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위선과 정직한 마음
고백하건대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이 찬송을 처음 배웠을 때,
목이 터져라하고 나의 사랑을 주님께
불러 드렸다.
나는 그럴만한 남다른 사정이 있는
사람이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대신
벌받아 죽으시다니!
그런데 오랜 후 언젠가부터 부를 수
없게 된 내 영혼의 상태,
슬프게도 변질되고 타락한 내 상태이다.
나는 처음 구원받을 때,정말 그런 찬송이 내 마음을 대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런데 그 강력한 것이 이상하게도
서서히 변해 온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기독교 안에서 살면서
이 병든 분위기에 묻혀 사는 동안 그리된 것 같다.
이 변명도 사실은 정직한 고백이 아니라,거짓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 책임이 있지 않은가?
아,이리저리 거짓과 위선으로 병든 나의 마음이 괴롭고 안타깝다.정직함이 그립다.
나는 종들의 지난 주 모임에서,몇번 째 참석하여 이 신자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
색다른 것이, 이분들의 사람됨이 교제 중에,집회
중에 정직하고 깨끗하다는 것임을 알았다.
이 모임에 3달 정도 관계하고 참석하고 교제하면서,나는 이 중요한 진리의 빛을 본다.
나의 지긋지긋하게 싫은 거짓의 가면을 벗고 위선의 옷을 벗는 것,
계속해서 벗고 또 벗어 나가야 할
것을 느낀다.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살고 싶다.
나는 무언가 내가 입고 있는 신앙의
옷이 거짓되고 위선적인 것인 데도
오랫동안 무엇이 문제인가를 모르고
바보처럼 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가끔 느껴 괴로웠지만,정확히는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갈등을 느끼고
괴롭고,변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무언가 병든 것이 느껴져 아프고,그래서 병이 낫고 싶었다.주님과의
첫사랑의 상태가 그리웠다.
회칠한 무덤같이 속에는 썩은 송장의
더럽고 구더기가 듫끓고 냄새가 나는 사람이
겉으로는 화려한 옷을 입고 속사람을
숨기고 멋있게 꾸몄던 것이다. 구원받은
체험자인데도..
이것이 기독교인으로서 나의 모습이었다. 꾸민 사람..,옥한음 목사도 꾸민
사람으로 살다가
괴롭게 간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거짓의 사람들.. 이것이 기독교인들인데,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 세상 죄인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해 진리를 거부하고 메시야를 죽인 것처럼.
가끔은 찬송을 부르면서도,그 좋은 가사대로의 신앙과 내 모습이 너무나 달라 노래를 부르면서도,
처음 믿을 때와 달리 나는 거짓으로
꾸미는 위선자이다 라는 속 사람의 고발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이
노래를 몇 년 전부터 부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의 상태가 변질되어 처음 신앙과
달라져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어쩌랴! 한번 두번 열번 백번,
갈등 속에만 그렇게 계속 지나가고, 1년 2년 10년,
그렇게 계속 그 문제를 정직하고 진지하게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고 지나가면
위선이 습관이 된다. 양심도 둔해 진다. 다 그런 걸
뭐,하고 변명한다.
그리고는 모르는 상태로 점점 무감각해
진다. 무서운 종교 위선자가 되는
것이다.
이 거짓말쟁이,위선자들이 내 주위의 기독교인들이다.
내 경우에는 그 썩은 우물에서 나와, 다른 맑은 우물에서 해결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 백성아,거기서 나오라고 하시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위선임을 깨닫지 못한다.
통탄스럽게도 기독교의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를 통하여 그런 것이 많다.
특히 찬송가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라고 찬송하면서
실제로는 바치지 않는다.
나도 처음에는 그게 마음에 걸리던데, 세월이 가면서 그 걸리는 마음이
환경 탓으로 합리화하고 이렇게 거짓된
마음을 품게 되고,
그런 말도 가책없이 하게 되고 위선자의
습관이 서서히 자리잡아 박히는 것이다.
