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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11
1. 경기장 앞 (낮)
경기 끝나고 우루루 몰려 나가는 사람들.
2. 경기장 일각 (낮)
옷 갈아입은 태웅, 관객석 사이를 뛰어다니며 보라를 찾는다.
보라가 서있던 곳 근처를 둘러보는데 보이지 않는다.
관객석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찾는 태웅. 아무리 봐도 없다.
태웅, 밖으로 달려 나가는데.. 태웅의 뒤쪽으로 지나가는 보라. 서로 못보고 스쳐간다.
3. 경기장 앞 (낮)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보라를 찾는 태웅. 역시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보라처럼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
태웅, 정신없이 사람들을 헤치며 여자를 쫓아간다.
태웅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헤치며 여자에게 달려가는 태웅, “보라야!” 하며 확 돌려세우는데 다른 사람이다.
여자, 놀라서 의아하게 보는데.. 태웅,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착잡하게 돌아선다.
힘빠진 표정으로 걸어가는데... 저만치 멀리 혼자 걸어가는 보라의 뒷모습이 보인다.
덜컹해서 보는 태웅.
4. 경기장 앞 일각 (낮)
눈물 닦을 생각도 못한 채 걸어가는 보라, 멍하게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습 위로 플래시백.
# (10부 70씬)
보라 시점에서 보이던 태웅의 모습. 심하게 얻어맞고 있는 모습들.
보라, 참으려 하는데 눈물이 계속 난다. 억지로 몇 걸음 더 떼놓는데... 엉엉 눈물이 터져 나온다.
주저앉아 서럽게 울어버리는 보라.
5. 근처 일각 (낮)
그렇게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보라를 보고 있는 태웅. 다가설 수가 없다.
울고 있는 보라와 멀리서 지켜보고 선 태웅.... 두 사람의 롱샷.
6. 삼겹살집 (밤)
고기 구워먹는 체육관 사람들.
동필, 준우승 트로피를 껴안고 오바하고 있다.
동필 : 관장님, 그 자식이 치사하게 반칙만 안했어도 내가 우승하는 거였다니까요?
승리야 너 봤지? 걔가 심판 몰래 팔꿈치로 나 친거, 분명히 봤지, 그치?
승리 : 보긴 뭘 봐... 오빠 실력에 준우승 했음 기적이거든? 괜한 유언비어 남발하지 말고 고기나 드셔.
동필 : (허 기막힌) 충식아, 니는 분명히 봤지? 그치?
충식 : 형님아, 고기나 먹어.
동필 : (답답한) 와...나 진짜.. 금수야, 은복아!!! 니들은 이 형 억울한 거 알지?
관장 : 시끄럼마. 넌 오늘 할 만큼 했어. 득구가 좀 아쉬워서 그렇지. (태웅 보며) 얌마 너 아까 중간에 왜 흔들렸어?
동필 : (표정)
관장 : 초반에 좋았잖아. 잘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훅 한 대 맞았다고 그렇게 무너져버림 어떡해?
태웅 : ......
충식 : (멈칫 태웅 표정 살피고) 에이 관장님 시합 다 끝나고 그런 말 하면 뭐해요?! 자, 자 우리 모두 다같이 한 잔 하자구요!
동필이형! 이제 계체량 안해도 되니까 맘껏 먹어!!!
충식, 분위기 띄우며 술 권하고 착잡하게 앉은 태웅의 표정.
7. 식당 앞 (밤)
체육관 사람들이 우루루 나온다.
동필, 트로피 들고 “2차 가자! 2차!!”하며 떠들며 관장, 금수, 은복 등과 멀어져가고
승리와 충식, 태웅이 남아 있다.
승리 : (문득 태웅 돌아보며) 오빠도 2차 갈 거지?
태웅 : 난 들어가서 쉴게.
승리 : 왜애... 같이 가자! (멀어지는 금은동 힐끗 보며) 아빠랑 금은동 삼형제 떼놓고 우리 셋이서 한잔 더 하자. 응?
태웅 : ... 미안하다. 승리야... 오늘은 너희들끼리 마셔.
충식 : (눈치 탁 채고) 그래, 승리야. 득구, 오늘 피곤할테니까 그냥 보내주자.
(태웅보며) 어서 들어가봐. 우리끼리 놀다 들어갈 테니까.
태웅 : 그래... 나 간다.
승리 : (멀어지는 태웅 의아하게 보며) 득구오빠 왜 저래? 시합 져서 많이 속상했나?
충식 : (주저하며) ....아까 시합 때.. 보라 왔었어..
승리 : (놀라 보면)
충식 : 아무래도 득구 쟤.. 보라 본거 같애.
승리 : (태웅 사라진 쪽 착잡하게 다시보는)
8. 보라집 앞 (밤)
불이 켜진 보라방의 창이 보인다.
태웅, 보라집 앞에 서서 보라 방을 올려다보고 있다.
태웅 : ... (가슴 아픈) 미안해... 미안해, 보라야...
글썽한 표정으로 서 있는 태웅.
9. 실비집 (낮)
태웅 앞으로 봉투하나를 탁 밀어놓는 엄마.
엄마 : 삼천만원이다. 그 댁 어른께 갖다드려.
태웅 : (놀라 본다)
엄마 :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엄마가 정신이 없었다.
태웅 : ...엄마 이 돈.. 어디서 난 거에요?
엄마 : 가게 보증금 빼서 월세로 돌리고... 니 앞으로 들어뒀던 보험이랑 적금.. 해약했다.
태웅 : (멈칫 본다)
엄마 : 너 다시 만나면... 공부시키려고 조금씩 모아 둔 돈 있었어.
태웅 : (가슴아픈) ....엄마...!
엄마 : ....이제 엄만 너 대학 보내 줄 돈 없다. 대학 가려면 장학금 받고 가.
태웅 : ....죄송해요.
엄마 : 니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내가 필요해서 빌려쓴 돈인데..
빌린 사람이 갚는건 당연한거다. 그러니까 나한테 죄송해할 필요없어.
태웅 : ......
엄마 : 고맙게 잘 썼다고 말씀드리고... 갖다드려.
태웅 : (표정)
10. 실비집 앞 (낮)
봉투를 들고 나오는 태웅, 가슴 아프다. 묵묵히 봉투 보다가.. 간다.
그런 태웅 위로-
지혜 : (소리) 정말이에요. 태웅이 만났어요, 선생님.
11. 병원 일각 (낮)
지혜가 책상에 앉아서 전화통화하고 있다.
지혜 : 네, 잘 지내고 있더라구요... 선생님도 보고 싶으시죠... 걱정마세요 태웅이랑 연락해서
이번 동창회 때는 같이 나가도록 해볼게요. 네.... 네... 선생님 그럼 동창회때 뵐께요. (전화 끊는데)
건우(소리) : 첫사랑.. 찾았나 봐요?
지혜 : 네?! (놀라서 확 돌아본다!)
건우 : (갸우뚱 보며)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한태웅... 저번에 얘기한 홍선생 첫사랑 아닌가?
지혜 : (어색하게 웃는) 네? 네..
건우 :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다더니 (힐끗 보며) 어때요? 만나보니까... 좋아요?
지혜 : 뭐.. 좋죠..
건우 : (피식 웃다가) 참, 그럼 그 한태웅이라는 친구도 과학고 출신이니까 보라씨 오빠... 알겠네요?
지혜 : (멈칫 보다가 씁쓸한) ...당연히 알죠. 정규랑.. 제일 친한 친구였어요.
건우 : 그랬구나... (잠시 생각하다가) ....홍선생은 운도 좋네?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고 첫사랑도 만나고...
(그러다 문득) 그러고보니까 성도 같은 한씨잖아. 한득구, 한태웅.
지혜 : (표정!)
건우 : (지혜 보며) 아주 흔한 성씨도 아닌데.. 우연치곤 재밌네요?
지혜 : (긴장했지만 애써 아닌척) 듣고 보니까 그,그렇네요.
이때 민호가 자료 잔뜩 안고 들어온다.
민호, 건우 툭 치면서-
민호 : 야야. 우리 홍선생한테 쓸데없이 말시키지 말고 넌 얼른 내과나 가봐.
건우 : 내과는 왜?
민호 : (자료 내려놓으며) 보라씨 왔더라구. 금방 봤거든? 얼른 가봐.
건우 : (안색 확 변하며 부리나케 사라진다)
민호 : 짜식, (안됐다는듯) 하긴 이렇게라도 얼굴 보면 좋겠지...
