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산맥 속에 티티카카호수를 품고 있는 페루 에콰돌
큰나무
아만티니 섬에서 내려다본 만경창파 티티카카 호수. 구름 아래 아스라이
보이는 땅은 볼리비아다.
페루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 수면의 높이는 해발 3,812m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로, 백두산 천지 수면 위보다
무려 1,600m나 더 높다.
이 호수는 20여개의 강이 흘러들지만 이 강물이 빠져나갈 길은 산들이
병풍 두르 듯 둘러서 있다.
푸노를 출발한 통통배가 티티카카 호수의 물살을 가르며 길다란 파문을
멀리멀리 그린다.
유리알처럼 맑은 호수 위에서 산들바람은 귓불을 간질이고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은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우주처럼 검푸르다.
뱃전에 퍼질러 앉았는데 아침 먹은 것이 메스껍고 머리는 갈라지듯이
아프다.
어지럼 증세까지 겹친다.
이 잔잔한 호수 작은 배 위에서 배멀미를 하는 걸까? 아니다. 나는 지금
고산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산소가 희박하고 기압이 떨어져 호흡이 가빠지며
구토 증세가 난다는 고산병을 이 잔잔한 호수 위로 통통배를 타고 가면
서 앓다니!
하오나 티티카카 호수 수면의 높이는 해발 3,812m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로, 백두산 천지 수면 위보다
무려 1,600m가 더 높다.
남미의 척추 안데스 산맥의 연봉들은 하얗게 만년설을 인 채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그 사이 사이로 천 년, 만 년 쌓인 눈이 거대한 얼음덩이인
빙하로 변해 박혀 있다.
이 빙하는 그 엄청난 중량으로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미끄러 내려
온다.
빙하 아래 부분은 녹으면서 콸콸 개울을 만들고 개울은 모여서 강이 된다.
티티카카 호수엔 20여 개의 강이 흘러들지만 이 강물이 빠져 나갈 길은
산들이 병풍 두르듯 막아 버렸다.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 사이에 가로놓인 이 호수는 그 크기가 자그마치 충청
남도만 하다.
거대한 안데스 산맥을 백두산에 비유한다면 티티카카 호수는 천지인 셈이다.
통통배의 파열음은 이제 청각을 마비시켜 버렸다. 통…통…통… 파열 간격이
벌어지며 배가 속도를 줄인다 싶어 뱃머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손바닥만한 조그만 섬 하나가 나타났다.
갈대로 만든 인공섬 우루스엔 돼지, 닭, 개도 함께 산다.
우루스 섬. 괴상한 호수 위의 이상한 섬 우루스는 인디오들이 갈대로 만든
인공섬이다.
이 섬은 물 위에 떠 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나는 갈대를 베어 단으로 묶은 다음 다시 그 갈대단
을 이어 산골 분교 운동장만한 섬을 만든 것이다.
섬만 갈대로 만든 게 아니다. 그들은 집도, 침대도, 그리고 그들의 생업
수단인 고기잡이배도 모두 갈대로 만들었다.
갈대로 한번 만들어 놓은 섬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물 속에 잠긴 갈대는 썩기 마련이다.
3개월마다 갈대로 단을 만들어 자꾸 얹어줘야 한다.
이 섬에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다. 돼지도, 닭도 함께 산다.
우루스 섬에 살고 있는 우루스 족 인디오들은 티티카카 호수 인근에서
는 가장 먼저 정착한 종족이다.
그들이 넓은 땅을 두고 어째서 하필 이 호수 속으로 들어와 갈대로 섬을
만들고 그 위에서 살게 되었는지 수수께끼다.
지금 우루스 섬에는 10여 호가 모여 산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에 나가서는 송어를 잡아 생활한다.
송어를 뭍으로 가져가 감자, 옥수수, 오카 등과 물물 교환한다든가, 푸노로
가져가 호롱불을 켤 석유와 신발, 옷가지 등과 바꿔온다. 티티카카 호수
에는 갈대섬이 우루스 말고도 50여 개가 더 있다.
우루스 섬이 가장 큰 섬이다.
멍석 두어 장 정도의 넓이밖에 안되는 작은 섬도 있다. 우루스 섬을 떠난
배는 또다시 통통통 만경창파 물살을 가른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아만타니 섬이 수평선 위에 봉긋이 솟아 올랐는데 배는 물살을 가르며
계속 달려가는데도 섬은 도망을 치는지 가까워지지 않는다.
뱃전에 퍼질러 앉아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뜨니 아만타니 섬이 한눈 가득 배 앞에 버티고
섰다.
섬 중턱에 있는 호세네 집에 유숙하기로 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아만타니
섬이 우리나라 다도해 어느 섬을 빼 꽂았다 생각했더니 호세네 집이 어릴
적 우리 동네 그 흙벽돌집들을 판에 박았다는 점이다.