교인들이 다 그런데 뭐,하고 합리화하고 덮는다.
·
거짓되고
가증한 입술로,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까?
이것이 참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 종교화한 결과요,
종교 기독교가 처한 안타깝게 멸망해가는 현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해결되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토브님의
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부르기는 힘든 찬송, 내 죄사함 받고서 나의 모든 것이 변한 사람이
부를 수 있지 모든 것이
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찬송은 거짓말 찬송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헌금송으로 불리우는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드리네"
찬송은I surrender all 의 번역으로 내가 항복하여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말하는 찬송인데,
이것도 거짓말하는 찬송입니다. 실행하지 않고도
아낌없이 드리네,말로 하고 있으니까...
예수 더 알기 원함은 내 평생의 소원, 이 찬송도 재벌되기 원함이 평생의 소원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거짓말
찬송입니다.
거짓말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들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인가?)
실제 거듭나지 않고서 부를수 있는
찬송은 몇 곡 안됩니다.
고헌님의 말;
소망교회 헌금송이었지요..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드리네...
결국은 돈을 내라는 얘기인데...
정작 곽 목사 본인은 수억하는 페라리
스포츠 카 타고 다니고.. 자기는
안 바치고..
기자들에게 반말로 인터뷰하고(교인이 선물로 주어서 받은 거라고)..”]
첫댓글 이 카페를 주님이 쓰시기를 기도합니다...
찬송가 이야기를 하자면 참으로 거짓말 찬송들이 많습니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 찾아가려면 교회로 가면 됩니다.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이런 찬송은 사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짓말송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애하신 구세주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찬송이 적합하고,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흐르되 죄를 없게 못하네, 이런 찬송정도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하는 찬송도 거듭난 사람만 그 기쁨을 알수 있기에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선교를 보내시는 분이실까요?
그렇게 싫어서 울 정도인데도요?
스스로 기쁨으로 자원하고 소망하지않으면 안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할만한 일, 도전할만한 일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시지 강요(Coerce)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막으실 수 있었지만 그리되면 위대한 인간 창조의 사역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억지로 무리하게 선교하라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밝고빛나게님의 경우 이제는 좀 교리적으로 강건하여지고 장성한 위치에서 분별하는 것을 추구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거듭난 이후에는 한동안 느낌과 감정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강건하여지면 별 느낌이 없어도 교리적으로나 성경해석을 통한 성장과정에 대한 이해로 말미암아 인도하심을 차츰 받고 신뢰할 수 있으리라 믿어집니다. 사실 70년대에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골짝 빈들에도 등등의 찬송이 나올 때 " 가기는 어디로 가?" 하고 비판하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이것도 사실 찬송과 실제 사이의 괴리 문제에 해당된다 생각됩니다. 어디든지 가겠다는 사람이 군대는 어찌 그리 안가려 하는지,
비록 세상학문을 통해서 얻은 소양이라도 은사의 발굴이나 활용에는 상당한 영향과 유익이 있습니다. 모쉐가 이집트에서 닦고 배웠던 모든 학문과 지식은 200만의 이스라엘을 통솔하는데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성경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시나리오나 각본으로 만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많은 작가들은 성경에 나온대로 작성하지 않고 성경과 다르게 해야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고 씁니다. 저는 반대로 성경에 담겨있는 실제적인 사건들에 있어서 매우 세미한데까지를 발굴하여 반영할 때 가장 흥미로운 시나리오들이 작성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각자가 할수 있는 일들은 가까이에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 졸업식장에서 흔히 불려졌던 찬송이 그들에게 진실이 되었다면 오늘날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룩 16:14)" 하는 말씀이 목사들에게 적용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강건한 교훈과 장성한 믿음에 서서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은 수시로 성경을 정독하며 신앙상의 유익한 책들을 잘 소화하여 읽을 때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어집니다. 이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단축시켜 줄 것입니다.
