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기도: 주님, 주말을 시작하고, 친정아버지 생신이라 자녀들과 부모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님은 자녀인 우리들에겐 바쁘고 정신없어서 사랑해도 사랑한다 말씀하시지 못하고 키우셨지만, 손주들에게는 어찌나 여러 모양으로 사랑을 주시는지.. 부모님께 받은 상처가 있다고 말하기 무색하게 또 사랑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부모의 은혜를 아무리해도 갚을 수는 없겠지만,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와 사랑 표현하며 자주 찾아 뵙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부모님을 주시고 늘 매일 아들 안의 생명으로 교제하길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 말씀주해:
(30-31절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이 모든 말로 그들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 고함치신다. 그의 거룩한 처소 하늘 꼭대기에서 벽력 같은 목소리를 내신다. 그의 목장에다 대고 무섭게 고함치신다. 포도를 밟는 자들처럼 이 땅의 모든 주민을 규탄하여 큰소리를 내신다. 주님께서 만민을 신문하실 것이니, 그 우렁찬 소리가 땅 끝에까지 퍼질 것이다.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니, 악인들을 칼로 쳐서 죽게 하실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 유독 큰 소리친다는 말이 반복된다. 고함치신다/벽력 같은 목소리를 내신다/무섭게 고함치신다/규탄하여 큰 소리를 내신다/우렁 찬 소리 ... 하늘에서 시작된 심판주의 심판의 목소리는 번개와 같고 우레와 같이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이는 땅의 피조물이 모두 해당되며, 한 명도, 한 나라도, 한 왕도 예외는 없다. 그 심판은 칼로 쳐서 죽게 하는 심판이다. 악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자비가 있을 수 없다.
- 심판이 죄인이고 악인인 자들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형벌이다. 자비가 없기에 돌이킬 방법이 없다.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언약 밖에 있다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언약 안에 거하게끔 하시는 것도 은혜고, 그걸 붙들지 않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는 것이다.
(32-33절 새번역)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보아라, 재앙이 이 민족에서 저 민족에게로 퍼져 나가고, 땅의 사방 끝에서 큰 폭풍이 일 것이다. 그 날에는 땅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나 주에게 죽임을 당한 시체들이 널려 있을 것이며, 그들이 죽었다고 하여 울어 줄 사람도 없고, 그들을 모아다가 묻어 줄 사람도 없어서, 마치 땅 위에 뒹구는 거름덩이처럼 될 것이다.“
- 주님께서 허락하신 재앙과 큰 폭풍으로 인한 결과는 너무 처참하고 비참하다. 죽임을 당한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우는 자도, 묻어줄 자도 없는 현실이다. 물론 육이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진 악인은 죽음이 끝이라 그 외에는 생각도 못하겠지만, 참으로 참혹한 결과다. 죽었음에도 그를 위해 안타까워하는 이가 한 명도 없고, 울 사람이 없는 것만큼 비참한 삶이 있을까? 그런 삶은 죽음도 안타깝지만 살았던 때의 삶도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내가 그런 자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다.
(34-38절 새번역) "목자들아, 너희는 울부짖으며 통곡하여라. 양 떼의 인도자들아, 너희는 재 위에서 뒹굴어라. 너희가 살육을 당할 날이 다가왔다. 귀한 그릇이 떨어져 깨지듯이 너희가 부서질 것이다. 목자들은 도피처도 없으며, 양 떼의 인도자들은 도망할 곳도 없을 것이다." 목자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양 떼의 인도자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주님께서 그들의 목장을 파괴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맹렬히 진노하시니, 평화롭던 초장들이 황무지가 되었다. 사자가 굴을 버리고 떠나가듯이, 주님께서 떠나가셨다. 압박하는 자의 칼과 주님의 분노 때문에 그 땅이 폐허가 되었다.
- 목자들과 인도자들의 도피처는 없다. 평화롭던 초장들은 황무지가 되었다. 이제 그들의 터전은 온데 간데 없고, 양들은 당연히 없다. 울부짖으며 통곡할 방법밖에 없다. 그들에게 맡겨주신 양들을 이용하기만 하고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니 심판은 당연하다. 주님께서 생명으로 섬기라 하신 양들을 이익과 탐심으로 섬겼으니, 그 자리를 뺏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목사님 주해 中]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는 심판주가 아니라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이시다. 곧 세상 임금을 심판하심으로써 세상 임금에 속한 자를 구원하신다. 그러나 만일 아들을 믿지 않으면 여전히 세상 임금에 속하여 심판을 받으며 멸망의 길을 간다. 여기서 아들을 믿고 안 믿고의 준거는 “영생”에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영생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데 있다. 그러나 영생에 무지하면, 영생을 얻고도 누리지 못한다. 그는 불가불 세상 임금에 속하여 시대마다 역사하는 아이온(풍속)을 따른다(엡 2:2). 특별히 영생에 무지한 지도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아닌 시대성에 적합한 메시지로 영혼들을 미혹한다.
그런 메시지는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는 가변성과 무상성의 법칙을 따라 덧없이 사라진다. 그와 함께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받는 지도자나 신자는 혹독한 심판에 이른다. 그 심판이 살아있을 때 임한 자는 진실로 복되다. 그 심판은 진멸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 나의 묵상 및 기도: 세상 임금을 심판하시고, 사망을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심판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영생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데 있는 것이라는 말에 아멘을 하게 된다.
나는 영생을 몰랐고,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며, 성경의 진리의 관심보다는 세상에 더 관심이 많은 자다. 그러니 생명 보다는 사망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 채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채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심판해주셔서 다시금 주를 바라보는 일, 생명이 가장 크고 귀한 것인지를 알려 주셨고, 지금도 매일 말씀을 통해 알려주심이 은혜인 것이다. 서목사님 주해처럼, 이 심판이 내가 죽기 전에 임했으니 복된 것이 아닌가. 이는 영원한 진멸을 위함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아직도 영적 어린아이로 매일 조금씩 젖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자이나, 이런 어린 자에게 맡겨주신 양이 있고, 섬겨야 할 양이 있으니, 부담보다는 감사하며, 내 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감당해야함을 배워간다. 머리로만 아는 심판이 아닌, 마음과 영으로 알길 원하고, 힘듦과 고통으로 받는 심판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온 심판임에 아멘할 수 있는 자이길 원한다.
주님, 저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시는 주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말씀하여 주셔서, 그런 어려움이 결국 주님의 사랑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곧 있을 지체들과의 생명의 교제를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생명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내일 있을 주일 예배를 주님께서 주관하여 주시고, 주님 안에 모든 성도들이 거하며, 생명의 공동체로 아름답게 세워주십시오.
앞으로 세워 가실 임직자들을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성령충만함으로 임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주님께서 풍성한 영의 양식도 공급하여 주시며, 복음충신교회의 귀한 섬김이들로 세워주십시오.
명수형제도 주님 안에서 빚어가시며, 그 가정이 주님 안에서 안전하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