지혜 : 보라씨랑 서선생님이랑 무슨 문제 있어요?
민호 : ...헤어졌잖아. 몰랐어?
지혜 : ...헤어졌어요?!
12. 병실 (낮)
보라, 누워서 링거를 맞으며 잠들어있다.
득남과 순자는 걱정스러운 듯 보라를 본다.
순자 : (걱정스럽게 보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며칠 째 밥도 안먹고 잠도 못자는데 사람이 배겨? 으휴.. 도대체 무슨 일이람..
득남 : (착잡한)
순자 : (득남 보며) 득남이 넌 보라 왜 이러는지 알아?
득남 : 엄만 깊이 알려고 하지마.
순자 : 넌 알긴 아나부네? 뭔데? 무슨 일인데?
득남 : 아 그런게 있다니까?! (생각하다가) 엄마, 나 좀 나갔다올테니까 엄마가 보라 지키고 있어. (휭하니 나간다)
순자 : 어디가! 득남아!
득남 부리나케 병실을 빠져가는데.. 그때 건우가 들어온다.
득남, 대충 인사하고 휭 나가버리고... 들어서는 건우.
순자 : (반가운)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우 : 잘 지내셨어요?
인사하며 들어서는 건우, 얼른 누워 있는 보라부터 살피는 표정.
13. 체육관 (낮)
동필, 금수와 은복을 링 위에 올려놓고 손방망이로 때리면서 관장 흉내내고 있다.
이때 득남이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득남, 두리번거리며 동필에게로 다가온다.
동필 : 그렇지. 원투! 잽 날려 잽!!! 금수야, 원투!!! 스트레이트!!! 하 자식들 정말 굼떠요 굼떠..
하며 홱 돌아서는데.. 득남이 서있는게 보인다.
동필 : 어? 득남이 아냐?! 득남아! 보라아가씨 잘 지내지?
득남 : (다부진) 아저씨, 득구오빠 어딨어요?
동필 : 득구는 왜?
득남 : 할 얘기가 있어서요.
동필 : 너는 맨날 득구한테 뭔 할 말이 그렇게 많냐?
득남 : 그래서, 득구오빠 있단 얘기에요, 없단 얘기에요?
동필 : (예사롭지 않다는 거 느끼고) ....곧 들어올거야. 근데.... 득남아 너 뭔 일 있냐?
득남 : ......
득남, 대꾸 안하고 한숨 쉬며 고개를 돌리는데.. 충식과 태웅이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득남 : (얼굴 확 펴서) 오빠!
태웅 : ... 득남아...?!!!
14. 체육관 앞 (낮)
득남이 막무가내로 태웅의 팔을 끌고 가고 있다.
태웅 : 득남아.. 이러지 말고 잠깐 얘기 좀 하자.
득남 : 나한테 얘기하지 말고요 병원 가서 보라랑 얘기해요.
태웅 : 득남아..!
득남 : 아 뭐해요! 빨리 따라오지 않고! (막 잡아끄는데)
태웅 : (득남을 꽉 잡는다) ..득남아...!
득남 : (멈칫 보면)
태웅 : ...난.. 안가.
득남 : (답답한) 오빠가 보라 못봐서 그래요. 걔 지금 얼마나 불쌍한 지 알아요? 며칠째 밥도 안먹고 말도 안하고 잠도 안자요.
그 성질 드런 기집애가 오죽하면 그러고 있겠어요!
태웅 : ....
득남 : (손 끌며) 오빠가 가면 걔 괜찮아질거에요. 그러니까 빨리 가요. 어서요!!!
태웅 : (결심 단단한 표정으로 득남을 보는) ...득남아.. 니가 뭐라고 해도.. 난 안가.
득남 : (눈물 그렁 고여서 버럭) 오빠!!! 오빠 정말 너무 하는거 아니에요?!
어떻게 오빠가 이럴 수 있어요?! 오빠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태웅 : ....
득남 : 누가 오빠 보고 보라 좋아해달래요? 그냥 가서 얼굴만 한 번 보여달라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보라 안좋아해도 그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거잖아요! (하다가 엉엉 울어버린다)
태웅 : (가슴 아픈 표정으로 보다가 우는 득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득남아... 울지마..
득남 : (훌쩍훌쩍 흐느끼다가) ....오빠.. 정말 보라한테 안갈거에요?
태웅 : (끄덕) 응.
득남 : 오빠.. 정말로 정말로 안갈거에요?
태웅 : (끄덕) 응. ...득남이 니가... 보라 잘 보살펴줘.
득남 : (눈물 쓱 닦고) 알았어요. 저 갈게요. 근데... 오빠 진짜 실망이에요. 난 오빠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
득남, 확 돌아서 가버린다.
태웅, 멍하게 서있는데 충식이 다가온다.
충식 : (눈치보며) ... 득구야, 어지간하면 한번 가보지 그래. 보라 아프다는데...
태웅 : .....곧 괜찮아지겠지뭐.
충식 : 얌마...! 너 땜에 아픈거 아냐. 가서 그냥 얼굴만 비춰주고 와!
태웅 : 그럴 필요 없어. 나 먼저 들어간다.
충식, 그런 태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데...
15. 체육관 일각 (낮)
태웅, 멍한 표정으로 들어와 용품들 정리하는데.. 보라 걱정으로 두근두근한 느낌이다.
주먹 꽉 쥐었다 폈다.. 혼자 입술 깨문 채 서서 애써 마음 추스리는 태웅.
16. 병실 (낮)
잠들었던 보라가 눈을 슬며시 뜬다. 걱정스럽게 보라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건우 : 이제 정신 좀 들어요?
보라 : (몸을 일으킨다)
건우 : (얼른 잡아주고)
보라 : 나 오래 잤나봐요. 꿈 디게 많이 꿨어.
건우 : (안쓰럽게 본다) 왜 갑자기 이렇게 아픈 거에요?
보라 : (짐짓 웃으며) 안아팠어요. 그냥... 꾀병 좀 부린 거에요.
건우 : ...한득구씨는요? 보라씨 이렇게 아픈데.. 득구씨는 왜 안보여요?
보라 : (표정 그러다 애써 웃으며) 한득구... 그만뒀어요.
건우 : 그만두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보라 : .....
건우 : 그럼 지금.. 득구씨랑 만나는 거 아니에요?
보라 : (짐짓 웃는) 한득구는 제가 싫데요.
건우 : (본다!)
보라 : (어색해서 괜히 헤.. 웃는데)
건우 : ...보라씨 그래서 이렇게 아픈거야? (가슴 아픈) 득구씨 없어서? 득구씨 못만나서?
보라 : (갑자기 눈물 뚝 난다)
건우 : (답답한) 뭐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한테 이런 모습이나 보여주고. 내가 이런 꼴 보려고 헤어져준줄 알아?!
보라 : ...미안해요 건우씨..
건우 : (답답한) 안어울려. 이런 모습... 보라씨한텐 전혀 안어울린다구. 알아?
보라 : 알아요, 나도. 나한테 안어울린다는거... (건우 보며 짐짓 웃는) 근데 실연당해놓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좀 웃기잖아요.
그래서 나도 폼 좀 잡은 건데... (애써 웃는) 그냥 쫌 봐줘요.
건우 : (답답하고 괴롭다)
17. 보라집 전경 (밤)
18. 보라방 (밤)
보라가 코트 벗는 걸 도와주는 득남.
득남 : 너, 오늘까지만 이러고 낼부턴 밥도 잘 먹고 신경질도 팍팍 내고 니 맘대로 해. 당분간은 내가 니 짜증 다 받아줄게.
보라 : (픽 웃는)
득남 : 대신 너... 낼부턴 득구오빠 잊어.
보라 : (득남 본다)
득남 : 나는 득구오빠가 너한테 싫은 소리도 하고 못되게 굴었다는거 하나도 안믿었거든? 근데.. 이제 믿을 수 있어.
득구오빠.. 이제 우리가 알던 그 한기사오빠가 아니야. 정말 실망이야.
보라 : (멈칫 득남 보며) 득남이 너... 한득구 찾아갔구나?!
득남 : (당황한다!) 어?
보라 : (착잡하게 득남을 보는) 야... 뭐하러 그런 짓을 했어.
득남 : (휙 보라 보며) 너 오빠 보고 싶어했잖아. 그래서 데려오려구 갔었다, 왜?
보라 : (짐짓 웃으며) ....갔더니 한득구가 뭐래? 나 만나기 싫다고 하지?
득남 : (표정 그러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보라 : (옷갈아입으며 아무렇지 않은척하는) ....알아. 한득구가 뭐라고 했을지... 다 짐작 가.
