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도하의비극때 이라크가 마지막에 골을 넣어 우리가 월드컵에 나가게 해준 선수는 현재 우리나라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고 있는 압바스 자심입니다 일본전에서도 한골 넣었고 이라크의 게임메이커이며 이번 아시안컵에서 2골 넣었습니다
그리고 94미국 월드컵 말인데여 당시 우리나라 포메이션은 1-4-4-1이라는 이상한(세계축구의 흐름에 맞지않는..)포메이션을 쓰면서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 거리가 상당히 길었었습니다 당시 천천히 성장하는 일본은 4-4-2포메이션 을 쓰면서 빠른 전개를 통한공격과 수비를 효율적으로 했었구 그걸 보면서 우리가 3-5-2를 도입했죠(3-5-2는 98프랑스 월드컵때 4강팀중 크로아티아가 썼구요 4-4-2 다음 으로 많이 쓰는 포메이션입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세계축구의 흐름에 우리가 맞춰나가기 시작한거져...
글구 조진호선수 현재 우리나라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습니다 전남이었나? 어디였지?
글구 골결정력 말인데여 이건 개인기 센스 훈련량 모든것이 중요하지만 일단 스트라이커의 정신무장이 제일 중요한거 같습니다 챤스에서의 자신감과 그 상황에서의 이미지가 골결정력에 많은 영향을 주더군요 이건 제가 축구를 하면서 느낀점입니다 (그래두 우리학교 동문회 축구팀에서 스트라이커랍니다...)
: 한국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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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언제인가 부터 한국국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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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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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에 한번 열리는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그리고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청소년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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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매년이 축구와 함께하는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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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한국 국민은 한국축구의 승패에 따라 울고 웃고 흥분하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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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는 늘 아시아 최고였지만, 세계대회에만 가면 주눅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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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한국축구의 90년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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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 한국축구의 90년대는 이탈리아 월드컵과 함께 시작한다.... 한국은 그때 3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가지고 돌아왔지만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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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와의 경기 비록 0:2로 패하긴 했지만 두골 모두 골키퍼의 실수로 내준 것이었고 스페인에게는 황보관선수가 멋진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1:3으로 패했다. 그리고 마지막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도 0:1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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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주 어렸을때라 이정도만 기억나지만 한국축구는 그래도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축구를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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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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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이때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여 세계청소년 대회에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한국은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그리고 청소년 최강 포르투갈과 한조가 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기고 잉글랜드와는 1:1 무승부 그리고 포르투갈과는 0:1로 패했지만 조2위로 8강 진출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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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축구에 있어서 2회전 진출이라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비록 8강에서 브라질에게 1:5로 대패하지만 한국축구의 가능성은 많이 열려있었다. 그때만 해도 일본은 한국의 밥이었으며 일본축구는 아시아에서도 별로 쳐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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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주목할 점은 최철이라는 북한의 스트라이커였다. 단일팀의 골은 거의 그의 발에서 나왔고 그의 테크닉은 정말대단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는 알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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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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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도 한국팀은 3무승부를 거두면서 비록 예선 탈락했지만 세계의 벽이 그다지 높지많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대회였다. 그때 한국의 스트라이커였던 조진호는 최고의 기량을 뽑내면서 한국팀에 빛이된 선수였다. 조진호 선수는 94년 미국 월드컵까지 굉장히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대표팀의 골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한국축구를 줄곧 따라다니는 `골결정력부족`을 보완해줄 수 있는 좋은 선수였다..
: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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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3: 94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카타르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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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들은 이때를 도하의 비극이락고 부르며 안타까워한다.. 이때만해도 아시다시피 월드컵티켓은 총 24장이었는데 여기서 아시아에게 배당된 티켓은 2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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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최종예선에는 이란,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북한,한국, 그리고 일본 이렇게 6팀이 올라와서 리그제를 벌여 가장 성적이 좋은 두 팀이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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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첫게임 이란전을 맞아 3:0으로 이기면서 쾌조의 스타트를 끊게된다. 그다음 이라크전에서는 종료 직전에 골을 내주면서 2:2로 비기게 되었고 세번째 사우디 전에서도 홈텃세와 심판의 판정시비로 막판에 한골을 내주면서 1:1로 비겼다. 이때만해도 한국팀의 경기내용은 상당히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종료 직전에 이라크와 사우디에게 한골씩을 내줘 비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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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째 게임은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임이었다. 한국팀은 그때까지 1승2무를 기록하고 있었고 일본은 1승1무1패를 기록중이었다. 한국은 그 다음 경기가 대회 최약체로 꼽히던 북한과의 경기였기 때문에 비기기만해도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었으나 그 당시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 미우라 가즈에게 한골을 허용해 0:1로 패하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한국은 바빠졌다. 1승2무1패 한국팀은 경우의 수를 따지기 시작했다. 한국팀은 골득실차에서 적어도 많이 벌려놓아야 했다. 사우디는 2승3무 승점8점으로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고 (그때만해도 승점은 승리:2점 무승부:1점이었다.) 한국은 북한과의 경기를 3:0으로 이기고 일본경기를 기다려야했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에게 골을 한골씩 넣어갔지만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모두 한국과 북한과의 게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에 관심이 갔다... 한국과 북한의 게임은 3:0으로 종료되었고 일본은 이라크에게 2:1로 앞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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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대표팀은 비록 북한에게 이기긴 했지만 종료직전 일본이 이라크에 2:1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종료직전 이라크 선수가 백해딩으로 일본의 골문을 열어 2:2로 비겼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때처럼 한국 선수들이 좋아했던 때도 또 필자가 좋아했던 때도 한국축구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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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이겨서 기뻤던 것이 아니라, 남이 못해서 기뻣던 것은 아마도 그때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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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j-리그 출범과 함께 일본이 많이 성장했고 이때가 한국축구가 추월당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사실 한국축구에게 일본은 밥이었지만 그때 일본이 한국을 이김으로써 상당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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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금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가 그때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였다. 일본은 한국을 이김으로써 자신감을 회복했고 한국을 앞서나가는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도 언제 이렇게 될지 모르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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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4년 미국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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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낸 대회였다. 한국팀의 문제점은 골키퍼의 능력 부족과. 골결정력 부족이었다.
: 한국팀은 늘 앞선 경기를 보여주면서도 문전앞에서의 볼처리는 상당히 미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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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미국월드컵은 한국팀이 월드컵에 진출한 이래 최고의 성적과 함께 가장 좋은 경기내용을 보인 대회이긴 했지만 골결정력 부족과 골키퍼 능력의 부재라는 두가지 단점을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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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 이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후로 한국축구는 발전이 없어진다.반면 라이벌 일본의 성장은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눈에는 띄지 않지만 서서히 발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일본축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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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의 이때까지의 느낌은 상당히 공격이 파이팅 넘치고 강했다는 것이다. 비록 골은 못넣고 이기는 축구는 아니었지만 내용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축구를 한국대표팀은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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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걍 기억나는데로 써서 틀린부분 있을 겁니다. 바로 잡아주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