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시 황지 자유시장 앞에 우뚝 솟아있는 연화산
강원도 태백시 황지 자유시장
제천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짐차를 몰고 태백 황지시장에 도착했을때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황지시장도 파장 무렵인지라 일찌감치 숙소를 정해놓고 태백역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곧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오전 태백 황지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삼척 중앙시장으로 가려고 삼척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너무 오랫만에 이곳에 들려서 그런지 그날 따라 시장앞에 솟아있는 연화산이 더욱 우뚝해
보였다
연화산은 태백시장 바로 앞에 괴물처럼 우뚝 솟아 있는 산인데 그 높이가 1,170m에 달하는 산이
다. 등산할때 1,170m 산이라면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황지시장 바로 코앞에 1,170m짜리 산
이 떡 버팅기고 솟아 있으면 그 체감높이는 바닷가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는것처럼 높아 보인다
짐차를 몰고 연화산의 험악한 S코스 산길을 15분정도 어지럽게 달려왔더니 통리역이 보였다
통리역은 우리나라에서 추전역 다음으로 두번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이다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지점인 통리역앞 통리협곡 - 이곳부터 삼척 신리고개가 시작된다
통리역 앞에서 신리고개로 넘어가는 건널목을 건너 삼척 방향으로 조금 올라갔더니 통리협곡
앞에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삼척은 42Km, 도계는 10Km 남았다고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가르
켜 주고있다
나는 여기서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삼척시장으로 가는길을 포기하고 신리고개를 넘어 동활계곡
에 있는 보리밥집에 가기로 작정하였다. 신리재의 동활계곡 보리밥집은 40대 초반의 부부가 하고
있는곳인데 첩첩산 골짜기에 콕 쳐박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곳에 자리잡
고 있는 너와집 비슷한 곳이다.
내가 태백 황지시장과 동해, 삼척시장을 들락거리며 가끔 한번씩 들려서 머물다 오던곳이기도
한데 그 주변엔 너와집과 굴피집들이 지금 현재까지 남아 있는곳이기도 하다
삼척 신리고개 통리협곡 -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이 깊다는 협곡
삼척 신리재 동활계곡의 문패도 번지수도 간판도 없는 보리밥집에 가려면 저 통리협곡의 신리재
를 넘어야 한다. 저기 산등성이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골짜기는 미인폭포라고 하는곳인데 미인
폭포는 해발 900m 정도의 신리고개 정상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리재 정상에서 S, Z 코스의
험악한 산길을 타고 약 20리정도를 내려가면 삼척시 가곡면 동활계곡에 있는 보리밥집이 나온다
저 통리협곡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층으로, 심한 단층작용과 흘러내리는 물에 침식되어
생겼다고 하는데...흘러 내리는 물에 침식되었다는 것은 알아 먹을 수 있지만 중생대하고 백악기
하고 또 뭐드라......아 ! 그렇지, 퇴적된 역암층과 단층 작용이라는 이야기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
도 도대체 뭔 소리인지 나한테는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상 태백, 삼척 여행 팜풀렛에서 읽었던 내용임)
그런데 이것만은 알 수 있다
언젠가 어느 사진첩에서 미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협곡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 모양과 비슷하게
닮아있다는것, 이것만은 확실한것 같다
삼척 신리고개 통리협곡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성이 차지 않아 다시 몇방을 더 찍어 봤으나 줌 기능이 없는 폰 카메라
였기에 역시 마찬가지 였다. 그래도 협곡사이로 희미하게 폭포의 윤곽은 잡힌것이 좀 전의 사진
보다는 낳은것 같다
이 곳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골이 가장 깊다는 그 악명높은 통리 협곡인데 길이는 약 10Km
정도로 뻗어있으며 가장 깊은 골은 여의도 63빌딩 보다 훨씬 깊은 300m에 달한 다고 한다
이곳에서 선체로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까마득한 통리협곡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미인폭포라고 하며 옛날 전설로는 어느 미인이 치마폭을 감싸고
자살을 했다하여 미인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좀 전에 말했던 신리재 동활계곡 보리밥집에 가려면 저 미인폭포를 지나서
자동차로 20여분 정도를 더 내려가야 한다
화전민이 아직까지 살고 있는 삼척 신리 너와집
신리재 정상의 통리협곡이 시작되는 부분인 미인폭포 있는곳에서 약 15분 정도만 자동차로 내려
오면 신리 너와마을이 나오는데 이 곳에서 삼척 가곡면 풍곡리 방향으로 약10분 정도만 더 내려
가다보면 보리밥집이 있는 동활계곡이 나온다
삼척 신리고개 협곡
