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올케!
라고 써놓고도 못내 쑥스럽고 미안해서 지울까 말까 망설인다.
우리가 가족으로 살았던 지난 30년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던 말이라서 그럴까.
동생이 가고 없는 마당에 새삼스럽게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쓰는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처럼 올케가 우리 식구였을 때 좀 더 잘해줄 걸.
객지에 산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지낸 세월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사실 올케가 우리 집안에 들어왔을 때 모두들 축하보다 우려가 많았지.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란 책상물림이 시부모를 모시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셋이나 되는데.바람 불면 날아갈 듯 여리여리한 몸매와 작은 키도 걱정스러웠다.
저 몸에 애가 들어서기나 할까?하지만 올케는 그 모든 우려를 물리치고 강씨 집안의 2대독자에게 1남1녀를 안겨주었지.
캐리어우먼으로 시부모를 모시며 원만한 가정을 이루는 게 그리 쉬웠겠는가?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 들어와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살아준 게 그저 고마울 뿐이지.
사랑이 뭔지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스물다섯 살의 올케는 물매화처럼 작고 깜찍했었다.
무수리 같은 강씨 집안 여자들에게 올케는 공주였고 중전이었어.
이런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올케는 바보 온달에게 시집 온 평강공주 같았지.
뭇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사랑을 완성해 나간 그 외고집이 없었더라면내 동생은 평생 장가가기 힘들었을 거야.
나이가 어려 철이 없었던가? 올케는 어쩜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나 없었는지,
모든 여자들이 기피하는 결혼 조건을 골고루 갖춘 내 동생에게 어떻게 시집을 왔을까?
실은 동네 사람들끼리 돌아서서 흉을 보기도 했더란다.‘살아봐라. 살아봐. 두고두고 후회할 끼다.
’내 동생은 마초(macho)에 가까운 상남자면서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였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이리저리 방황하다 소 뒷발에 쥐 잡듯이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잡았는데
그게 아마 올케를 만나려고 그랬던가 보지?아니면 천하의 한량이 모범생 같은 올케와 어떻게 짝이 됐겠나?
그게 다 인연법이라는 거겠지.잔인하게도 그 인연이 30년 한정인 줄 아무도 몰랐다.
올케야, 나는 동생에게 부모를 맡긴 죄로 못된 시누이 노릇은 꿈도 못 꾸고 살았어.
행여 무슨 잡음이라도 들릴까 조마조마한 심정이었지.
나무꾼과 선녀 얘기처럼 올케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버릴까봐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동생이 아내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갯바위낚시와 골프에 심취했기 때문이었어.
나 같으면 그런 남편 참지 못했을 거야.
연애 대상으로는 몰라도 결혼 대상으로는 낙제에 가까웠던 남자와 30여년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
올케 눈의 콩깍지가 그렇게 오래 벗겨지지 않을 줄 몰랐어.
아이들 공부 끝나고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외칠 그 무렵 생각지도 않았던 말기암 진단을 받은 내 동생.
이후 2년여의 세월은 우리 모두에게 잔인하고도 끔찍했다.
10만명 당 1명꼴로 발병하는 희귀암과 싸우다 그로키 상태로 이승을 떠나버린 동생은이제 밤하늘의 별이 된 지 3년이 지났다.
돌아올 거라면 진작 왔을 걸, 아무래도 그는 영영 가버린 거다.
사랑하는 올케. 그러니까 이제 간 사람은 잊어버리고 새출발하길 바래.
기다린다고 돌아올 사람도 아니고, 돌아온다 해도 그는 이미 4차원의 혼령이야.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눈을 맞출 수도 없어.우리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우리에게 올 수가 없어.
산 사람은 산 사람끼리 살아야지.
30여년 살던 집을 팔고 올케가 이사를 한다기에 내 마음은 한량없이 가볍다.
그렇지, 그래야지, 이제 모든 과거와 작별해야 해.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제 막 생의 하프라인을 넘었을 뿐인데 포기하기엔 이르지.
요즘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은퇴하고도 사오십 년을 산다는데, 아직 남은 세월이 너무 많잖아.
얼마 남지 않은 공직생활 잘 마무리하고 다시 좋은 사람 만나 잘 살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내 동생 같은 악조건의 남자는 다시 만나지 않기를. 그런 남자 또 만나면 멋진 노후는 물 건너가는 거야. 알지?
그리고 자식들에게 절대 연연하지 말아. 그들에겐 그들의 인생이 있어. 아무도 내 인생을 보상해주진 않아.
죽을 때까지 내 곁에 함께 있어줄 단 한 사람을 만나길 바래.
올케, 아니 현우 에미, 아니 이제부터 정아씨라고 부르고 싶다.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제3의 인물이나 오래전에 알던 사람쯤으로 여기고 싶어.
어떤 간섭이나 참견도 하지 않을래.
한 남자로 인해 얽혀있던 모든 관계망에서 벗어나길 바래.
올케의 인생 2모작이 풍년으로 마무리되길 빌면서 이제 시누이라는 이름을 가볍게 반납하고 싶다.
정아씨, 잘 살아야 해. 정말 사랑해!
첫댓글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네요.
코가 씽^^ 합니다.
긴 여행후 여독을 풀면서 오랜만에
참 따뜻하고 고운 글을 봅니다.
한 자, 한 자 진심이 가득 느껴집니다.
감동적이고 사랑스럽습니다.
고운 마음도 그대로 느껴졌어요..
물매화 같다는 정아씨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저는 요~,
정아님의 시누님~
옥이님을 사랑합니다.
어여쁜 올케를
예쁜 마음으로 봐 주는 어진 시누이 옥이님~
이 세상 시누이로써는,
최고요.
제일 입니다.
치과가는 버스에서 글을 읽고는
등록을 못했나 봅니다.
집에 와서 보니 댓글이 없네요.^^
정아씨, 부디 행복하셔요._()_
올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글입니다.
그 마음 받아서 그분,
정아씨라는 이름으로
남은 반생 잘 살아가시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한집안에 시집와 고생많이한 한여인 즉 올케를 회상하는 글이 슬픕니다. 어느 집안이나 이런 사연쯤은 거의 다 있으니 이게 인생사라고 여기기 바랍니다. 근데 이글을 올케가 보나요?
동생을 잃고
올케가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서
올케를 끌어안는
옥이 님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얼음덩어리 같은
마음들이 해빙되어
자유라는 바다로
흘러가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옥이 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야 합니다
멋진 시누이시네요.
실상, 부부의 일은 그 부부 말고는 아무도 알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모르는 이는, 가족이기 싶구요.
그 분이 어떤 결정을 하던, 존중하고 조용히 응원하는 것 또한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