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서의 단상
유옹 송창재
이제 풍년의 개념은 없어져 가는 것같다.
들판에 누런 벼들이 익어가면 황금벌판에 대한 추억과 시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가 불과 작년이었던 것같은데.
풍년이란 뜻을 아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림을 그리면 어떤 그림이 될까?
아파트가 될까?
고급승용차가 될까?
아니면 비행기가 될까?
감성과 지식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감성이면 몰지식인가?
이때 쯤이면 올 농사의 작황을 가늠하며 풍,흉년을 예측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쌀이 남아 돌아가고, 고 고미가 쌓여서 쌀의 사용처 개발에 연구영역을 집중하고 있는 때에,
폭우에 나락이 쓰러져 있어도..
물론 나락을 세워 묶을 일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농부들마저 내심으로는 일으켜 세워보았자 얼마나 더 먹는다고 신경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표정들이다.
풍요일까 체념일까?
예전같으면 행정당국에서도 군인들이라도 동원해서 일손을 도와 주었었는데..
그러면서도 쌀을 수입하여야 한다는 글로벌경제의 분배정책이니
세태가 이렇게 변한 것을, 나락이 누워있는 들길을 따라 걸으며 느끼게 되어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풍요와 빈곤과 물질과 정신을 글로벌하게 생각한다.
많은 식구에 끼니를 잇기가 어려워
아직 익지도 않은 보리를 베어 보리 민댕이를 만들어 허기를 채우며, 논바닥의 독새기풀마저 훓어 먹던 시절이 불과 오십년도 안되었건만!
옛날 힘들던 어두운 시절을 말하며 내핍이 어떻고하는 꼰대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세끼 배고픔을 벗어나면 고기만 먹고 남겨서 개주고,
초가집을 벗어나면 사십평의 아파트가 꼭 필요할 것인가?
개발의 미명으로 밀어닥친 자본주의에 피폐해져 가는 농촌풍경을 보며 과연 무엇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인지를..
나자빠져 누운 나락들을 보며, 들길을 걸으며, 메뚜기 뛰던 논두렁에서 콩서리하여 구워먹던 용근이 성을 그리워하며 생각해본다.
용근이 성은 가난해서 중학교도 못가고
나하고 메깟에서 쇠꼴베며 일했다.
내가 나이가 든 꼰대가 되어서 감상적이 되었을까?
나이가 들면 꿈도 옛 꿈이고,
어릴적 꿈은 빨리커서 대통령이 되고싶은 꿈이었다지만?
살아온 길이 오래고 남은길이 짧아서 들길에서 옛날을 생각할까?
진보와 보수가 무얼까?
돈으로 진보가 만들어지고
진보여야만 진보적이고 영특하고 잘난 것인가?
하늘과 바람과 꽃과 사람을
생각하는 나는 수구꼴통인가?
삶에 보편적 가치가 실종되었다.
다양함이 발전이겠지만
요즘 벌어지고 있는 모습에서 과연 정의가 무엇이고 무엇에 의해서 가치가 규정되어지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세상의 흐름이 무섭다.
적응이 느린 내가 미숙해서일까?
정치공학적 이론과 발전에 대한 학술적 토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금 덜 먹으면 어떤가?
나는 아직 덜 자랐나?
그래서 幼翁유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