득남 : 보라야...
보라 : (짐짓 웃는데 글썽한) 근데 한득구 진짜 심하다. 나한텐 그렇다 쳐도 어떻게 너까지 문전박대를 하냐. 못됐어 진짜....
득남 : ....
보라 : (득남 보며) 박득남. 내일부터 잊겠단 약속은 못하겠다. 하지만 노력은 할게. 대신 너도 약속해.
득남 : (보면)
보라 : (슬픈) 앞으로 나 땜에 한득구 찾아가지는 마. 부탁이야.
득남 : 알았다...
득남... 돌아서 나가고.. 쓸쓸한 표정으로 앉은 보라.....
19. 김회장 사무실 전경 (낮)
비서(소리) : 회장님 곧 들어오실거에요.
20. 김회장 사무실 (낮)
비서 : 조금만 기다리세요.
비서 나가고... 사무실 둘러보는 태웅. 그러다 벽에 걸린 보라의 그림에 눈길이 닿는다.
벽에 걸린 보라의 그림 앞에 서있는 태웅. 태웅, 애잔한 눈길로 그림을 본다.
태웅 : ...보라, 그림 잘 그리는구나...
이때 문이 열리면서 김회장이 들어선다.
김회장 : (환하게 웃으며) 아니 자네 언제 왔나?
태웅 : (꾸벅 인사한다)
(시간경과)
태웅, 탁자 위에 돈봉투를 내놓는다.
김회장, 그런 태웅을 가만히 바라본다.
태웅 : 고맙게 잘 썼습니다. 회장님.
김회장 : (서운함이 역력한)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태웅 : 아닙니다. 저희 어머님께서도 고맙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김회장 : ...
태웅 : ...
김회장 : 좋아. 내 받지. 근데 이거 좀 서운하구만. 이걸 받으면 왠지 자네랑 인연이 다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야.
태웅 : (마음아픈데)
이때 인터폰이 울리면서 비서가 “회장님 댁에서 전홥니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회장 : 어, 연결해. (수화기 들며) 어, 득남엄마. 그래.. 보라는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까?
태웅 : (표정)
김회장 : 밥도 좀 먹고? 아... 다행이구만. 그래요... 득남엄마가 좀 수고스러워도 보라 좀 챙겨줘. 그래요.
(전화 끊더니) 보라가 요즘 안좋다네. 말수도 부쩍 줄고 가뜩이나 몸도 약한 앤데... 걱정이야...
태웅 : ...
김회장 : 참, 자네 점심 먹었나? 시간도 다 되가는데 안먹었으면 같이 하지.
태웅 : 죄송합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김회장 : 그래... (서운하지만 웃으며) 알았네. 가봐.
태웅 : (일어나서) 그럼... (하고 돌아서는데)
김회장 : 괜찮다면 종종 찾아오게.
태웅 : (보면)
김회장 :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자네가 없으니까 솔직히 좀 허전해. 가끔 얼굴 볼 수 있는 거지?
태웅 : (마음이 찡해지는) ... 네. 안녕히 계십시요.
태웅, 인사하고 회장실을 나온다.
김회장, 탁자 위에 놓인 봉투 보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21. 김회장 사무실 앞 (낮)
문닫고 나오는 태웅, 착잡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간다.
22. 물류센타 (낮)
박스들이 쌓여있는 창고 앞.
시계 보면서 두리번거리며 서있는 충식. 그러다 얼굴이 밝아진다.
충식 : 득구야! 여기야! 여기!
태웅 : (달려와 앞에 선다) 내가 좀 늦었지?
충식 : 아냐 괜찮아. 빨리 들어가자.
23. 몽타쥬
- 물류센타. 열심히 박스들을 나르며 일하는 충식과 태웅의 모습.
- 체육관. 샌드백 때리며 운동하는 태웅.
- 물류센터. 충식과 일하는 태웅.
- 태웅의 방. 열심히 공부하는 태웅.
- 물류센터. 햇볕 잘 드는 구석에 앉아 충식과 빵 먹으며 해바라기 하는 태웅. 손으로 햇볕 가린채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관리자가 부른다. 남은 빵 한입에 몰아넣고 서둘러 일어나 가는 충식과 태웅.
24. 보라 방 (낮)
삐삐, 어린 시절에 그린 태웅 스케치, 눈의 여왕 그림책 등을 바닥에 깔아놓고 보고 있는 보라.
그러다 물건들을 다 보물 상자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는 잡동사니를 정리해서 담은 종이 박스 안에 보물 상자를 넣는다.
이때 득남이 들어선다.
득남 : (보더니) 어? 이거 다 니가 정리한 거야?
보라 : ...
득남 : 야아... 가뜩이나 기운도 없는 애가 뭐하러 이런 걸 해? 엄마나 나 부르지 그랬어?
보라 : (담담하게) ... 그냥 내가 하고 싶었어.
득남 : (보라 안색 살피는) ... 보라 너 이젠 괜찮은 거야?
보라 : (옷박스 보며) 아줌마한테 이건 창고 안에 좀 넣어달라고 해... (보물상자 든 박스보며) 그리고 이건.... (망설이다가) 버려.
득남 : 뭐? 버,버려?
보라 : 응.
득남 : 야, 이걸 어떻게 버려. 이거 다 니가 아끼는 것들이잖어.
보라 : 그러니까 니가 버려달라구. (그러다 씩 웃으며) 내가 원래 궂은 일은 너 시키잖아. (일어나 나가고)
득남 : (상자와 보라 나간 쪽 번갈아보며 난감한)
25. 보라집 앞 (낮)
김회장,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이때 보라가 내려온다.
김회장 : (보라 보고) 몸은 좀 괜찮냐?
보라 : 네.
김회장 : (깊이 보며) ....니 건강은 니가 챙겨.
보라 : 네...
김회장 : 어디 가냐?
보라 : 학교 가려구요. 계절학기 시작했거든요.
김회장 : 운전기사가 없어서 불편하지? 곧 붙여주마.
보라 : 괜찮아요. 저 이제 그냥 택시나 버스 타고 다닐래요.
김회장 : (의아하게 보면)
보라 : 그게 더 편할 거 같아서요.
김회장 : ...그래..? (왠일인가 싶은데)
보라 : (싱긋 웃으며) 그래도 오늘은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세요.
26. 김회장 차 안 (낮)
김회장과 보라가 차에 탄다. 정대리 운전석으로 타서 시동을 건다.
그러자 작동되는 씨디. 갑자기 차 안에 골드베르그 아리아가 울리기 시작한다.
차가 출발하는데... 멈칫 눈빛이 달라지는 보라.
보라 : ...어.. 이 곡은....
김회장 : 아, 이 음악 말이냐... 한군이 그만두기 전에 선물하고 간 거다.
보라 : (멈칫하다가) ... 한득구가요?
김회장 : 그래. 한군 친구가 좋아하던 곡이라고 하면서 주더구나. 들을수록 괜찮은 거 같아.
보라 : (무심결에) 이 곡... 오빠도 좋아하던 건데...
김회장 : 뭐?
보라 : ... 오빠가 많이 좋아했던 음악이에요.
김회장 : (가슴 뭉클해지는) ... 그랬구나... 정규가 좋아했던 음악이란 말이지...
김회장, 창밖을 보며 괜히 마음이 아파오고... 보라도 괜히 태웅 생각에 착잡해진다.
아리아를 들으며 가는 김회장과 보라.. 각자의 표정.
27. 농구장 (낮)
천교수가 학생들과 농구를 하고 있다. 천교수 머리 위를 지나 부웅 날아가는 농구공.
천교수 : (학생 향해 호통 치는) 야이 돌대가리야! 키만 크고 힘만 세면 다냐? 패스를 정확하게 해얄거 아냐!
늙은이 공주우러 다니다 힘 다 빠지겠네!
하며 확 돌아서는데.. 태웅이 농구공을 튕기며 서있다.
천교수 : (환해져서 본다) 언제 왔어?
태웅 : (농구공 건네며 웃는) 방금요.
천교수 : 할일은? ...다 끝냈어?
태웅 : ....아직요. 근데 일 다 끝나길 기다리다간 교수님 너무 심심하실 거 같아서 그냥 왔어요.
천교수 :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오래 걸려?
태웅 : 그냥..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에요.
천교수 : 어쨌든 다시 돌아온거 맞지?
태웅 : 네.
천교수 : (씩 웃고 학생들 향해 돌아선다) 돌대가리들아, 나 간다!
