라붙는 티켓의 감촉이 기분좋을 리가 없다.
“뮤지컬 안봐. 너 혼자서 봐. 아니면 니 아내 불러 내서 둘이 보던지.”
“…”
“헤어지고 싶으면 말을 하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아주 예쁘던데?”
“…ㄱ아냐.”
“?”
“사랑하는게 아냐.”
“….”
“내가 사랑하는건 너라고.”
민탁은 한 순에 쥔 티켓을 구깃 구깃 접었다.
알아주는 무뚝뚝한 성격탓에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적 없는 강원이다.
사랑한단다. 꿈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로.
민탁은 웃었다.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그래. 사랑하는건 나라고?”
“….”
“그래서 나랑은 연애하고, 그 여자랑은 결혼했니?”
“….”
“결혼한 여자를… 내 앞에 데려와? 자랑하고 싶어서?”
“…미안하다.”
민탁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구겨진 티켓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강원을 죽일듯이 쳐다보았다. 살인본능마저 느낀다.
너무 지독히 잔인한 강원.
누군 나중에 모든걸 들켜 사람들의 돌팔매질을 당할 각오까지 하고 만나는데.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강원을 등지고 돌아서서 눈물이 뚝뚝 떨어뜨렸다.
차라리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비참하진 않았을 것이다.
첫댓글 헝헝 , 민탁아 울지마 ㅜㅜ
재밌어용 ㅠㅠ
아~ 민탁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ㅠ.ㅠ 강원이 저 나쁜자식
이번기회에 태훈한테 마음을 확 돌리라구~
저런 녀석은 정말 나빠... 좋게 표현해서 나쁘고... 다른 표현은 %%##@#%&
헐 강원이 왜저럴까 진짜 무책임한남자다 ㅡㅡ 정말싫어지려고한다
강원이 싫다 정말 ㅠ
작가님께 이런말해도 될진 모르겠지만여..........강원이졍말싫다-_-.비호감이에여.....그래도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