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숙 山宿
백석
여인숙이라도 국숫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산중음 山中吟 中
*****
지금 제 옆에서 이중언어^^로 온갖 노래를 다 불러대며
요조숙녀같이 참하게 앉아 스킬자수로 아기공룡 둘리를 수놓고 있는 사람은
한 덩치 하시는 울 아들 재원이 입니다 ㅎㅎ
다음주에 있을 학교 축제에 작품을 하나씩 제출해야하는데
눔이가 요즘 배우고있는게 스킬자수라 그걸로 내려구요~
지루해하면 안 시키겠는데 얼마나 재밌어하는지
다른 친구들 하나할때 세개나 만드는 통에
그중 제일 잘된걸로 내려고 합니다
오늘 시험감독하면서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을 헤아려보니
여학생이 확연히 수가 적습니다
'햐...이 눔이를 어떻게 장가보내나...'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한편으론 ' 울 딸내미는 배짱 퉁기며 보낼 수 있겠는데~!'하며 쾌재도 불러보고
지루해서 교실 뒷편에 걸려있는 세계전도 샅샅이 훑으며
신부님과 스텔라샘과 순례하시는분들이 어디쯤 가 계실까...상상도 해보고
칠레의 산티아고도 눈으로 죽~ 따라가보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도 나와있진 않지만 요기 어디쯤이겠지 하며
콕콕 짚으며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어제 도가니영화를 보고
잠을 못이루고 울어서 눈이 통통 부었다며 빨간 토끼눈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학교에 눔이따라 오~래 다녀서가 아니라
선생님이라 불리는 분들을 믿습니다
때로는 선생님이 되려고 처음 마음 먹었던 그 순수한 열정이
세월에 좀먹고 가려져 안보인다해도
언제라도 그 초심을 발휘할 계기가 되면,
또는 16년이나 지난후에 비로소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어느 선생님의 고백과도 같이
언젠간 빛을 발하게 될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본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혹 매너가 세련되지 못한 분은 계셨지만^^
그 근본은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들이란걸
어른인 저는 알수가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잘 다가가지 못해서 안타까울때가 많았지요
시대에 맞춰 교수법이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가끔씩 생각 합니다...
어린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이고
책임 막중한 일인가를 매일매일 가슴에 담고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스승과 제자, 서로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존재들인가요...
집에 오는길에 대추를 만나서 두 봉지를 사들고 룰룰거리며 왔습니다^^
대추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면 늙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저는
생대추가 나오는 계절을 기다립니다~
사실은 먹는걸 좋아하니 온갖 핑계를 대는 거지요 하하~^^
방금 딸내미가 와서 재원이가 얌존히 스킬자수 놓고있는걸 보더니
이런 구경은 돈주고도 못한다며 서둘러 씻고 나와 곁에 앉아 참견을 해댑니다^^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일찍 마치고 상록수에 날마다 갔더니
눔이가 아주 신바람이 나서(맛있는걸 많이 주니깐^^)
시험마치는 종이 울리면 가방을 메고 쏜살같이 튀어나갑니다 ㅎㅎ
그렇게 꼬리를 흔들며 전철을 타고 상록수에 가서 일을 하고
노곤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길은
평화롭습니다
눔이는 반찬거리 봉지를 들고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저만치 앞서가고
저는 "같이 가~"를 연발하며 따라가느라 종종걸음을 치지요^^
그러다 어느 한순간 ,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물이 핑 돌때가 있습니다
곁으로 무심한듯 지나가는 사람들도 감사하고
교복입고도 부끄러워하지않고 찬거리 봉지들고 신이 난 녀석도 감사하고
종종대더라도 녀석을 놓치지않고 따라갈 수 있는 다리가 감사하고
큰아이 학교옆을 지나며 그 안에서 공부하고 있을 딸내미도 고맙고
최선을 다해 살아주는 제 곁의 모든 존재들이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백화 白樺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산중음 中
*****
이제 저녁상을 봐야 겠습니다
빨랑 먹이를 안주면 저를 드실지도 모르니까요 하하~~^^
딸내미가 급기야는 스킬자수를 뺏어들고 자기가 하고 있네요
재원이는 옆에서 실가닥을 집어주라고 시켜놓고요
착한 눔이는 초록실 하얀실 주문하는대로 집어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자랑할것 없는 우리가족이지만
오늘도 무사히 밥상머리에 모여 앉았고
남편 딸 아들 그리고 저까지
너무 잘나서 남 기죽이지 않으니 그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세월따라 충실히 다운 그레이드 해주는 똘똘한 몸을 가진 저는
드디어 안경을 잡숫고 책을 뒤적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코도 순해지고
귀도 순해지고
마음도 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내가이렇게외면하고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것은
또 내 많지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것은
맛도 있다는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
첫댓글 코도 순해지고, 귀도 순해지고, 마음도 순해지고...으로 고 갑니더
글이...참 편안해서... 피곤이 스르르 풀리는 듯 합니다.
'너무 잘 나서 남 기죽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못나서 남 기 살리는 1인 댓글
저녁 맛나게 드세용
엄마 옆에서 스킬자수 놓는 재원이와, 다예, 착한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이 백석 시인의 시만큼 고요하고 아름답습니다.