삼척 도계읍 너와마을에서 풍곡리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이와같이 골이 깊고 불가사의한
협곡들이 약 십오리정도에 걸쳐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 모양은 마치 중국의 양쯔강이나 황하강
중상류의 깍아지른듯한 협곡을 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삼척시 가곡면 동활계곡
좀 전의 신리 너와마을에서 약 10분정도 협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이처럼 골이 깊은
동활계곡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문패도 번지수도 간판도 없는 신리고개 보리밥집이다
내가 태백 황지시장에서 동해, 삼척시장으로 넘나들때 잠시 들려 이불 한장 주고 보리밥과 차도
한 잔씩 얻어 먹으면서 신세지고 가던 곳이였는데, 이날 와보니 집은 문이 잠겨져 있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원래 이 집의 주인한테 물어 보았더니, 한 달전에 이곳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 집의 원래 주인은 바로 이 옆에 살고 있는데, 이 부부들에게 살아 보라고 집을 내주었다고 한다
부부는 이곳에서 약 10년간 살다가 갑자기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동두천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장, 저장, 요장, 그장을 환장하게 싸돌아 다니며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내 마음의 쉼터 였었는데 갑작스런 소식을 듣고나니 벌어진 입이 닫혀지지가 않았다
어찌나 허탈한지 나는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허무감을 어찌하지 못하고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그 보리밥집만 쳐다 보다가 비어있는집 구석 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삼척시 가곡면 동활계곡 보리밥집
짐차를 세워놓은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면 두 부부들이 했었던 보리밥집 담장이 보이고
그 주위를 살펴보면 우뚝 솟은 고봉들로 막혀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아침에는
해가 늦게 떠오르고 초저녁에는 일찌감치 해가 넘어가는 음지에 자리잡고 있다
저런 장소는 초저녁부터 산 그림자가 어둡게 덮쳐오기 때문에 고요하기는 하지만 햇볕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다. 그런 이유 때문에 자칫하면 사람의 성품도 적극적인 양기보다는 소극적인
음기로 기울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살았던 부부들은 워낙 표정들이 밝고 심성또한 고와서
그런 음하고 습한 지리적인 여건들은 별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듯 하였다
이곳 동활리 보리밥집은 너댓 가구가 올망 졸망 모여 사는곳이고 겨울이 오면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다. 지대가 높고 또 개울가라서 더욱 춥다
쌀은 없어도 견딜수 있지만 장작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수 없는곳이다
그래서 부엌옆 통나무 창고에는 두 부부가 겨울을 보내려고
참나무, 콜크 나무등을 패서 장작을 만들어 차곡 차곡 쌓아놓곤 했었다
그리고 이 동활리 보리밥집 부근에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스님이 하나 있는데
그 스님은 이 보다 더 깊숙한 계곡가 숲속에 산채를 지어놓고 20년째 살고 있다
주인잃은 가곡면 동활리 보리밥집
내가 삼척, 태백시장에 넘나들때면 나는 꼭 이곳 보리밥집에 들려서 점심을 먹고 동해 바닷길을
따라 묵호, 강릉쪽으로 넘어간 일이 종종 있었다. 어쩌다가 저녁시간에 들리면 이 부근에 사는
스님과 보리밥을 먹고 그 스님의 숲속 산채에서 하루밤을 신세지기도 했었다
보리밥집 부부는 10년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동활리 마을로 이사와서 보리밥도 팔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았다. 이곳에 들리는 손님들이라고 해봐야 산림청 직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길을 지나면서 가끔 들리는 외지 사람들이 전부였다
주인잃은 가곡면 동활리 보리밥집
신리고개 동활리 보리밥집은 60년전에 지어진 집이라서 기둥의 색깔은 검은 빛깔을 띄고 있는데
그래도 넓직한 앞 마당에는 서너그루의 큰 감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부부들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첩첩산중 신리고개에 보리밥집을 차리고 10년동안
살았는데 보리밥집 모양새는 1920년대 강원도 산골마을 특유의 너와집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동활리 바로 옆마을은 지금 현재도 너와집이 군데 군데 산재해 있는데, 그 마을 이름은
전국에서도 너와 마을로 유명한 신리 마을이다
보리밥 한 그릇에 오천원씩 했는데 나물과 채소등 반찬이 10여가지가 나온다
자신들이 텃밭에 직접 농사를 지은 채소와 산에서 캐온 산 나물이 주 반찬인데
화학 향료와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않고 단 한 그릇이라도 정성스럽게 해준다
요즈음 도시의 웬만한 식당에서는 너무나 많은 향료와 조미료를 쓰기 때문에 이제 도시인들은
