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겸패합(鉤鉗捭闔)
구겸(鉤鉗)은 갈고리나 집게처럼 박힌 물건을 뽑아내는 도구이며, 패합(捭闔)은 열고 닫는 것이니, 상대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가지고 논다는 의미이다.
鉤 : 갈고랑이 구(金/5)
鉗 : 칼 겸(金/5)
捭 : 칠 패(扌/8)
闔 : 문짝 합(門/10)
출전 : 왕달(王達)의 필주(筆疇)
이 성어는 명(明)나라 왕달(王達)의 필주(筆疇)에 나오며, 왕달(王達)은 이렇게 말했다.
其有欲言不言, 而藏鉤鉗之機, 欲笑不笑, 而含捭闔之意, 此必奸人也.
말할 듯 말하지 않으면서 남을 해칠 기미를 감추고, 웃는 듯 웃지 않으면서 쥐었다 놓았다 하는 뜻을 머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간사한 사람이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을 열지 않고, 웃으려다가 문득 웃음기를 거둔다. 머릿속에 궁리가 많기 때문이다.
구겸(鉤鉗)은 갈고리나 집게처럼 박힌 물건을 뽑아내는 도구다. 패합(捭闔)은 열고 닫는 것이니, 상대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가지고 논다는 의미다.
이런 말도 했다. “험한 사람 앞에서는 남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간사한 사람 앞에서는 남의 속임수를 논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때 말하고, 저도 한때 들었다. 말한 사람은 굳이 저를 비난하려 한 것이 아닌데, 듣는 사람은 마음에 쌓아두고 잊지 않는다. 험한 사람은 그 사사로운 이야기를 폭로와 비방의 거리로 삼고, 간사한 자는 그 기교(機巧)를 써서 이익의 바탕을 만든다.”
갈고리와 집게의 수단을 감추고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속임수가 온통 난무하는 세상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심재(沈梓)가 학문,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미담과 가화(佳話)를 듣고 본 대로 기록, 정리한 책인 ‘송천필담(松泉筆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이첨(李爾瞻)이 함경감사로 부임하던 날, 수레를 타고 만세교(萬歲橋)를 건넜다. 그는 서안(書案)에 놓인 책만 보며 바깥 풍경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감영의 기생들이 그의 잘생긴 얼굴과 단정한 거동을 보고는 신선 같다며 난리가 났다. 늙은 기생 하나가 말했다. "내가 사람을 많이 겪어 보았는데, 사람의 정리란 거기서 거기다. 이곳 만세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기이한 볼거리다. 누구든 처음 보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사람의 정리가 아니다. 그는 성인이 아니면 소인일 것이다."
이이첨은 인물이 관옥(冠玉)처럼 훤했다. 대화할 때 시선이 상대의 얼굴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었고,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처럼 웅얼거렸다(視不上於面, 言若不出口).
그를 본 이항복이 말했다. "한 세상을 그르치고, 나라를 망치고 집안에 재앙을 가져올 자가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다." 뒤에 그대로 되었다. 송천필담(松泉筆談)에 나오는 얘기다.
🔘 유창영의 역사산책에서
선조 때 이이첨(李爾瞻)은 세조의 묘 광릉(경기도 남양주시)을 돌보는 말단 한직 능참봉이었다.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를 일으킨 간신 이극돈의 5대손으로 못난 조상 탓에 양반사회에서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며 그의 인생은 급변한다. 세조의 영정이 모셔진 인근 봉선사가 왜군에 의해 불태워지고 이때 그는 불타는 절간을 헤치고 들어가 영정을 꺼내 당시 임금이 있던 평안도 의주를 향한 머나먼 여정에 오른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백리를 뛰었으며 왜군 진영 한복판을 두 번이나 통과했고 심지어는 의병부대에 합류해 전투까지 치렀다. 그 귀중한 영정을 품은 채 홀로 낯설고 험한 길을 숨고 달리고 싸웠으니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당시 실록을 보자. '광릉 참봉 이이첨이 세조의 영정을 모셔오니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나와 그를 맞았다. 조정의 명령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피난할 생각도 없이 적진 속에서 영정을 받들어 왔으니 사람들이 다 의롭게 여겼다.'
