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스승, 인생의 스승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게 밥해주던 공양주가 선지식이다. 내 방에 군불 넣어 주던 부목이 선지식이다. 어촌 주막의 주모가, 어부가 선지식이다. 대장장이가 선지식이고, 시장 바닥의 노점상이 선지식이다. 죽은 자를 만지는 염장이가 선지식이고, 서울 시청 앞에 누운 노숙자가 선지식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스승 이고 선지식이다. 그들의 삶이 경전이고, 팔만대장경이다.”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이 신묘년 동안거 해제를 하는 수좌들과 해제법회에 참석한 대중을 향해 해제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무산 스님은 5일 오전 10시 30분 설악산 신흥사 설법전에서 열린 신묘년 동안거 해제법회에서 법상에 올라 이례적인 파격적 법문으로 만행에 나서는 수좌들을 격려하며, 세상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찾을 것을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죽어있는 선지식과 깨달음을 찾지 말고 살아있는 선지식을 찾아 여행을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무산 스님은 “왜 천년 이천년 전의 조주·백장·황벽·육조 늙은이들의 넋두리에 코가 꿰어 살아가느냐”고 질타하면서 “무자니 하는 화두는 조주가 처 놓은 그물로, 여기에 걸려 수행해서는 살아있는 깨달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 올 줄 알았으면 시국선언이라도 했어야”
무산 스님은 해제법어를 위해 법상에 올라 파격적인 말로 법문을 시작했다.
스님은 “내가 박근혜 안철수 손학규도 아닌데 오늘 왜 이렇게 기자 선생들이 많이 왔느냐”면서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알았다면 시국선언이라고 해야 했다”면서 법어의 문을 열었다.
스님은 “해제법문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다. 늙은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한다”면서 “지금은 진리라는 것이 시끄러운 소리가 됐다. 방송, 라디오, 신문, 인터넷에서 저마다 진리라고 떠들어 진리가 소음이 됐다. 요즘은 명상하는 사람들은 설법을 듣기보다 자연의 새 울음이나 바위 밑 물소리, 동해의 파도소리, 바다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무산 스님은 “80 노인의 소리를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는가? 10년 전부터 해제법문 하라고 하면 종정 예하의 법어를 읽었다”면서도 “오늘은 노망난 늙은이가 이야기를 좀 하려한다. 나는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데, 했던 얘기 또 하고 해서 주변서 노망났다고 한다. 법문으로 듣지 말고 노망난 늙은이의 이야기로 들어 달라”고 했다.
무산 스님은 한 포교당 개원식에 다녀올 때의 경험담으로 ‘노망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산 스님은 “한 보살이 스님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줄 알았는데, 스님은 파삭 늙었네요. 사는 의미가 뭔가? 어찌하면 잘 사는 것인지 알려 달라”는 물음에 “나도 80년을 살았지만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여러분은 아는가? 다행이다. 여러분이 안다면 내가 이 법상에서 쫓겨났을 텐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참선하는 것”
이어 스님은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것이 참선을 한다. 무금선원 콧구멍만한 방에 들어앉아 개구멍으로 밥 한술 넣어주면 먹고 3개월간 징역살이를 한다. 또 선원의 한 방에서 4, 50명이 생활한다. 매일 같은 반찬에 방귀 끼는 놈도 있고, 기침하고, 코 고는 놈도 있는 방에서 수행한다고 생활하니 얼마나 힘들겠냐”면서 “이렇게 힘들게 선방에 들어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오직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알기위해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산 스님의 해제의 의미를 이어갔다. 스님은 해제는 해방의 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해제는 (선방에서) 해방된 날이 아니다. 3개월 동안 들어 앉아 있던 것보다 더 큰 고행이 기다린다”면서 “해제하면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가듯 여러분들도 산문을 나가 선지식이라는 이름의 스승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제는 또 다른 구속이다. 3개월 공부한 내용을 눈 밝은 선지식에게 검증 받아야 한다.”면서 “방 안에 있을 때는 밥을 얻어먹고, 불 때 줘서 편히 앉아 있지만 (만행 길은) 또 다른 고행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해제는 또 다른 고통… 선지식은 명산대찰에 있지 않다”
무산 스님은 만행 기간 만날 선지식이 명산대찰이나 천년고찰, 산중수행처에 있지 않고,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생 속에서 선지식을 찾고 이들의 삶을 통해 깨닫고 이들을 위한 자비심을 갖춘 수행자가 될 것을 당부했다.