천교수, 학생들 향해 농구공 팡! 튕겨주고 돌아선다.
태웅, 천교수 따라서 간다. 그러다가 문득 농구장을 돌아보는 태웅.
# (6부 31씬) 보라랑 같이 농구하던 모습
태웅, 마음이 왠지 슬퍼지는...
그때 앞서가는 천교수가 “안오고 뭐해?”하고 버럭 소리지른다.
태웅, 쓸쓸히 웃더니 돌아서서 천교수를 향해 달려간다.
나란히 가는 태웅과 천교수.
28. 학교 일각 (낮)
태웅과 천교수가 걸어가고 있다.
천교수, “그때 자네가 준 논문 말야... 그거 다시 봐도 아주 흥미롭단 말야...”하며 걸어간다.
태웅, 천교수와 스치듯 보라가 나타난다.
태웅과 천교수는 사라지고... 보라,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간다.
태웅(소리) : 보라야!
걸어가다가 멈칫 서는 보라, 확 뒤를 돌아보는데.. 뒤에는 아무도 없다.
왠지 슬프고 이상한 느낌에.. 잠시 그렇게 서있는 보라. 그러다.. 다시 걸어가는데..
문득 게시판에 붙어있는 뭔가를 본다. (골드베르그 포스터- 화면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29. 천교수 강의실 (낮)
천교수 : (넘기며) 예 좀 몇 개 들랬더니 아예 새로운 문제를 들고왔구먼. (눈으로 잠깐 읽어보고) 음... 좀 이상한데...
도대체 링오브인티저(ring of integers)를 어떻게 처리한다는 건가? 필드를 바꾸는 건가?
태웅 : 필드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디얼은 링오브인티저 위에서 정의되는 모듈이니까
제너레이터(generator)가 있습니다. 이걸 일부러 중복되게 하나 더 늘이면 겉보기에 랭크(rank)가 하나 늘어난
프리 래티스(free lattice)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천교수 : 가만, 안 그래도 복잡한 래티스인데 일부러 제너레이터를 하나 늘인다고? 이거야 원.....
태웅 : 하지만 벡터 스페이스로 생각하면 차원(dimension)은 그대로입니다.
천교수 : 차원은 그대로다? 그럼 랭크는?
태웅 : 랭크도 그대롭니다.
천교수 : 그대로라, 그대로.... (잠깐 생각) 그렇군. 그때 말한 "형식적 변환"을 적용하는 거군.
태웅 : 그렇습니다.
천교수 : 허, 참. (논문 내려놓으며) 이 논문은 저널에 내면 안 될 것 같네.
태웅 : 네?
천교수 : 이건 예라고 써 놓은 게 따로 논문감이잖나. 아예 이걸 중심으로 해서 새로 쓰는 게 훨씬 낫겠네.
나 원, 원래 논문도 황당했는데, 이렇게 되면 심사위원들이 두 배로 황당해지겠군.
태웅 : (어색하게 웃는데)
천교수 : (논문 내려놓으며 웃는) 그동안 아주 놀지는 않았나보지? 좋아. 다음주에 우리 대학원생들 세미나가 있는데
방금 자네가 말한 거 한번 발표해보게.
태웅 : 네? 제가요?
천교수 : 마침 관련된 주제로 세미나를 하니까 자네한테도 아주 좋은 공부가 될거야. 그렇게 알고 준비해오게.
태웅 : (당황스러운) 저, 교수님... 전 학생도 아닌데....
천교수 : 그럼 자네가 선생인가? ...배우는 사람은 다 학생이야. 그런건 신경쓸 거 없고.. 준비나 철저히 해와.
내 밑에서 하드트레이닝 받은 애들이라 좀 끈질겨.
태웅 : (그래도 되나.. 싶은데)
천교수 : 참, 오늘 자네랑 나랑 재회한 기념으로 내 이거 하나 주지. (티켓을 건넨다) 그때 걔들 공연한데.
사람도 얼마 안 올텐데 시간되면 가서 자리나 좀 채워줘.
태웅 : (받아서 보면 골드베르그 티켓이다)
30. 소강당 건물 앞 (낮)
태웅이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문에는 골드베르그 포스터가 주욱 붙여져 있다.
31. 소강당 (낮)
관객 거의 없는 소강당. 태웅이 공연장에 들어서면 피아노로 아리아를 연주하고 있다.
태웅, 조용히 자리를 찾아서 앉는다.
태웅,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몇 자리 건너편에 보라가 앉아 있다.
태웅, 놀라는데... 보라도 태웅의 시선을 느꼈는지 태웅 쪽을 본다.
서로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 놀라서 그렇게 한참을 멍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보라,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확 뛰쳐나간다.
태웅, 보라를 따라서 공연장을 나간다.
32. 건물 앞 (낮)
보라, 도망치듯 막 뛰어 나오는데 태웅이 “보라야! 보라야!”하며 뛰어나온다.
보라의 팔을 잡아서 확 돌려세우는 태웅.
서로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 태웅, 어색하게 보라의 손을 놓아준다.
태웅 : 나 때문에 나온 거라면... 이럴 필요 없어. 내가 갈게.
보라 : (차마 마주 보지 못하는)
태웅 : ....음악 들으러 온 거잖아. 들어가.
보라 :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태웅 : (뭔가 더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보라 : (시선 내린 채 두근두근한)
두 사람 그렇게 서서 주저주저하는데.. 마침내 주먹을 꽉 쥐는 태웅.
태웅 : ....갈게. (보라 옆을 스쳐 가는데)
보라 : 한득구!
태웅 : (멈칫 선다! .....돌아보면)
보라 : (서늘한) .....고마워.
태웅 : (쿵.. 하는)
보라 : 그동안 나.... 너 때문에 힘들었다? 너 때문에 괴로웠고.. 너 때문에... 많이 울었어.
태웅 : (표정)
보라 : 하지만.. 너 때문에 많이 웃었고... 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눈물 날 것 같은) 행복했어.
태웅 : !!!
보라 : (태웅 보며) 그래서... 고마워. 고맙다, 한득구.
태웅 : (멍하게 보는데)
보라 : (눈물 고인 채 맑게 웃는) 너 좋아했던 거.. 나 후회안해. 이 얘기... 너한테 꼭 해주고 싶었어. (목이 메이는) .....안녕.
태웅 : !!!
보라, 태웅을 남겨둔 채 먼저 걸어간다.
보라, 걷는데 눈물이 뚝 떨어진다. 태웅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계속 걸어간다.
태웅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보라의 모습.
33. 건물 앞 (낮)
태웅, 미동도 하지 않고 멍한 눈빛으로 서 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선 태웅... 그제야 고개를 돌려 보라가 사라진 쪽을 보는데.... 보라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길게 서있는 태웅의 모습.
34. 체육관 앞 (낮)
승리와 충식이 삼겹살과 상추 등 야채를 사가지고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다.
충식 : 승리야. 너랑 같이 이렇게 시장 보고 그러니까 기분 정말 좋다. 오빠가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장봐줄까?
승리 : 아니. 그냥 오빠 혼자 봐주면 안될까? 난 시장보는 거 지겨워.
충식 : 아 기집애... 혼자서는 나도 재미없지... (눈치보며) 근데 승리야... 너... 정말 득구 잊은 거냐?
승리 : (멈칫 하다가 씁쓸한) ..잊었다기보단 포기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충식보며) 그래서 말인데 나도 이제 좋은 남자 만날 거다?
충식 : 좋,좋은 남자? (반색하며) 그거 잘 생각했다. 그래, 좋은 남자 만나야지...
(기대하는) 어떤 남자가 좋은데? 응? 어떤 남자가 좋은데....?
승리 : 음.... 득구 오빠 같은 남자!
충식 : 뭐,뭐야? (얼굴 팍 일그러지는)
승리 : (충식 속도 모르고) 득구 오빠처럼 착하고 멋있고 의리도 끝내주고 또... 또...
충식 : (빈정 상해서 말 자르며) 됐다 됐어. 이승리, 됐다구!!! 뭐? 득구같은 남자?! 참나... 기가 막혀서!!!
충식, 빈정 상해서 팍 앞장서간다.
승리, 어리벙벙해서 “오빠! 오빠!”하면서 따라온다.
충식 : 득구 이 자식, 소주나 하자고 했더니 왜 연락 없는 거야? (전화 꺼내서 누르더니) 야, 득구야. 거기 어디냐? 뭐? 술마셔?!
