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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 광진구 / 경기 구리시 | |
높이 | 287m | |
문화재 | 아차산성(사적 234), 아차산 봉수대지 (서울기념물 15), 영화사 |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에께산·
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기지(京畿誌)》 '양주조'에 보면 화양사(지금의 영화사)가 악계산(嶽溪山)에
있다고 되어 있다.
현재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는데,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지역과 용마봉 등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성계의 휘(諱)가 '단(旦)'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서 '旦'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고치면서 단(旦)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且)’자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씨를 고쳐 썼다고 한다.
그밖에 산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는데, 그가 숫자
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버렸고,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
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나온 광주산맥의 끝을 이룬다. 온달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져오는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
는 지름 3m짜리 공기돌바위와 온달샘 등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에서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려 때는 광나루와 함께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았으며, 은석사(銀石
寺)·범굴사(梵窟寺)·영화사(永華寺) 등 여러 사찰이 있었다. 조선 중기까지 일대가 목장으로만 개발되어 인가가
드물고 수풀이 무성하였으며, 호랑이, 늑대 같은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임금의 사냥터로 이용되었다.
근대 이후 산기슭 중턱까지 주택이 들어서게 되었고, 뛰어난 조망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세워졌다.
1970년대 들어 서울특별시가 일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용마돌산공원 등 도시자연공원을 조성하였고, 산자
락에 주택가와 쉐라톤워커힐호텔이 들어서 있다.
문화재는 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250여 년 동안 각축을 벌였던 아차산성
(사적 234), 아차산 봉수대지(서울기념물 15),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화사(永華寺) 등이 있다.
그밖에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보루 유적이 있고,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 암굴 외에 석곽분, 다비터, 강신샘 등 유적이 많다. 구리시 아치울에서는 해마다 온달장군 추모제
가 열린다.
산행은 용마봉과 연계한 코스가 많은데, 구의동에 있는 영화사를 기점으로 팔각정을 거쳐 아차산 정상에 오른 후
용마봉을 거쳐 대원외국어고등학교로 내려오는 2시간 30분 코스, 광장동 동의초등학교 옆 주차장을 기점으로 능
선을 타고 팔각정과 아차산 정상을 거쳐 용마산 긴고랑체육공원으로 내려오는 1시간 50분 코스,
용마산길의 아성빌라·선진연립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소 주변 우미내마
을의 무료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2시간 코스 등이 있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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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광진구의 북쪽에 위치한 아차산은 서울 동대문구와 광진구,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를 이루며 용마봉을 제일
높은 봉우리로 하여 야트막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아차산의 원래 이름은 아단산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 이미 이곳에 아단성을 쌓았다고 한다. 아단을 아차로 바꾼
데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이름을 아단으로 바꾸자 임금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피하려는 의도에서 단
(旦)과 비슷한 모양의 차(且)로 바꾸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통신 수단으로 이용된 봉화는 양주 대이산의 봉화를 연결하여 남산의 첫째 봉화대에 보내기도 하였고,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과 싸우다 처형된 산이기도 하다. 용마산은 조선시대 산아래에 말을 기르는 목장이 많아
용마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붙힌 용마봉은 높이 348m 의 나즈막한 산으로 서울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활
용이 되고 있다.
산 중턱에는 동양 최대의 석조 채취장으로 산 중턱이 움퍽 파여 있어 미관상 산을 망쳐 버린 듯이 보였는 모습을
최근에는 인공폭포등을 건축하여 미관을 살리고 공원화로 만들어 특히 무더운 여름철 산책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화사란 절 입구에 휴식공간과 샘터가 있어 가벼운 산행코스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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