무산 스님은 “나도 젊었을 때, 선지식이 명산대찰이나 천년고찰, 산중수행처에 있는 줄 알았다. 나이가 좀 들다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내가 보는 세상과 여러분이 보는 세상은 다를 것”이라면서 “나는 대학도 안 나왔고, 운전도 못한다. 내가 못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더 잘하는 게 많다. 이처럼 내가 아는 세계 보다 모르는 세계가 무진장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생이 선지식, 그들의 삶이 팔만대장경”
무산 스님은 “우연한 기회에 삶의 스승이, 인생의 스승이 내 곁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면서 “선방에서는 나에게 밥을 해주는 공양주가 선지식이었고, 군불 넣어주는 부목이 선지식이었다. 세상으로 나가면 어촌 주막의 주모가 선지식이었고, 어부가, 대장장이가, 시장바닥 노점상인이 선지식이었다. 염장이가 선지식이고, 석수장이가 선지식이었다. 서울시청 앞 노숙자가 선지식이었다. 바로 그들의 삶이 경전이고, 팔만대장경이었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죽은 자를 염하는 염장이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본분사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선지식의 삶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삶이라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한 염장이가 살아있는 사람은 남녀구별이 있고, 신분고하가 있으나, 죽은 사람은 신분지위 고하나 남녀 노소 구별이 없다. 살아있는 사람이 무섭지 죽은 사람은 무섭지 않다고 말하면서 정말로 지옥과 극락이 있냐고 묻더라”면서 “염장이 질문에 동서가 캄캄했다. 전에 법문할 때 10만억 저 멀리 극락정토가 있다고도 했고, 마음이 극락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멍하니 은산철벽에 서있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어 “염장이는 시신을 보면 청렴하게 살았는지, 후덕하게 살았는지, 남에게 못할 짓하고 살았는지, 도둑질로 살았는지, 누명을 쓸고 억울하게 죽었는지 느낌이 오더라고 하더라”면서 “염장이는 잘 살다 죽은 시신이나 후덕하게 살다 죽은 시신은 대충 염해도 걸림이 없는데, 잘 살지 못하고 죽은 시신은 자신 같고, 엄마 같고, 누이 같고, 친구 같아 정성들여 염하고 시신과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에 그가 선지식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염장이는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 염을 최선을 다해 한다는 것이 보여 부끄럽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염장이 말에 되려 부끄러웠다”면서 “바로 이 염장이가 선지식이고 그의 이야기가 대장경이었다. 생로병사 제행무상 화엄경과 법화경 조사 선문답과 어록이 다 염장이의 말 속에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죽은 경전에 매달리지 말고, 중생 삶 속에서 가르침 찾아야”
또 무산 스님은 “해인사의 대장경은 골동품이다. 문화재이다. 대장경에 억만 창생이 빠져 죽었다. 경전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건질 게 없었다. 건져도 건져도 건져지지 않는다. 중생 한 사람도 건질 수 없다. 불교역사에서 경전에 매달려 빠져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진리다.”면서 세상 속 중생의 삶 속으로 들어가 선지식을 찾고 가르침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 절에서는 공양주와 부목을 선지식으로 모시라고 했다.
무산 스님은 “법회 끝나면 여러분들은 선지식을 찾아 나선다. 명산대찰에만 선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중생의 삶, 슬픔, 살아온 이야기와 그 사람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재동자가 찾아 나선 선지식 역시 비구 비구니도 있지만 중생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문수의 지혜를 배우고 보현의 행원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의 파격적인 발언은 법문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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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 부처 있나? 절간은 스님 숙소”
무산 스님은 “절간에 부처가 있나? 절간은 스님들 숙소야! 부처 한 놈도 없다”면서 “여러분들이 못하는 일을 공양주가 한다. 그리고 처사가 한다. 바로 그들이 보현의 행원이고 문수의 지혜이다. 경전 속에 행원이 지혜가 있지 않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죽어도 그렇게 못하지 않냐”고 질책했다.
무산 스님은 중국에서 전해진 간화선이지만 중국 선사들의 화두에만 머무르지 말고 우리나라 선지식들의 행원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우리나라 선방의 가풍의 위대함을 인식하라는 뜻이자, 문자로 얽매인 죽은 화두에 빠져 살지 말라는 경책이었다.
무산 스님은 “전강 스님은 30대에 깨달음을 얻었다. 경허 스님은 한 철만에 깨달았고, 만해는 선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깨달았다. 그런데 왜 천년 이천년 중국의 조주·백장·황백·육조 늙은이들의 넋두리에 코가 꿰어 사는가?”라며 “차나 한잔 들고 가게나, 법이 있습니까? 무(無) 이 모든 게 조주 늙은이가 처 놓은 그물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지 300년이 지났다. 초고속 인터넷 세상이고,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다. 거기에 걸려 살면 안된다.”고 했다.
수행자 덕목은 ‘대의심’ ‘대의심(의정)’ ‘대분심’
무산 스님은 수행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대신심’ ‘대의심(의정)’ ‘대분심’ 등 세 가지를 들었다.
