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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 : 스크롤의 대 압박!
요즘들어 갑자기 NDC글들이 봇물같이 터져나옵니다. 그러면서 덩달아 그 시초에 츠칵스의 글이 있었다는 나홀로 뿌듯함(응?)에 기쁘기도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빨리 이별해 갈줄은 전혀 몰랐는데 정말 빠른 시간내에 한번에 없어져버렸으니 아쉽기도 합니다. 다음 기회에 마지막으로 남은 대구~진주 1편성을 진주까지 완승하며 다시 한번 도전해보려 합니다.
이번 여정은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두 간이역 모산역과 소정리역을 다녀왔습니다. 국철 시대의 역명판을 보고 싶은 충동, 그리고 경부본선상에 있는 작은 역을 찾아가보겠다는 계획이 맞물려 이 여정이 기획되었습니다.
이 여정기는 그냥 손이 가는대로 쓰는 수필, 견문록의 형식으로 써보기로 시도해봤습니다. 즉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로 쓰려합니다. 아울러 사진의 양도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책의 형식처럼 글 위주로 나가면서 중간중간 곁들이는 사진 몇 장, 이런 식의 방법입니다. 작가와 독자가 나란히 현장을 함께하는 현실감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추구하기 위해서 이 부분은 희생시키기로 했습니다.
덧으로 이 여정기가 사진정리하면서 쓰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작업이더군요. 그냥 사진들을 나열해가면서 그 밑에 약간의 부연설명이나 해설만 붙이면 되던 방법과는 달리 시종일관 글로서 서술한다는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 여행은 갤러리와 글 & 삽화의 이원화를 시켰습니다. 여행중 촬영된 재미있는 장면이나 기타 여러 장면은 사진게시판으로 이동되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넣었습니다. 어찌보면 예전부터 써오던 방식은 이게 글이야, 사진전시야? 라는 논란이 있겠지만 지금 시도하려는 이 방식은 이러한 시비를 잠재울 수도 있겠습니다. 단 츠칵스도 오히려 기존의 스타일을 좋아하기에 다음 여정기는 아마도 다시 예전처럼 복귀할 전망입니다(-_-).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다소 지루하고 고루한 감이 없쟎아 있겠지만 모두 소화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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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대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정신없이 새롭게 바뀌어가는 움직임은 바로 어제 있던것 마저도 오늘 갑자기 없어져있는가 하면 오늘 없던게 내일 아침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 있다. 시대의 흐름속에 없어져 가는 것들은 추억 속으로 남게 되지만 두번 다시 현실로는 못본다는 아쉬움은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남게 된다. 그 마음이 '있을때 잘해두자'는 욕구가 되고 나중에 없어지고 나면 '왜 그때 잘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한국철도는 100년 약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한 세기 동안 수없이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또 없어지고 있다. 이번에 계획된 여정에서는 장항선 복선화 공사로 구간이 이설되어 없어질 모산역과 과거 국철시대의 역명판을 간직하고 있는 소정리역을 다녀오기로 했다. 역명판이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없이 바뀌어 왔겠지만, 필자가 보아온 가장 오래된 형식인 회색 철판에 검은 글씨로 새겨놓은 역명판은 한국철도 시대를 만나 한차례 바뀌고, 한국철도공사로 출범하면서 또 한차례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꿋꿋이 옛 철도청 시절의 역명판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가 전국에 얼마 되지 않지만 위에 언급된 두 역은 아직 이 역명판을 볼 수 있다.
[장면 1] 천안을 사이에 두고 모산역과 소정리역을 다녀왔다.