이후 그는 출세 길에 올라 광해군조엔 최고의 권력자로 숱한 물의를 일으키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참형을 당하며 조선조 대표적인 간신이 되고 만다.
▶️ 鉤(갈고리 구)는 형성문자로 鈎(구)의 본자(本字), 钩(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句(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鉤(구)는 ①갈고리 ②올가미 ③계략(計略) ④띠쇠(띠를 매는 쇠) ⑤갈고리로 걸다 ⑥굽다 ⑦꼬부장하다 ⑧(끌어)당기다 ⑨끌어 올리다 ⑩꾀다 ⑪낚시로 낚다 ⑫뜨개질하다 ⑬분명(分明)하지 않다 ⑭흐리멍덩하다 ⑮흐리터분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미술이나 공예 등의 동양 화법의 하나로 쌍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그 사이를 채색하는 법을 구륵(鉤勒), 갈고리 같이 휘움하게 만든 난간을 구간(鉤杆), 술책을 써서 꾀어 꼼짝 못하게 함을 구거(鉤鉅), 술책을 써서 꾀어 남을 불러들임을 구치(鉤致), 술책으로 남을 꾀어서 그 실정을 탐지하여 꼼짝 못하게 함의 비유를 구거(鉤距), 갈고리와 덫을 달리 이르는 말을 구기(鉤機), 쇠갈고리를 달아 만든 지레를 구형(鉤衡), 갈고리처럼 구부정한 주둥이를 구문(鉤吻), 낚시처럼 굽은 것을 구곡(鉤曲), 갈고리로 잡아 당겨서 목을 벰을 구참(鉤斬), 갈고리로 끌어 내어 끊음을 구단(鉤斷), 갈고리로 끌어내어 가짐을 구취(鉤取), 끝이 갈고리처럼 된 바늘 따위의 통틀어 일컬음을 구침(鉤針), 갈고리처럼 생긴 모양을 구형(鉤形), 갈고리처럼 꼬부라진 모양을 구상(鉤狀),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새의 발톱을 구조(鉤爪), 꼬치꼬치 캐어서 실정을 알아냄을 구득(鉤得), 범죄 사실을 꼬치꼬치 캐어 물음을 구문(鉤問), 범죄 사실을 조사하여 캐어 냄을 구핵(鉤覈), 샅샅이 살피어 찾음을 구탐(鉤探), 찾아내어 조사함을 구교(鉤校), 허물이나 잘못을 꼬치꼬치 따짐을 구힐(鉤詰), 썩는 곡식을 조사하여 골라냄을 구증(鉤拯), 채택하여 씀을 구용(鉤用), 심오한 도리를 찾고 구함을 구색(鉤索), 콤파스와 곱자를 달리 이르는 말을 구구(鉤矩), 낚시에 단 미끼를 구이(鉤餌), 엄지와 식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붓대를 걸치어 잡는 쌍구법으로 그려 낸 글씨의 획이나 자형을 쌍구(雙鉤), 옥으로 만든 갈고리라는 뜻으로 초승달같이 생긴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옥구(玉鉤), 줄다리기를 달리 이르는 말을 견구(牽鉤), 줄다리기로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서 굵은 밧줄을 마주 잡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를 타구(拖鉤), 봉황 형상으로 만든 갈구리를 봉구(鳳鉤), 혁대의 두 끝을 서로 걸어 합치거나 끼어 맞추어서 디를 죄는 쇠붙이를 대구(帶鉤), 낚시를 드리움 곧 고기를 낚음을 수구(垂鉤), 미끼를 꿰어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작은 쇠갈고리를 조구(釣鉤), 남의 재물을 빼앗아 자신의 이익을 챙김을 일컫는 말을 구영익리(鉤贏弋利), 낚시 미늘에 걸린 생선이라는 뜻으로 곤경에 빠지거나 죽을 수를 당하여 어쩔 수 없다는 뜻의 속담을 일컫는 말을 중구지어(中鉤之魚), 갈고리 도둑과 나라 도둑이라는 뜻으로 갈고리를 훔친 좀도둑은 사형당하고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부귀를 누린다는 말로 시비나 상벌이 명분에 따라 다름을 비유한 말을 절구절국(竊鉤竊國) 등에 쓰인다.
