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7일(주)
* 시작 기도
주님...
태초에 말씀이신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은 이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참 빛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주인 되신 그 분이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들조차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 영접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혈통 육정 그리고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오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시고 진정한 나의 남편 옆의 반쪽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서게 하소서.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27:13-26
제목 : 방주에 속하여, 모세와 바울에 속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여.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 나의 묵상
백부장 율리오는 항해의 위험을 경고하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항해를 시작한다.
바울 일행을 태운 알렉산드리아 호는 미항을 떠나 그레데의 뵈닉스로 출항하였다.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 선장과 선주의 말이 옳은 듯 하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 하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다.
배는 폭풍에 밀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결국 바람이 부는 대로 떠밀려 표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의 남쪽 방향으로 떠밀려갈 때 간신히 거루(구명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선원들은 구명정을 갑판 위에 끌어 올려서 붙들어 매고 배가 스르디스(모래톱)에 빠지지 않도록 돛을 내리고 바람이 부는 대로 떠밀려가도록 두었다.
갈수록 바람이 심해지자 이튿날에는 선원들이 짐을 바다에 던지고 3일째 되는 날에는 배의 장비들마저 바다에 던져버렸다.
여러 날 곧 열흘 넘게 큰 풍랑으로 인하여 해도 별도 보이지 않는 큰 흑암이 계속되고 구원의 여망이 사라졌다.
그런데 절망의 한 복판에서 바울이 일어나 구원의 소망을 선포한다.
먼저 바울은 백부장이 자기의 말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이런 타격과 손상이 왔음을 언급한다.
그의 경고가 절망의 현실로 나타난 지금, 이제라도 그가 한 말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는 안심하라’고 하며 배는 잃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을 천명한다.
그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곁에 서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반드시 가이사에게 서야 할 것과 그와 함께 배에 탄 자들도 그에게 맡겨주셨다고 하셨다.
바울은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26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리고 그들 모두는 어떤 한 섬에 밀려가 닿을 것이라고 하였다.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호에는 각양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자기 직무에 충실한 백부장, 곡물을 파는 상인들, 돈을 벌기 위한 선주와 그 배를 운행하는 선장, 로마의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에서 짐승의 제물이 될 죄수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타고 있다.
바울 역시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가는 죄수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께서 정하신 길, 곧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사명으로 그 배를 타고 있다.
그의 로마행은 주께서 정하신 길이며 거기에 순종하며 따르는 길이다.
주께서 정하신 길을 순종하며 가는 한 사람을 통해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없어진 이들이 구출된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베풀어진 그 날 저녁, 주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셨다.
주님은 그들을 보낸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 밤에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다.
제자들은 아무리 그 곤궁한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노를 저었지만 할 수 없었다.
적어도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로 잔뼈가 굵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헐몬산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언제 불어와 광풍이 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를 저어도 그 위경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산 위에서 풍랑으로 인하여 곤란을 겪는 이들의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이가 있다.
그는 곧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그 바다에 다 빠져 죽어야 할 자들이다.
그것을 갈릴리 바다에 이는 풍랑에 고난을 겪으며 헤매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다 빠져 죽어야 할 자들을 그리스도께 속하여(in Jesus Christ) 살리시는 것이다.
(창 6:1-8)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아내로 삼아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갔다.
그들이 세상에서 네피림 곧 거인이 되고 유명한 자가 되며 용사가 되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죄악 뿐이었다.
그들을 통해서는 도무지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로 심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20년이라는 세월을 참고 기다리신다.
그것은 노아가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로 그를 통하여 방주를 짓게 하시는 기간이다.
결국 땅에 속한 모든 기식하는 것들은 다 물에 빠져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방주다.
그 안에 있는 자들은 노아 부부와 그의 세 아들 내외이다.
그들은 방주에 속하여(in Ark) 생명을 얻어 물속에 빠지지 않고 살게 된다.
이 방주가 동일하게 등장하는 곳이 바로 모세의 갈대상자(ark)이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애굽의 바로 왕은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져 다 죽이라고 명하였다.
모세를 그렇게 죽여야 했지만 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웠다.
그 갈대 상자를 발견한 바로의 공주에 의해서 모세는 건짐을 받았고 또한 공주의 아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모세 역시 갈대 상자 곧 방주에 속하여(in Ark) 살아난 것이다.
이후에 그 모세가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출애굽을 한다.
출애굽의 가장 명장면은 뭐니뭐니해도 홍해 도하 사건 아닌가?
이 사건을 고린도전서에서는 이렇게 표현을 한다.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례가 곧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세례는 나의 옛 사람이 물에 빠져 죽고 새 사람 곧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는 성례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세례를 받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짐을 받은 것이 곧 모세에게 속하여(in Moses) 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세에게 속하여 구원을 받은 이들은 상징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재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오병이어 기적 이후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풍랑에 의하여 거의 빠져죽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고 계시던 주님께서 물에 둥둥 떠서, 다시 말하면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가셨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던 주님을 본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하자 주님이 하신 말씀은 이렇다.
(요 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그러고선 그 배에 타시자 그 배가 미끄러지듯이 가고자 하는 곳에 당도하였다.
오늘 묵상에 나오는 모세나 바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그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할 자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방주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예표한다.
나는 구약을 예수로 보지 못하고 그저 문자로만 보고 이해하려던 자였다.
그냥 문자로만 읽으면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런 자였다.
하지만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구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 성경은 곧 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요 5:39)이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 고꾸라졌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를 보아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를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야 성경이 복음이 되고 그 복음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이 생명을 증거하는 성경이야 말로 길과 진리가 아니겠는가?
* 묵상 후 기도
주님...
방주에 속하여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살았습니다.
모세에 속하여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살아났습니다.
바울에 속하여 지중해를 건너던 알렉산드리아 호에 탔던 이들이 구출되었습니다.
예수에 속하여 제자들만 아니라 이 세상 죄의 바다에 빠져죽었던 이들이 살아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속하여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이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거기에는 나의 어떠한 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가 그렇게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오늘 이 땅에 속한 많은 이들도 예수 그리스도 방주에 속하여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