지난 몇 달간 정말 정신없이 지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꾸 미루고 미루다보면 없어진 뒤에나 후회할 듯 해서 속전속결로 다녀오기로 했다. 특히 모산역은 예전에 온양온천역을 방문하며 스쳐 지나간 풍경이 직선 복선화 건설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 서두르지 않으면 놓쳐버릴 예감이었다. 그동안 돈이 없어서 많은 행동에 제약을 받았지만 근래 받은 급여가 있어 급한 것 부터 우선 해소하고 이제야 겨우 약간의 푼돈이나마 남게 되었다. 더이상 미루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우선적으로 모산과 소정리를 연계하는 계획을 실천하게 되었다. 자금의 압박은 '1개월 1여행' 원칙 마저도 뒤흔들만한 나날이었지만 이제서야 겨우 실현할 수 있다는 심정에 이루말할 수 없이 기뻤다. 사람의 마음은 마음 먹은대로 되지는 않는다지만 힘들게 기다려온 시간이니만큼 보다 더 내실있는 여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해X해X 페스티벌에 부단히 참여한 결과 겨우 KTX 25%할인 전자쿠폰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상술은 의외로 효과적이면서 낚이는 사람들이 많다.(물론 필자도 이에 낚인 셈이다) 일단 쿠폰을 갖고 있게 되면 사람의 심리상태가 충동적이 되어 '지금 아니면 언제 한번 이렇게 싸게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안해도 되는 것 마저도 해버리게 된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단번에 볼때는 당장은 손해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오히려 더 큰 매출이 가능하니 이익을 남기는 셈이다.
필자의 여행에는 항상 2가지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단 한가지를 보기 위해 계속 다니는 것보다는 한번에 여러가지 효과를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그렇다. 그리하여 이 여정의 목적 또한 비단 간이역 기행을 가는 것 뿐만 아니라 KTX 특실도 질러보고 오래간만에 호화로운 새마을을 타보는 것으로 한데 묶어서 출발하기로 했다.
아무리 자금이 마련되어 여행을 떠나지만 일단은 절약해야만 했다. 따라서 지난번 승차한 #1055로 온양온천까지 가되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출발하기 위해 전동차를 탔다. 용산에 들어서니 마침 천안급행이 맞은편에 있었으나 뛰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노량진에서 갈아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이 천안급행도 지난 아산 여행때 용산에서 본 바로 그 열차인데 그때는 바라만 본 것을 이제는 타고서 수원으로 향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본선을 질주하면서 고속주행을 하는 천안급행에서의 속도체험은 타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옆으로는 천안이나 병점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추월하고, 제치고, 따돌리는 기분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질주일 것이다.
급행을 타고 수원역에 도착 한 것은 14시 정각, #1055가 수원에 도착하여 출발하는 시각은 14시 23분, 23분의 여유가 생겼다. 완행을 탔으면 아마도 시간에 쫓기어 헤메고 다녔겠지만 벌게 된 시간을 수원역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으로 때워보기로 했다. 안양역과 함께 리뉴얼한 수원역의 구내는 흡사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연상시킬 정도로 시설이 깔끔하고 편리하게 개수되었다. 경기도 남부에서 중앙급의 역이니만큼 이정도의 규모는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평일 이른 오후시간대라 그런지 허전한 감이 없쟎아 있다. 개찰은 열차 도착 5분전에야 비로서 시작되었는데 이용객이 적다보니 짧은 시간에 검표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어찌보면 짧은 시간에 신속하게 내려가야 하니 불편하기도 했다.
#1055에 승차하여 미리 지정해놓은 57번석에 앉았다. 새마을호 객차에서 유일한 독립창 좌석은 '전용'이라는 마인드를 갖기에 충분한데(케로로 패러디-_-) 나홀로 차지하는 창문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이제껏 통과만 해온 모산과 소정리역을 방문하는 데 대한 기대감을 떠올렸다. 마침 지난 1일부로 호남선에 8200호대 전기관차가 여객 견인을 위해 투입이 되었는데 새마을호 창밖으로 통과하는 수많은 열차들 중에서 8200호 기관차의 새하얀 실루엣을 보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난다.
