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 180여 명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기자들은 이 선언에서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하고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며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사회 존립의 기본 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2)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3)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에 이어 조선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회복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했고, 이틀 사이 전국의 31개 신문 방송 통신사 기자들이 자유수호를 위한 결의문과 행동지침을 채택했습니다. 한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기자들의 대규모 저항 운동이자 언론자유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한 대사건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50년된 일입니다.
당시 기자들은 언론은 활자나 전파매체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고 여러 계층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해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며 이러한 이유로 자본과 권력은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정보를 통제해 왔다고 자유언론실천선언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지금부터 50년전의 일이지만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방법과 형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권력의 지배력은 그대로이지만 요즘은 건설사들이 언론사 상당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은 지 42년만인 지난 2016년 10월 24일 JTBC에서 깜짝 놀랄 만한 보도가 터집니다. 바로 최순실 국정농단관련 보도입니다. JTBC기자들이 최순실의 사무실에서 태블릿 PC를 획득했고 그것을 분석한 보도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2016년 11월부터 공론화되어 2017년 3월까지 한국 내에 촛불혁명을 이끌어냈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역사적 현장을 만들어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당시 JTBC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날 보도하려고 계획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10월 24일은 한국에서 언론의 역할과 언론의 힘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10월 24일 오늘 국회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언급되었습니다. 바로 어제 KBS사장 후보로 박장범 앵커가 임명 제청된 것과 관련해서입니다. 이훈기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KBS이사회가 박장범 KBS 앵커를 차기 사장 후보로 임명제청한 것과 관련해 박 앵커는 지난 2월 대통령과 특별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파우치 논란" "조그만 백"이라고 불러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이 됐다고 전제하면서 김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이라고 애써 축소한 사람이 KBS 사장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10월 24일은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이 된 날인데 권력에 아부한 자가, 국민의 공분을 산 자가 공영방송의 사장이 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앵커의 KBS 사장 선임에 대한 후폭풍이 거셉니다. 국회에서뿐 아니라 당사자인 KBS 노조도 사장 선임 결과는 결국 이 정권이 언론을 장악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KBS 노조는 불법적인 이사회의 사장 임명제청을 인정할 수 없으며 윤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서 끝까지 싸워 공영방송 KBS를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노조는 어제 하루 총파업에 들어갔고 사장 선임 절차 중단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KBS 총파업은 2017년 박정권 탄핵과 관련한 KBS 적폐청산을 위해 총파업에 들어간 이후 7년 만입니다. 이번 KBS 사장 선임이 하필 자유언론실천선언일과 맞물려 발생한 것이 우연이라면 참으로 요상한 우연입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기자들이 대규모로 언론의 자유와 저항정신을 알린 날에 하필 KBS 사장이 새로 선임됐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KBS의 사장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이뤄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대통령 특별 대담과 연결돼 이뤄진 것은 찾아 보기 힘들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습니다. 방송의 ㅂ자도 모르는 전임 사장 선임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능력도 있고 방송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닐텐데 이렇게 누가봐도 의아스럽고 지적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고 우려스럽습니다. 오늘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매우 우려스럽고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다보게 됩니다.
2024년 10월 2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