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로 시간을 빼앗겨서 그런지 문재인 후보의 쟁점 부각이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밋밋한 선거는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민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된다. 특히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려면 여당을 쟁점 논쟁에 있어서는 압도해야만 한다. 그럴 때 정권교체의 명분이 분명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정권교체를 하여야 하는지 의문마저 들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TV 토론에서 문 후보는 안정감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선동성은 대단히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게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통치의 책임자로서는 그러한 타입이 바람직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선거전에서는 어쩐지 부족한 것 같다. 야당의 경우 선거전에서는 국민을 자극하고 감동시키며 감정 고양 상태로 몰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선거의 기본 양상이다. 점잖다는 소리를 듣고 선거에 패배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쟁점 부각이 부진한 데에는 문 후보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당 쪽의 슬럼프도 문제인 것 같다. 국회에서 막강한 야당의 의석을 갖고도 쟁점을 별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MB의 내곡동 사저 문제는 MB 잘못의 작은 일일 뿐, 국민적 의제가 될 소재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부문은 경제 문제이다. MB 정권은 분명 '부자를 위한 정권'이다. 소외계층,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 이론을 내세우는데 그것은 현실에 맞지를 않는다. 현실에 의해 부정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통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은 가속되었다.
남북한 관계가 쟁점의 우선순위에서 뒤에 밀린 것은 짐작이 간다. 지난번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남북문제를 중요쟁점으로 하여 별 득표를 못한 채 실패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남북한 간의 평화구축 문제에 너무 소홀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안보세력이 너무 강하고 또 거칠게 설치고 있어 위축되어 몸을 사리는 것인가. 만약에 위축되었다면 큰 문제다. 대선경쟁에는 대담성이 있어야 하고 하늘을 찌르는 듯한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잘 쓰는 Audacity(대담무쌍)이다.
문 후보가 안 후보와의 TV 토론에서 금강산 관광문제를 조심스럽게 거론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NLL문제를 놓고 문 후보 측은 너무 수세적이기만 했다. 그리고 임동원·백낙청 씨 등 전문가 그룹이 제기하고 있는 천안함 문제에 관하여는 거의 함구에 가깝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미국 CIA 정보전문가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1964년 8월 4일 미국 제7함대의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하면서 알려진 사건으로 미국은 이를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가했다)을 예로 들면서 의문을 제기한 바 있고 그 의문을 그는 아직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이제껏 꽉 막혀 버린 것이다. 야당 측은 이 문제에 오바마가 말하는 Audacity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거전에서 왜 MB가 공중에 증발하다시피 거론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번 대선은 그 구도가 MB 집권 5년에 대한 심판이고, 그리고 비슷한 비중으로 박근혜 후보와의 경합이어야 옳다. 그런데 MB 정권 잘못에 대한 공방은 사라지고 박정권·노정권 문제를 두고 싸운다. 여하간 이번 대선에서 야당은 동력이 부족하다. 영어로 말하여 dynamism을 못 느낀다. 여당 측도 경제민주화 운운하며 개혁의 냄새를 한껏 풍기다가 핵심은 버리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역시 보수의 체질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본래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보수가 강하다. 개혁파가 승리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승리한다 해도 아슬아슬한 승리이다. 그리고 만약에 개혁파가 승리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이 준 혁명적 열기에 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제 조건은 충분히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야당의 두뇌들이 그 객관적 조건을 충분히 개발하여 그들의 표로 얻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객관적 조건만 되었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을 의식화하고 감동을 주며 동원을 할 때 표가 되는 것이다. 5년마다의 대통령 선거는 우리 민주 정치의 커다란 축제일뿐만 아니라 정치 발전의 고비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