열차는 천안역을 지나 장항선 구간으로 들어섰다. 기존선 위로 고가화되며 복선전철이 되는 장항선 신설 공사 현장을 지나 온양온천역에 곧 들어선다. 고가에 거대한 규모로 철골 구조가 들어선 온양온천역을 뒤로 하고 모산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모산역으로 가는 버스는 900번대의 버스 대부분이 모산역이 있는 배방면을 경유하는데 복잡한 아산 시가지를 통과하면 바로 전원적인 풍경이 나타난다. 이 정적을 깨는 풍경이 고속철도 신선을 연상시키는 일직선으로 곧게 펴진 고가화 된 장항선 신선 건설 구간인데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속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인간의 축조물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아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이 만든 인조물은 자연의 경관을 해치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지만 필자의 경우는 그 둘, 인조물과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같이 보면서 그 속에서 조화로움을 찾으려 하는데 이와 같은 경우는 정말 어떻게 본다고 해도 결코 조화롭지 못하다. 푸르른 산과 드넓은 초원, 잘 익은 밭을 마치 경계짓는 듯이 그어놓아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구분하는 형상. 이것이 필자가 감상하는 현재의 상황이다. 이런 감상과 함께 필자는 모산역에 도착하였다.
[장면 2] 모산역. 흰색 정면의 역명판마저도 아직 바뀌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둘러쌓은것이 간이역의 정적을 깨고 있다.
배치간이역인 모산역은 장항선이 분기되는 천안역을 기점으로 9.2Km지점에 있다는 것이 공식적인 위치이다. 그러나 장항선 기점 '0' 키로포스트의 위치는 천안역에 채 들어가기 전인 경부선 직산역 북쪽 선상에 위치해 있다. 대략적으로 볼 때 이 거리계로부터 1.4Km 즈음 지나서야 천안역 승강장이 나오는 것으로 볼때 실제적인 천안~모산 역간 거리는 7.8Km가 더 알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이것은 과거 직산역에 장항선의 분기점이 위치하고 직산의 등급이 신호장이라는 것에서 기인한 듯 싶다) 모산역은 장항선 직선고가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 배방역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이설되어 없어지겠지만 모산역 바로 옆으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어떻게 될지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겠다. 하지만 결국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없어지겠지라는 씁쓸한 마음으로 역 구내에 들어섰다.
모산역의 구조는 과거 철도역사들이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구조로서 중앙에 2층 규모로 높이 설계한 맞이방이 있고 맞이방을 형성하는 박스구조 좌우로 단층 건물을 돌려놓아 역무실이나 관리동, 창고 등을 배치한 설계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일산의 일산역 역시 이러한 ,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고 모산역과 유사한 구조로는 백마역을 들 수 있다.(모산역은 백마역과 매우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모산역은 승차권 발매취급이 작년부터 중지되어있고 역 직원이라고 해도 신호원이나 검수원이 대리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곳이다. 주변 분위기때문에 간이역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는 없지만 그 나름대로는 옛 정취가 묻어나온다.
[장면 3] 모산역의 승강장은 한적한 바람만이 감돈다. 단선인 장항선에서 단선 간이역의 냄새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한다.
직원에 허락을 받은 후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승강장 용도의 보도블럭이 깔린 구역은 승강장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고 나머지는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다. 온양온천을 두 번 다녀오면서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 통과하는 열차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역은 하루에 열차가 딱 두편만 정차하는 곳이다. 오전에 장항행 한편, 그리고 오후에 용산행 한편. 그 외의 나머지 모든 여객열차는 이 역을 쌩하고 통과해버린다. 마치 별볼일 없는 역은 그냥 휭 지나쳐도 되겠지라는 마음을 가진듯이. 결국 여객이 많고 적음은 같은 '역'이라는 이름 하에서도 소외받는 역이 있고 집중적으로 육성되는 역이 있다. 이용객이 얼마 없는 모산역 같은 별볼일 없는 역은 그냥 지나쳐도 대규모 역에서 승객을 더 많이 끌어오면 된다는 상업논리. 그 논리를 부정하지는 않고, 비판적으로 볼 생각도 없다. 세상을 살아가고, 또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들도 어쩔수 없는 생각이니...하지만 그 포기속에 수없이 많이 사라져간 옛 정취들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생겨나는 것이 있으면 사라지는 것도 있다는 세상의 이치가 적용되는 순간이다. #1412가 들어오기 불과 5분도 안되었지만, 맞이방에 있는 사람은 필자 한 명 뿐이었다. 공허한 대합실(★)에서 한때나마 전성기를 누렸을 모산역의 옛 맞이방을 되살려본다.
