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이 나란히 서서 "오늘 우리는 역사적인 결정에 도달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하도록) 초대했습니다"라고 선언한다.
11, 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리 사크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고문이 그려보는 정상회담의 모습이다. 그리고 "축하 샴페인을 터뜨린다"는 게 사크 고문의 희망 사항이라고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7일 전했다.
하지만 그의 희망 사항은 그야말로 희망 사항일 뿐이다. 혼자 펼쳐보는 '상상의 나래'로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독일 등 나토 주요국들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초대를 일체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나토 정상회담 모습/사진출처:위키피디아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바이든 미 대통령은 9일 녹화 방송된 CNN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자체가 나토 가입 준비가 되지 않았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지에 대한 (회원국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투표를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나토 가입 조건에 대한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해야 한다"며 "민주화는 물론이고, 미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부패와의 싸움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 개막 직전에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 측에게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대로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정보국(GUR)의 키릴 부다노프 국장은 지난 6일 일찌감치 "합의 초안을 보니, 나토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구한 것은 자국에 대한 확실한 안보 조치다. 러시아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로서는 나토 가입 초청이 가장 확실한 방안이지만,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지난 2008년 부쿠레슈티의 선언보다는 더 구체적인 가입 확약을 해주기를 바란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잇따라 "아직 나토 가입과 관련한 어떠한 초청도 받지 못했으니, 명확한 신호를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나토는 지난 2008년 4월 4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공동 선언문을 통해 “그루지야(조지아),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염원을 환영하며, 나토의 외무장관들이 (가입 절차의) 다음 순서인 '멤버십행동플랜'(MAP) 적용 시기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당시에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프랑스와 독일은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을 촉진할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로드맵(road map)을 제시하자는 미국을 한사코 말렸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한다”(실제로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명분이 됐다)고 반대했다. 그 결과 나온 절충안이 구체적인 가입 시기및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가입만 ‘약속’하는 방안이었다.
스트라나.ua는 9일 "바이든 대통령과 다른 서방 지도자들의 발언으로 판단하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나토 가입 전망은 여전히 모호하다"며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가입으로 러시아와 직접 충돌(전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가입 초대 대신에 △우크라이나군의 나토화를 위한 다년간의 군사지원(장비 제공및 훈련) 프로그램 제시, △우크라이나-나토 협의체(최고위급) 창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재확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0일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정상회담 의제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를 재차 확인했다. 이전 발표와 달라진 것은, 나토 가입을 위한 '멤버십행동플랜'(MAP)을 면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나토 회원국들이 긴밀한 협의 끝에 MAP를 우크라이나 가입 경로에서 제외하는 데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추후 MAP의 적용 시기를 결정'하기로 한 '2008 부쿠레슈티 선언'에서 MAP의 적용을 면제하기로 한다는 커다란 진전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이를 수용할 지 주목된다.
미국내 분위기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그리 우호적인 편은 아니다.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스'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말라, 미국에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요지의 기고문이 실리기도 했다. 기고자는 저스틴 로간(Justin Logan) 카토 연구소 책임자와 조수아 쉬프린슨(Joshua Shifrinson) 메릴랜드대학 국제관계 겸임 교수다.
두 사람은 기고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미국에게 러시아와의 직접 충돌(전쟁)과 이에 따른 참담한 결과, 혹은 나토에 대한 평가절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들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과 관계없이 어차피 지정학적으로 대러시아 보루 역할을 할 운명이니, 미국은 재정 압박과 중국의 심각한 위협, 러시아와의 신뢰 상실 등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을 닫아걸 때"라고 주장했다.
나토 본부/홈페이지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 등도 '러시아와 타협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안된다'는 분위기다. 나토 가입의 문을 더 이상 열어주지는 않되 양자 또는 다자간 상호 방위 협정 체결이나 안보 각서 제공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조치를 더욱 두텁게 하자는 미국의 대안을 지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방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은 이스라엘 측에 제공하는 보안, 무기, 자체 방어 능력과 같은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안보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수십억 달러 상당의 군사 원조를 받고, 자국에 미군기지도 두는 협정을 맺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은 '이스라엘 방식'으로 가기 위한 사전 조치로 '람슈타인 플러스(+) 회의'를 구상중이다. 독일 럄슈타인에 있는 주독미군 기지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는 범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공식적으로는 군사 지원을 위한 연락 그룹 회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 지원 방안은 주로 이 곳에서 조율되고 발표된다. '람슈타인 플러스' 회의는 이를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한 다국적 회의로 확대하자는 뜻으로 들린다.
구체적인 안이 나오기까지 나토-우크라 간의 신경전이 치열할 것이다. 미 뉴욕 타임즈(NYT)는 지난 6월 미 백악관이 이스라엘 방식의 대 우크라 안전보장 조치를 모색하고 있다며 "최소한 10년을 약속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더 짧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이스라일 방식'을 적용받더라도, 보장 기간과 군사적 지원 규모 등에서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해 투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빌뉴스 나토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관련 의제 외에도 (러시아 공격에 대비한) 자체 군사력 확충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의 동진(東進) 정책 등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한 '집속탄 논란'도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느 때의 정상회담보다 더 시끄러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물로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한 종합적인 방위계획 마련이 우선 꼽힌다. '지역계획'(regional plans)으로 불리는 방위 계획은 유럽 및 대서양 지역을 총 3개 구역으로 나눠, 러시아 및 테러공격 등에 대한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사 시 병력 30만명을 나토군의 이름으로 30일 이내에 유럽 동부 전선에 배치한다는 게 핵심으로 알려졌다.
방산 역량의 확대를 위한 '방위생산 액션 플랜'에도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전력 강화를 위해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2014년 이후 9년 만에 '방위비 지출 가이드라인' 개정도 추진된다. 현재 가이드라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지출'인데, 2% 기준선을 최대치가 아닌 하한선으로 수정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나토 협의회 첫 회의도 12일에 열릴 전망이다. 양측 최고 지도자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빌뉴스 방문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참가 결정이 마지막 순간에 나올 것으로 확실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