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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1년)
미 재발매 상태로 남아 있던 신중현 참여앨범
예나 지금이나 신중현의 창작곡이 수록된 음반들은 ‘가요 LP수집의 화두’로 각광받는다. LP재발매가 본격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신중현의 손길이 담긴 희귀앨범들은 거의 대부분 재발매의 수순을 밟으며 부활했다.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 최절정기로 접어든 신중현과 더 멘이 미지의 가수 차현아, 김성철과 함께 협업한 음반이다. 마치 ‘최후의 보루’처럼 그동안 신중현 관련 앨범 중에서 미재발매 상태로 남아 있던 초 희귀앨범이다. 실제로 이 음반은 실물을 직접 보기가 힘들어 중고 음반시장에서는 최소 300만 원 이상을 호가해 수집가들의 로망과는 같은 ‘꿈의 음반’으로 통한다.
히키신부터 60년대에 발표한 에드포 등 신중현 활동초기 앨범들의 명성도 대단하지만,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그의 전성기를 수놓은 밴드로는 더멘과 엽전들을 많이들 언급한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4년 남짓 되는 이 시기에 발표된 신중현 음반들은 대부분 판매금지 처분으로 인해 폐기되어 잔존 수량이 거의 없는 희귀앨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신중현 사운드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던 더 멘 시절에 발표된 신중현사단의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의 음반은 현재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소위 ‘차현아 음반’로 불리는 이 앨범은 그런 음반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앨범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신중현사단의 본격 가동
1970년 밴드 퀘션스 결성이후 신중현은 자신의 밴드활동과 병행해 신인가수들의 음반 녹음을 위해 '캄보밴드'까지 운영했다. 당시는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포크음악과 자웅을 겨루며 록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신중현이 명동의 다운타운을 휘어잡았던 상업적 성공시절이었다. 펄시스터즈와 김추자의 성공을 발판으로 ‘히트곡 제조기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던 신중현의 지도아래 수많은 남녀가수들이 탄생했다. 당시 신중현은 자신의 휘하에 둔 가수 관리를 위해 2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북적거렸던 사무실을 운영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함께 캄보밴드를 운영하며 활동했던 정성조는 당시에 대해 '돈을 쓸어 담았을 정도였다“고 회고했었다. 중저음이 매력적인 장현, 청아한 미성을 구사했던 임아영, 자매듀엣 바니걸스, 박인수, 송만수, 임성훈, 임희숙, 민아, 주현, 지연, 차현아, 시각장애인 윤용균, 그리고 싸이키델릭 여제로 불리는 김정미는 이 시기에 등장해 신중현사단의 본격 가동을 주도했다. 신중현 문하의 수많은 가수들은 이때부터 <신중현 사단>이라는 특별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엄혹했던 신중현과 더 멘 시절에 발표된 명반들
1971년 말 신인가수 발굴로 정신없이 바빴던 신중현은 6인조 록밴드 ‘더 멘’을 결성해 음악적 정점을 향해 내달렸다. 더 멘의 첫 앨범녹음이 한창이던 1972년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서슬 시퍼런 유신정권을 출범시켰다. 통행금지,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등 삐딱한 유신정권의 잣대로 본 퇴폐의 중심에 록밴드가 있었다. 전성기를 맞았던 신중현에게 유신정권의 탄생은 좌절과 음악적 사망의 신호탄이었다. 1972년 10월 계엄령 속에서 신중현, 박광수, 장현이 보컬로 참여해 <아름다운 강산> 등이 수록된 첫 앨범 ‘장현과 더 맨’과 음악적 변신을 보여준 연주음반 ‘쎅스폰의 유혹’을 발표했다.