[장면 4] 하루 열차 2편밖에 없는 공허한 맞이방은 싸늘한 공기가 맴돌고 있다.
#1412를 이용 천안역까지 이동, 천안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소정리역을 향했다.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리. 행정구역상 이렇게 분류가 되어있고 천안 시내에서 30분이 채 안되어 도착한 천안 인근의 한적한 마을이다. 이 작고 아담한 마을에 있는 소정리역은 간이역이라는 분위기에는 그다지 걸맞지 않는 깔끔한 신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하긴 과거에 일제에 항거하고자 독립투사에 의해 폭파된 적도 있기는 하고 예전에는 또 한차례 수난을 겪어서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증축했다고 하니 팔자가 기구한 역인가보다. 차라리 소정리역 주변의 분위기에 모산역 건물만 따로 떼어내어 같이 붙여놓았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방금 다녀온 모산역의 배경과 어울릴때는 이 소정리역의 역사가 훨씬 더 어울린다.
소정리역은 국가 기간 철도망인 경부선 한복판에 위치한 역 답게 굉장히 많은 수의 열차들이 왕복하고 있었다. 어떨때에는 1분 내로 3대 이상의 열차를 볼 수도 있는 곳이다. 이러한 여객이나 화물열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와중이지만, 철길 한쪽 구석의 소정리역과 그 주변은 시간이 와서 멎은듯한 분위기이다. 열차만 통과하지 않는 순간에는 소정리 역시 다른 간이역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고요한 정적을 깨고 디젤전기기관차가 굉음을 내며 통과하게 된다. 소정리역에서 타고 가게 될 승차권을 발매하였다. 17시가 지난 시간이었건만 필자가 발권받은 승차권의 순번은 5번째였다. 소정리에서 당일, 승차권을 끊은 사람은 필자까지 포함 이 시간까지 5번째로 발권받은 것이다. 오죽이나 사람들이 이용을 하지 않으면 이럴까한다. 소정리까지 오는데 버스는 30분마다 한번씩 배차가 되고 요금도 카드사용 900원, 철도는 하루 2편(상하 한번씩, 천안으로 가는 것은 아침에 단 한편밖에 없다)에 요금 무궁화호 기본 운임 2800원. 절대로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전국 간선 철도망이 전철화되고 경영마인드가 약간이라도 더 완화된다면 충분히 이런 역에도 1시간 간격의 통근형 열차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본 주간선 재래선인 도카이도 혼선의 수도권지역이 아닌 외곽 구간을 왕래하는 보통등급의 열차 시각표를 확인해보면 좋을 것이다.
[장면 5] 소정리역에 도착하였다. 역명판은 옛 추억을 간직하지만 앞에 보이는 경부선 복선 철도는 항상 최신의 열차들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다.
소정리역에서는 고속신선을 질주하는 KTX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고가선로 뒷쪽 산에는 독립기념관이 보인다. 독립기념관의 기와지붕을 배경으로 KTX 샷을 찍는다면 제법 멋진 광경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이 빠르게 지나가는 KTX를 보고 고개를 살짝만 젖히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소정리역이다. 4월에 다녀온 충동 대전 여행때 느림의 미학을 느낀 바 있었다. 너무 바쁘게 앞만 쳐다보고 달려나가는 현실에서 가끔은 숨도 고르고 차분하게 쉴 겸, 뒤를 돌아보며 그동안 조여온 일상을 느슨하게 풀어줄 수도 있어야 하겠다. 너무 달리기만 하면 결국 망가지기 마련이다. 기계조차도 계속 돌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망가져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날 수도 있다. 하물며 인간이 어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소정리역에서 발견한 맨홀 뚜껑은 옛것과 새것이 공존한 모습이다. 그 옛날 터널마크의 철도청 시절의 뚜껑과, 역삼각형 CI의 철도청 한국철도 시대의 뚜껑이 1m도 안떨어져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건물은 새롭게 증축했다지만 정취라는 것은 함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듯이 꿋꿋하게 이곳에 아직까지도 있는 것이다. 때마침 호남선에서 올라온 광주발 용산행 #1458열차가 8200호 기관차의 견인에 이끌려 상행하고 있었다. 미래의 질주는 과거의 유물과 함께 공존하며 조화롭게 주행한다. 'Yes Togeter'(♠1), 결국 이 말이다.