또 기도에서도 찬송가만큼 거짓말 기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훨씬 적은 차이겠지만 상당한 차이가 실제적으로 있다고 생각됩니다. 극동방송에서 어느 교회를 탐방하여 젊은 처녀 신자에게 장래 신랑감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3권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하니까, 사회자가 그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답하기를 " 영권, 육권, 물권을 갖춘 사람이요" 영적으로 훌륭한 믿음과 육체적으로 잘생기고, 재산도 많거나 직업도 좋은 사람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직 주님 뜻대로 인도하소서, 하는 기도를 할 때 하늘에 계신이는 웃으실 것입니다. 이런 류의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세상에 속한 사람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고난받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거짓말 고백이요 거짓 기도입니다. 반대로 누가 남편감을 성경에서 말하는 감독의 자격을 갖춘(딤전 3:1-7) 사람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배필을 찾는다고 하면 원만한
하나님이 결혼에 관하여 그렇게 인도하여 주시는 경우는 본인이 거듭나지 않았을 때라고 생각됩니다. 본인이 거듭났는데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려 할 때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반드시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에 나중에 회복시켜 주십니다. 목사와 결혼한다는 것이 믿음이 좋은 일은 아니지요. 우리는 이미 그것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ㅎㅎㅎㅎ 하나님은 어찌되었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아마 염두에 두실 것은 그 길로 가신 것보다 나은 길을 걸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믿음의 생활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어집니다. 저는 요즈음 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큰 죄악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은 토마스 아켐피스가 쓴 책을 말씀하시는 것같습니다. 그 책의 영향을 받은 책이 바로 파스칼의 팡세였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파스칼도 그 책을 많이 읽었고요. 그런데 그 아켐피스는 카톨릭에 남아서도 별 어려움 없이 지냈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만찬에 관해서는 많이 쓴 책이지요. 카톨릭과 대화할 때는 이 책을 공통 소재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카톨릭에 온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교리적으로 강건하지는 않았음을 말해준다고 생각됩니다. 내용은 참 좋은 책입니다.
목표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기도가 마음속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성경적 장로, 성경적 감독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충실한 사람이며, 아담하고 절제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더러운 이를 사랑하지 않고, 구타하지 않으며,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집안과 자녀들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하므로 당연히 가정에 필요한 생활비를 잘 공급할 수 있고 남들의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 마음 속 깊은데서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족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줄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나머지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영권,육권,물권을 갖춘 사람을 원한다니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ㅎㅎ 그런 사람과 어울릴만큼 스스로도 갖추어야하지않을런지... 그리고 사람은 함께 살아보지않으면 진정한 모습은 알기 어렵답니다. 잘 살다가도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 게 나그네된 인생이지요...
그러기에 그것은 세상 욕심의 또다른 표현에 불과하며 하나님은 그런 추구나 기도를 아주 싫어하신다는 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그런 세상욕심이 교회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대나무님은 모질라, Fire Fox 를 브라우저로 쓰시는 것같습니다. 글들 속에
[if !supportLists]-->· <!--[endif]--> 같은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떤식으로 하면 없앨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 카페에 글올리기에는 불편하여 그것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빛나게님 자주 오셔서 계속 밝게 빛나시기를...........^*^
밝고빛나게님이 내놓으셨지만 다른 모든 분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점 하나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신약성경을 30번 이상 읽고 구약도 여러번 읽으셨다면 진즉 성경읽기를 입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개역한글만 30번 읽는 것보다 킹제임스 성경, 다비 성경을 각각 따로 통독해보는 것입니다. 또 성경 인용이 많은 전도출판사의 책들 특히 윌리암 맥도날드 형제의 책들을 읽은 다음 진행하는 것도 좋고.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한 에릭 사우어의 " 세계 구속의 여명" 같은 책을 보면서 거기에 인용된 성경 구절들을 꼼꼼이 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성경을 다시 보면 아주 좋습니다.
