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
오늘도 눈을 뜨자 마자 밖으로 나가 꽃밭을 둘러 본다. 새로 핀 꽃도 있고 막 지는 꽃들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꽃밭에서는 향기가 난다. ‘꽃은 피어 날 때 향기를 토하여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는 말이 있듯 막 피어 나는 꽃에서 유난히 향기가 나고,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 꽃밭에는 늘 향기가 넘친다.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사람에게서 별 말이 없어도 저절로 이런 향기를 느낀다. 살아 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오대산 단풍을 보러 혼자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아직 이른 단풍철이고, 평일이라 한가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밖을 보며 낯선 풍경에 두리번 거리며 가는 중이다. 월정사에 도착하여 전나무 숲길을 걷다가 선재길이라는 숲길로 만들어 놓은 길로 10여 ㎞ 떨어진 상원사로 가는 도중이었다. 좁은 길에서 앞에서 오는 분과 마주쳐 옆으로 피해서 보니 아까 월정사행 버스에 같이 탔던 노부인이시다. 상원사에서 내려 오시고 나는 오르는 중인데 먼저 말을 붙여 오신다. “ 지금 올라가서 언제 내려 올라고요? 혼자서 ” “아 네, 막 차시간은 충분하네요. 내려 가다 숙소를 정해야지요.” 그렇게 상원사까지 막 물 들기 시작하는 계곡의 단풍을 보며 혼자 걷는 길은 평화롭고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늘 사람들과의 삶이 익숙해진 나에게 철저히 혼자서 자연을 바라 보며 느끼는 홀가분하면서 약간은 외로운 감정을 느껴 보는 순간이었다. 상원사에서 막차를 타고 월정사쪽으로 가는데 월정사 앞에서 그 노부인이 또 혼자 타신다. 진부에서 같이 내려 인사를 하니 반가워 하며 숙소를 정했느냐고 묻는다. 찾아 볼거라고 했더니 자기도 혼자고 자기 숙소가 가까이 있으니 하루 묵어도 된단다. 그렇게 해서 강릉 경포호수 옆에 있는 가끔 내려 올 때 묵는 아파트에서 하루 밤을 지내는 만남이 있었다. 불편해 할까봐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시고, 배려하시는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하셨다. 이튿날 비가 오는데 나오려니 우산을 챙겨 주시고 교통정보를 자세히 알려 주시며 안전하게 여행하라며 격려를 해 주신다.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를 주신 분께 감사를 드렸다.
우연히도 돌아오는 장평에서 원주로 오는 버스에서 류선생님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아 이렇게 가는 구나’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원주에서 제천으로 가서 등산복차림으로 문상을 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버스 속에서 류 선생님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생각하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가장 어려운 상황이었다. 집안 형편상 혼자 떨어져 살수도 없는, 어린 아들 둘이 청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상황에 제천으로 발령이 나서 근무를 해야 했다. 통근을 시작했는데,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승용차로 오근장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제천에 가 근무를 하고 돌아 오고 하는, 왕복 6시간정도 걸리는 길을 3년을 넘게 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다. 옆반 동학년 선생님이었는데 늘 기차 통근을 하느라 지쳐 있는 나를 알게 모르게 도와 주었다. 늦게 오는 나를 대신해 우리 반 아침자습지도며 교통지도 등을 말없이 해 주었다. 휴일날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점심 무렵 불쑥 들어와 오후에 태풍 온다니 일찍 차로 가라고 등을 떠 밀기도 했다. 비록 나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세심하게 배려하고 본인이 조금 손해를 보며 양보하는 마음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지고 미소가 떠 오르는 마음 깊이 향기를 주는 후배 선생님었는데 너무 일찍 암으로 세상을 떠난거다.
우리는 또 만나고 헤어짐을 되풀이 할 것이다.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도 있고 혈연 관계처럼 평생을 끊을 수 없는 만남도 있다. 어떤 만남이든지 헤어지고 나서 뒤 돌아보았을 때 마음이 따뜻해 지는 그런 만남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워 하는 노래가사처럼 우리들의 만남에도 꽃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이 그리워 지는 계절이다.
첫댓글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사람에게서 별 말이 없어도 저절로 이런 향기를 느낀다. 살아 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홀로 가을 여행을 하시며 좋은 만남을 하셨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렇게 상원사까지 막 물 들기 시작하는 계곡의 단풍을 보며 혼자 걷는 길은 평화롭고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늘 사람들과의 삶이 익숙해진 나에게 철저히 혼자서 자연을 바라 보며 느끼는 홀가분하면서 약간은 외로운 감정을 느껴 보는 순간이었다. 상원사에서 막차를 타고 월정사쪽으로 가는데 월정사 앞에서 그 노부인이 또 혼자 타신다."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사람에게서 별 말이 없어도 저절로 이런 향기를 느낀다. 살아 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잘 읽고 감상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