이후 정권의 눈 밖에 난 신중현과 더 멘의 멤버들은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찍히며 음악활동에 숨통을 옥죄는 통제가 뒤따랐다. 역설적인 사실은 그 엄혹했던 시절에 신중현은 오히려 <아름다운 강산>, <햇님>, <바람>, <봄>, <잔디> 등 수많은 한국 싸이키델릭의 명곡을 남겼다. 또한 더 멘과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이 함께 발표한 음반은 2000년대 초반 한 인터넷 경매에서 200만원이 넘는 당시로는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1972년과 1973년 포크가수 양희은과 서유석과 함께 선구적인 음악적 실험을 시도했던 국내 최초의 싸이키델릭 포크 록 앨범들도 이 시기에 탄생한 저주받은 걸작들이다.
지연 음반과 같은 날에 탄생한 앨범
신중현과 더 멘 시절에 대중적으로 가장 각광받았던 신중현사단의 가수는 뒤늦게 한국 싸이키델릭 여제로 재 평가받고 있는 김정미이다. 그에 반해 전혀 대중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던 지연과 차현아, 김성철의 음반은 최근 들어 수집가들의 무한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더 멘의 연주로 발표된 지연과 이번에 재발매된 차현아, 김성철의 앨범은 1973년 5월 25일 같은 날에 발매되었다는 점이다. 김추자 소주병 사건의 주인공 소윤석의 부인인 지연의 데뷔음반은 음반번호가 ‘KLS-66’이고, 차현아 음반은 그 다음 번호인 ‘KLS-67’이다. 두 음반은 현재 신중현과 더 멘 시절에 제작된 음반 중 희귀함으로는 쌍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발매 당시에 상업적으로는 철저하게 실패했고 금지처분까지 당해 남아 있는 음반 자체가 거의 없어 실물보기가 매우 난망한 앨범들로 분류된다. 가수들의 가창력과 상관없이 탄탄한 신중현의 기타연주와 샤우팅 창법을 들을 수 있는 더 멘의 연주곡과 보컬곡이 함께 수록되어 수집가들의 표적이 된 음반이란 점도 공통적이다. 지연의 음반은 2017년 CD버전과 180g LP 버전으로 재발매 되어 품절된 상태이다.
앨범의 백미인 신중현이 노래한 롱 버전 <아름다운 강산>
이 음반이 소위 ‘차현아 음반’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앨범 커버를 장식한 사진 때문이다. 그래서 차현아의 독집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지만 실은 남자가수 김성철과 더 멘 시절의 신중현의 보컬 곡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신중현사단을 대표하는 김추자와 장현 그리고 김정미에 비해 전혀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했던 미지의 가수들 노래가 수록된 이 LP를 애타게 찾는 음반수집가들은 넘쳐난다. 현재까지 확인된 이 음반의 개체 수가 극소수이고 실제로 중고음반시장에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신중현 음악의 핵심이었던 싸이키델릭 장르를 상징하는 환상적인 커버 디자인으로 인해 중고음반시장에서는 부르는 게 값인 황금음반으로 대접받고 있다. 다만 이 앨범의 주인공인 차현아와 김성철에 대한 프로필과 활동 정보는 아쉽게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기교 없이 담담한 가창에 담긴 슬픈 정조의 음색을 구사하는 차현아의 노래들은 김추자와 김정미와는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전설적인 앨범의 명성으로 인해 품은 기대감은 자칫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중현과 엽전들의 연주곡, 장현, 김추자, 신중현과 뮤직파워의 버전으로 익숙한 명곡 <저무는 바닷가>는 이 앨범에 수록된 차현아의 버전이 오리지널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 앨범에 사진 한 장조차 실리지 못하고 B면에 노래가 수록된 남자가수 김성철(김기표라는 설도 있다)은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시원한 창법을 들려준다. 이 앨범을 청음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차현아보다 김성철의 노래를 더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앨범의 백미는 더 멘 시절 신중현이 9분 52초 롱 버전으로 노래한 마지막 트랙 <아름다운 강산>이다. 이 버전은 1972년 <아름다운 강산>을 최초로 노래한 박광수 버전과는 다른 음악적 매력으로 이 앨범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수집가들 사이에 ‘꿈의 음반’으로 불리는 이 희귀앨범의 재발매로 인해 신중현사단의 중요 앨범 재발매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시원섭섭한 기분이 든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장현 데뷔음반-기다려주오 (LP) 2월 11일 입고 예정 가격/44,500원