[장면 6] #1257, 서울발 대전행 중거리 무궁화호가 소정리역을 빠르게 통과한다.
소정리역도 모산역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두편의 열차만 정차한다. 그리고 소정리역과 작별을 하게 될 시간이 왔다. 천안발 김천행 #1263, 등급은 무궁화이지만 경부선상에 있는 모든 역을 정차하는 통근 개념의 열차이다.('모든'은 과장이고 아주 일부 역은 통과한다) 소정리역과 같은 간이역에 무궁화급의 급행 이상 등급의 호화로운(?) 차량이 정차하는 것도 뭔가 쌩뚱맞아보인다. 이런 정취의 간이역들에 무궁화 정차는 과분한 선택이다.(그렇다고 간이역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간이역에는 간이역의 풍경이 어울리는 법. 비둘기호나 통일호 객차가 와서 멈추면 좋을 법한 소정리역에는 객차 4량이 달랑 연결되어있는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무궁화호에 4량 편성 열차도 우스운 형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무궁화호 고유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짓밟혀지는 순간이다. 속칭 '통궁'인 이 '각역 정차' 넌센스 무궁화호를 타고 상경하기 위해 대전으로 이동한다.
서울로 돌아갈 때에는 모험을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속는셈 치고 한번 5분의 여유시간이 있는 #66을 타기로 하였다. 할인 쿠폰이 있어서 그나마 값싸게 갈 수는 있어서 철도공사를 믿으며 여유시간인 10분도 무시하고 (시간표 상으로) 5분의 짧은 시간이 남은 이 KTX를 타려 했다. 결과는.....? 제대로 속았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놓쳤다. #66마저도 2분정도 지연하여 #1263과 정확히 같은 시간에 승강장에 정차하였다.(동시에 정차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계단을 뛰어올라가 다시 맞은편 승강장으로 이동하여 계단을 내려가 차량 출입문 바로 앞에 섰을때 문이 닫혔다. 재개폐가 되지 않는 KTX는 정시를 맞추기 위해 승강장에 버려진 필자를 놔두고 서울로 올라갔다. 노래 제목에도 있지 않는가. '戀をするたびに傷つきやすく'(♠2) 라고 하지 않던가.
철도 등 교통수단의 1차적인 목적은 수송이다. 아무리 부가사업이니 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송'이다. 철도는 수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약속을 지키는 교통수단'이고 또 그렇게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는 버스와의 차잇점이 바로 명료하게 나와 있는 시간인데 계속 이런식으로 연착을 하면 버스와 무엇이 다른가? 일본에서는 약간의 선로 공사만 있어도 다이어가 전면 개정되고 수정이 되는데 기존의 시간표는 그대로 두고 안내방송으로 사유가 있어 자연한다는 내용이 고작이다. 그러면 정시율을 믿고 탈 수 있겠는가. 이것은 결국 운영 철학의 근본이 해결되지 않는 한 결코 고쳐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승객들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속설에는 '지연 2~3분 정도면 애교'라는 말도 있던데 우리는 이것을 '코레일 타임', '코리아 타임'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웃음거리로 넘기고 있다. 너무 인정이 많은 것도 때로는 좋지 않을 때도 있다. 언젠가는 이것을 따지고 고치라고 요구를 해야 할 수도 있어야 하겠다.
