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혹성탈출에 실패하다
입추가 지나더니...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선득한 한기가 든다. 선선한 바람결에 마음속에도 주체할 수 없는 스산함이
스며드는 건... 계절의 변화 때문만은 아닐거다.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겠지. 누군가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쓰일데 없이 나이를 먹는 다는
건... 어쩌면 강상죄에 해당하는 건지도 모를 일... 시인은
말하지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하지만...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부끄러움과 쓸쓸함을 노래한 시인과는 좀 다르다.
내 쓸쓸함의 근원은 이 여름을 휴가다운 휴가도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쓸쓸하게 보낸다는 단순한 괴로움... 끙. '새로산 내 수영복은 어디에 두었더라?' 뭐... 아쉬운 대로 영화나
부지런히 보아야지...
"2001년 여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블록버스터와의 조우" 화려한 문구를 전면에 내세운 팀 버튼의 최신작 "혹성탈출" 음... 군더더기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록버스터였다. 뭐... 그 뿐 이였다. 별 기대감 없이 한 여름철 블록버스터중의 하나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영화다. 다만... 팀 버튼의 전작들-베트맨, 비틀주스, 크리스마스 악몽, 화성침공 등-이 보여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와 재담을 기대한다면 실망스 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리고... 찰턴 해스턴의 고뇌하는 내면연기가 돋보인 68년 원작과 비교하려 한다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68년작 "혹성탈출" 엔딩장면 - 원숭이에게서 도망을 치던 찰턴 헤스톤이 바닷가에 비스듬히 꽂혀 있던 자유의 여신 상을 발견하고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오열을 하던 그 장면-을 팀 버튼은 어떻게 형상화 할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 점이 가장 궁금했었다. 팀 버튼식 해석은 어떨지... 그점 때문에 영화간에
갔었다. (그도 그럴것 이 팀 버튼은 전작에 버금갈 5가지 결말을 준비했고, 그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시퀀스의 비밀(아직 보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은 아끼 겠다)도 막상 보고 나면 허전한 느낌만이
드는 건... 나만의 감정만은 아 닐 듯...
팀 버튼의 혹성탈출의 기본 설정은 전작과 다르지 않다. 인간을 지배하는 원숭이, 시간여행, 종의 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원숭이... 차이가 있다면 이번 혹성 탈출의 무대는 지구가
아니고 애초부터 원숭이 가 지배하고 있는 어떤 행성이다.
이러한 설정을 기본으로 완벽에 가까운 원숭이들이 재현되었고 우주선 불시착 장면, 대규모 전투 씬 등 볼거리를 더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레오에게 연정을 느끼는
고뇌하는 원숭이 아리 -헬레나 본햄 카터-나 원숭이 특유의
날렵한 몸 동작을 자유 자재로 보여주며 무력주의 원숭이 테드 장군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팀 로스의 광기 어린 연기는
일품이다. 인간보다 더 사려 깊은 카터-마이클 클락 던컨-
역시 절재된 연기를 펼 친다. 하지만 주인공 레오대위 역의
마크 월버그는 실망스러운 연기를 펼 치고 있다. -혹자는 애초부터 마크 월버그에게서 인류고뇌의 흔적을 기대 한 다는
것이 무리이고.. 노래나 부르게 해야 한다고 혹평한다- 그는
공군 대위이고... 잘못된 비행에 대한 책임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 아주 조금 느끼고...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하려는 군인의 이미지만을 부 각한다. 밋밋한 캐릭터... 그래도 이런
레오는 대나 역의 에스텔라 워런보다는 조금 낳은 듯하다.
도대체 대나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등장한 여성 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러한 인물군상의 표현은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68년... 전작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있고 인간의 잔인성 과 인권, 문명파괴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높았던 때이다. 지금보다는 좀더 내면적이고 깊이 있는 고뇌가 가능했던 거다. 심적 갈등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레오 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때문이리라. (21세기적인 발상에서 영화는 출발했을 터이니까...)
영화 중간 중간에 팀 버튼식 재기 발랄함도 간혹 보인다. 인간의 허영기를 닮은 장군부부, 인간들의 탈출씬에서 보이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영화의 잔재미를 더한다. 그리고...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 정렬하고 있는 고릴라들의 모습에서는
위압감과 흡사...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혹성탈출은 SF 글래디에이터'를 표방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 점에서 성공했다고 해야
겠지.
이러한 영화적 재미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원작이 나름데로 지니고 있는 생명을 존중하려 합니다. 원작의 기본 요체는 유지하면서 그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꾸며보며, 또한 그
과 정에 새로운 등장 인물들과 다른 얘기거리들을 집어 넣어
원작을 바탕으 로 한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라고
했던 팀 버튼의 말이 공허하 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 연달아서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SF물을 보았으니 이제는 중세로 넘어가야 겠는걸... 늑대의 후예들도 개봉하고... 곧, 기사 윌리암도 개봉하니까... 음... 오나공주의
취향에 흡족할 만한 공주틱한(?) 분위기... 기대가 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