승리 : (의아해서 보는)
35. 포장마차 (밤)
태웅, 혼자서 소주 따라서 마시고 있다. 잔 가득 술을 채우는 태웅. 다시 잔을 비운다.
이때 충식과 승리가 우당탕탕 뛰어 들어온다.
충식 : 얌마!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음 어떡해? 삼겹살 잔뜩 사놨는데... (하며 옆에 앉는다)
태웅 : (취기어린 웃음 지으며) 왔어?
승리 : (옆에 앉더니) 오빠, 왜 혼자 술 마시고 그래? 우리 부르지 그랬어?
태웅 : (잔 들어서 마시고는 잔 다시 채운다)
승리 : (그런 태웅 보며 이상한)
충식 : (태웅보다가 아줌마한테) 여기 잔 좀 더 주세요. (태웅보고) 야아... 한득구 너 왜 그래...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태웅 : ....아니. (다시 잔 비우려고 하는데)
승리 : (잔 뺏으며) 오빠, 정말 왜 이래?
태웅 : (멈칫 본다)
승리 : 그만 마셔.
태웅 : 승리야.
승리 : 오빠 이러지 말고 차라리 말을 해. 뭔가 속상한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혼자 술마시는 거잖어. 근데 왜 말을 안 해?
충식 : (말리듯) 승리야... 넌 가만 있어. (하는데)
태웅 : (한숨 쉬더니) 오늘... 정말 좋은 일이 있었어. 아주 기분 좋은 일... 너무 좋아서... 그래서 술마시는 거야. 됐어?
승리/충식 : (태웅보는)
태웅 : (다시 술 마시려는데)
승리 : ... 보라 때문이지?
태웅 : (멈칫)
승리 : 보라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그렇지?
태웅 : ....
승리 : (눈물 뚝뚝 흘리며) 오빠...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어? 오빠 보라 좋아하잖아. 보라도 오빠 좋아하는데..
왜 여기서 이러구 있어? 좋아하면 가서 만나면 되지.. 보고 싶었다고 말해주면 되지.. 왜 바보 같이 여기서 이러구 있어...!!
승리 속상해서 울어버리고...
착잡하게 승리를 보다가 일어서는 태웅.
태웅 : (충식 향해) 나 먼저 갈게.
충식 : 어.. 그, 그래..
태웅 : (나가고)
충식 : 이승리! 너 왜 그래.. 왜 그렇게 득구속을 박박 긁어 이기집애야!
36. 거리 (밤)
태웅, 휘청휘청 술 취해서 걷는다.
# 플래시백들
# (10부 62씬)
보라 : (글썽한) 단 한순간이라도.. 나 좋아한 적 없었어?
# (10부 62씬)
태웅 : ...없어. 단 한순간도.. 널 좋아한 적.. 없어
# (10부 62씬)
보라 : (눈물 고여) 그런데.. 너.. 왜 그렇게 나한테 잘 해줬어?
# (10부 62씬)
태웅 : 불쌍해서... 불쌍해서 잘해줬어.
# (10부 62씬)
보라, 눈물 고여서 태웅을 바라보던 모습.
# (10부 70씬)
보라, 손으로 입 막은채 하염없이 울던 모습
태웅, 웃는데... 슬프다.
37. 체육관 (밤)
태웅이 체육관에 들어서는데 마침 동필이 나가려고 하다가 만난다.
동필 : 어, 한득구 지금 오냐? (하다가 문득) 어쭈 너 술 마셨냐?
태웅 : 조금요.
동필 : 별일이네 한득구. 참 그렇잖아도 너한테 줄 게 있었다. (가방에서 뭔가 꺼내는데 사진이다) 받아라.
내가 보라 아가씨 체육관 방문 기념으로 한방 찍은 거거든?
태웅 : (사진 보는데 덜컹!하는)
동필 : 아가씨 갖다드려. 꼭 내가 찍은 거라고 전해줘야한다. 알았지?
동필, 태웅 손에 사진을 쥐어주더니 체육관을 나간다.
태웅, 천천히 손을 들어 본다. 떨리는 눈빛으로 사진을 본다. 자신과 보라가 찍힌 사진...
태웅, 갑자기 눈에 눈물이 핑 돈다. 그 위로.
38. 플래시백 (32씬)
보라 : (서늘한) .....고마워.
태웅 : (쿵.. 하는)
보라 : 그동안 나.... 너 때문에 힘들었다? 너 때문에 괴로웠고.. 너 때문에... 많이 울었어.
태웅 : (표정)
보라 : 하지만.. 너 때문에 많이 웃었고... 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눈물 날 것 같은) 행복했어.
태웅 : !!!
보라 : (태웅 보며) 그래서... 고마워. 고맙다, 한득구.
태웅 : (멍하게 보는데)
보라 : (눈물 고인 채 맑게 웃는) 너 좋아했던 거.. 나 후회안해.
39. 다시, 체육관 (밤)
태웅, 사진을 보는데 그 위로 태웅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애써 참으려 하는데 눈물이 계속 흐른다.
40. 병원 일각 (낮)
민호가 열심히 서류들 넘겨주며 설명해주고 있는데.. 건우 멍하게 생각에 잠겨있다.
민호 : 오늘 응급환자 회진은 내가 볼테니까 내일 아침 모닝 리포트를 니가 해. 신환리스트는 홍선생이 정리할테니까 됐고...
(그러다 문득 멍한 건우를 보고 볼펜으로 똑똑 책상을 친다) 어이, 서선생!
건우 : (멈칫 보면)
민호 : 또, 또 왜 그려.. 응?
건우 : (멍한) 보라씨 말이야... (민호보며) 득구씨랑 안만난데.
민호 : 그래서? 뭘 어쩌려구?
건우 : ...그냥 그렇다고..
민호 :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라면 꿈 깨라. 떠난 버스 붙잡고 매달려 봤자 스타일만 구겨져. 보라씨, 너한테서 맘 떠났다.
건우 : ... 그건 아는데.. 자꾸 미련이 남네.
민호 : 그게 바로 미련한 소리라는거 알지?
건우 : (슥 민호 보며) 너 친구 맞냐?
민호 : 친구니까 이렇게 시의적절한 충고를 해주지. 맘 떠난 여자 붙잡고 매달리는 건 정말 이기적인거야.
건우 : (괜히 화나는) 좀 이기적으로 살면 안되나? 나 원래 이기적인 놈이야.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 났어.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린다)
민호 : 야! 뭘 잘했다고 나한테 화를 내?! 야 서건우! 나쁜 자식.. 앞으로 내가 당직 바꿔주나 봐라.
41. 병원 일각 (낮)
핸드폰 걸며 걸어오는 건우, 전화가 안되는지 다른 단축키를 다시 누른다.
건우 : 네.. 서건웁니다. 잘 지내시죠? 보라씨 핸드폰이 안되서.... 네? ...양수리..집에 갔다구요?!
42. 양수리 일각 (낮)
보라,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득남은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놀고 있다.
득남 : (엘리제 같은 거 치는데 안된다) 아, 그래도 체르니 30번까지 친 솜씬데 왜 이러지? 다 잊어 버렸네 정말...
젓가락 행진곡이나 쳐볼까...? 보라야, 우리 젓가락 행진곡 치자. 보라야...!
득남, 보면 보라는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
득남, 다가간다.
득남 : 김보라!
보라 : (그제서야) 어... 왜?
득남 :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보라 : 한득구 생각 안했으니까.. 걱정마.
득남 : (캥겨서 보면)
보라 : 오빠 생각했어... (문득 돌아보며) ... 득남이 너 우리 오빠 본 적 있니?
득남 : 없지이! ...너 서울로 이사오고 나서.. 엄마랑 나 들어갔잖아.
보라 : 그랬나? ..맞다 그랬구나..
득남 : 그러고보니까.. 너한테서 오빠 얘기 오랜만에 듣는다.
보라 : (슬프게) 말해서 뭐하겠어.... 이제 없는데.
득남 : 그래도 그렇게 멋있는 오빤데.. 자꾸자꾸 얘기하고 기억해줘야지...
보라 : (득남 보며 슬프게 웃는) 그치.. 우리 오빠 진짜 멋있지?
득남 : 어. 한기사 오빠 빼놓고는 그만큼 멋있는 오빠 못 봤다. (그러다 헙! 입다문다)
보라 : (슬픈) 한득구가 멋있긴 뭐가 멋있냐.. 우리 오빠가 백배는 더 멋있지...
득남 : (보라 표정 살피고 괜히 말돌리는) 저기.. 보라야.. 우리.. 고구마 구워 먹을까? 내가 궈줄까?
