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대구노회 연합으로 드리는 오후 예배 위에도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또한 성도의 귀한 교제를 나누는 주일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들의 할 말은 오직 복음으로 교제하고 주님의 보혈을 찬양하는 것이오니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부정성과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해진 마음에 진리를 담을 때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본문 주해)
13~20절 : 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자 선원들이 때를 만났다면서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면서 항해를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갑자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치게 된다. 그래서 배가 바람에 밀려가는 대로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 뒤편에 매달고 가던 거루(거룻배)를 갑판 위로 끌어 올려 밧줄로 단단히 맨다. 거룻배는 배가 파선하게 될 경우 비상상륙 할 수 있는 일종의 보트를 말한다.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렸다’는 말은 암초에 걸릴까 봐 돛과 닻을 내렸다는 것이다. 돛을 내려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닻을 내려 풍랑을 견딜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스르디스’는 바다 밑에서 솟아난 모래산으로 이것에 걸리면 배가 그대로 파선되는 것이다.
풍랑으로 심히 애를 쓰고 이튿날에는 배의 짐을 바다에 버리게 되었고 드디어는 배의 기구도 버리게 된다. 여러 날 동안 풍랑이 계속되고 해와 별도 보이지 않게 되자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지게 된다.
21~26절 : 그러자 바울이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을 것이라고 하니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나타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되리라고 하며 곧 한 섬에 배가 걸리게 될 것을 말한다.
(나의 묵상)
남풍으로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광풍을 만난다.
유라굴로 앞에서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되니, 가지고 있던 짐부터 버리기 시작한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짐뿐만 아니라 배의 기구까지 버리게 된다.
세상 것을 얻으려 혈안이 된 사람들이 그것을 얻어 만족할 때, 난데없이 인생의 광풍을 만나 어려움을 겪는 장면과 비슷하다.
그토록 가지려 했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기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곳에 바울이 있었다.
무슨 신비한 능력을 가진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이 있었다.
하나님의 천사가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한 것을 보면 바울도 그 광풍 앞에 두려워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두려워하는 바울에게 로마로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시면서 꼭 그대로 될 것과 배 안의 모든 사람의 안전을 바울에게 맡겨 주셨다고 천사가 전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자기 마음과 동행자들의 안전을 전하며, 자신들이 탄 배가 한 섬에 걸리게 될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쉽게 로마로 보내시면 될 것을 죄수의 몸으로, 거기다 굳이 광풍까지 겪으며 고생고생하며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울과 함께 그 배 안에 있었던 영혼들을 위한 것이다.
처음 바울과 함께 승선했던 사람들은 바울을 어떻게 보았을까?
로마로 끌려가는 한 죄수였을 뿐이다. 그들은 끌끌 혀를 차며 이 비참한 죄수를 경멸과 동정의 눈으로 보았으리라.
광풍이 몰아치기 전에는 한낱 죄수였지만, 광풍을 만나고 죽을 위기에 처하자 이 바울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바울을 불러 그 소명을 이루어가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힘쓰고 애쓰며 모았던 모든 짐-자기들에게 부와 안락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물건들-들을 바다에 다 버리고, 생명을 지켜줄 배의 기구까지 버리면서 이제 죄수 바울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바울의 말이 무엇일까?
복음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주님의 십자가와 그 보혈이 아니면, 할 말이 없는 자가 바울이 아닌가?
바울의 이 심장을 주님이 아시기에 그에게 광풍 속에서 276명(37절)의 영혼을 붙여주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부터는 유람선을 타고 이 세상을 즐기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주님의 백성, 참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아가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존재이니 고린도전서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고전4:13b)처럼 대우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러니 애당초 유람선은 없다.
십자가에 연합되는 그 삶을 살면서 그 가운데 주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모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로 광풍 속에서 구원선을 타고 그 광풍에 시달리는 인생을 구해내는 일이다.
동정과 경멸의 눈으로 보았던 비참한 죄수가 오히려 그들을 살려낸다.
그것은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다.
나의 가는 길을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니, 나도 바울처럼 주님의 길을 따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광풍이 아니라 순풍이 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니 주님 앞에 이 마음을 회개한다.
죄수의 몸으로, 광풍 속에서 행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안다는 것,
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인가!
(묵상 기도)
주님,
죄수의 몸으로, 광풍 속에 있게 하신
주님의 뜻을 알고 기뻐합니다.
말과 글의 고백만이 아니라,
현실적 삶에서도 이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광풍이 부는 그곳에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이 있었듯이
광풍이 부는 이 세상에 주님만을 의지하는 제가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