▶️ 鉗(칼 겸/다물 겸)은 형성문자로 钳(겸)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甘(감, 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鉗(겸)은 ①칼(항쇄項鎖; 죄인의 목에 씌우는 형구刑具) ②젓가락 ③함부로 말하는 모양 ④다물다(=箝) ⑤항쇄(項鎖)를 채우다 ⑥억누르다, 강제하다(強制--) ⑦꺼리다 ⑧시기하다(猜忌--) ⑨집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목에 칼을 쓴 죄인을 겸도(鉗徒), 집게발을 달리 이르는 말을 겸각(鉗脚), 세력만 믿고 남을 억누르고 해치는 것을 겸기(鉗忌), 지형이 삼태기 모양으로 한 곳은 트이고 세 곳은 둘러막힌 곳을 이르는 말을 삼겸(三鉗), 지기地氣를 누름을 지겸(地鉗), 꼼짝 못하게 억누름을 겸억(鉗抑), 칼과 그물을 씌운다는 뜻으로 남을 속박하거나 구속함을 이르는 말을 겸망(鉗網), 요대의 두 끝을 서로 끼어 맞추는 항쇄 모양으로 된 쇠를 겸철(鉗鐵), 채가 긴 집게를 관겸(鸛鉗), 남을 억눌러 구속함을 겸제(鉗制), 옛 중국에서의 형벌로 머리를 깎고 칼을 목에 씌우는 것 또는 그러한 형벌을 받는 죄인을 곤겸(髡鉗), 구겸은 갈고리나 집게처럼 박힌 물건을 뽑아내는 도구이며 패합은 열고 닫는 것이니 상대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가지고 논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구겸패합(鉤鉗捭闔) 등에 쓰인다.
▶️ 捭(칠 패, 열 벽)는 형성문자로 재방변(扌; 손)部와 卑(낮을 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捭(패, 벽)는 ①치다 ②두 손으로 치다, 그리고 ⓐ열다(벽) ⓑ가르다(벽) ⓒ쪼개다(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패합은 열고 닫는 것을 패합(捭闔), 구겸은 갈고리나 집게처럼 박힌 물건을 뽑아내는 도구이며 패합은 열고 닫는 것이니 상대를 쥐었다 놓았다 하며 가지고 논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구겸패합(鉤鉗捭闔) 등에 쓰인다.
▶️ 闔(문짝 합)은 형성문자로 阖(합)은 간자(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문 문(門; 두 짝의 문, 문중, 일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盍(합)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闔(합)은 ①문짝 ②거적(짚으로 쳐서 자리처럼 만든 물건), 뜸(짚, 띠, 부들 따위로 거적처럼 엮어 만든 물건) ③온통 ④전부(全部)의 ⑤통할(統轄)하다(모두 거느려 다스리다) ⑥어찌 ~아니하랴 ⑦문을 닫다 ⑧부합(符合)하다(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다), 같다 ⑨간직하다 ⑩막다, 못하게 하다 ⑪숨 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닫고 열고 함을 합벽(闔闢), 온 궁내를 합궁(闔宮), 온 권속을 합권(闔眷), 한 집안이나 온 집안 가족을 합가(闔家), 남의 허물을 보고도 모르는 체 함을 합안(闔眼), 지경 안의 전부를 합경(闔境), 구름을 헤치고 궐문 앞에서 부르짖는다는 뜻으로 원통하거나 억울한 사정을 임금에게 하소연함을 이르는 말을 배운규합(排雲叫闔), 양이 열리고 음이 닫힌다는 뜻으로 정의나 군자가 득세하고 불의나 소인이 위축됨을 이르는 말을 양개음합(陽開陰闔)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