보라 : (짐짓 도도하게) 박득남, 살쪄! 간식 좀 그만 먹어!
득남 : 어쭈구리? 구워주면 잘 먹을거면서?
보라 : (도도하게) 그거야 당연하지. 바람 좀 쐬고 올테니까 맛있게 구워놔!
득남 : 알았다!
보라, 옷 걸치고 밖으로 나가고.. 득남, 그런 보라를 안됐다는 듯 바라본다.
43. 양수리 일각 (낮)
보라, 산책하며 터벅터벅 걷는다. 마치 어렸을때를 추억하는 눈빛으로 둘러보는 보라.
보라, 그러다가 문득 걸음이 멈춰선다. 집의 벽 한귀퉁이를 유심히 살펴보는 보라.
보라의 키와 날짜들이 밑에서부터 주루룩 적혀있다.
1998년 11월 3일이라고 적혀 있는 글씨를 손가락으로 더듬어보는 보라.
보라 : (얼굴 환해지며) 이게 아직도 안지워지고 있네..
정규(소리) : 보라야, 키재자 키!
44. 플래시백 (낮)
정규가 어린 보라를 벽에 바짝 붙여 세우고 키를 재보고 있다.
정규 : 우와... 우리 보라 정말 많이 컸는데... 한달 전에 잰 것보다 일센티는 더 자란 거 같다.
보라 : 정말? (도도한) 역시 우유를 먹어준 보람이 있군.
정규 : 그래도 너.. 니네 반에서 제일 작잖아.
보라 : 아,아니다. 그래도 나, 2번이다. 쳇, 언제 컸다고 칭찬하더니...
정규 : (씩 웃고) 보라야.. 여기 봐봐. (160cm쯤 되는 높이에 선을 긋고) 너 이만큼 자라면 오빠가 진짜 멋있는 오빠 소개시켜줄게.
보라 : 멋있는 오빠? 어떤 오빤데?
정규 : 음...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착하고... 또.. 수학도 잘하는 오빠.
보라 : 수학?! 수학 잘하는건 오빠 하나로 충분해. 난 수학 싫어! 진짜 싫어!
정규 : 어쨌든 진짜 멋있는 오빠라니까?
보라 : (잠시 생각하다가 도도하게)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실은 나... 좋아하는 오빠 있거든.
아냐아냐...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날 좋아하는 오빠가 있어. 그러니까 다른 오빤 필요없어.
정규 : 뭐야? (귀엽다는 듯 보라 볼 툭 만지며) 째끄만게 벌써...
보라 : (헤헤 웃고 정규 손 끌며) ...오빠 뭐해? 키 재면 자전거 태워준댔잖아.
정규, 옆에 세워놓은 자전거에 보라를 태우고 달려간다.
신나게 숲길을 달려가는 정규와 보라의 행복한 모습.
45. 양수리 일각 (낮)
보라... 눈금을 손으로 천천히 만진다.
보라 : (글썽해서) ...오빠.. 나 키 이렇게 많이 컸는데.. 그 멋진 오빠는 언제 소개시켜줄거야?
46. 체육관 (낮)
금수, 은복, 동필이 얼굴에 팩을 하고 체육관 바닥에 나란히 드러누워있다.
경악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승리.
승리 : 오빠들..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동필 : 신인왕전에서 준우승까지 한 몸인데 이제 인터뷰가 쇄도하지 않겠어? 텔레비전 나오려면 이정도는 신경써야지.
승리 : (한심하다) 티비에서 요즘에 권투중계하는거 봤어? 말이 되는 소릴 해!
동필 : 아.. 기집애 왜 일케 유머 감각이 없어? 농담을 하면 좀 웃어줘야지..
승리 : 그걸 유머라고 구사하냐? 쓸데없는 짓 말고 후딱 일어나서 체육관 청소나 좀 해! 아, 빨리!!!
승리, 금은동을 막 걷어차서 일으키고 나간다.
47. 체육관 입구 (낮)
입구쪽으로 걸어가며 동필이 있는 쪽 돌아보는 승리.
승리 : 신인왕전도 끝났는데.. 이제 저 게으른 인간들을 어떻게 관리 하냐...
승리, 투덜대며 나가는데 문 앞에서 상호가 기웃거리고 있다.
두꺼운 뿔테 안경에 커다란 가방. 두꺼운 원서. 한 눈에 봐도 모범생 티가 줄줄 난다.
승리 : 누구세요?
상호 : (멈칫 승리 보고) 저, 여기 혹시... (어색한) 득..구.. 있어요?
승리 : (의아하게 보는 표정)
48. 물류센터 일각 (낮)
박스 정리하며 일하고 있는 충식과 태웅.
태웅, 묵묵히 일만 하고 있는데 충식이 힐끗 본다.
충식 : (다시 일하면서) 득구야.. 내가 너 소개팅 시켜줄까?
태웅 : (보면)
충식 : 백화점 다닐 때, 3층 의류코너에서 샵마스터 하던 여자애가 있는데 얼굴이 연예인 뺨쳐.
성격도 싹싹하고 장사도 끝내주게 잘 하는데.. 어때, 함 만나볼래?
태웅 : (피식 웃고) ...내가 뭐라고 할 거 같냐?
충식 : 고맙다, 최충식! 역시 내 친구는 너 뿐이다! 걔랑 잘 되면 양복 한 벌 쫙 뽑아줄게!
태웅 : (씁쓸하게 웃는다)
충식 : (한숨 쉬고) 에구.. 니가 그런 놈이었으면 내가 걱정을 안하지..
태웅 : (일하면서) 충식아.. 내 걱정하지마. 나 잊을거니까.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천천히 잊을거야.
충식 : 야,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잊혀지냐? 딴생각을 해야지? 잔말 말고 소개팅해, 소개팅!
태웅 : 공부하면서 잊으면 안될까?
충식 : 뭔 소리여?
태웅 : 충식아.. 나 대학갈까 해.
충식 : 대학?! 니가 이제 대학가서 뭐하게?
태웅 : 그냥.. 공부하고 싶어서.
충식 : 아.. 나 얘 땜에 미치겠네. (한숨 쉬고 잔소리 늘어놓는) 얌마, 니가 지금 나이가 몇이냐... 스물 다섯 아냐.
재수삼수 안한다 쳐도, 입시준비하고 4년 대학다니면... 너 서른돼! 나이 서른 되도록 돈 한푼 못 벌면서 그렇게 살면
너희 어머니는 누가 모시냐?
태웅 : (표정)
충식 : 그리고, 대학 등록금이 좀 비싸냐? 그럴 돈 있음 차라리 장사를 해. 아님 기술을 배우든가.
대학간다고 다 취직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굳이 대학을 가냐?
태웅 : .....
충식 : 너 잘 생각해라. 내가 볼 때 대학가는건 우리 같은 사람한텐 사치다, 사치. 그냥 검정고시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따.
충식, 박스 영차 들고 가고.. 태웅, 착잡하게 생각하는 표정.
49. 체육관 (낮)
체육관 둘러보며 살펴보는 상호.
금은동은 뒤에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다.
상호 : (둘러보며) 그럼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며 산거에요?
승리 : (의아하지만) 네..
상호 : (승리 보며) 밥은.. 어디서 먹나?
승리 : (구석 가리키며) 저기서 해먹기도 하고.. 우리집 와서 먹기도 하고...
아니 근데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요? 진짜 우리 득구오빠 친구 맞아요?
상호 : (혼자 골똘해서 대충) 네..
승리 : 언제적 친군데요?
상호 : 고등학교 친구에요.
승리 : 고등학교요?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어, 득구 오빠?
상호 : (멈칫 돌아보며 승리와 눈이 마주친다)
50. 물류센터 일각 / 체육관 (낮)
태웅 : (일하면서 통화하는) 승리야 오늘 충식이랑 야근할까 하거든? 저녁 같이 못 먹겠다.
승리(소리) : 오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오빠 친구 왔어.
태웅 : 친구?
상호 : (승리 전화 바꾸는) 어.. 득구야! 나다.
태웅 : 안상호..? 니가 어떻게..
상호 : 너 얼굴 보러 왔는데.. 바쁘냐? 바쁘면 담에 다시 오고.
태웅 : 아,아니야 지금 갈게.
51. 체육관 (낮)
상호 : .. 어.. 그래 알았어. 먼저 가 있을테니까 빨리와. (승리에게 전화를 넘겨준다) 잘 썼습니다.
상호, 가방과 책을 가지러 돌아서는데 그 앞에 모여있다가 샤샤샥 흩어지는 금은동.