Side. 1
Side. 2
1.초원(He 6)
2.님은 먼 곳에(장현)
3.마음(이정화)
4.내 마음 모두 주오(임희숙)
5.슬픈 고백(임희숙)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1년)
신중현사단의 최고 인기 남자가수 장현
신중현 사단의 최고 인기가수 장현의 데뷔 음반이다. 현재 매우 희귀해 고가의 앨범으로 대접받고 있는 이 음반의 재발매는 이번이 처음이다. 쓸쓸한 감정이 실린 느린 소울 풍의 창법을 구사했던 장현은 신중현 사단의 가수 중에서 이질적이고 개성 넘치는 보컬로 사랑받았던 가수로 기억된다. 신중현 사단 가수들은 대부분 감정을 토해내는 드라마틱한 창법을 구사했지만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장현은 오히려 감정을 절제하는 독창적인 창법으로 신중현의 창작곡을 맛깔나게 소화했다. 이 진귀한 음반은 독집은 아니지만 장현의 노래가 처음으로 담긴 데뷔음반이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 데뷔곡 <기다려주오>를 히트시키며 단숨에 주목받았던 장현은 이후 신중현 사단의 간판가수로 떠오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무명 가수 장현과 신중현의 만남
신중현은 1968년 펄시스터즈와 1969년 김추자의 데뷔 앨범을 히트시키면서 자신의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히트곡 제조기’로 각광받기 시작한 그의 사무실에는 기존 가수들은 물론이고 무수한 가수 지망생들이 곡을 받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가가 오른 신중현은 이 음반이 발매된 1970년 서울 명동의 오비스 캐빈 3층에 위치한 코스코스 살롱 클럽의 하우스밴드인 신중현 오케스트라와 해변 피서지용으로 급조한 제로악단 그리고 신중현 사단 가수들의 음반 녹음을 위한 캄보밴드까지 동시에 3개 밴드를 용도에 따라 운영했다. 제로악단 그리고 신중현 사단 가수들의 음반 녹음을 위한 캄보밴드였다.
장현(본명 장준기)는 대구에서 출생한 것으로 일부 알려져 있지만 실은 경상북도 울진에서 해방을 앞둔 1945년 4월 27일에 태어났다. 울진 매화중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상경해 서울 청운중학교로 전학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노래에 재능이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노력파였던 그는 진로를 바꿔 무명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지방의 밤무대를 전전하며 몇 년 동안 고단한 생활을 계속했던 장현은 록의 대부 신중현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장현의 데뷔앨범이 발표된 1970년은 신중현이 가장 왕성하게 신인가수 양성에 몰두하며 음반기획에 열정을 다했던 시기였다.
실제로 장현이 데뷔한 1970년만 해도 박인수, 임희숙, 임성훈, 바니걸스, 민아, 주현 등 수많은 가수들이 신중현의 조련을 통해 음반 데뷔했다. 사실상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한 신중현은 최고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던 해였다. 지방공연을 다녔던 신중현은 대구 수성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하게 장현의 노래를 듣게 된다. 신인발굴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그의 레이더망에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중저음의 음색으로 노래하는 무명가수 장현이 포착되었다. 일주일간 호텔에 머물렀던 신중현은 장현의 데뷔음반 취입을 염두에 두고 <기다려주오>를 비롯해 <안개 속에 여인> 등 5곡을 만들었다. 신중현은 데뷔시절의 장현에 대해 “장현은 노래를 썩 잘하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패기와 끈기에 감동을 받았다. 좋은 목청과 음악적 재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나고도 노력하지 않는 것 보다 장현의 경우처럼 재질은 떨어지더라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가수가 더 생명력이 길다.”고 회고했었다.
