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9일(일) 공주 한옥마을 시낭송
지정시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보름달 / 김종해
눈비에 젖는 일이 예사로운 날
하루의 악천후와
미끄러운 활주로를 거쳐
간, 신, 히,
격납고에 기체를 집어넣고
감사 기도를 짧게 하고
오늘 일을 끝낸 다음,
내 집으로 오르는
현관 계단에서 멈칫,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이 있어
나는 하늘을 잠시 보았다
아, 하늘에는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신다
쥐불놀이 / 임영준
자! 신명 나게 돌려볼까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마을이 훤히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말썽꾸러기들 모조리 모아놓고
폐부를 찌르는 혓바닥 송곳으로
넋 빠진 깡통에 사정없이 숭숭 구멍을 뚫고
얽히고설킨 인맥이니 당파니 하는
끈으로 묶고 안에다 잡놈들의 패설을 깔고
끝도 없는 탐욕의 지푸라기를 넣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잡귀들도 쑤셔 넣고
온갖 거짓과 야욕의 감투들을 찢어 넣고
저만 잘났다는 착각의 부싯돌로 불을 붙여
원도 한도 없이 가열차게 돌려보자
시뻘겋게 돌아가다가 튀어 오르는
불씨들이
애끓는 벌판을 태우고
침묵하는 비겁을 밝히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번져나가게 하고
설움에 짓눌린 잡초들을 일으킬 때까지
안간힘을 다해 돌려 보자
쥐불놀이로라도 원 없이 풀어보자
정월 보름달 / 오인숙
일기예보에 흐렸어
올해는 '달 보기 힘들다더라'
포기를 했다
달이 달이지 뭐
언제나 달은 뜨는 것
하늘을 보았다
달이 떠 있다
동그란 둥근 달이 아닌
약간 일러진 모습
나뭇가지 걸렸어, 힘겨워한다
세상 사람들 소원이 무거워
다 들어 줄 수 없음에
얼굴이 일그러졌나 보다
나마저 무겁게 할 수는 없어
얼기 설깃 엉킨 전깃줄에
달을 걸어 두고 돌아왔다
대보름 / 박경리
보름 전야
불 끄고 잠자리에 들다가
환한 창문
보름달을 느꼈다
대보름 아침
연탄을 갈면서
닭 모이를 주면서
손주네 집에서는 오곡밥을 먹었을까
자역질 하듯
시시로 떠오르는 생각
차 타면 몇십 분에 가는 곳
멀고도 멀어라
글을 쓰다가
말라빠진 날고구마 깨물며
슬프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달님도 인터넷해요? / 김미희
선생님이 노랗고 동그란
달님 그림을 나눠 줬어요
정월대보름 달님에게
소원을 적어
비밀상자에 꼭꼭 넣어두면
달님이 소원을 들어준단다.
아이들 질문이 쏟아졌어요
3반에도 나랑 이름 같은 애 있는데
달님이 헷갈리면 어쩌죠?
오월에 이사 가는데
나를 못 찾으면 어쩌죠?
선생님, 달님도 인터넷해요?
이메일 주소도 적을래요
소원은 한 줄인데
나를 알리는 글자들이
달님 얼굴에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