상호, 왜들 이러냐.. 책과 가방 챙기는데..
동필 : (쭈삣 다가서며) 저기.. 진짜로 서울대.. 다니십니까?
상호 : ?!
동필 : (원서 옆에 찍힌 서울대학교 도서관 도장 가리키며) 진짜 서울대생..?
상호 : (멋적은) 아.. 네..
동필 : ..몇 학년?
상호 : 학부는 졸업했구요. 대학원 다녀요.
동필 : (감탄하는) 아.... 대학원...!
상호 :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상호, 인사하고 가고...
감탄하는 눈빛으로 보는 동필.
동필 : (감탄하는) ...서울대...!
승리 : 서울대 다니는 사람 첨봐?
동필 : 아니. 우리 오촌 당숙 사돈댁 조카사위가 서울대 다녔어.
승리 : (한심하다) 오빠!!!
동필 : 야 근데 득구한테 어떻게 저런 친구가 있냐?
승리 : (멈칫 그러다 의아한) ......그러게. (하며 상호 사라진쪽 보는)
52. 까페 (밤)
까페로 들어오는 태웅, 상호가 앉아있는게 보인다.
태웅 : 상호야!
상호 : (돌아본다)
태웅 : (다가가 앉으며) 너.. 어떻게 알고 왔냐?
상호 : .....걱정마라. 득구라고 했으니까.
태웅 : (표정)
상호 : 에라이 이 자식아. 멀쩡한 이름 놔두고 한득구가 뭐야, 한득구가.
태웅 : (멈칫 그러다) ...지혜한테 들었구나..
상호 : 그래.... 너한테 전화하면 오지말라고 할까봐 그냥 왔다. 너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태웅 : ...잘 했어.
상호 : (착잡하게 보다가) 한태웅.. 니 인생은 왜 이러냐..
태웅 : (쓰게 웃는다)
상호 : 정규 여동생.. 요새도 만나냐?
태웅 : ...아니...
상호 : (안쓰럽게 보다가 한숨) .....됐다. 그만 얘기 하자.
태웅 : (메뉴판 보며 말돌리는) 아직 안시켰지? 뭐 시킬까? (하는데)
상호 : 참. 너네 체육관 사람들... 너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더라?
태웅 : ....어.. 내가 말 안했어.
상호 : 너 8년이나 거기서 살았다며... 그럼 거의 가족같은 사람들이잖어.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태웅 : (괴로운) 그렇지... 언젠가 말해야 한다는 거 아는데... 나도 아는데... 나... 여기서 한득구라고 불리면서 맘이 편했다.
거짓말 하는게 미안하긴 했지만.. 아무도 날 알아봐주지 않아서.. 너무 좋았어.
상호 : ....그럼.. 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한득구로 살거야?
태웅 : (멈칫 보면)
상호 : 영영 한태웅으론 안돌아갈거냐?
태웅 :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가야겠지. 하지만.. 그때가 지금은 아니야.
상호 : 왜? ...정규 동생 땜에?
태웅 : ...한태웅으로 돌아가면... 그앨 좋아하는것도 안되는거잖아.
상호 : .....
태웅 : 나 아직은.. 그냥 이렇게 그애 좋아하면서.. 한득구로 살고 싶다.
53. 병원 일각 (낮)
건우가 누군가를 찾듯 두리번거리면서 급하게 나온다.
그러다 멈칫 시선이 머무는데.. 그곳에 보라가 서 있다.
건우 : 보라씨...!
보라 : (건우 돌아보며 웃는) 정기검진 받으러 왔다가 들렀어요. 전화 했었다면서요?
건우 : 네. (설레이고 행복한)
54. 병원 일각 (낮)
건우와 보라가 걸어가며 이야기한다.
건우 : 양수리엔 갑자기 왜 갔어요?
보라 : 그냥... 이것저것 생각 좀 정리하려구요. 어렸을 때 살던 집이라 거기 가면 마음이 편하거든요.
건우 : 오빠 생각도 많이 했겠네.
보라 :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죠..
건우 : 참 그거 알아요? 홍지혜 선생이 보라씨 오빠랑 같은반 친구였데요.
보라 : 어? 정말요? 오빠랑 친했었데요?
건우 : 여잔데 뭐... 얼마나 친했겠어요? 홍선생 말론, 한태웅이라는 사람이 제일 친한 친구였데요.
보라 : 한태웅...?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네.
건우 : (보면)
보라 : (대수롭지 않게) 그냥.. 우리 오빠 학교에선 어땠는지 궁금해서요.
건우 : (안쓰러운 표정으로 멍하게 보는데)
보라 : (문득 시선 느끼고) ....참 건우씨..
건우 : (화들짝) 네?!
보라 : .....나 건우씨한테 할 말 있어서 온거에요.
건우 : 뭔데요?
보라 :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앞으로 우리... 안만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건우 : 보라씨..!
보라 : ...건우씨.. 친구처럼 만나면 나는 너무 좋아. 하지만 건우씨가 나한테 기대하는건.. 친구 아니잖아요.
나... 이런 걸로 건우씨한테 미안해지고 싶지 않아요.
건우 : 보라씨, 그냥 지금 이대로 지내면 안될까?
보라 : (표정)
건우 : 내가 스스로 보라씨 포기하고 마음 정리할 때까지.. 나 친구로라도 옆에 있게 해줘요. 부탁이야.
보라 : (생각하다가) 미안해요 건우씨. 나 더 이상 건우씨한테 나쁜 사람 되기 싫어요.
건우 : 보라씨..!
보라 : (미안하게 웃으며) ... 갈께요.
보라는 가버리고 건우는 착잡한 표정이다.
55. 휴게실 (낮)
건우, 민호와 앉아서 뭔가 얘기하고 있다.
민호 : 야.. 보라씨 말이 맞어. 헤어진 남녀 사이에 무슨 얼어죽을 친구야.
건우 : ......
민호 : 마지막으로 멋있게 선물이나 해주고... 보라씨 인생에서 멋있게 퇴장해. 알았냐?
건우 : 선물..?
그때 지혜가 들어온다. 목례하고 음료수 같은거 뽑으러 가는데...
건우가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다가간다.
건우 : 홍선생.
지혜 : (돌아본다) 네..?
건우 : 그 한태웅이라는 친구말이에요. 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
지혜 : (굳어지며) 그, 그건 갑자기 왜요?
건우 : 내가 보라씨한테.. 오빠 친구 안다고 했더니 보고 싶어하는 눈치더라구요. 좀 어떻게 만날 수 없을까?
지혜 : (당황했다가 곧) 미, 미안해서 어떡하죠? 연락처가 없는데..
건우 : 네?!
지혜 : (당황스러워하는) 그, 그게.. 그새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더라구요. 나중에 알게 되면 가르쳐드릴게요.
(후다닥 빠져나가버린다)
건우 : (좀 이상하네.. 하는 느낌으로 지혜를 본다)
민호 : (다가와 서며) 왜 그래?
건우 : 어? 어.. 아무것도 아냐. 야, 니네 과학고 동문 찾으려면 어디다 물어봐야되냐?
민호 : (의아하게 보며) 니가 우리학교 동문을 왜 찾아?
건우 : 보라씨한테 선물 해주라며. 퇴장은 모르겠고, 선물은 하나 해주고 싶다. 빨리 어디가서 찾을 수 있는지나 말해 줘.
민호 : 고민할 게 뭐있냐? 학교 가서 물어보면 되지.
건우 : 학교?!
56. 서점 (낮)
충식과 승리가 책을 고르고 있다. 검정고시 준비용 책들.
충식 : 서울대?! 득구한테 서울대 다니는 친구가 있어?
승리 : 오빠도 몰랐어?
충식 : (끄덕) 어.
승리 : 온몸에서 공부 잘하는 티가 팍팍 풍기더라. 득구오빠한테 그런 친구도 있는 줄은 몰랐어.
충식 : (멍하게 생각하는) 득구한테 나말고도 친구가 있었구나...
승리 : 왜, 질투 나?
충식 : 아니이! ...신기해서.
승리 : (검정고시 준비용 책을 주룩 훑어보며) 근데 이런 책은 왜 사?
충식 : 득구 주려고. (승리 보며) 득구 대학간단다.
승리 : 진짜? 잘 됐다! 득구오빤 공부하면 잘 할거야. 열심히 공부해서 오빠도 꼭 서울대 가라고 해야지!
충식 : (빤히 보며) 승리야.. 오, 오빠도 서울대 갈까?
