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5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돈이 많은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주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부자들보다 과부가 정말 많이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저들은 많은 것 중에 일부를 넣었지만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2:41-44).
우리의 헌금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주셨지요.
심지어 우리는 헌금을 하면서도 우리의 가치를 챙겨가지려는 악한 자들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두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나의 의인 것이지요.
이런 옛 사람에 속한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오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삼아주소서.
나 스스로는 그 자리로 갈 수 없사오니 십자가 보혈로 날 씻어 주님의 옷인 세마포 옷을 입어 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소서.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 곧 우리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셨습니다(계 19:8).
나의 옳은 행위로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의 부요함으로 주님의 의를 세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26:24-32
제목 : 위경 가운데서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자 되게 하소서.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을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 나의 묵상
아그립바 왕의 허락 하에 바울은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그리고 버니게를 비롯한 공회 사람들 앞에서 변론을 한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세를 잘 알고 있는 것과 그 앞에서 변론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자신도 개종 이전에는 예수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었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다메섹 회심 사건과 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았음을 진술하며 그 소명이 바로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전하는 것임을 강변한 것이다.
한편 바울의 변론을 들은 총독 베스도는 바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바울 네가 많은 학식 때문에 미쳤구나.”
하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나는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맑은 정신으로 온전한 말을 한다. 아그립바 왕은 이 사실 곧 자신이 변론한 일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에 대한 예언과 성취는 세상 한 구석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들의 말을 믿으시는가? 나는 당신이 믿는 줄 안다.”
여기까지 바울이 말을 하자 아그립바는 바울에게 말을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여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바울이 대답한다.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나는 지금 왕뿐 아니라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결박되어 있는 것 말고는 나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바울의 이러한 변론이 마치자 아그립바와 버니게 그리고 베스도 총독을 비롯한 공회원들이 일어났다.
그들이 방을 나와서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이 사람에게서 사형이나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지금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아주 신중하게 역설하였다.
하지만 아그립바 왕이나 총독 베스도는 그의 말을 신중하게 듣지 않았다.
다만 자기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쯤으로 생각하였을 뿐이다.
심지어 바울을 미쳤다고까지 하는 것이다.
바울은 결코 미쳤거나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정말 자신이 결박 된 것 말고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변하는 것이다.
그의 말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할 뿐이다.
그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원하고 고대하며 기다리는 민속 메시야가 결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조금만 생각을 바꿔서 예수가 바로 너희들이 원하는 다윗과 같은 메시야라고 한 마디만 하면 그도 죽지 않고 아주 좋은 귀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어둠에서 생명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주신 장본인이 바로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조상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바라고 소망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조상 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유대인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그런 민속 메시야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의 약속이며, 그 자손의 약속은 곧 하나님께서 하신 창세전 언약이다.
이는 곧 영원한 생명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인데 이들 유대인들은 단순히 다윗이 이스라엘을 최고의 번영국가로 만들었던 것만을 추구하며 그런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바울 역시 그가 대망하며 기다렸던 메시야도 그런 민속 메시야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가 유대인으로 와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버린 것이다.
율법에 능통했던 바울이 볼 때,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는 분명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그에게는 저주 받은 자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죽여야 할 자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일을 수행하러 대제사장에게 허가증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빛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부르시고 어둠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부르셨다.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햇빛보다 더 강렬한 빛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눈을 멀게 하셨다.
그렇게 3일 동안 소경으로 지내는 중에 지금까지 자기가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으로 살아왔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정말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여 아나니아의 악수를 통해서 눈이 떠졌을 때 그 앞에 보인 것은 오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그리스도이신 것이 밝히 보였다.
그래서 눈이 떠진 다음 날 곧바로 시내로 나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다.
그렇게 바울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자신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신 그리스도를 전할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목이 터져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바울과는 전혀 다르게 종교적 직분과 정치적 직위를 가지고 있는 아그립바와 베스도는 그의 입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다만 자기들의 직분과 직위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런 충성 앞에서 바울의 흠을 찾고자 열심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떤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 과연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의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을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마도 나는 내가 당하는 고난이라는 연민에 휩싸여 나를 돌아보고 살리기 위하여 아등바등 하였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그 고난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나의 고통을 이야기 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이것이 고난을 당한 나의 솔직한 모습임을 고백한다.
또한 내가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과연 선포되는 진리의 복음을 얼마나 심도 있게 받아들이며 그 중심으로 들어갔는가, 하는 면을 보면 내 직분에만 최선을 다할 뿐 생명을 주는 복음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내 안에 직분과 직위에 충실한 아그립바와 베스도가 꿈틀댄다.
나는 이렇게 죽어야 할 자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오해하고 나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육신의 목숨만을 위하여 살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무덤 속으로 이끌어 가셨다.
그리고 그 고난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침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고, 나는 몇 차례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을 그 때, 들리는 복음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난 바울의 그 모습이었다.
나 스스로 나를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 바로 그 때가 주님이 일하시는 때임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지금 이곳 베트남에 와서 작은 한인 목회를 하고 있다.
하지만 목회의 규모가 크든 작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며 그 생명으로 목회를 하는가이다.
나는 오늘도 연약하여 넘어지고 자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나의 힘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만 바라본다.
그 안에 내가 나아갈 생명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바울은 위경에서도 자기 자신을 변론하지 않고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언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결국 그는 로마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비록 그는 참수형으로 목이 잘리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영원한 생명 완전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나도 썩어질 육신의 목숨에 목숨을 거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나를 내어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역사 속에서 순간순간 위험과 고통이 찾아오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