결국 놓쳐버린 KTX를 포기하고 자금의 압박으로 이후 서울에서의 약속시간을 취소해가며 후속 일반열차인 #1040으로 대체하였다. KTX에 올인하면서 무궁화호가 1시간 이상의 간격으로 벌어진 이상, 선택의 기회는 없다. 이 차는 재미있는 상황에 처해있었는데 시간표에서는 원래 KTX보다 앞서 도착하여야 하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지연하여 KTX를 먼저 대전역에 도착시키고 자신은 그 뒤로 쫄랑쫄랑 따라들어오는 격이 되었다. 이 차를 타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었는데 약속시간을 약간 늦추어서라도 다음 KTX를 탈 것인가, 아니면 절약하는 마음에서 일반열차를 탈 것인가 한참을 갈등, 조율하다가 결국 열차 도착 1분 전에 새마을호를 재빨리 끊고 내려갔다. 사실 이 새마을호도 6분 정도 지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 희귀한 승차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표기된 출발시간보다도 늦게 발권된 표 말이다.(20시 01분 출발 열차를 20시 05분에 발권하였다) 이런 승차권도 한국 아니면 절대 끊을 수 없으리라.
차내에서 5000원을 지불하고 도시락 세트를 구입하였다. 한국판 에키벤이라 해야 하나? 에키벤의 0.5% 정도 따라갈까말까한 도시락은 차라리 한솟도시락(간접광고 노출우려-_-) 싸들고 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쓸데없이 비싼 금액에 부실하고 획일적인 내용은 인기상품이 될 수가 없다. 차라리 반찬수를 줄이면서 부찬류를 선택제로 하고 최초에 기본적인 것만 담아서 값을 팍 낮추어버린다면 지금보다 훨씬 이용객이 많아질 것이다. 또한 도시락이 잘 팔리기 위해서라면 그에 맞는 하드웨어가 갖추어져있어야 하나 그나마 테이블이 설치된 새마을호는 너무 면적이 좁아 먹기에도 불편하며 무궁화호에는 이마저도 없다. 상술에 있어서는 그를 뒷받침하는 시설도 있어야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판매하면 할수록 손해만 볼 수밖에 없을 듯 싶다. 다른데 아이디어를 짜내지 말고 이를 이용하는 주된 돈벌이인 승객의 입장에서 무엇이 불편한지 꿰뚫어보는 혜안이 필요할 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1040을 둘러보았다. 최후미에 연결된 동력운전실차량은 신도색으로 예쁘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외형적인 면에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내실있는 경영으로 모두에게 신뢰받는 철도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는 않는다. 지연의 경험도 그렇고, 차내 도시락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승객의 입장이다. 겉만 멋있다고 해서 속이 썩어들어가면 나중에는 동반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보다 더 성숙되고 실속있는 경영을 기대해본다.
없어져가는 옛 정취를 둘러보러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이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보고싶어도 못보게 된다. 그러기 전에 미리 챙겨두고 봐 둬야만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게 된다. 이미 곁을 떠난 EEC도 그렇고 춘천역도 그렇고 통일호가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 더 이상의 후회는 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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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정작 주가 되는 모산, 소정리에서의 감상보다는 그 주변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군요(-_-)
글 주변머리가 없고, 감상적이지도 못해서 쓸데없이 글만 길고 주저리주저리가 많았지만 모두 소화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억지)
굉장히 긴 글 읽으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 : 굳이 대합실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옛 명칭을 사용하여 조금이나마 향수를 느껴보려는 시도입니다.
♠1 : Yes Togeter - 반드레드 2기 엔딩
♠2 : 戀をするたびに傷つきやすく - 리리카 1기 오프닝
060708 작성
060708 게시
첫댓글 잘 봤습니다 츠칵스님~^^
흠.. 모산역 뒤에 있는 아파트는 몇년째 저 모습이죠^^;; 잘 봤습니다 ㅎ
잘보고 스크랩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