맛의 감각을 잃어 버리고 있는 실정인데 이 곳에서는 채소나 산나물 고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수
있었다
사실이지 요즈음 도회지의 식당가에서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인스턴스 설탕을 듬뿍
치고, 미원, 기름, 맛나, 다시다, 각종 향 색소 양념등등으로 포장해 이제 도회지의 사람들은
혀의 감각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것이다
본래의 맛을 숨기고 조미료나 설탕, 각종 향, 색소 양념등등을 듬뿍쳐서 위장하는것...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혀 속임에 해당하는것이 아닌가 ?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대뜸 이런 이야기부터 한다
" 느이 마누라는 화장도 않하고 사냐 ? "
물론 이렇게 반문을 던져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 말에는 나도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지 못하고는 있지만, 지금 현재 우리의 혀는
맛의 감각을 상실한체 표류하고 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주인잃은 삼척시 가곡면 동활계곡 보리밥집
내가 언젠가 원덕에서 태백으로 가는도중 이 부근을 지날때 폭설을 만난적이 있었다
그때 이 보리밥집 부근에 살고 있는 스님네집에서 이틀을 보내며 보리밥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하루는 폭설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을때 그 스님네 산채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이곳 보리
밥집에 들렸던적이 있었다. 그때 무쇠로 된 난로에서는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고, 우리는 보리밥
을 먹고난 다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로옆 마루에 있는 오래된 고가구에는 시집도 몇권 꽃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빛 바랜 시집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다음 쓰라린 상처를 가다듬으며 오랫동안 혼자 살았던 도종환 시인
한때는 한반도의 많은 남녀노소들을 눈물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도종환 시인
읽는 순간 소름이 솟구치면서 솜털이 솟는듯한 감성의 시어들
접시꽃 당신과 첩첩산중 보리밥집 당신 ?
웬지 묘한 뉘앙스가 풍기기에 옆에 있는 스님에게 한 번 넌지시 물어봤다
" 요즘 도종환 시인 어떻게 산대요 ? "
" 아마도 새장가 들었다고 하지 "
스님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듯 시큰둥하게 한 마디 하고는 국화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이 땅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얼마나 많이 낭송했던 시어들이였는데
아무래도 도종환 시인한테 내가 옛날에 샀었던 책값 물어 달라고 해야 하나 ?
나는 속으로 이렇게 구시렁 구시렁 거리며 짤막하게 한 마디 했다
" 내 책값 돌려줘 ! "
그때 그 스님도 차를 마시다 말고 또 뚱하게 한 마디 한다
" 사발꽃 당신한테 돌려 받어라 "
사발꽃 당신 ?
다 같은 그릇인데 사발꽃 당신하고 접시꽃 당신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
나는 그 스님의 시큰둥한 짧은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 갸웃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스님이 조금 농담섞인 말로 장난 스럽게 한 마디 했다
" 여자는 끝없이 설명하려 들고 남자는 끝없이 얻으려고 하지
그것이 여자와 남자가 지니고 가야할 피치못할 운명 아닌가 ? "
" 에이 ~ 스님 ! 무신 말씀을...내가 전에 어느 잠언집에서 본 내용인데 남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쁜날이 따악 두번 온다고 하던데요 "
그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호기심있게 듣고 있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 그 기쁜날 두번 온다는 날이 어떤 날인데요 ? "
나는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조금 뜸을 들이고 있는데 귀를 쫑끗 세우고
빤히 들여다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아무생각없이 한 마디 내 뱉고 말았다
" 남자들이 살아가면서 기쁜날 두 번 찾아오는날이 무엇이냐 하면...하루는 여자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고...또 하루는 ... 하루는....그 여자 장례식에 참석하는 날이라고 하던데요 ! "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람들이 킥킥...거리며 웃고 있을때
스님이 또 시큰중하게 한 마디 한다
" 또 푼수 떨고 있네...이 소리를 사발꽃 당신이 들었다면 너는 초상치러야 한다 "
그렇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내 뱉은 이야기는 푼수 떠는 이야기에 불과 한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살아평생 아내에게 옷 한 벌 못 해주고 아내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다
고 하는데 그때 옥수수밭 옆에 아내를 묻고 돌아오던 심정...워찌 말로 다 할 수 있었겠으리...