생명의 말씀사에 나온 CH 매킨토시 모세 오경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 훨씬 힘든 것같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영적 진보가 훨씬 빠릅니다. 나중에 헬라어 신약을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저는 성경을 80번 읽었는데 별로 큰 도움을 못 느낀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만나본적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가 읽어본 방식과 다르게 동일한 읽기를 그저 반복했을 뿐입니다.
위의댓글들 하토브님의 말씀들이 참 좋습니다.
신약성경을 100번 읽기는 쉽습니다. 제가 천둥치는 폭포수와 타이타닉호의 비극이라는 책을 번역 출간하면서 경험한 바인데, 신약성경 정도면 처음 읽을 때는 한달 걸립니다. 다음에는 20일 정도 걸립니다. 다음에는 2주일 걸립니다. 다음에는 10일, 10번 읽었을 때는 5일 걸립니다. 20번 넘어가면 2일 걸립니다. 30번 넘어가면 하루 밖에 안걸립니다. 그 다음은 하루도 안걸립니다. 신약성경을 암송했다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경험을 통해서 외워집니다. 후르시쵸프가 4복음서를 외웠다 하지만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문제는 별개일 것입니다. 에릭사우어와 해리 아이언사이드가 신약 전체를 암송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쓴 책은 매우
입체적이고 유기적입니다. 다른 성경 구절들과의 연관을 잘 풀이해놓았습니다. 해리 아이언사이드는 성경을 박학하게 풀어준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잠언 강해는 꼭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에릭 사우어의 책들은 성경 인용이 가장 많은 책일 것입니다. 전도출판사 발행 윌리암 맥도날드 형제의 책들은 참으로 감동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책을 보면서 인용된 구절들을 반드시 꼭 찾아 읽으면 성경 이해가 매우 광범위해집니다. 이런 단계를 거친 다음에는 원어문 성경을 보시는 것으로 나가면 됩니다. 아마 히브리어 성경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헬라어 신약 정도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원래 찬송가와 실제 삶간의 괴리 현상을 지적하는 글이므로 한번 더 생각해보면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는 찬송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시작한 사람(실제로 거듭난 사람)이 그 인도하심의 끈을 놓치지 않았을 때 부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이 만사형통이 안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 이유를 하나님은 알게해주십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바로 잡도록 가르치시며 계속 기도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그 터널 통과의 기간이 아주 길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도하심의 끈은 항상 있습니다.
예. 하나님께선 우릴 그렇게 인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좋아하는 찬송을 말할때나, 생일날 같은때, "나의갈길 다가도록" 이찬송을 많이 했지요.
지금은 거의 안 부르는것 같습니다.
나중에보니, 이찬송 가사도 참 좋은 가사더라구요. 우리의일생을 예수님이 인도하셨다는.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셨네, 는 이미 인도해주셨음을 의미하지요. 만사형통하리라, 는 가사가 실제 만사 불통인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나 속죄함을 입은 후 한없는 기쁨을, 이라는 찬송도 진정으로 거듭남을 체험해본 사람만 부를 수 있는 찬송입니다. 이 한글 가사는 영어 가사와 상당부분 다릅니다. I have a song, I love to sing since I have been redeemed, of my Redeemer, Savior, King since I have been redeemed. 내가 내 구주의 이름을 자랑하리라. 원어문은 더욱 거듭난 사람들만 부를 수 있는 가사로 들립니다.
찬송가는 거듭난 사람이 불러야 하는것이 맞습니다. 내용도 거듭난 사람이 주를 이룬 내용이 많죠..단 부르심과 영접등 믿지않는자를 위한 찬송가가 있습니다. 분명히 구별되어 있는데 교파교회에서는 구별하지 않고 부릅니다.
이 곳에서서 진실한 신앙의 얘기를 나누는 모든 분들에게
제 마음의 사랑을 전합니다...
진리가 바로 서야 건전한 사랑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사랑하는 것 까지도 위선으로 포장한 현실이 된 것 같애요...
저는 어서 이 위선을 껍질을 벗고 싶고,
부족한대로 솔직하게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교회 공동체가 그립습니다.
샬롬~주안에서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