저도 냉동실에 얼려 놓은 대추가 있는데 꺼내어 대추차라도 만들어야 겠습니다.
진하게 한 잔 마시고 나면 저도 좀 젊어지려나요? ^^
가브리엘라님오늘 한결 젊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보내고 계실것 같은데요 대추차 생각은 못했는데 저도 만들어봐야 겠어요
너무 잘 나서 남 기죽이지 않는...그래서 고마운 가족 여기..한 가족 추가합니당 왠지 당당한 이 기분은 뭘까요..잘나지 않아서 감사한...뚱땡님 덕분에 주제파악다시하고 다시 살 맛이 나네요...편안한 글 속에 남 살 맛나게 해주는 재주있음을 그대는 아시는지 몸피곤해 망설이던 오후특강들으러..부지런히 준비해서 갔다와야겠어요^^ 좋은하루 되시공
마텔라님 지금쯤 강의 듣고 계시겠네요 저도 못난거 다행스러워하며 당당하게 지내야겠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하느님이 나를 만드신 탓이고.. 내가 이렇게 뼈빠지게 일하는 이유는 그 일들이 나를 눈빠지게 기다리는 탓이고.. 내 마음이 지금 이렇게 기쁜 이유는 땡이님 탓이오다..^^
저로인해 기쁘시다니 저 오늘 저 밥먹을 자격있네요 미소님 기다리시는 그 일들이 하느님 일들인가봐요 미소님 덕분에 저도 감사합니다
허걱..=.=;; 제가 하는 그 일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일들이 아니구요 앙~ 걍 목구멍이 포도청인 딱 그 이유 하나인데.. 여튼 그 일들조차 하느님 생각하며 하라시는 땡이님 격려.. 캄사합니다~ 잘 나지 않아 넘 기죽이지 않고, 많이 못나서 넘 기살리는 일 저 최고로 자신있어요. 이런거 자랑해도 되는건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__^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열심히 일하는 그 일이 하느님 일이고 아름답다고 저는 생각해요 열심히 일에 몰두해있는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잔잔한 미소까지 띄우고 계시면
주어진 삶을 버거워하며 억지, 대충 걸어갈까.. 감사히 받안 안고 씨 뿌리고, 다듬고, 떨어진 열매 없나 둘러도 보고, 탐스러이 익은 열매는 깊이 음미 하며 걸어갈까... 뚱이님의 글을 만나니 마음 속 쉼터에 앉아 쉬며 생각 중 입니다.^^
오늘 아침 미사를 드렸어요, 언니손에 끌려가긴 했지만 신부님 강론 들으면서 저도 마음속 쉼터에서 평안함을 느꼈습니다...삶이 누구에게나 버거울거란 생각이 들어요, 저만 힘든건 아니니까 징징대지 않아야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쉬운날도 있고 어려운날도 있고 그러네요
앗, 대추를 보고도 지나치면 늙는다는거 진짜예요?? 그럼 대추 찾아다니면 회춘할까^^
에구...내가 착초님땜에 몬살아...
평화로운 가족그림 잘 보았어요. 매사에 그렇게 감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거쥬를 보냅니다.
한등치 하는 눔이 스킬 자수 놓고 있는 폼 정말 장관일것 같아요.평화로운 일상에
뚱님은 아이들과 생활을 하여 눈높이을 아이들과 함께 하니 언제나 영혼의 맑음이 느껴져요.또 선생님도 가까이 늘상 대하시니 그분들의 애환도 보게 될 것이구요.이 세대는 사제의 선이 무너지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의 부재를 논한다 하더라도 이직 우리는 선생님을 믿어야 겠지요.그 부분에 대해 많이 속상합니다.우리의 마지막 보루인데
그러게요...교육이 우리의 마지막 보루이지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그렇지만 이슈가 되는건 늘 그런 고약한 일들이고 우리에겐 아직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고 생각해요 희망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모두 다 비가 오더니 바람이 차가와지네요 따뜻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셔요
나를 먹을지 모른다는 말에 ~~너무 웃습니다요. 그 마음 알것 같은 ?? 모두들 가정에 성모님들이세요.나는 누군가 하면서....!ㅎㅎㅎ
소금님이 제 심정^^을 아시네요 배고프면 울딸은 참말로 제 팔을 잡고 "엄마 냠냠 먹어야지" 한답니다 무서버요 소금님은 대가족의 성모님이시죠
마음을 온전히 비우면 마음 가득히 기쁨이 올라오겠지요. 항상 마음을 못 비워서 상념이 많아요. 날씨가 추워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하늘바람님 많이 추워졌지요 어제는 비가와서 좀 덜 건조한것 같아요, 어른들이 비가 더 와야한다고 하시더라구요 따뜻하게 주말 보내시고 새로운 한 주 맞으세요
저도 모르게..평화가 ..재원이 옆에서..자수놓는 모습..편안한 맘으로 바라보고 있는 착각을 햇어유....뚱댕님..글 많이 올려 주세유^^...즐거우니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