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짧아 찰라법이라 하고,고통은 길어 일체개고라 한다
기쁨이 항상하고 안전과 풍요가 항상하길 바램은 당연하
다. 다만 그 당연이 실제 지속된다 착각하면 중생이다
기쁨은 찰라다. 고통도 찰라이나 중생의 인식은 고통은
길다라는 착각이 있다.
찰라성을 분명히 찰라로 인식하니 행자다
본질에 있어 고통임을 아니 보살이다.
불나비가 찬란한 모닥불로 뛰어들듯
중생은 자기복이 아닌 모닥불로 뛰어들다 막을 내린다
찰라성을 인정안하면 고통은 배가 된다
5억을 투자해 항상 5억 그 이상의 결실이 맫히기를
바란다면? 착각이자 전도몽상이다.
안전투자,고수익투자를 스스로 책임지듯
삶은 전적으로 자기책임이다.
우리가 죽어 타인이 나를 화장하고 때로 뭍지만
나의 운명과 업은 내가 지으니
내 무덤은 내가 파는 격으로 투자와 운명의 모두가
절대적인 나의 책임이요,내가 짓는 노릇이다.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길다
짧은 기쁨을 무량겁으로 알고,긴 고통조차 찰라로
깨닫는(일념즉시무량겁,무량원겁즉일념) 행자의 깨달음
이 곧 무애행보요,보살안목이다.그 자유자재의 인식!
비온뒤 새벽 공기가 청량하다
자식을 낳은 후 그 기쁨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큰 감투를 쓰고 으시댈 수 있는 시간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권력을 쥔후 그 권세를 오래도록 누려, 거짓과 사기
의 긴 과거가 들통 안나고 마음껏 국가 권력,국가 재산을
누릴수 있기를 바란다?
권력자의 가식과 쑈,사기와 구라, 그 거짓의 역사는 일언
지하에 드러나,결국 그 댓가를 치루게 되 있다.
즐거움과 기쁨의 속성?
본질적으로 허구요 그림자다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고로 즐겁다느니 괴롭다느니 그 모두가 내 시각이
만든 신기루요,거기에 속으면 본인도 불행,옆사람도
불행이다. 부처님께서 오직 가사 한벌로 보내신 뜻은
제자들로 하여금 허상이 아닌 본질에 계합하라는
고매하신 뜻이 있어서다. 그렇다 해 상대에게 오직
성자다움을 바라서도 안되고,나도 완벽한 성자가 될 수
없어도 내 머문 곳에서 인식과 실행에 있어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그 뜻은 분명히 가져야 함에 틀림없다
하겠다.
불기 2568.9.22 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