무산 스님은 “선방에서 3개월간 수행하려면 대신심이 우선돼야 한다. 부처님을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그 다음에 의심을 해야 한다. 대의심(의정)이 있어야 한다. 또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에게 분노해야 한다. 대분심이다. 남에게 분노하는 것은 중도 아니다. 자신에게 분노해야 한다. 이게 없으면 3개월 수행해도 한 게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금강경 오가해> 주석서에 ‘정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삿된 법이나 거짓말 해도 그 거짓말과 삿된 법이 바른 법으로 정법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삿된 사람은 바른 법 정법 좋은 말해도 정법이 삿된 말이 되고 거짓말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면서 “좀 더 솔직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중이 됐다면 대신심과 대의심(대의정) 대분심을 갖고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감동을 주는 불교, 감동을 주는 수행자가 될 것을 권유했다.
무산 스님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면, 감동을 주려면 놀라게 해야 한다. 신문장이들이 특종을 찾아다니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신흥사 담장 무산이 쌓았나? 석수장이가 쌓았나?”
무산 스님은 수행자의 진정성에 대해 신흥사 석축을 쌓은 일을 통해 비유했다.
무산 스님은 “신흥사 담장을 쌓은 석수장이로 인해 부끄러웠다. 신흥사 돌담을 누가 쌓았는가? 이 법당(설법전)은 누가 만들었는가? 석수장이가 만들었고, 목수장이가 만들었다. 그런데 무산이가 만들었다고 한다. 쌓은 놈은 석수장이 인데 무산이가 지었다고 한다. 진실이 뭔가, 제대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의 법문은 이례적으로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향성선원장과 신흥사 전주지 마근 스님의 시간독촉에도 스님은 ‘노망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산 스님은 이날 법문을 마치며 “출가를 했다면 진성성을 갖추고 수행할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출가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육신의 출가, 둘째는 오온(五蘊,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로 생, 수, 상, 행, 식)의 출가, 셋째는 법계를 넘어선 출가”라고 재차 강조했다.
설악산 터줏대감 지난해 하안거 해제법회 때 조실 추대
무산 스님은 설악산의 살아있는 터줏대감이다. 무산 스님은 지난해 8월 하안거 해제법회 당일 신흥사 조실로 추대됐다. 총림의 방장격인 조실 자리를 두고, 신흥사 대중 스님들은 오래전부터 무산 스님을 추대하고자 노력했지만, 스님이 그동안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다.
신묘년 동안거 해제법문은 조실 추대 후 처음이다. 해제법회에는 신흥사 향성선원과 백담사 무금선원 및 기본선원에서 안거 수행한 수좌들과 신흥사 대중 스님, 재가불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무산 스님은 7세 때인 1939년 출가, 밀양 성천사에서 사미계를, 부산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신흥사 주지와 회주 등을 역임하면서 양양 진전사를 복원했고, 선원이 없었던 신흥사와 백담사에 각각 향성선원과 무금선원을 열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불교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도 지냈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유명한 무산 스님은 <심우도> <절간 이야기> 등 작품집을 펴냈고 만해 한용운 스님을 기리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이끌며 만해 스님의 사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 같은 공적으로 조계종은 지난해 10월 제23회 포교대상 수상자로 무산 스님을 선정, 시상했다.
종정 법전 대종사는 2월 6일(음력 1월15일) 동안거 해제일(解制日)을 맞아 법어를 내리고 만행에 나서는 수행납자(修行衲子)들의 끊임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신묘년 동안거 전국 99개 선원서 총 2,382명 정진
법전 대종사는 해제 법어를 통해 흥화존장선사와 한 납자와의 일화를 소개한 뒤 “선불후불(先佛後佛)이 심인(心印)을 전하는 것은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하는 것이니 이것이 우리 선종의 신통묘용”이라며 “정법상전(正法相傳)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오직 선가(禪家)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법전 대종사는 이어 “동안거 90일 동안 열심히 제대로 정진한 납자는 해제 후 만행길에서 분반좌에 조금도 망설임 없는 선지식을 만나게 될 것이며, 분반좌가 없었다면 공부가 모자람을 스스로 알아차리고서 더욱 용맹심을 내어 정진해야 할 것”이라며 “산철 동안 다자탑전반분좌(多子塔前半分座) 화두와 함께 스스로 안목을 점검해 보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전국 선원의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신묘년 동안거 선사방함록(禪社芳啣錄)>에 따르면 전국 99개 선원(총림 5곳, 비구선원 58곳, 비구니선원 36곳)에서 총 2382명(비구 1201명, 비구니 979명, 총림 202명)의 스님들이 정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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