승리 : (대꾸해 무엇하리.. 그냥 먼저 간다)
충식 : 야! 같이 가!
57. 체육관 (밤)
태웅이 체육관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충식이 들어온다.
태웅 : (충식 보고) 어? 충식아? 너 아까 집에 간거 아니었어?
충식 : 어.. 너 줄게 좀 있어서.
태웅 : (멈칫 보면)
충식 : (쇼핑백을 건넨다) 받아라.
태웅, 쇼핑백에 든 걸 꺼내보면 검정고시 준비 책들과 충식이 보던 정석과 성문 기본 영어.
충식 : (검정고시 책 가리키며) 이것들은 새로 산거고.. (정석과 성문 기본 영어 가리키며) 이건.. 내가 보던 건데..
헌책이어도 앞에 열 몇장 밖에 안봐서 엄청 깨끗해. 너 그냥 봐.
태웅 : (미안한) ...충식아...!
충식 : 너 기껏 맘 먹고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싫은 소리 해서 미안하다. 말해놓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괜한 소리 한거 같더라구.
태웅 : ......!!
충식 : 야! 기왕 하기로 맘 먹은거 열심히 해. 어? 알았지? 나 가면 바로 공부 시작해라, 엉?
충식, 웃으며 태웅의 어깨 두들겨주고 나가고...
책 들고 멍하게 충식의 뒷모습 보는 태웅의 표정. 그러다 충식이 준 책을 보는데.. 착잡하다.
58. 한국과학고 전경 (낮)
59. 교무실 (낮)
건우가 앉아 있는데 교무과 직원이 다가와서 앉는다.
직원 : 한태웅, 자퇴한 학생인데요?
건우 : 네? ... 자퇴라구요?
직원 : 한태웅 학생 찾는다고 했잖아요. 98년에 자퇴한 걸로 나와 있어요.
건우 : (전혀 예상 못한) ... 천재였다고 들었는데.... 왜 자퇴를 했나요?
직원 : 글쎄요? 그거야 저는 모르죠.
건우 : ... 혹시 전화번호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직원 : 그건 곤란합니다. 학생 신상정보는 가르쳐 드릴 수 없게 돼있거든요.
건우 : ..
직원 : 설령 알려드린다 해도 8년이나 지났는데 안바뀌고 있겠습니까?
건우 :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가득한)
60. 병원 일각 (낮)
건우, 골똘한 표정으로 걷는다.
건우 : (혼잣말) 한태웅... 왜 자퇴를 했을까...
건우, 걷다가 저 쪽에서 오는 의사를 본다.
건우, 다가간다.
건우 : 혹시 우리과 홍지혜선생 못봤어?
의사 : 홍선생? 장박사님 따라서 아까 학회 갔는데? 몰랐어?
건우 : 학회? 아니 무슨 인턴이 학회를 가?
의사 : 그게 이번 학회가 인터내셔널 컨퍼런스 아니냐... 홍선생 네이티브라 장박사님이 데려가신 거 같애.
건우 : 네이티브?
의사 : 거 왜, 아버지가 외교관이라서... 홍선생, 초등학교까지 영국에서 다녔다고 하더라구.
건우 : (깜짝 놀라는) 잠깐만. 방금.. 영국이라고 했어?
의사 : 응.
건우 : 영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단 말이야?!
확 돌아서는 건우 표정 위로,
61. 플래시백 (9부 62씬)
건우 : (태웅 보더니 멈칫하다가) ... 한득구씨?
태웅 : !!!
건우 : 홍선생하고 아는 사이였어요?
태웅 : (가까스로) .. 하, 학교 동창입니다.
민호 : 동창? 그럼 우리 한국과학고?
태웅 : (표정)
지혜 : (표정)
건우 : (이상한 듯 두 사람 번갈아보는데)
지혜 : (얼른 웃으며) 아,아뇨.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62. 건우진료실 (낮)
진료실에 앉아서 생각하고 있는 건우. 머릿속이 복잡하다.
건우 : ...왜.. 거짓말 했을까...
건우, 혼란스럽고 복잡한 표정이다. 왔다갔다하며 생각하는 건우. 하나씩 퍼즐을 맞춘다.
생각을 맞춰가는 건우의 표정들과 교차되는 플래시백들.
# (4부 32씬)
태웅 : ... 두개골 골절이란 생각은 안드십니까?
# (9부 62씬)
민호 : 동창? 그럼 우리 한국과학고?
지혜 : (얼른 웃으며) 아,아뇨.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 (11부 60씬)
의사 : 홍선생, 초등학교까지 영국에서 다녔다고 하더라구.
# (11부 59씬)
직원 : .. 한태웅, 자퇴한 학생인데요...
# (10부 32씬)
민호 : 뭐? 그 친구가 고등학교 중퇴야? 근데 뭐 그렇게 똑똑해?
# (11부 11씬)
건우 : ...홍선생은 운도 좋네?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고 첫사랑도 만나고... 그러고보니까 성도 같은 한씨잖아. 한득구, 한태웅.
# (7부 15씬)
지혜 : 진짜 천재는 한태웅이죠.
건우 : 한득구... 한태웅...?!
건우, 뭔가 서서히 확신이 드는 듯한 표정.
63. 태웅의 방 (밤)
태웅, 책상 앞에 앉아서 충식이 준 책들을 보고 있다.
낡은 정석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멈칫 하는 태웅... 책 앞 여백에 충식이 메모를 남겨놨다.
“사랑하는 내 친구 한득구에게... 부디 대학가길 바란다. 너의 친구 충식이”
태웅, 착잡한 표정 위로,
상호(소리) : 너 8년이나 거기서 살았다며... 그럼 거의 가족같은 사람들이잖어.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태웅, 괴로운데.... 이때 핸드폰이 울린다.
태웅, 핸드폰 보면 건우다.
태웅 : ... 서건우 선생님?
64. 건우 차 안 (밤)
건우 : 네, 득구씨... 지금 체육관 쪽으로 가는데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네... 네... 한 10분 정도 걸릴 거에요. 그럼 이따 보죠.
건우, 뭔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엑셀을 더 밟는다.
65. 보라집 전경 (밤)
66. 김회장 서재 (밤)
보라, 김회장 서재를 치우다가 문득 가족사진을 발견한다.
애잔한 느낌으로 사진을 바라보는 보라. 그러다 문득 건우의 말이 떠오른다.
건우(소리) : 한태웅이라는 사람이 제일 친한 친구였데요.
보라, 생각하는 표정인데 득남이 고개를 내민다.
득남 : 보라야 회장님 오셨어.
67. 보라집 거실 (밤)
김회장, 피곤한 듯 소파에 앉는데.. 나오는 보라.
보라 : 아빠 일찍 들어오셨네요?
김회장 : (돌아보고) 어.. 집에 있었구나...?
보라 : 네.. (그러다) 아빠 참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요.
김회장 : (보면)
보라 : 혹시 오빠 친구 중에 한태웅이라는 사람 아세요?
김회장 : (멈칫 놀라 보며) 니가.. 그 애를 어떻게 알아?
68. 체육관 앞 (밤)
태웅이 체육관 문을 열고 나온다. 찻길을 기웃거리며 건우차가 오는지 살펴본다.
69. 보라집 서재 (밤)
보라 : 건우씨 아는 사람 통해서 들었어요. 아빠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혹시 우리집에 놀러 온적도 있어요?
김회장 : (얼굴 굳어서) 글쎄.. 그건 모르겠다. 나도 얘기만 들었을 뿐이야.
보라 : 오빠랑 제일 친한 친구였다고 하던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
(김회장 보며) 오빠 얘기도 들을 겸 건우씨 통해서 한 번 만나볼까요?
김회장 : 보라야... 혹시라도 그애를 만나 볼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마라.
보라 : 왜요?
김회장 : 정규가... 친구 때문에 죽었다는 말, 너도 들은 적 있지?
보라 : (보면)
김회장 : (보라 보며) 그 친구가... 바로 한태웅이야.
보라 : (표정)
70. 체육관 앞 (밤)
여전히 서성이고 있는 태웅. 추운지 발을 동동 거리며 서있다.
그때 골목으로 들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태웅, 건우차인가 싶어서 고개를 쑥 내밀어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건우 목소리.
건우(소리) : 한태웅!
태웅 : (멈칫 놀라 확 돌아본다! 슬로우.)
건우 : (본다!)
태웅 : (놀라 보는!!)
건우 : ....당신.. 한태웅 맞지?
뒤에서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역광을 받으며 선 태웅의 표정에서 1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