하지만 지난날 그리움의 말들은, 특히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가다 보면
웬만큼 단단한 그리움이라도, 점차로 퇴색되어 빛이 바래 버리고 마는것이 사실인가 보다
주인잃은 삼척시 가곡면 동활계곡 보리밥집
이곳 가곡면 동활리 벽지마을에서 농사와 보리밥집을 하면서 살았던 부부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
하여 사는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이 주인잃은 보리밥집은 시간이 막 가다가 어느 한곳에
정지 되어 있는듯하다
내가 이곳을 지날때 폭설이 내려 어쩔수 없이 이 부근에 살고 있는 스님과 함께 한 이틀 지낸적이
있었다. 그때 저 보리밥집에서 몇일 밥을 먹어보니 도시의 시장에서 길들여졌던 균형잃은 혀가
제 감각을 찾아 오는듯 했다
이렇게 우리는 도시의 생활을 하면서 그 도시의 흐름에 묻어있는 소음속에 우리들 자신을
내 던지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울리는 소리,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 하루 웬종일
티브이라는 먹통상자에서 흘러 나오는 온갖 소리에 길들여져 둔감해져 있었던, 눈과 귀가
이곳에서 한 이틀을 보내고 나니 다시 제 기능을 찾고 있는듯 했다
하지만 지금 저 보리밥집은 주인을 잃은체 그냥 그자리서 시간이 정지 되어있다
불과 한 달전까지만해도 그들 부부는 이곳에 있었다고 이웃집 사시는분이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사이에 벌써 이렇게 귀곡산장같은 스산한 집으로 변하고 말았다
집이란 것은 주인이 돌보지 않고 몇일만 비워 놓아도 이렇게 먼지가 푹푹 쌓이고 폐가처럼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수시로 돌봐주어야 집도 숨을 쉬면서 화사하게 살아 나는것인데
이런 산골 벽지마을에 한 달 이상을 비워 두었으니 오죽하랴 !
내가 이곳에 마지막으로 들렸을때가 이때로부터 5개월 정도 되었으니, 내가 가고 난뒤 3~4개월
만에 갑작스레 이사를 간 모양이다. 이웃에 사는 할매한테 어디로 이사 갔냐고까지는 물어 보았
지만 왜 이사 갔냐고는 물어 보지 못했다
이런곳에서 10년동안 살았던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야지
그 부부들이 이곳에 살고 있을때는 이 보리밥집 마당이 온통 꽃밭이였다
빨강꽃, 파란꽃, 노랑꽃, 하얀꽃...그야 말로 아사궁전과 같은 화사한 꽃들이
봄 여름 가을 할것없이 온 마당 가득 울긋 불긋 수놓고 있었다
그런데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리게 되면 꼼짝없이 한 몇 주일은 방에 꼭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한 번 왔다하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기 때문에 눈속을 파헤쳐 길을 내고는
굴속 같은 눈길을 두더쥐 처럼 헤집고 다녀야 한다
길고긴 겨울밤 !
폭설이라도 내려 교통이 두절되면 이 부부들은 좁은 방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겨울 이야기들을 두런 두런 주고 받았으리
눈 속에 햐얗게 파묻힌 겨울밤의 긴긴 이야기들을...
첫댓글 다 이저뿔고 이런디서 밥장사 허는 재미도 괘않으껀디... 맨날 보리밥집타령이더마는 인자 써운해서 어찐디야? ^^
지난날 이부부 이야기 읽었는거 생각납니다. 지금쯤 그때보다 더 마음에 더는 삶을 살고있기를 바랍니다. Good Luck..
강원도 황지 ...가슴이 찡 했어요. 울렁증까지...그리운 고향이지요...나먹통아님님..감사해요. 너와집도 잘 봤구요...며칠있다 강원도 다녀 오려고요...강릉에 언니가 살아요. 올 해 이사 갔거든요....꼭 갈 수 있었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매봉산 밑 피재에서 시작헌 낙동정맥은 통리역 앞에서 하산주루 탁배기 한잔허구 지나온 낙동정맥 길에서 만나 통리역 이구만 이라우 ^^
먹통아님께서 다니시는 길을 다라... 팔도강산을 유람하고 싶은 생각이 간잘합니다. 심산유곡, 오지탐험이 될테니까요. 먹통아님의 글을 빠짐없이 모아두었다가 여행자료로 활용하렵니다. 잘 봤습니다. 갑사합니다.
가슴이 아리합니다.... 웃다가 울다가 글 잘읽어보고갑니다^^
유수처럼 흘러간 세월이 아련히 떠오르고, 주인잃은 지게와 삼태기가 보리고개의 추억속으로 사라져 가는것이 삼라만상의 우리네 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