신중현 사단의 인기 가수 장현의 데뷔 음반
깔끔한 정장차림의 장현 사진이 커버를 장식한 이 음반은 장현의 독집은 아니다. 타이틀곡 <기다려주오> 등 장현이 노래한 5곡은 1면을 장식했고 2면에 수록된 김추자가 먼저 발표했던 <님은 먼 곳에>의 리메이크 버전까지 총 6곡을 노래했다. 나머지 곡은 이정화, 임희숙, 히식스가 이미 발표한 곡을 재 수록했다. 1면을 장식한 느릿느릿한 화성으로 이뤄진 신중현의 신곡들은 장현의 중저음 음색과 절묘하게 화학작용을 이루며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타이틀곡 <기다려주오>와 <안개 속에 여인>이 발매 직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장현은 단숨에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장현은 특유의 저음과 느릿한 창법으로 인해 나이보다 노숙하게 보여 ‘애늙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2면 타이틀곡인 히식스의 <초원>은 신중현 작곡으로 표기되었지만 오류이다. <초원>을 제외한 나머지 9곡 모두는 신중현이 창작했다. 음반을 채우기에는 장현의 취입곡이 부족해 B면에는 히식스의 <초원>을 비롯해 이정화의 <마음>, 임희숙의 <내 마음 모두주오>, <슬픈 고백>이 함께 수록되었다. 히식스의 <초원>은 이미 1969년 발표된 양미란과 히파이브의 스플릿 음반을 통해 발표된 히트곡이다. 이정화의 <마음>은 덩키스 독집, 임희숙의 <내 마음 모두주오>, <슬픈 고백>은 신중현밴드 퀘션스의 독집을 통해 먼저 발표되었다.
신중현 사단의 핵심 가수로 성장한 장현
전성기 시절 지상파 TV에 등장한 다소 칙칙한 장현의 모습으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린 시절에 구두닦이까지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런 소문으로 인해 측은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대중이 많았지만 장현은 가창력만큼은 자신감을 넘쳤다. 당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신중현 사단 가수 중 절창의 가창력을 구사해 최고의 소울 가수로 평가받았던 박인수와 공개적인 노래대결을 언론을 통해 요구했었다. 데뷔앨범이후 장현은 1972년 신중현 밴드 더멘과 함께 ‘장현 and The Men’이라는 이름의 앨범을 발표했다. 역시나 장현의 독집이 아니지만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은 그가 이미 데뷔앨범에서 히트곡을 배출하며 신중현 사단의 간판 남자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이후 장현은 발표하는 독집마다 <미련>, <석양>, <마른 잎>, <오솔길을 따라서>, <나는 너를> 등의 히트곡을 쏟아냈다.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던 그는 70년대를 대표하는 탁월한 중저음의 남성 보컬리스트로 기억된다. 하지만 활동 금지된 신중현과 마찬가지로 장현도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가수 활동을 접고 의류관련 사업가로 변신했다. 1976년부터 18년간 사업에 전념했던 그는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이후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투병과 회복기간 동안 콘도 사업을 새롭게 시작해 성공했다. 이후 현지에서 라이브 카페 ‘미련’을 경영하며 음악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았다. 장현은 2008년 11월 30일 지병인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발표 된지 반세기가 넘어 LP버전으로 재발매된 이 음반은 현재 신중현 관련 음반 중에서도 실물을 보기 힘든 매우 희귀한 앨범으로 대접받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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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 1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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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한장 예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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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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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1장 예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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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장현 모두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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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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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차현아 2장 더 추가 부탁 드립니다. 친한 지인이 못 구했다고 합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차현아 김성철 예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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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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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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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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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앨범 모두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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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예약해보겠습니다
입고되면 메일 드리겠습니다.
@전선위의 곰 입고되었습니다.
차현아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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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아 1장 예약합니다
pink-door@hanmail.net으로 주소,성함,전화번호 메일 부탁드립니다.
@전선위의 곰 입고되었습니다.
예약 마감합니다.
차현아한장부탁드려요
차현아 음반 예약마감 되어 아쉽네요. 후순위 예약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