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낙동강을 옆에 낀 고장으로 경상남북도의 온갖 농산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경상도의 큰 고을들은 대부분 낙동강과 관련이 있으며 대구 또한 포함된다.
서울과 부산사이에 철도가 지나면서 대구는 더 커지며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 대구로 모여든다.
학교와 병원이 일찍 생겼고 각종시장과 상회가 생기며 종교기관도 발달을 한다.
경남의 수부도시였던 진주나 경상도의 이름에서 나오는 경주나 상주 그리고 경북 내륙의 안동에 비해 급속도로 인구가 늘어나며 그 흐름은 더 빨라지며 6.25동란 낙동강 전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이후 2군 사령부가 생기면서 군사적 기능도 추가되고 대구는 우리나라 3번째 규모의 도시가 된다.
그러나 지금은 인천보다 인구가 적고 대구는 북쪽의 군위군과 통합을 하고 위축된 대구의 모습을 키우기 위해 수도권과의 모습을 비교하며 경상북도와의 통합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대구하면 삼성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령 출신 이병철 회장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대구에서 농산물 유통을 시작으로 사업을 전개하는데 이것이 커져 다양한 계열의 회사가 만들어지며 지금은 세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되는데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고 할 만큼 이미지가 박혀 있는데 그 출발이 대구였고 이후 기업을 이어 받는 이건희 회장도 대구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과거 삼성상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장소엔 새롭게 당시의 건물이 만들어 지고 고 이병철 회장의 동상도 만들어 진다.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자이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인물이지만 정권과의 유착과 사회문제의 중심에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그가 이루어 낸 경제적인 토대와 영향력은 작지 않다.
대구에는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많고 지금도 계속 찾아 내고 보전하고 기념하려고 하는 노력이 엿 보인다.
다만 조금 아쉬운 건 밝은 모습을 부각 시키는 것 만큼 그 뒤에 가려지고 사라진 역사의 흔적들 또한 찾아서 알리는 노력 또한 이루어 지면 더 좋지 않을까?
결혼식 참석차 갔다가 잠깐 둘러본 대구의 모습을 소개해 봤다.
토요일 오후 예식장에서 일가 친지들을 만나고 동대구 역 바로 아래 터미널에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는데 위치를 찾기 어려워 고생을 했고 이동중 휴대전화가 쌀쌀한 날씨에 방전이 되어 인근 전철역에서 충전을 하면서 예약된 승차권도 살리고 아슬아슬하게 승차를 했다.
가끔 시간에 쫒겨 택시를 타고 기사분과 대화를 하면서 지금 대구의 모습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오니 터미널엔 많은 사람들이 도착과 출발을 하는지 복잡했고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을 때 밖은 어두어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2박3일은 있어야 둘러볼 수 있던 것들을 지금은 편리해진 여러 교통수단으로 인해 빠른 시간 살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다양한 대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