호세가 추수한 밀을 등에 지고 삽짝문을 들어선다.
흙벽돌을 찍어서 지은 ‘ㄱ’자 안채와 즉‘―’자 사랑채 사이로 햇살이 자랑자랑
내려앉는 마당에서는 옥수수와 오카가 마르고, 처마 밑에는 누렁이가 게슴츠
레 하게 눈을 뜬 채 팔자 좋게 누워 있다.
흙담 복판에 있는 사립문을 열고 나가면 담을 따라 골목길이 이어졌고,
길 아래로는 껑충하게 솟은 옥수수들이 바람에 서걱거린다.
골목 왼쪽으로 열댓 걸음 가면 ‘통시(화장실)’가 나온다.
이것 또한 어릴 적 우리네 측간과 너무나 닮았다. 한 평이 될까말까
한 정방형의 흙벽돌 위에 짚으로 엮은 피라미드형의 지붕이 얹혀 있고,
문짝은 가마니때기다.
내부는 어떻고. 두 발을 얹을 두꺼운 나무판자가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
있고, 손이 닿는 벽 쪽의 철사 꼬챙이에는 조각난 헌 신문이 꽂혀 있다.
들에서 추수한 밀을 지고 들어오는 이 집 가장 호세를 보는 순간 어릴
적 우리 동네 아저씨를 보는 것처럼 낯익은 느낌이 든다.
지구 정 반대편. 만년설을 인 안데스 산맥 속의 눈 녹은 물로 이뤄진
세계 최고 높이의 티티카카 호수 속, 푸노에서 뱃길로 4시간 떨어진 섬.
그런 아만타니의 이 집과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와 그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그 옛날, 베링 해협이 생기기 전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가 붙어 있었을
때 몽골리안들이 알래스카를 거쳐 북미대륙으로 내려왔다는 설이 이제는
확고하게 역사로 정착되었다.
이때 알래스카에 주저앉은 사람들은 에스키모가 되었고, 북미 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되었으며, 남미 대륙까지 내려온
사람들은 인디오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57세 호세와 56세 로사 사이엔 3남 3녀가 있다. 젊은이들은 시골 고향집
이 싫다고 도시로 떠나는 것도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
호세네도 세라피나(22)만 고향에 남아 있고 모두 리마, 호리오카, 푸노로
떠났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에 나가 돈벌이하는데 이제 힘든 농사 그만 짓지
않구요.”
호세 부인이 양지바른 마당에서 오카를 말린다.
내가 던진 말에 호세는 펄쩍 뛴다.
“리마에서 카펫 공장 직공으로 있는 맏아들은 2남 1녀를 낳고 오히려
나한테 손을 벌려요.”
결혼하지 않은 아들 둘이 가끔씩 약간의 돈을 부쳐 온단다.
호세는 산비탈 밭뙈기에 옥수수, 오카와 감자를 심어 자급자족하고,
어부들이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는 작은 물고기 이스피와 물물 교환을 하기도
한다.
호세의 착한 딸 세라피나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날이 저물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통통하게 살이 찐 상현달이 내려보내는 교교한 달빛
에 티티카카 호수는 파스텔 톤으로 파르스름하게 물들어 신비스럽기만 하다.
아만타니 섬은 모터보트로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조그만 섬이다.
300여 가구가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기엔 경작지가 너무 좁다.
그들은 산비탈에 나무를 베어내고 화전을 일구어 옥수수를 심고 오카
(손가락처럼 생겨 고구마 맛이 나는 뿌리)를 심고 리마콩을 심었다.
그리고 함부로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다.
그들은 나무의 역할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무 없는 산비탈의 후유증이 당장 나타났다. 장마철만 되면 산비탈 화전은
통째로 빗물에 휩쓸려 내려가고 토사가 집까지 덮치고 건기엔 가뭄이 더욱
심화되고 토질은 척박해져 가고 개울은 쉽게 말랐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농촌 지도원이 오고 산림 전문가의 왕래 끝에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속성수 유칼투립스(Eucalyptus)를 심었다.
유칼립투스는 이 나라 토종나무가 아니라 호주에서 들여온 나무다.
리마콩이 자색꽃을 피웠다.
산의 풀을 베어와 진흙과 섞어 흙벽돌을 찍는 모습이 우리와 흡사하다.
아만타니 초등학교. 원래 인디오들은 아치를 몰랐지만 정복자 스페인
사람들한테 배워 교문을 아치로 쌓았다.
고살거리를 따라 마실 가는 세라피나.
아만타니 섬 곳곳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삶은 옥수수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물고기와 리마콩에서 단백질을
섭취한다.
큰나무에콰돌
큰나무
에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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