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OUCt3uUa-c
본문 34절의 화평과 검이라는 단어는 매우 대조적인 단어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검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과 갈등과 분열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은 팔복 설교를 통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 가르치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은 궁극적으로 화평을 주러 오셨는데 그 화평에 이르기까지 검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 하는 말 가운데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지극히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힘이 있어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 힘이 없을 때는 그야말로 처절한 다스림과 굴종의 자리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잃어버린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같은 나라인데 미국은 천조국이라 불리울만큼 국방력을 엄청나게 투자합니다. 그래서 나름 전쟁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독립전쟁이라는 수많은 희생을 거친 후에 지금의 미국이 세워지게 된 것을 역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쟁, 검은 필수라는 것인데 이것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표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기존에 통치자, 지배자로 있던 사단 마귀 혹은 자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권교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이를 알게 되는 헤롯 대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은 예수를 겪으면서 이런 내적갈등은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검이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화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35절, 36절입니다.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사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구약의 미가서 7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미 7: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가는 남유다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인데 이때 유다는 내적인 타락과 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가족내에서도 가족끼리 서로 대적하고 원수처럼 여기던 총체적인 난국을 겪던 시대였습니다. 한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족끼리 원수되었다는 의미가 좀 다른 것은 미가시대는 악과 악이 대립하는 시대였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선과 악의 대립으로 생긴 원수관계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관계는 소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어진 갈등이요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제자들이 유대인 공회에 끌려가고 심문당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그렇게도 핍박이 심했습니다. 특히 제사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기독교는 불효, 불충의 종교라 여겨진 적도 있습니다. “천국 혼자 갈 수 없잖아요” 책의 저자 김길복 집사님 같은 경우는 어려서 유교집안에서 혼자 예수 믿었는데 기독교를 반대하던 아버지로부터 허벅지에 칼을 맞을 정도로 핍박이 심했습니다만 다행히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는 말이 이번 경우에도 적용돼서 결국에는 아버지가 반대를 포기하고 나중에는 모든 식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하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정이 예수를 믿게 되니 온 식구가 복을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평을 얻기 위해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검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37, 38절입니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 분들이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말씀이 아니라 가족을 더욱 사랑하기 위한 영적인 원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막 1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버린 자는 백 배를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재편성이 될 때에 그 사랑이 육신의 사랑보다 백 배가 더 깊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친가족과 같은 관계로 새롭게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화평을 위한 검의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39절입니다.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과거에 살던 육신에 속한 자아가 예수와 함께, 예수를 위해 죽을 때 예수의 생명을 새롭게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의 모습인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인 갈등을 잘 이겨내시고 하나님이 평화와 평강을 경험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심으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로 인한 내적인 갈등, 그리고 사람들과의 영적인 갈등.. 지혜롭게 잘 이겨내게 하시고 무엇보다 믿음으로 이겨내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평화를 증거하고 창조해내는 제자들되기 원합니다. 평화의 통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복된 날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